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신작 ‘괴물’ 펴내고 5년 만에 칩거 벗어난 소설가 이외수

임정익 |2002.09.05 08:47
조회 470 |추천 0
“하루 4시간 자며 책 끝냈으니, 이제 빈둥빈둥 먹고 자며 노는 일만 남았군요”

'황금비늘' 이후 5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신작 '괴물'(해냄)에 대해 언론은 마치 그동안의 목마름을 해갈하려는 듯, 이외수 씨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댄다. 우리도 강원도 춘천까지 작가를 직접 찾아 나섰다. 20년째 살고 있는 집도 구경할 겸해서. 아침 10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다는 그를 깨울 수 없어 무려 8시간을 기다린 끝에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이외수 씨(56)는 격외선당(格外仙堂) 2층에서 자고 있었다. 격외선당은 '격식 밖에서 노니는 신선의 집'이란 뜻으로 이씨를 찾는 독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지난밤 30명이 넘는 팬들과 먹고 마시고 놀았다고 했다. 널찍한 방에 혼자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마치 한 마리 애벌레 같았다.
저녁 8시가 되어가자 한 여성 제자가 담배를 사러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 전영자 씨는 “선생님이 이제 일어나시려나 보다”며 2층으로 분주히 올라갔다. 잠시 후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이외수 씨는 “이거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껄껄 웃었다.
“어젯밤 술을 많이 드셨느냐”고 물었더니 “3짝 중 1짝 정도는 마신 것 같다”며 “예전에는 입에만 대면 무박3일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먹으면 일주일 정도는 방바닥을 긁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작 '괴물' 이야기부터 했다. '괴물'은 전생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이승에서 살인·방화·도벽·섹스에 대한 엇나간 충동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전진철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세상을 악으로 물들일 '초생성서'를 컴퓨터 바이러스로 유포시키고, 자신의 전생과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독침으로 쏘아 죽인다. 총 81장으로 이뤄졌는데,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빠르게 읽힌다.
왜 제목을 하필 '괴물'이라고 지었습니까?
“인간 내면에는 누구나 괴물적인 형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표본, 인간채집, 장외인생, 청맹과니들의 섬, 안개중독자, 어디로 가십니까 등 20개 정도의 제목이 있었는데, 매 단락을 다 꿰어주는 게 괴물밖에 없었습니다.”
81장마다 시점이 달라 좀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시점을 쓴 이유가 있습니까?
“'조각보 기법'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모든 인물과 사건이 꿰맞춰집니다. 이는 소설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전 세계 범죄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압니까? 바로 당하는 쪽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철저한 개인주의이지요. 자기 쪽에서만 사물이나 현상을 판단합니다. 시각을 바꾸는 것은 사고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3년 7개월 동안 쓰면서 파지를 600매씩 쏟아냈어요. 파지만 해도 책 6권 분량입니다. 그런 실험 후에 만들어낸 겁니다.”
책이 마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소설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만화, 비디오, 영화, 스포츠 등 재밌는 매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물며 옆집 사람 사는 모습이 소설보다 더 격동적입니다. 이제는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행복감을 줘야 해요. 소설가가 예전보다 더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터넷으로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려

요즘도 담배를 많이 피우십니까?
“쓸 때는 10갑, 안 쓸 때는 8갑을 피웁니다. 안 피우고 스트레스를 쌓아두는 것보다 피우는 게 나은 것 같아요. 나라에서도 끊으라고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몇 십 년 동안 중독성 있는 걸 팔아서 돈 벌었으면, 흡연자들에게도 제공하는 게 있어야죠. 불쾌해요.”
건강은 어떻습니까?(그는 폐결핵을 수차례 앓았고 골다공증으로도 고생했다.)
“이번 소설 쓰면서 탈진해서 쓰러졌어요. 어느 날 일무 스님이 꿈에 제가 나타났는데 안색이 안 좋아서 봉삼을 캐왔더군요. 그 귀한 걸…. 그걸 먹고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대개 나이가 들면 상상력도 떨어지고, 글에 대한 치열함도 떨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젊은 친구들하고 잘 놉니다. 격외선당에서 국악공연, 록밴드, 최소리(타악기 주자) 공연, 유진규 씨의 마임공연도 합니다. 글 쓸 때에도 토·일요일은 쉬었습니다. 한 달에 보통 300∼400명이 찾아오거든요. 젊은 친구들의 어려운 문제를 상담해주기도 하고 꾸짖기도 하지요.”
이외수 씨는 개인 홈페이지(www.oisoo. co.kr)까지 갖춘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다. 그는 컴퓨터로 채팅은 물론 작곡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포르노 사이트 구경도 한다.
“누워서 엎드린 채 원고지에 글을 쓰다보니 허리가 고장나고 눈이 망가져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써야 했죠. 컴퓨터 앞에 앉으니 아무 생각도 안 떠올랐습니다. 커서가 '빨리 써! 빨리 써!' 하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너무 막막해서 울었으니까요. 둘째 놈이 채팅을 해보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네' 찾다보면 글이 위로 다 올라가서 질문이 벌써 없어졌더군요.(웃음) 채팅방에서 나올 줄 몰라서 '어떻게 나가요?' 치는데 30분 걸렸어요. 안 나가져서 결국 코드를 뽑아버린 적도 있었지요. 다시 켜면 그 화면이 뜰까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PC통신에 재미를 붙이자 밤새 통신에 빠져 밤을 새우다보니 한 달에 무려 178시간 사용해 해당업체에서 “건강을 위해 지나친 PC통신을 삼가 달라”는 우려 섞인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제는 독수리타법으로 1분에 300타를 치는 경지에 올랐다.
젊은 사람들이 상담을 청해오면 무슨 얘길 해주시나요?
“사랑 문제나 가정적인 문제가 많아요.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순간적인 현실을 전체로 잘못 파악해서 고통을 가중시키거든요. 저는 음이 있으면 양이 있다고 얘기해줍니다. 극한적 상황을 10번 정도 겪고 나면 세상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죠.”
선생의 경우 극한적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처절한 가난과 굶주림이었습니다. 직장 생활 1년을 견뎌보지 못했으니까. 직장이 나를 못 견뎠지.(웃음) 직장 그만두면 큰일날 것처럼 생각하는데 한 10번 그만둬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외수 씨는 젊은 시절 미스 강원 출신인 예쁜 아내를 무척 고생시켰다. 결혼하자마자 “이제 보필할 수 있는 여자가 생겼으니 남의 일 하지 않고 내 일을 하겠다”며 강원일보를 그만두고 글을 썼다. 임신한 아내는 배가 불러오는데도 입을 옷이 없어 티셔츠를 갈라서 양쪽을 줄로 이어서 입었다고 한다. 병원에 갈 돈이 없어 큰아이를 직접 손으로 받고 나서야 기저귀 하나, 우유 한 통 살 돈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쪼그리고 울다가 월부책장사를 시작했다고. 아내 전씨는 “요즘도 우울하면 임신복 사러 나간다”며 “그 얘길 해줬더니 생일날 아들 둘이 임신복 사서 왔더라”고 웃었다.
늘 긴 장발 머리에 머리도 안 감고 목욕도 안 하시지요.
“보통 사람들이 4년 정도 목욕 안 하고 그런 질문했으면 좋겠어요. 목욕은 안 해도 몸에 때는 없는 편이에요.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 때는 밑으로 내려가거든.(웃음)”
때가 끼면 더럽지 않나요?
“때 자체는 더럽지 않아요. 세상 모든 존재가 더러운 게 있겠습니까? 지구라는 별도 때로 이뤄졌잖아요.”
사람들이 항상 외모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으십니까?
“기분 나쁜 게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내가 머리 길어서, 때 안 씻어서 유명한 소설가가 된 줄 알아요.”
이외수 씨는 “중광 스님과 같이 택시를 잡을 때면 거지인 줄 알고 택시가 안 선다”며 “춘천에서는 내가 잡고 서울에서는 중광 스님이 잡았다”며 껄껄 웃었다.
기인 3인방이라 불리던 천상병 시인·중광 스님까지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는데 외롭지 않으세요?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아요.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물질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을 물질로만 대한다면, 손톱·발톱·피는 6년이면 세포가 다 바뀝니다. 10년 전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반가워하겠지만, 그건 딴 새끼야. 물질적으로는 전혀 딴 놈이에요.”(이외수 씨는 순수함으로 치면 천상병 시인이 3살, 중광 스님이 4살이라며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다고 했다.)


다 쓰고 나면 원고만 봐도 구토 나와

이외수 씨는 '꿈꾸는 식물'(78)부터 '개미귀신', '장수하늘소', '들개'(81), '칼'(82), '벽오금학도'(92), '황금비늘'(97) 등 쓸 때마다 40∼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장편소설 2개를 펴내는데 10년을 흘려버릴 만큼 그는 작품마다 치열한 자기검열을 한다.
'언어의 예술사'라고 할 정도로 문장의 조탁이 뛰어난 것 같습니다. 적합한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적합한 문장을 찾아내지요. '황금비늘' 쓸 때였어요. '우리는 시내에서 희망리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하는 구절이 있었어요. 빙글빙글 돌고 더 이상 안 나가는 겁니다. 보름 정도 안 써졌어요. 왜 이럴까 싶어서 홍천에 직접 가보기로 했지요. 가기 전 홍천군 정밀 지도를 돋보기로 훑어봤어요. 그랬더니 희망리가 시내버스 정류장이지 뭡니까? 희망리로 갈 리가 없지요. 글이 거부하는 겁니다. '틀렸습니다, 고치십시오' 하고요. 송정리로 고치니까 술술 풀렸습니다.”
'벽오금학도'와 '황금비늘'을 쓰면서 방문을 뜯어내고 교도소에서 쓰는 철문을 달아 그 속에서 글만 쓰고 살았다는데, 요즘도 그렇습니까?
“내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는 막되먹은 자유인이었다면 이제는 정리된 자유인이라고 할까요?”
밥도 한 끼만 먹고 하루에 4시간 자면서 글 쓰는 작업에 몰두한다고 들었습니다. 탈고하고 나면 접속사, 토씨 하나까지 다 외운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요즘은 노인성 치매초기라 그렇게까지는 못하죠. 원고지 1,200 매 정도 되는 글을 쓰고 보니까 저절로 외워져요. 소설 쓰는 게 여자들 아기 낳는 것과 비슷해요. 다 쓰고 나면 탈진해서 원고만 보면 구토가 치밀어요. 책이 나와도 표지만 보고 속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요. 쓸 때의 고통이 다시 살아 날까봐.”
그림은 언제 그리십니까?
“집중력이 떨어질 때나 정신력이 허약할 때 그립니다. 먹을 펼쳐놓고 있으면 의식이 맑아집니다.”
지난 전시회 때문에 어금니가 다 빠졌다면서요.
“익필이 힘든 붓이에요. 붓을 따라가야지 내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 3개월은 죽어라고 안 되더라고요. 열이 나서 얼굴이 벌게지니까 이가 맥없이 쑥쑥 빠졌습니다. 어차피 붓질 한번이 욕심 한번이니까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익필은 장닭의 꽁지깃으로 만든 깃털붓이다. 깃털은 물이나 먹이 묻지 않고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먹물을 찍는 순간 화선지에 옮겨 단숨에 그려야 한다.)


애들한테 공부하지 말라고 가르쳐

젊은 시절 술 많이 드시고 아내 속을 썩였을 것 같습니다. 남편으로서는 어떻습니까?
“손님들이 많이 드나들어서 좀 미안하지만, 그래도 80점은 됩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때는 선물 잊은 적이 없어요. 시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죠. 생일 때에는 미역 사다가 물에 불려서 국거리용 쇠고기를 사서 쌀뜨물 받아서 밤새 끓입니다. 정성이 들어가면 맛있으니까.”
아내 전씨는 “술 깨는 동안 개집에 들어가거나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등 퍼포먼스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툭하면 파출소에 잡혀갔다고. 부부싸움 후 술 마시고는 박범신 씨에게 전화해서 “박형, 나 못살겠어” 하고 울었더니, 박씨가 놀라서 춘천까지 택시 타고 왔는데 둘이 킥킥대면서 보신탕 먹고 있어서 황당해했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 이외수 씨에 대해 “정말 노력하는 작가”라며 “남편으로서도 참 괜찮은 남자”라고 평했다.
아이들한테는 어떤 아버지였나요?
“거의 화를 안 내고 자유롭게 애들을 키웠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안 하면 된다고 했어요.”
공부 안 하고 뭘 하라고요?
“자연과 벗삼아서 놀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한번은 43명 중에 42등을 한 적이 있더라고요. '야,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떨어지냐'고 했지요. '꼴찌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어서 그랬대요. 발상도 괴상하지. '절 안 믿으시나요?' 하기에 믿으니까 다음달에 보여달라고 했어요. 다음달에 3등 했더군요.”
착한 아들이네요.
“그렇죠. 중국에 영화공부를 하러 간 큰아들은 지금도 아침에 부모님 있는 곳을 향해 삼배를 한답니다.”
아드님이 글을 쓴다고 하면 밀어줄 생각입니까?
“도둑질 빼고는 무조건 밀어줄 생각입니다. 저는 공부 열심히 하지 마라, 그게 다 헛것이다, 아는 게 대단하냐 깨닫는 게 중요하지, 이렇게 가르쳤어요. 어느 날 아들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묻더군요. '아버지 말씀대로 하면 경쟁에 뒤떨어지지 않을까요?' 하고. 제가 '경쟁 안 하면 되지, 너는 심판 봐라'하고 얘기해줬어요. 제비는 하늘을 잘 날고, 두더지는 땅을 잘 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치듯 저마다 소질과 특색을 가집니다. 물 속에 집어넣어서 저기 바위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시합하면 당연히 물고기가 최고죠. 딱 한가지 욕심만 갖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이외수 씨는 농담도 잘하고 논리적인 말도 참 잘했다. 기인인 줄 알았더니 '익살스럽고 편안한 소설가' 정도가 맞을 것 같다.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우리는 인터뷰를 끝마쳐야 했다. 그는 이제 책이 끝났으니 빈둥빈둥 먹고 자고 TV보고 낚시하고 영화 보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올 가을쯤에는 홈페이지 방문자수 100만 명 돌파기념 문집을 독자들과 함께 펴낼 예정이라고도 했다. 썩 좋지 않은 피사체에게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도록 요구하며 사진까지 찍고 나니 10시 30분. 이미 서울행 막차는 떠나버렸다.
“어차피 다 수가 생기니까 이왕 막차도 떠나버렸는데, 저녁이나 먹고 가라”고 하는 그의 요구에 그만 털썩 밥상에 앉아버렸다. 그 밥이 그에겐 아침이었다.

 

여성조선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