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tray one's emotion-32

휘오리바람2006.05.10
조회330

 

다음날.

출근을 해서 동욱은 점심시간 회사를 나왔다.

병원에서 지은을 만나기로 했다.

어제보단 나은 모습으로 지은이 나타났다.

동욱은 애써 웃어보이며 지은과 함께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진료를 기다리면서도 말이 없다.

“선배..어젠 많이 황당했죠?”

“응..그렇지.뭐...너도 힘들었지?”

자신의 안부를 챙기자 지은은 더욱 안도감이 들었다.


아기는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고 건강했다.

아기아빠인줄 아는 의사가 친절히 주의사항을 설명해줬다.

동욱은 씁쓸했다...

지은과 점심을 먹었지만 동욱은 거의 먹질 못하고 있었다.

“이제 어떡해요?” 식사를 마치고 지은이 물었다.

“글쎄...아니, 미안...”

“... ...”

“걱정말고, 밥잘먹고 있어..오빠가 조만간 전화할게.”

“네..”

식당서 나와 지은이 타고갈 택시를 잡았다.

차에 타기전 지은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왜 무슨 할 말 있니?”

“..아니에요..오빠..믿어도 돼죠?”

“...그래...”

“갈게요..”

“지은아!”

“네?”

“미안해..”

지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서둘러 차에 올라탔다.

동욱은 가는 택시를 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뭘 어떡해 해야하나..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오랫만에 진오에게 전화를 했다.

누구에게라도 털어놔야 될 거 같았고, 진오라면 뭔가 충고를 해줄 거 같았다.


얘기를 들은 진오는 잠시 침묵했다.

“실망이다. 한동욱...”

동욱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난 네 친구니까..넌 내 친구니까..비난은 안해.”

“고마워..” 동욱은 반쪽미소를 지었다.

“내가 어떡해 도와줄 순 없어..

  하지만 네가 지은이를 버리진 않을거라는건 안다.”

술잔을 들어서 단 숨에 마셔버리곤 진오가 말을 이었다.

“희주씨는 잊어라. 연애하다 끝났다고 생각해.”

동욱은 정신이 든 사람처럼 진오를 쳐다봤다.

이런식으로 희주와 헤어지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

희주없는 자신도 아직 낯설었다.

지은은 더 낯설었다.

동욱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힘들겠지만, 간단하게 가자! 응? 한동욱!!

이렇게 만든건 너야! 지은이가 아니라구! 힘들게 하지 말자”

“진오야...” 울기만 했다.

알고 있었다. 희주와 헤어지고 지은을 책임져야 한다.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해야 했지만...마음은 움직여 주질 않는다.

마음은 여전히..여기에 머물러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그렇게 모른척하고 살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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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천장..오른쪽엔 버티컬...왼쪽엔...희주.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걸 보고 동욱은 멍해졌다.

‘꿈인가?’

다시 희주를 바라보다가 끌어안았다.

잠결에 희주도 동욱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꿈 꾼건가?’

핸드폰이 움직이면서 내는 진동소리에 동욱은 희주가 깰까봐

잽싸게 집어들었다.

진오였다. [친구야! 널 믿는다. 좋게 생각해]

‘꿈이 아니군...’

100%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들자 동욱은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다.

한참을 구토를 하고 더 이상 개워낼 것도 없었다.

동욱의 구토소리에 희주가 놀라 화장실로 달려왔다.

“술좀 적당히 마셔. 요즘 왜그래?”

등을 두들기며 걱정섞인 잔소리를 했다.

위액이 역류하면서 동욱은 머리가 멍해졌고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동욱아! 한동욱!”

희주는 놀라 119를 눌러서 앰뷸런스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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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복도 의자에 앉아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쪽에서 나해와 기수가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몰라..갑자기 구토를..”

“한동욱씨 보호자 되는분? 이리로 오세요”

희주는 벌떡 일어나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심각한건 아니구요. 과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먹은게 없는지 영양도 부족한 상태에서 심한 스트레스가

겹치신거 같네요. 링겔 다 맞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위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으로 식사하셔야 되구요”

“네..감사합니다.”

의사가 나가고 희주는 동욱을 봤다.

아직 의식없이 누워있었다.

‘무슨 일이야...’


나해에게로 돌아온 희주는 기운이 쫙 빠졌다.

“기수씨, 먹을 것좀...”

“응. 그래..”

기수는 병원밖으로 뛰어나갔다.

“요즘 이상해..동욱이...” 희주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데..” 나해가 희주의 등을 쓸며 위로했다.

“몰라..갑자기 니네집에 다녀오는 길에 누구 전화를 받더니

뛰쳐나가선 며칠 째 계속 저래. 먹지도 않고 말도 안하고,

나도 짜증나..”

“동욱씨 부모님한테 무슨 일 있나? 왜 그러지..”

“몰라..왜저래...나해야..엉..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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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서도 동욱은 말이 없다.

결국 희주는 폭발했다.

“너 언제까지 이럴건데? 나도 말안하면 몰라.

말도 안하고 이해해줄 수 가 없다구!!!!”

“그럼 이해하지마요.”

“헉..”

딱 잘라 말하는 동욱의 대답에 희주는 할 말을 잃었다.

죽도 다 먹지 않고 동욱은 재킷과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희주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밖으로 나온 동욱은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나, 나 동욱인데...나 좀 얹혀지내도 될까?

“그래도 되긴 하는데, 왜? 방이 계약이 다됐어? 같이사는 형이 나가게 됐니?”

“그렇게 됐네...”

“언제 올건데?”

“조만간..빨리 나가야지..”

“그래. 그럼”

“매형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그런걱정 하지도 말어. 너 오면 매일 술마실사람 생겼다고 좋아할걸?”

“그래요.그럼 다시 전화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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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