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현상이 극심해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는 가요계에서 늘 푸른 소나무처럼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형가수’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와중에 마이크 하나로 청중을 휘어잡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노래 여왕’을 지목하라면 더욱 난감해진다.
18~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데뷔 43주년 콘서트를 여는 패티김. 반세기 가까운 긴 세월 동안 한결 같은 꼿꼿함을 지켜온 그의 이름 앞에서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얄팍함을 비웃는 이들조차 절로 머리가 숙여질 정도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무대에 섰던 패티김이지만 이번 공연은 여느 때와 달리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가요계 정식 데뷔를 앞두고 있는 둘째딸 카밀라(25)와 함께 출연하기 때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샐린 디옹의 듀엣곡 ‘텔 힘(Tell Him)’을 부를 예정이다. “콘서트를 앞두고 이렇게 긴장해 보기는 처음”이라며 딸을 밉지 않게 흘겨보는 그에게서 ‘영원한 디바’가 아닌 ‘평범한 엄마’의 은은한 향기가 묻어났다.
●집안에 가수는 하나로 족하다?
지난해였다. 미국 UCLA에서 음악을 전공한 카밀라가 가수가 되겠다고 선언하자 이탈리아인 남편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자녀들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자상한 아버지였으나 가수만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끊임없이 음악에 대해 고민하고 공연을 위해 1년에 절반 이상 집을 떠나 있어야만 하는 아내의 고달픈 삶을 지켜보며 사랑스러운 둘째딸만은 같은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워낙 확고했다.
이때부터 모녀는 협공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딸의 음악적인 재능을 확신한 패티김은 밤낮으로 남편을 설득했고, 카밀라도 가수 데뷔가 한때의 치기 어린 모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결과는 대성공. 지금은 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아침 저녁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의 건강은 제쳐두고, 카밀라의 목 상태부터 점검할 정도다. “이제는 질투가 느껴질 정도”라며 파안대소하는 패티김은 “남편의 사랑은 우리 모녀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나의 음악적 분신 카밀라
내색은 안 하지만 실은 걱정이 태산이다. 10대 위주의 댄스 장르 일변도인 가요계에서 20대 후반을 겨냥한 R&B와 어덜트 컨템퍼러리를 선택한 카밀라가 어느 만큼 성과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엄마가 아닌 음악 대선배로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딸은 무척 좋은 음색을 지녔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른바 ‘골든 보이스(Golden Voice)’다. 자신과 비교했을 때 힘은 다소 처질지 몰라도 기교나 섬세함은 오히려 낫다. 대학재학 시절 뮤지컬과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활동해 무대 장악력 역시 또래의 새내기 여가수들보다 월등한 편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재능과 실력만으로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 가요계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마음은 항상 ‘물가에 내놓은 자식’을 볼 때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딸에게 꼬리표처럼 붙어다닐 ‘누구 누구의 딸’이란 수식어도 마음에 걸린다. 외국 연예계를 보더라도 성공한 부자 연예인은 흔했지만 모녀 연예인은 별로 없었다.
“두고봐라. 엄마를 능가하겠다”며 싱긋 웃는 카밀라와 그런 딸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 패티김. ‘왕대밭에 왕대 난다’는 속담이 맞아떨어질지 궁금해진다.
스포츠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