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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w 2

백승권 |2006.02.04 00:48
조회 1,740 |추천 0

죽음에 대한 공포를 삶의 의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말 자체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전제에 있어 평범한 일상에서는 도저히 시도될 수 없는 것일테다. 죽음이라니. 하루에도 수백번씩 생각나고 시도 때도 없이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눈이 충혈되고 피가 끓어오르는 일상사라 할 지라도 거기에 "공포" 라는 키워드를 붙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불길과 폭력앞에서 생명을 내던지며 활동하시는 형사님들이나 소방관님들, 또는 그 이외 활동자체에 극도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아니면 '죽음+공포'는 흔히 겪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는 난치와 시한부선고를 받고 병원에 계신 아프신 분들에게도 예외로 적용된다. 타고난 운명과 후천적인 고통을 극한의 의지로 이기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이겨내는 그분들의 일상은 결코 팔다리 휘두르며 멀쩡히 활보하며 다니는 일반인들과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피상적인 구분이 아닌 마인드에 차별점을 두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자신의 손과 발이 제자리에 붙어있음을 매일 확인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수많은 일반인들. 이제 그래도 삶은 힘들어라는 공통분모적인 푸념은 잠시 멈춰두고 이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르는 행복에 살아."

 

 

saw2


전편에서 죽지 않았고 두번째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등장하는 범인의 사고방식을 쌍수를 들어가며 두둔할 생각은 없다. 꽤 설득력있게 들리는 그의 주장은 그가 악의 도구를 통해서 심판한다는 주제 넘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니까. 마약을 비롯한 각종범죄를 통해 감옥을 오가며 사회를 어둡게하는 인간들을 살인을 통해 체벌한다는 자극적인 공익성은 뉴스를 타고 대중에게 흘러들어가면 그저 단순한 이야기거리로 소진될 뿐이니 말이다. 좋은 의도의 실현은 그 방법에 있어서 어렵기 마련이다. 그의 방식은 아주 좋은 뜻을 아주 악랄한 방식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더 많아진 피와 더 커진 비명소리를 통해.

감독은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명성과 스타일을 이어가려면 지독하리만큼 처절하게 엮여있던 전편의 짜임새와 반전을 넘어거야 했을테니. 의도하지 않은 흥행과 찬사를 누렸던 1편은 그 마지막 장면까지 보는 이들의 후두부와 왼쪽 가슴을 강타했으니 말이다. 허나 감독은 바뀌고 이미 이뤄놓은 자리에서 턱을 괴게된 감독은 전편의 배경과 대결구도는 유지하되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설정 등은 수정해보자라는 후속편이 지녀야할 당연한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늘 그렇듯 당연한 결정이 꼭 같은 수위의 감동을 몰고 오지는 않는 다는게 단점이긴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처리하는 몇몇 방식이다. 느닷없이 납치되고 감금되어 버린 그들. 서로 다른 곳에서 왔으니 당연히 뜻이 맞을리 없고 우왕자왕하다가 신체를 끊임없이 훼손당해가며 한둘씩 그림자를 감춘다. 살려는 의지를 이용당해가며 서로를 죽이게 되고 또 스스로 죽게 만든다. 급박한 죽음의 공포에 몰린 이들은 이미 익숙해진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그들이 그랬듯, 이것은 누구한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번 저지른 불법을 합법으로 돌이키는 일은 이미 중앙선까지 와버린 8차선 무단횡단을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과 마친가지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기 보다는 이미 엎지러진 물을 쓱쓱 닦아버리려고 안달할테니까.

그렇게 죽어간다. 타인들의 뜻은 절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서로 살려고 팔을 내밀다가 산채로 불에 타죽고 팔목을 서서히 베여가며 피를 쏟아내고 분노에 못 이겨 같이 살아도 모자랄 상대방의 머리통을 부숴뜨린다. 모든 움직임이 카메라를 통해 외부로 보여지는 상황에서도 구원의 빛은 전혀 발하지 못한다. 아무리 때려도 열리지 않는 철문으로 둘러싸인 벽과 뻔히 보이는 앞에서도 잡히지 않는 해독제가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길 기다릴 뿐이다. 희망은 거부당했고 다음 희생자들이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게임은 영영 끝나지 못한다. 범인은 숙주를 키워 악의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그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희생자가 스스로의 발에 족쇄를 채우도록 이끌었으니.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피묻은 톱과 썩어가고 있는 희생자들만 닫힌 문과 끝나지 않은 비명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점점 영리해지는 듯 보이지만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가장 빨리 잊는다. 사소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믿고 살아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위에서 강조할 때는 귀를 막아두고 궁지에 몰리면 난 항상 혼자였다고 변명한다. 자기가 항상 가장 힘든 일을 하고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런 상황이니 나하나 지키기에도 바쁘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벅차다는 소릴 한다. 그래서 불법을 당연히 여기고 그것을 습관화 시키고 무감각해지고 그러다 사고를 당하면 억울하다고 그런다. 행복하고 싶다고. 나도 한번쯤 TV에 나오는 누구들처럼 많은 돈과 명성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고 메아리 없는 하소연만 중얼거린다.

전편이든 이번 후속편이든 영화를 봤다면 알 수 있듯이 범인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는 미경찰특공대가 난리 쳐도 감지해 낼 수 없었던 그의 존재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심연속을 돌아다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감사함의 대상인지 모르는 이들을 스스로의 가시에 엮이게 하여 다음 희생자로 만들 것이다. 죽음의 공포가 닥치고 나서야 그동안 사소했던 삶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면 이미 많이 늦은 것일지도 모른다.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함을 한탄하지 말고 구름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이다. 살날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장담할 수 없듯이 기회도 역시 많이 남은게 아니다. 손해본다고 머리 쓰지 말고 착하게 좀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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