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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29화> 깡통전화기

바다의기억 |2006.03.04 22:27
조회 9,425 |추천 0

쉽게 오기 힘든 기회들이

 

한꺼번에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과연 어떤 게 정말 저를 위한 선택인지

 

갈등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 피라미드만 가지 말아라 =======================

 

 

연출 - 크으.... 고기~!!!


한나 - 앗! 안돼요!!


토끼 - ‘흠칫!’



고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끝내 토끼를 잡으려는 연출.



김양 - 스읍....후우....스읍....후우....


회계 - .....


김양 - .....진짜 없냐?


회계 - 미안.



집게와 중지를 입술 근처에 댄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김양.



산장 안엔 고갈된 자원으로 인해


심각한 금단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담배건 고기건 술이건


하루 만에 이정도 의존성을 보일 리는 없지만


앞으로 얼마동안 버텨야할지 알 수 없는 현재 상황이


지금의 저들을 만든 것 같다.



김양 - 종이 종이... 종이 있지?


회계 - 응? 종이는 뭐하려고?


김양 - 꽁초 말아 피우자.


회계 - 꽁초 전부 밖에다 버렸잖아.


김양 - .... 주워오자.


회계 - 다 젖은 걸 주워오면 어쩌려고?


김양 - 말려서 쓰게



이곳에 도착했을 때부터


연출이 산장 안에선 담배를 못 피우게 했기 때문에


2층 발코니나 현관이 사람들의 주된 흡연구역이었다.


밖에 내린 폭설에 묻혀


성한 게 있을 리 만무했지만


김양은 젖은 꽁초라도 말려서 쓰겠다는 각오다.



김양

- 내가 그저께 분명 장초를 버린 게 있어.


그것만 찾아도 반 개비는 될 거야.



회계 - 김양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회계는 결국 마지못해 김양을 따라 나섰지만


그다지 좋은 성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연출

- ...그래, 창고에 뭔가 더 있을 거야.


비상식량이 이만큼 있는데


고기가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김양과 회계의 모습을 본 연출도


다시금 의욕이 불타오른 듯


지하 창고로 탐사를 떠났다.


아무래도 보존기간에 한계가 있는 고기가


그런 곳에 비축되어 있을 리 없을 것 같지만....



덩치 - 우리도 한 번 가볼까?


어깨 - 이미 찾을 만큼 찾은 거 같은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출을 따라 나서는 덩치와 어깨.


지금까지 창고에서


생각보다 유용한 물품을 많이 찾아낸 만큼


완전히 손놓고 있기도 아까웠던 것 같다.



김씨 - 우린 운동이나 좀 하고 올까?


허씨 - 요 앞 봉우리까지 달리기 시합 어때?


김씨 - 지는 사람이 설거지 당번 대신하기.


허씨 - 오케이 콜!!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본 김씨와 허씨도


가벼운 차림으로 밖으로 나갔다.



결국 몇 사람 남지 않아 한적한 거실.


내 어깨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던 민아가


조금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민아 - 얼마나 더 있게 될까?


기억 - 글쎄... 바깥 이야기를 통 알 수가 없으니...



첫날 과음 이후


민아는 쭉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감기라도 오는 걸까....



그때 민아와 나란히 앉아있던 한나가


내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한나

- 오빠는 공대생인데


라디오 같은 거 못 만들어요?



기억 - 재료가 있어야 만들죠.


한나

- 맥가이버 같은 거 보면


여기저기서 쪼금씩 가져다가 다 만들잖아요.



기억

- 이 숲 속에서 다이오드랑 이어폰을 어떻게 구해요?


만든다고 쳐도 전파가 잡힐지....



한나 - 피- 시시해.


기억 - ......



공대생이 무슨 연금술사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것도 없는 산장에서


원하는 물건이 뚝딱뚝딱 나올 리 만무하다.

(또한 공대생이라고 다 라디오 같은 걸 만들고 노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집안에 있는 가전도구들을 분해하면


라디오 정도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런 걸 닭 쫓던 개 잡으려다 코 깨진다고 하는 거다.



한나 - 지금 뭐 만들 수 있는 거 없어요?


기억 - ..... 깡통 전화나... 깡통피리 정도?



눈에 띄는 거라곤 여기저기 널린 빈 깡통과


나무젓가락 같은 것뿐이었기에


그 외 별다른 건 떠오르질 않았다.



한나 - .... 그거라도 만들어 줘요.


기억 - 에?


한나 - 심심하단 말이에요~!



그녀의 칭얼거림에 난 잠시 민아의 눈치를 살폈다.



민아 - ....


기억 - ......



.......다시 생각해보니


난 눈치를 살핀다고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


예리한 편이 아니었다.



기억 - 어쩔까? 같이 만들래?


민아 - 그럴까?



내 제안에 그녀는 예상 밖의 반색을 하며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렇게 시작된 공작 시간.


역시나 장소가 장소인 만큼


작업에 앞서 도구와 재료를 모으는 게 먼저였다.



기억

- 우선....필요한 것들을 적어보면


가위랑 송곳, 실, 테이프나 본드, 빨대, 깡통....


가위랑 깡통은 있고, 나머지는 찾아봐야겠는데?



한나 - 창고에서 노끈 봤던 것 같은데요.


기억 - 그럼 그걸 얇게 쪼개면 되겠다.


민아 - ..... 테이프는 어쩌지?


기억

- 흠... 잘 찾아보면 본드 정도는 있지 않을까?


빨대는 볼펜대로 대신하면 될 것 같고....


송곳은 그냥 뾰족한 거면 상관없으니....



산장 안을 부지런히 뒤져


재료를 끌어 모은 결과


우린 대부분의 물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꽁초 탐사에 나섰던 김양 일행이 돌아왔고


연출을 제외한 창고 탐색대도 돌아왔다.



캔 뚜껑 앞쪽에 볼펜대 두개를 본드로 붙이고


노끈으로 묶어 고정한 뒤


옆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으면


음조절이 가능한 깡통피리 완성!



기억 - 이건 마를 때까지 좀 기다려야겠는데?


한나 - .... 소리 나는 거 맞아요?


기억 - 나중에 마르거든 불어 봐요.



깡통피리를 완성하고


깡통전화 제작에 착수하려는 찰나


벽난로에 꽁초를 말리고 있던 김양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듯


종이 위에 담뱃잎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김양

- 담배~ 담배~ 알라뷰 쏘마치~시가렛 베이비~.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그것도 이상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김양은 쌓아놓은 담배 잎을 집어


미리 잘라놓은 종이 위에 조금씩 뿌린 뒤


정성스레 말았다.



김양 - 이제.... 이걸 붙어야.... 이걸.... 붙여야....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수중에


종이를 붙일 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회계 - 침으로 붙여 봐....



김양은 회계의 말에 따라


혀끝으로 종이에 침을 발라 꼭꼭 눌러 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김양 - 다 새잖아~! 막 떨어지고! 이 아까운 걸...!!


회계 - 어억?!



돌아온 김양은 아무래도 만족스런 결과를 못 얻은 듯


의견제출자인 회계를 무지막지하게 구타했다.


김양의 공격에 견디다 못한 회계가


밖으로 도망칠 때를 전후해


우린 깡통 전화를 완성했다.



민아 - 이거 정말 오랜만에 본다.


한나 - 난 실제론 처음 봐.


민아 - 이거 어디까지 들릴까?


기억 - 글쎄.... 장력만 잘 유지하면 2~30미터 까지는...


민아 - 정말? 그렇게 멀리?


한나 - 그러지 말고 한 번 해봐요!



지금 묶어놓은 끈은 대략 4~5m 정도.


한나는 수화기 한쪽을 들고 거실 맞은편으로 달려갔고


난 별 생각 없이 수화기를 귀에 댔다.



한나 - 아흥~


기억 - .....!!!



그 순간 들려오는 야릇한 신음소리.


난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기분을 느끼며


황급히 수화기를 귀에서 땠다.



기억 - 뭐뭐뭐뭐뭐하는 거예요 지금!


한나 - 어머나? 작게 했는데도 잘 들리나봐요?



당황한 난 깡통전화를 제쳐둔 채 한나에게 소리쳤고


그녀는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내 말을 받았다.



민아 - 응? 뭐라고 말했는데?


기억 - ..... 아니.... 그게....



너무 당황해서 민아를 신경 못 썼다....


내가 뭐라고 할 말을 못 찾아 더듬거리고 있는 사이


한나는 수화기를 민아에게 넘겨주라고 손짓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못내 걱정하며


난 주춤주춤 수화기를 민아에게 건네주었다.



한나 - .....


민아 - 으읏?! 한나 너어~!!!



수화기를 귀에 대자마자 버럭 화를 내는 민아.


설마 민아한테도 같은 소리를 낸 건가...?



한나 - 무슨 트림정도로 그렇게 정색을 해? 까르륵....


민아 - 이이.... 너 집에 가서 혼난다~!


한나

- 흠... 이 정도는 잘 들리는 것 같고..


진짜로 20m 에 도전해볼까?



...... 역시나 고단수다.


한나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한 난

(이런 걸 병 주고 약 준다는 건가)


노끈을 길게 풀어 20m 정도의 실을 만들었다.



기억 - 음.... 실이 팽팽해야 하니까 이안에선 힘들 것 같고


한나 - 오빠가 밖으로 나가요, 우린 발코니에 있을게요.


기억 - 아.... 그럴까?



아무래도 한나가 민아랑 같이 있는 쪽이 안전하다 생각한 난


코트를 찾아 입고 발코니 밑으로 걸어갔고


기다리고 있던 한나가 수화기 한 쪽을 던져주었다.



나무에 걸리지 않고


실이 팽팽하게 당겨질만한 곳까지 가기 위해


건물 주위를 벽을 따라 쭉 앞으로 갔을 때


난 건물 뒤에서 숨어 뭔가를 들여다보며 라이타를 찰칵거리는


회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억 - 어라? 회계선배.


회계 - 으마얏?!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리는 회계.


그의 발치엔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담배 한 갑이 떨어져 있었다.



민아 = 기억아, 기억아, 들려?



그 때 수화기에서 작게 들려오는 민아의 목소리.


난 황급히 전화기에 대고 대답했다.



기억 - 아, 응, 잘 들린다. 오버.


민아 = 어머나, 신기하다~. 오버.


기억 - 동감이다. 오버.



흔들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는 회계와 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있을 때


뒤에서 또다른 인기척이 느껴졌다.



김양 - ...... 개새끼.


회계 - 어어?!


김양

- 민아들 노는 게 재밌어 보여서 따라 나왔더니....


너 진짜 XX놈이다.... 아냐?



싸늘한 눈으로 회계를 보며


거친 욕설을 서슴지 않는 김양...


뭔가 제대로 꼬인 분위기다.



한나 = 오빠, 오빠, 안 들려요? 오빠~~.


기억 - 아... 응.... 들려. 잘 들려요.


한나 = 나는 왜 오버 안 해줘요!


기억 - ..... 아....미안하다.... 오버.



주변의 공기는 점점 차갑게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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