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결혼 날짜가 두달 앞으로 다가왔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싸움도 많이 했다. 3년 조금넘게 만나며 여자에겐 평생
상처로 남는다는 낙태도 경험 했다. 가슴 아팠지만 선택에 여지가 없었다.
결혼 날짜를 잡고 장모님 되실 분과의 불화로 우리의 결혼식은 없었던 일로 되었고,
며칠 뒤 다시 시작한 우리였기에......
뱃속에 아이는 늦춰진 우리 모두의 끈을 다시금 졸라 매는 징검다리 역활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겁쟁이였던 우리는 결국 안좋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만큼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에 콩알만한 태아는 차가운 변기물에
오물과 함께 버려졌고, 병원에서는 그것을 유산이라 하였다.
그녀는 힘들어했고, 나도 힘들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그렇게 다시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것을 알았을때 장모님이 되실 그분은 무척이나 반대를 하셨다.
때문에 그녀는 집을 뛰쳐나와 친척집에 얹혀 살았고, 우리는 작은 방이라도 얻어
동거를 할 생각도 했었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그런 정식부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서로 노력했고 그 마음이 닿았는지 몇달전쯤에 장모님이 되실 분이 보자고
하셨다. 나를 용서해주신 것이다. 너무 감사했고, 몇 달새 부쩍 야윈 그분을 뵙고 가슴이
아팠다.
......
아직 이런 일들을 웃으면서 얘기 할 수는 없겠지만, 하지 않아도 될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녀도...
조금 있으면 결혼을 할 나의 색시와 예비 장모님, 그리고 아버지는 바쁜 관계로 엄마와
나, 이렇게 넷이서 점심을 먹게 됐다. 분위기도 제법 좋았고,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나이드신 그 분들은 이미 서로에 대해 용서를 하고 계셨고, 우리도 어엿한 사위, 며느리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위 예쁘다고 예물과는 별도로 해 주신 아주 비싼 양복을 입었다. 그 좋은 양복이 더 빛나라고
생전 처음 비싼 구두도 사서 신었다. 그녀도 흡족해 했고, 나도 기분이 좋다.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에 계산을 하는동안 장모님이 되실 그분은 내 뒤에 앉으셔서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연신 내 바지를 쓸어 내리셨다. 식사를 하는동안 바지가 조금 구겨졌나보다.
없는 살림에 친구분께 저리 사채까지 얻으셔서 딸 시집보내는 그 마음을 나는 입으로만
표현하는가보다. 내가 납짝한 벽걸이 TV를 보고 갖고싶어 하는걸 아셨는지 그걸 해주신다고
한다. 내 나이 서른인데 나는 철이 들려면 아직 백년도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엇그저께 영양제 두통을 사서 한통은 우리집으로, 나머지 한통은 그녀의 손에 들려 보냈다.
알맹이 갯수까지 파악해서 끊기지 않게 챙겨드릴 생각이다.
돌아오는 그녀의 생일엔 어머님을 모시고 비싼데를 갈 생각이다.
인생의 목표가 생긴 지금, 나는 마음이 바쁘다. 내가 몇살까지 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남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아낌 없이 살것이다. 인생의 목표를 거창하게 잡을 필요도 없을것같다.
인생이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며 보다 윤택하게 사는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