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백승권
|2006.03.22 09:04
조회 2,311 |추천 0
둘의 관계를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감정이입의 벽이 처음부터 두터웠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우정과 연민을 오가는 어정쩡한 관계가 아닌 평생을 잊지못항 연인이었기에. 관심을 끌었다면 이성이 아닌 건장한 동성이라는 것일게다.
남자와 여자사이도 일곱살이 되면 같이 못 앉게 하는 동양권인데 하물며 동성애에 대한 사안은 입에 담는 것조차 마치 범죄를 저지를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는 환경에서 영화는 처음부터 힘든 주제를 앉고 있었다. 그래도 저곳은 미국이잖아 라고 말한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허나 진실은 인식과 다르다. 지금이야 유럽권에서 아무리 동성의 혼인관계를 인정해주고 법으로 보호한다지만 미국은 흔히 알고 있는 '개방'이라는 키워드와는 다르게 동성에 관해서는 극보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이다. 아카데미 상을 거머쥔 것도 이런 민감한 주제를 매끄럽고 사려깊게 풀어나간 용기를 높이 평가한 것이라 사료된다.
남자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이 이러한 미국사회의 반감을 잘 드러내어 준다. 그때 당시 동성애를 '저지른' 이의 중요부위를 줄에 매달아 뽑힐때까지 끌고 다니며 고통이 가해진 처참한 몰골을 아버지에게 이끌려 보게 되었던 것이다. 말그대로 남자를 사랑하면 너희도 저렇게 된다. 라는 최악 수준의 경고성 이벤트를 세상이 어떤 곳인지 느끼기도 전에 주입받은 것이다.
이런 극한의 배척이 깔린 배경을 두고도 그들은 좁은 텐트안에서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어느 여인네도 넘어갈만한 수려한 외모와 탄탄한 근육을 지녔음에도 그들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자신과 닮은 육체와 마음에게 남자가 인간에게 해줄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을 나눈다. 너무도 자연스럽기에 이성간의 사랑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관조적인 음악과 함께 영화를 잔잔하다고 자평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이리라. 전혀 달라보이지 않았기에. 그들의 눈빛, 서로에게 건네는 말투. 배려하는 모습과 장난치는 순간들까지. 그들은 성별을 넘어 인간자체로서 사랑하는듯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선녀와 나무꾼이 아니기에 마냥 푸른 평지와 광활한 산등성이에 둘러싸여 사랑을 나눌 수 만은 없다. 그들은 남자고 이것은 곧 노동의 댓가를 통해 가정을 꾸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남들과 다를 수 없는 똑같은 삶을 그들도 맡아야 하는 것이다.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반복되는 일상들과 아이의 울음소리, 사랑스러운 아내와 포근한 집이 어느덧 열심히 살아온 증거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이런것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잊을 수 없는 사람. 돌아가고 싶은 곳. 간절히 원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으리.
해후한 그들. 30년만에 다시 만난 이산가족이라고 그리 격렬하게 포옹할 수 있을까. 그렇게 거칠게 입 맞출 수 있었을까. 어떤말도 필요없이 그들의 눈빛이 그 숨소리들이 그동안의 그리움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다시 떠나리. 거짓말을 남겨둔 채.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 보다는 환희에 가득찬 표정이 그들의 변치 찮는 애정을 대신해준다. 말보다 몸과 마음이 앞서지만 이따금 나오는 심각한 어휘들은 서로의 심장을 후벼판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이성' 연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여건과 사회의 시선을 걱정하고 벗어나고 싶어 안달한다. 하지만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브로크백 마운틴의 그곳으로 돌아간다해도 그들이 과연 젊은 날의 rj거칠 것 없었던 분방함을 다시 얻을 수 있겠냔 말이다.
삶의 잔인함은 공평할 뿐이다. 벗어나지도 못할 뿐더러 돌아가지도 못한다. 영원한 기적을 꿈꾸면서도 현재의 유지에 버겨워 손을 놓아버리고 쓴소리만 해대며 사회가 정해준 있어야 한 자리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랑은 욕할 수 없지만 사람은 나약하기에 이어짐은 더뎌지고 목마름은 더해만간다. 이성에게 찾아오는 힘든 시기는 그들이 이성이 아니기에 더 버겨운 고통을 안겨준다.
한사람이 떠나고 그가 남긴 옷깃을 끌어안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가둬둔 제도에 분노했고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 괴로워했다.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의 식지않는 애정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았다. 그들은 땅위에서 사라질때까지 사랑했고 사라진 순간 깊은 눈물로 위로했다. 특별하지 않았다. 동양인 감독이 미국인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판이 아니라 인정이라고 여겨질만큼 그간의 통념을 지배하던 거부감보다 제도와 속박을 벗어나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두 인간의 얕지 않은 젊음이 필름 안에 투영되어 있었다. 그들은 남자였고 그들은 사랑했다는 것을.
영화 한편으로 그간 쌓아온 인식이 한번에 허물어질 수 도 없고 이야기 내내 그럴 필요성도 강요 당하지 않았지만 이안 감독이 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깊은 속내을 감지할 수 있는 잔잔한 러브스토리로 기억될 것 같다. 잭과 에니스. 다음 번엔 이성으로 태어나 꼭 결혼 해 주길.
이안 감독
히스 레저, 제이크 질렌할 주연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mount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