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가 되어

은하철도 200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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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자리가 되어



빈곤한 청춘,

한눈에 나는 아들의 표정을 알아봤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내가 이혼하고 집을 떠났으니 중학교, 고등학교를 엄마의 슬하에서 자랐다. 잘 하는 공부가 아니기에 남들처럼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 집안이 믿을 만큼 풍족한 것도 아니기에, 아이는 남모를 고민만 안고 산다. 아들이라서 그런가, 딸과는 달리 가끔 전화를 걸어온다. 뜬금없이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아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것일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에 전철역 9번 출구에서 만났다. 우산도 안 가지고 나보다 더 큰 키를 꺼떡거리며 내려오는 표정이 야릇하다. 반가움을 숨기느냐 괜히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고 약간 짜증어린 목소리를 낸다.

“점심은 삼겹살?”

“아무 거나 먹어요.”

돌판에 삼겹살을 얹어놓고 마주 앉았다. 아이는 전처럼 문학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안다. 아이가 문학을 좋아해서 꺼내는 말이 아니라, 아비가 글 쓴다니까 나에게 맞추어 화제를 잡는 것이다. 나는 모른 척 아이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해 준다.

“근데 책 한 권 읽는데 다섯 시간이 넘어 걸리는데, 어떻게 수백 수천 권을 다 읽어요?”

제 딴에는 문학책을 읽으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다. 컴퓨터에 길들여진 세대가 소설책 한 권 읽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 몇 년 전에 내가 출판한 책을 가져다주고 나중에 제대로 읽었냐고 물었었는데, 대뜸 아이가 하는 말이 “그거 만화로 만들면 더 좋지 않아요?”했었다. 속으로 씩 웃었다. 보나마나 앞 페이지 서너 장 넘기다가 만 것이다.


허황한 문학이야기가 엇갈리다가 슬슬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군입대를 서너 달 남겨놓고 있기에 마음이 초조할 것이다. 꿈에 부풀었던 성인 20세를 달려오고 보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선 군에 가야하고, 대학을 다니려면 등록금도 만만치 않으니 부모만 전적으로 의지하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일자리가 성큼 나오는 것도 아니다.

“너 무척 조급하지?”

슬쩍 던진 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뇨, 조급하지는 않아요. 다 군대 갔다 와서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가 정곡을 찌르면 아이는 꼭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씩 웃으며 그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

“자, 아빠 말을 잘 들어라. 나이는 20살이다. 어른이 되었으니 기분은 좋다. 마음 같아서는 무엇이든지 주어지면 뛰어 들고 싶다. 또 잘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니 내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 도대체 성인이 무엇인가, 달려온 20살인데 삭막한 광야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니 얼마나 황당할 것이냐, 그 기분 잘 알아. 아빠도 네 나이에 그랬으니깐, 주변에서는 너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네 엄마도 너 보고 한심하다고 툭하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말하자 아이는 입을 바보처럼 헤 벌렸다. 내가 자기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음에 감탄한 것이다.


아이에게 열변을 토하지 누구에게 토할 것인가, 내 말은 계속 이어졌다.

“네가 행정학과에 입학했지? 행정학이란 무엇이냐, 군대에 가면 알 수 있어.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고, 모든 국가기관은 법대로 조직되어 있다. 그래서 국군조직법에 의하여 군대가 만들어지고, 또 군법에 의하여 다스려진다. 군에 입대하면 너와 국가간에는 특별권력관계가 성립한다. 곧 국가의 직무를 집행하는 구성원으로서 지위란 말이다. 행정법을 잘 봐. 일반권력관계와 특별권력관계가 무엇인가 잘 나와 있고, 이런 권력관계가 바로 행정법 총론의 중심을 차지하는 개념이다.”


여기까지 설명한 후에 아이의 고민을 정곡으로 찔렀다.

“너 군대가는 거 두렵지? 당연하다. 네 나이의 아이들은 모두 두려워하지,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겁나는 것을 겁난다고 말하는 게 잘못 아니니깐, 진부하게 아빠가 군대생활 할 때는 배고프고 춥고, 힘들었다고 말하지 않겠다. 지금의 군대가 편할 것이라고 말도 안 하겠다. 다만, 크게 보고 크게 움직여라. 너는 사내자식이잖아. 소위 남자란 말이다. 고참이 구타를 하고 갈군다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고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잖니, 처음이야 너도 신병이기에 때리면 맞고 갈구면 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저절로 너도 고참이 되잖아. 그러면 네 아래에 신병들이 들어오잖아. 그때 네가 신병을 구타하거나 갈구지 않으면 된 것이지, 뭐가 그렇게 두려워? 아빠는 네가 최전방의 철책선에서 당당하게 근무했으면 좋겠다. 멋지지 않냐?”

아이의 입이 더 크게 헤 벌어졌다. 자기가 고참이 되서 신병들을 부린다는 대목이 무척 마음에 들고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한번을 만나도 일년을 같이 지내는 것처럼 아이에게 정신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내 마음이다. 아이와 나는 우산을 같이 받으며 소위 “아빠의 집”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내 방에 들어와 이런저런 책을 들쳐보던 아이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아빠, 한 시간 있다가 꼭 깨워 줘, 나 졸려 죽겠어.”

여드름 난 얼굴을 삐쭉 이불 밖으로 내밀고 잠자는 아이다. 아무 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청춘, 마음만 앞서지 매사에 어설픈 청춘, 그것이 이십대다. 아이는 비로소 인생항해의 돛을 올린 것이다.

아비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도, 방향을 잡아주는 별자리가 아니겠니,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