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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의 송강호

매냐 |2007.04.06 18:59
조회 7,982 |추천 0



괴물의 송강호가 다시 돌아왔다. 라며 영화를 관람했다.

하지만 좀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반칙왕' 의 송강호가 먼저 떠오르는게 이치다.

한국에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보려는 30대의 송강호는

이땅에 40대 가장으로써 살아가는 아버지로 어느덧 살아가고 있었다.

조폭은 조폭인데 조금 이상한 조폭이다.

이제껏 한국의 조폭영화에서 이렇게 욕 안하는 조폭을 본적이없고.

이건 그냥 조폭이 아니고 말 그대로 어느회사 부장님 이다.

아니 이것또한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냥 희숙이 아빠 강 아무개씨다.



영화내용을 보자니 내용이 아주 피곤한? 일이다.

영화내내 송강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른함을 박스채로 느끼게 해준다.

여기 저기서 졸고 자고,, 생물학적으로 40대는 사회적인 가장의 무게에 비해

체력이 턱없이 딸린게 문제로 보였다. 근데 이게 정말 완벽하게 송강호를 거쳐 표현됐다.

핸드핼드 촬영기법이 다분히 보였던는 것은 극중 송강호캐릭터 연출에 대한

한재림 감독의 노파심에 의한 것으로 치부할정도로.. 그만큼 이보다 배우가 극중배역을

연기하는데에서 힘을 이렇게 빼고도 (물론 이건 그의 혼신의 연기였다) 배우와

배역의 간격이 아애 존재하지 않는 연기를 본적이 없다.



아버지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합법적인 직업군에 들어가 있지 못한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버지로 불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에겐 누구나 아버지가 있다.

이를테면 감독이 깔아준 일종의 멍석.

아버지는 조폭에 몸을 담고 있는것과 동시에 한 가정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위치에 있다.

아버지의 직업인 조폭은 일상의 행복(여기선가정에국한)을 영위하기엔

장애가 많고 (윤리적/물리적 두가지)

그리고 그런 장애를 가족들이 점점 불편해하다가 결국엔 같은 존립을 거부하기까지 이른다.

이 시점에서 송강호가 분한 강인구 즉. 한 가정의 아버지는 혼자가 되고 잔인한 딜레마에 빠진다.

그의 조폭생활은 가정생활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쓰이지만

그 생계유지 행위에 대한 가족의 불허(不許).

물론 여기엔 어떠한 윤리적 목적보다는 아버지로써의 자격요건에 대한

부재로써의 '요구'가 그들의 행위를 표현하는데 더욱 적절해보인다.

그래서 이들에겐 아버지에 대한 용서가 애초에 없었다.

오이디프스 컴플렉스 효과가 극중에 스며드는것을 차단하기위한 것처럼(나는 그렇게 느꼈다)

아들은 영화씬에서 멀어져있다. 대신 아버지는 부인과 딸을 위해 그리고 또 모순되게도 그들에게

용서를 받기 위해 , 인정을 받기위해 몸부림친다.

그것이 아버지가 꿈꾸는 우아한 세계의 도달점이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그 우아한 세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물론 이 '우아한 세계'란 그의 직업을 통해서는 다다르지 못하는 한계지점을 일컷는말이기도하다)



영화의 마지막 씬. 캐나다에서 가족이 보낸 비디오테잎을 돌려보는순간

딸의 저항에도 단한번 분노를 보여주지않았던 아버지 강인구는 처음으로 분노를 느끼곤

손에 쥔 라면그릇을 방바닥에 던졌다.

자신이 쏙 빠진 세계에서 우아한 세계를 즐기는 가족들을 보며 아버지 강인구는

'내가 멀 그렇게 잘못했다고.'라고 중얼거리며 어린아이처럼 징징 댄다.

소외됨으로 인한 순간의 충격.가정에서의 혼자인 자신을 발견하고 아버지 강인구는 정말 송강호?

처럼 우는것이다.

아내와 딸과 아들의 행복한 일상을 조그셔틀로 밖에 확인못하는 아버지는 더욱 슬프다.

조그셔틀은 아버지가 실제의 삶에서는 확인할수없는 가족의 행복을 보기 위한 도구이고

강인구는 이 판타지를 반복하여 재생한다.

이것이 바로 강인구 삶에 있어서의 위로이자 삶의 근원이다.

동시에 이것은 아버지 강인구의 판타지이다. 결코 동시공간 속에서는 양립할수없는 아버지의 꿈.



때문에 영화는 한순간 점프하여 시야를 그가 조폭으로 담고 있는 사회로의부터 탈출시켜

그가 조폭으로써 결코 우아한 세계에 다다르지 못할것이라는 필연적인 직업적 숙명을

가정에서의 소외로 결부시킨다. 한재림 감독이 말하는 아버지 강인구는 비열한 거리의 한복판에

서있는 결코 우아하지 못한 아버지의 이미지에 가정에서 경제력 그 이상으로는 자리잡을수없는

아버지의 소외된 모습이 첨가된 이중적 상실자이다.



그래서 강인두(송강호)는 조폭의 세계에서 유린되는듯 했지만 그는 죽지 않았고

또다시 살아돌아왔다.게다가 똑같은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서 말이다. 당연하지.

아직까지 죽으면 안되는 존재이니까

가족을 위해서 멈춰서는 안될 존재이니까.



우리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재생산되고

우리는 그런 아버지의 맹목적 존재이유이자 거침없는 소비자이다.

어찌보면 이보다 더 노골적인 잔인한 가정사를 파헤친 영화도 없을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들의 아버지는 애초부터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았을 거란 사실도

알려주니까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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