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이어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일까?'

엔부이2006.05.19
조회879

 

 

  대부분의 기독교인 여러분들께서는 바이블을 신의 말씀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시리라 판단합니다

 

또한 기독교를 믿지 아니하시는분들 중에서도 상당히 많은 분들이 성경이란 믿을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라고 생각들을 하십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과연 기독교인 여러분들의 믿음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절대적인 진리인걸까요?

 

과연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 대로 성경은 객관적이며 믿을수 있는 문헌인 걸까요?

 

 

이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는 것 자체가 기독교인 여러분들께서는 불경이라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전에 대한 믿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역사상 수도 없이 존재 해 왔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세상에도 경전을 악용하는 인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같은 기독교 내부에서 조차도 성경의 해석은 천차만별로 다르며

 

그러한 이념의 차이가 이단논쟁으로 불거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보혜사니 이긴자니 백마공자니(아마도 요한 계시록을 신봉하는듯 합니다) 신이나 신의 사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역시 무수히 많습니다

 

왜그럴까요?

 

문제의 핵심은 바로 바이블 즉 기독인들이 말하는 성경이 결코 신의 말씀이 될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객관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오래된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바이블에는 원본이 없습니다

 

초창기에는 구전이나 작은 사본들이 여러 지역에서 서로 각각 전해져 오던것이 모이고 뭉치고 역사속에서 여러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그 사상들과 융화 되면서 '바이블' 이라고 하는 '시대별 전승 종합 편찬 문서'가 탄생하게 된것입니다

 

 

아직도 바이블을 신의 말씀이라 믿으실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문제 몇가지를 내어드리죠

 

다음내용은 역시 안티도그마 카페에서 퍼온 내용입니다

 

 

 

  [족보및 가족관계]


1)예수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마태와 누가의 족보:요셉
*마태(1:20~25) : 성령

 

2)예수의 할아버지는 누구일까?
*마태:야곱
*누가:헬리

 

3)다윗은 예수의 몇대 위 조상일까?
*마태:27대
*누가:42대(그러나 기록되어 있는 사람은 41명임)

 

4)예수의 모친은 누구일까?
*마태,마가,누가:마리아
*요한:모름

 

5)마리아는 동정녀였을까?
*마태,누가:그렇다
*마가,요한:모름

 

6)예수가 태어난 곳은 어디일까?
*마태:베들레헴 요셉의 집에서 ...동방박사의 경배를 받는 등 축복하에
*누가:고향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 도상 여관의 말구유에서
*마가,요한:모름

 

7)예수는 언제 태어났을까?
*마태:BCE 4년(헤롯왕은 BCE4년에 죽었음)
*누가:CE 6년(호구조사는 CE6년이었음)

 

8)마리아의 예수 임신기간은 몇년이었을까?
*누가:최소 10년
누가는 ‘유대 왕 헤롯 때에(누가복음 1:5)’ 요한과 예수가 6개월 간격으로 기적적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한 후, AD 6년의 호구 조사 때에도 마리아가 여전히 임신 중인 것으로 그려 놓았다---그렇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 동안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9)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언제 누가 통보했을까?
*마가,요한:모름
*마태:마리아 임신 후 요셉에게 천사가 나타남
*누가:임신 전 마리아에게 천사 나타남


10)예수의 생일은 언제일까?
*아무도 모름

 

11)예수의 형제는 몇 명이었을까?
*마태: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 외 누이들[13:55,56]
*요한:관심없음

 

12)예수는 친구가 있었을까?
*아무도 모름

 

13)예수는 애인이나 마누라가 있었을까?
*공관:모름....막달라 마리아가 그의 애인이 아니었을까하는 추정만 함
*요한:나사로로 추정되는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음. 

 

 

[이적 및 설교 관계]


14)공생애 이전 예수는 무엇을 했을까?
*마태,마가,요한:모름
*누가:8일째 할례,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 12살 때 랍비들 과 성전 문답을 함

 

15)예수의 첫 이적은 무엇일까?

*마태:귀신들린 자 등 병자를 고침[4:23,24]
*마가:귀신을 내 쫓음[1:23~26]
*누가:귀신을 내 쫓음[4:33~35]
*요한:물을 포도주로 만듬[2:1-11]

 

16)예루살렘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이야기는 예수초기일까? 말기였을까?
*요한:사역 초기 (2:13-25)
*마태:사역 말기 (21:12-13)

 

17)예수의 주로 어느지역에서 활동을 했을까?
*마태,마가:갈릴리지역 ....예루살렘은 생애 막바지에 갔을 뿐임
*누가:갈릴리지역와 유대지역
*요한:예루살렘지역

 

18)예수의 성격은?
*마가:자애로움(마가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마태:독단적임(마태12:30 나와 함께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다.)

 

19)예수의 예언은 이루어졌을까?
*누가: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누가복음 9:2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나리라(누가복음 21:25-32)
*마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태복음 16:28).......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선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태복음 24:34)

 

예수가 죽은 지 무려 2,000년이 지났는 데도 예수가 약속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20)용서는 몇 번 해줘야할까?
*네게 이로노니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마태복음 18:22).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둘이서만 만나서)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너는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증인을 데려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도록 하여라(마태복음 18:15-17)

 

세 번 정도로 끝내야할까? 아니면 무한정 용서해야할까?

 

21)공생애 기간중 예수는 유월절을 몇 번 맞았을까?
*공관:한 번 유월절이 반영되었음
*요한:유월절이 세 번 언급되고 있다(2:13, 6:4, 11:55)

 

22)예수는 예루살렘에 얼마 동안 체류했을까?
*공관:일주일
*요한:몇개월

 

23)예수는 구약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토기장이에게 준 은전 서른 닢(세겔)은 누구의 짓인가?
*마태:예수는 예레미아가 한 말이라한다
*스가랴: `야웨`가 스가랴에게 한 말이다.

 

24)예수는 세례를 베풀었을까?
*공관:언급없음
*요한:제자들과 함께 세례를 베품(3:22)

 

 

 

 

 

 

* 과연 예수는 몇명이었을까요?

 

 

 

 

 

 


[제자들에 대하여]

 

25)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은 어떻게 될까?
*마태와 마가.....베드로,안드레,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요한,빌립,바돌로메,도마,마태,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다대오,시몬,배신자 유 다
*누가.....베드로,안드레,야고보,요한,빌립,바돌로메,도마,마태,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유다,시몬,배신자 유다
*행전.....베드로,안드레,야고보,요한,빌립,바돌로메,도마,마태,야고보,유다,시몬,맛디아
*요한.....베드로,안드레,야고보,빌립,나다나엘,도마,유다,배신자 유다...나머지는 모름

 

26)베드로와 안드레의 고향은 어디일까?
*마태,마가:갈릴리 가버나움
*누가:모름
*요한:이두레 벳새다

 

27)베드로 형제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공관:모름
*요한:요한

 

28)배신자 유다의 고향은 어디일까?
*복음서:유대지역 가룟
*행전:갈릴리[행5 : 37]

 

29)유다는 어떻게 죽었을까?
*마태:스스로 목 매달아서 (27:5)
*사도행전: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서 (1:18)

 

 

 

 

* 고대 유대인들은 이름이 꼭 하나만 있던것은 아니라 합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모름과 같은 내용은 즉 각 복음서마다 분명한 내용상의 차이는 음미해볼 부분인것이죠

 

 

 

 


[죽음과 부활]


30)예수의 사형선고는 어디에서 받았을까?
*마태 & 마가 :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유대인 장로들의 심리를 받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누가 : 산헤드린 공회의 심리를 받지만, 형을 선고 받지는 않는다.
*요한 :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지 않고, 곧바로 로마의 법정[官廷]으로 끌려간다.

 

31)예수는 어떻게 죽었을까?

*복음서:십자가에 못 박혀서
*사도행전(5:30과 10:39),갈라디아서(3:13):나무에 달려서

 

32)십자가 사건은 언제 일어 났을까?
*공관:유월절 다음날에 십자가에 달림
*요한:유월절 하루 전에 처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음[요13 : 1]

 

33)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시간은 언제일까?
*공관:십자가상에 매달린 뒤 낮 12시부터 3시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고 3시경에 작고함
*요한:요한복음 (19:14)에서는 빌라도가 예수께 사형 선고를 내린 그 시간을 낮 12시로 말하고 있음

 

34)예수의 마지막 말?
*마태 & 마가 :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누가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요한 : ‘내가 목마르다’고 말한 후, ‘다 이루었다’

 

35)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서 매장해도 좋으냐고 물었을 때 빌라도의 태도
*마가:빌라도는 예수가 그렇게 빨리 죽었다는 것에 놀란다.
*요한:빌라도는 이미 그전에 예수가 빨리 죽도록 다리를 꺾고 창으로 찌르도록 명했다

 

36)예수가 죽은 후 땅속에서 몇일 밤을 있었나?
*복음서:금요일~일요일 이른 아침
*마태예언(12:40....요나인용):삼일삼야(三日三夜)

 

37)예수의 무덤을 찾은 사람은 누구 누구였을까?
*마태:막달라 마리아,다른 마리아(2명)
*마가:막달라 마리아,야고보의 마리아,살로메(3명)
*누가:여자들
*요한:막달라 마리아(1명)

 

38)여인들이 예수의 무덤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태:주의 천사(1명)
*마가:흰 옷 입은 청년(1명)
*누가: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2명)
*요한:흰 옷 입은 두 천사(2명)


39)부활한 예수와 제자들이 만난 장소는 어디일까?
*마가복음(16:9)과 마태복음(28:9):갈릴리
*누가복음(24장):예루살렘
*사도행전 : 제자들은 갈릴리로 가라는 신성한 명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한다.

 

40)예수는 승천 후 어디에 있을까?
*마태:언급 없음
*마가:하늘에 올리워져 하나님 우편에 앉음
*누가:하늘에 들리워 올라감
*요한:언급 없음

 

41)예수가 죽은 날 그리고 부활한 날은 언제일까?
*아무도 모름

 


 

아래에 이어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일까?' 출처 : 안티 바이블 | 글쓴이 : 이드 [원문보기]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아직도 성경이 객관적인 자료로 보이십니까?

 

솔직히 말해서 몇문제나 맞추실수 있겠습니까?

 

 

저는 단 한문제도 못맞췄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눈으로 보시는 대로

 

성경은 전혀 객관적이지 못한 자료입니다

 

 

이렇게나 내용상에 차이가 많은이유는 위에 언급한대로 각 시대별 그리고 저자별로 유입된 사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집필 목적이 분명하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경중에 가장 먼저 쓰여진 성경이 무었입니까?

 

창세기(대략 bc 600)라고 알고 계십니까?

 

 

애석하게도 정답은 출애굽기 (bc 800~900)입니다(바빌론 포로시절)

 

 

그러하다면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성경은 무엇이겠습니까?

 

 

요한 계시록이라고 알고 계십니까?

 

 

정답은 요한복음입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전체 신약 성경의 쓰여진 순서를 알려드리도록 하죠

 

1) <데살로니카 전,후서>
데살로니카 전 후서는 사도 바울로의 첫 서간이며, 전체 신약성서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된 성서입니다.

2) <고린토 전서> AD 56 년경
고린토 전서는 바울로 사도가 고린토 신자 공동체 내에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위해 쓴 서간문 입니다.

3) <필립보서> AD 56-57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 지방의 필립비 신자들에게 보낸 옥중서간입니다.

4) <갈라디아서> AD 57년
바울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적 책임과 권위로써 반대자들의 오류를 반박하고 참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신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쓴 서간문입니다.

5) <야고보 서> AD57-58

6) <고린토 후서> AD 58 년경
고린토 후서는 사도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성서로, 고린토 신자들의 회개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토를 세번 방문했으며 4통의 편지를 그들에게 써 보냈습니다. 이 가운데 첫번째와 세번째 편지는 분실되었고 두번째 편지는 고린도 전서로, 네번째 편지는 고린토 후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7) <로 마 서> AD 58 년경
로마서는 바울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글 형식이지만, 풍부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바울로 사도의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습니다.

8) <에페소서> AD 62-63
바울로가 에페소 지역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성서로, 이 편지를 옥중에서 썼기 때문에 "옥중서간" 이라고도 합니다.

9) <빌레몬서>
바울로 제3차 전도 여행 때 에페소에서 썼다고 한다.
그는 오네시모에 대한 필레몬의 권한을 존중하면서도 그가 오네시모를 노예 이상의 존재로서, 또 사랑하는 형제로서 맞아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 구성은 도입(1∼3절), 필레몬에 대한 칭찬(4∼7절), 오네시모를 위한 청원(8∼22절), 맺음말(23∼25절)로 되어 있다.


10) <골로사이서>
골로사이서의 집필시기와 장소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이견이 많습니다.
그러나 골로사이서에 나타난 바울로 사도의 사상이 에페소서(로마에서 61년경 집필)보다 훨씬 발전되었으므로, 골로사이서는 62,3년경 로마의 감옥에서 집필한 것으로 보는것이 다수의 의견입니다.

11) <베드로 전서>AD 64-68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교인 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는 초대 교회 신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편지형식으로 제자에게 대필시켜 쓴 성서 입니다.

12) <마르코 복음> AD 70
복음서 중에서 제일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 형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주로 로마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이스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시기는 예루살렘 성전 파괴(AD70년)이야기가 들어있으므로 이시기에 즈음인 기원후 70년 경으로 봅니다.
소아시아 지방 히에라폴리스의 주교였던 빠삐아스(60-130년)가 이 문제를 정리하면서 복음서의 저자들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게 되었다.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베드로 전서) 마르코가 베드로에게서 들은 내용을 충실히 기록했다"고 함으로써 이 복음서를 "마르코 복음서"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코 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

13) <루가 복음> AD 80 년경
루가 복음서에는 다른 공관 복음서(마르코, 마태오 복음)에 없는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데, 예수님의 행적을 가장 다양하고 풍부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초세기 교부 성 이레네오(130-200)는 바울로의 협조자요, 의사였던 루가가 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루가복음서는 50-60년대 씌여진 "Q 자료" 70년경에 기록된 마르코 복음을 참조했음이 밝혀지고, 특히 유다의 독립전쟁이 실패한 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짓밟히는
상황(70년)을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으므로, 이 복음서의 집필연대는 80년 경으로 봅니다. 사도행전과 끝 부분이 이어지는 점과 문체가 똑같은것으로 봐서 사도행전과 동일인 으로 밝혀졌으나 루가 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14) <마태오 복음> AD 80-90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세관원 출신인 마태오가 이 복음서를 집필했다고 흔히 알고 있지요. 그러나 성서학자들의 연구결과, 마태오 복음은 그리이스어로 씌여진 것으로서 "Q 자료"이라는 문헌(50-60년 기록)과 마르코 복음(70년경 완성)을 참조하여 80-90년경에 집필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마태오가 직접 하진 않았습니다. 복음서의 저자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단지 편의상 마태오로 부르고 있을 뿐입니다.

15) <사도행전> AD 90 년경
사도행전은 루가복음과 문체나 용어가 비슷하므로 루가 복음서의 저자와 동일인물로 봅니다만 동일인물인것만 확실하지 누군지는 모릅니다.

16) <요한 1, 2, 3서> AD 90-100
누군지 모르는 요한복음의 저자와 동일인물로 봄(사도 요한이 저자는 아니라고 봅니다)

17) <요한 묵시록> AD 95-97
요한복음의 저자나, 사도 요한과 관계없는 누군가 의해 쓰여졌습니다.

18) <유 다 서> AD100 년경
25절 밖에 안되는 짧은 서간성서이며 야고보의 동생 유다가 썻다고 나와있지만. 유다인의 풍습을 잘 알고있는 유대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유다 사도의 이름을 빌어 썼다고 봅니다.

19) <디모테오 전,후서> AD 100
디모테오 전 후서는 사도 바울로가 제자 디모테오에게 보낸 서간성서로, 교회의 조직과 사목자의 직분 등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디도서와 함께 "사목서간"으로 분류합니다.
다른 전승자료에 의하면 바울이 AD 60 년대에 바울이 집필했다고 나오나, 문체나 어휘가 바울과는 현저하게 틀리며 후세에 제자들이 바울의 권위를 빌어 썼다고 봅니다.

20) <디 도 서> AD 100 년
바울의 이름으로 62 년경에 보낸것으로 되어있지만, 문헌을 보면 디모데모 전후서 처럼 제자들이 쓴것으로 봅니다.

21) <히브리 서> AD 100 년
바울로 사도의 마지막 서간집으로 알려져있는 히브리서는 다른 서간들과는 달리 수신인과 발신인이 명시되지 않고 시작 인사도 없으며, 바울이 보낸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22) <베드로 후서>AD 120-130
저자가 베드로라고 성서 본문의 여러 곳에 나오지만, 성서학자들은 베드로 후서를 베드로 사도가 직접 쓴 편지로 보지 않고, 후대의 사람이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 쓴 것으로 봅니다.(왜냐면 유다서를 인용하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23) <요한 복음> AD 150-180
요한 복음서는 세례에서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 그 분의 말씀과 행적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 복음)와 비교할 때 그 내용이나 서술방법이 매우 다릅니다.
또한 2 원론적 발상과, 헬레니즘에 철학에 영향을 받은 점으로 봐서 한참 후세에 쓰여져 있으며 중간중간에 다른 문체와 사상이 섞인것으로 봐서 여러명의 저자로 추측합니다.
주요 본문은 100년경으로 보지만 몇부분의 내용은 후세에 첨삭된것으로 봐서 완성본은 150-180 년 어떤 학자는 200 년 초까지도 보는 문서입니다.



신약 성경의 쓰여진 순서만 보아도 사도바울이 예수를 몰랐다는것

 

즉 다른 4복음서와는 너무나도 다른 예수를 말하는 바울이라는 사람이 쉽사리 이해가 않되는게 정상인겁니다

 

 

상식적으로 당장 요한복음에서는 실존하는 예수를 다루는데 사도바울은 이미 죽고 없는 혹은 이미 부활하여 승천한 예수를 다룬다는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뭐 이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것으로 예상이 됩니다만 신약의 첫머리가 바울 서신이며 복음서들은 그 이후에 나온것들 뿐이라는 문제와 직면하고 보면 더더욱 성경은 그 신빙성이 떨어질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당장 여러분들께서 들고계신 성경의 순서를 보십시요

 

애시당초 여러분들께는 이러한 의문(왜 사도바울이 죽고 없는 예수를 다루는가?)조차도 허락되어 있지 않은겁니다

 

원본도 없으며 저자마저도 불명 밝혀진 저자는 오직 사도바울 단 한명뿐

 

그리고 수많은 세월동안 번역과 편집작업을 거친문서

 

당연히 객관적인 자료가 되기 힘들뿐만 아니라 신의 말씀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문서인겁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글이 길어지는군요 ...

 

 

  다음은 삼위일체 신의 교회 안에서의 확립 과정과 불과 50년이라는 세월동안 인간에 의해서 신이되었다가 다시 인간이 되었다가(교회가 그분을 신으로 인정 했다가 그렇지 않았다가 했다는 말입니다) 하는 변화를 5번이나 겪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이드님의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정리 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
  막강한 로마 제국이 결국에는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더구나 또 다른 미스테리아 종교로서가 아니라, 하나이며 유일한 참종교로 수용했다는 것은 역사상 가장 역설적인 일 가운데 하나이다. 유대 국가를 완전히 초토화시켰던 로마가 결국에는 유대인 역사를 신성시하는 종교---더구나 로마 총독이 살해했다는 유대인 선지자를 섬기는 종교---를 국교로 채택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물론 그리스도교 전통 역사에서는, 이교 신앙의 어둠에서 인간을 빛으로 이끈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이 가장 선호한 종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성공할 만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 채택한 유일한 외래 미스테리아 종교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 17년 전인 304년에 한신인이 ‘제국의 보호자’로 선포되었다. 이 신인은 12월 25일에 기적적으로 태어났으며, 신도들이 상징적인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죽음과 부활을 기념했다. 이 신인은 다름 아닌 페르시아의 구원자 미트라스였다.

페르시아인들은 로마인들의 적이자 경쟁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로마인들이 미트라스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상 유대인의 구원자 예수를 받아들인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일이다.

미트라스 미스테리아는 AD 첫 세기에 로마 제국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절정에 이른 3세기에는 제국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현대 권위자의 말에 따르면 ‘흑해의 제방에서 스코틀랜드의 산맥까지, 사하라 사막의 접경 지대까지’---미트라스를 섬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미트라스 신앙의 기념물을 살펴보면 자유인뿐만 아니라 노예까지도 미스테리아의 입문자가 되었으며, 흔히 그런 노예가 최고위직에 이르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트라스 신앙에서는 실제로 ‘나중에 된 자가 먼저’(마태복음 20:16) 되었다. 2세기 말에 코모두스황제(재위 18-192)도 미트라스 미스테리아에 입문했다. 황제의 입문은 로마 세계에서 엄청난 자극제가 되어 교인의 수가 대폭 늘어나게 되었다. 코모두스 이후의 여러 황제들은 미트라스 신앙을 제국의 종교로 삼으려고 했다.

로마의 지도자들은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미스테리아가 달랐고, 선호하는 정도도 달랐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자신을 디오니소스라고 칭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아티스를 선호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세라피스를 숭배했다. 도미티아누스는 오시리스를 받들었다. 엘가발루스는 헬리오스를 섬기는 일신교 신앙을 강화하려고 했다.

점점 분열이 격화되고 있는 와중에 ‘하나의 제국, 하나의 황제’ 라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로마 황제들은 ‘하나의 신앙’을 필요로 했다. 보편적인 종교, 곧 ‘가톨릭catholic’ 종교를 필요로 한 것이다(‘catholic은 ‘보편적’ 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주). 황제들은 이러한 온갖 종교를 여러 시대에 걸쳐 제시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4세기 전반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시험해 보았다. 그리스도교는 이상적인 후보였다. 민중들에게는 미스테리아 종교가 항상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은 미스테리아 종교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미스테리아 종교의 지도자들은 신비주의자 이거나 철학자들이었고, 그들은 국가의 권위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며 권위를 훼손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문자주의 그리스도교는 골치 아픈 지성인들을 배제시킨 미스테리아 종교였다. 게다가 이미 권위주의적인 종교가 되어 있었다. 이 종교는 권위를 지닌 자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으라고 가르쳤다. 이것이야말로 로마 당국자들이 바라던 종교가 아닐 수 없었다. 신비주의자가 없는 종교, 은밀한 미스테리아가 없는 공개적 미스테리아만의 종교, 내용 없는 형식뿐인 종교!

321년에 콘스탄티누스는 최초의 그리스도교인 황제가 되었다. 그가 그리스도교인이 된 동기는 분명 영적인 게 아니라 정지적인 것이었지만,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는 자신의 개종이 신성한 계시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전투 전야에는 그와 ‘모든 군대’가 자정의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의 징표’를 보았는데,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정복하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그리스도교인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교도의 상징인 키로chi-rho였다.

하늘에 나타난 그 상징이 무슨 뜻인지 의아해하며 잠자리에 든 콘스탄티누스의 꿈속에 그리스도가 찾아왔다. 자정에 본 상징을 들고 있던 그리스도는 ‘적과의 교전 때 이것을 사용하라’고 그에게 명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병사들의 방패에 그 상징을 그려 넣었고, 그리스도가 약속한 대로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그는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

그의 말을 믿기로 한다면 ‘평화의 왕자’ 예수는 황제에게 마법 군대의 부적 하나를 건네 줌으로써 고대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제국을 손에 넣은 셈이다.

키로chi-rho 상징은 이교도의 파피루스 고문서에서 비롯한 것으로, 학자들은 예언적인 구절에 이것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키로가 그리스어로는 크레스톤Creston이며, ‘길조’를 뜻한다.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함으로써 키로는 그리스도를 가리기는 말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이 상징은 이중의 의미를 지녔다. 이교도에게는 길조를, 그리스도교인에게는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이다. 이런 이중 의미는 콘스탄티누스의 목적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콘스탄티누스는 무엇보다도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때에만 그리스도교를 강조했다. 그가 꿈에서 약속 받은 승리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를 만들었을 때, 비문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로마 병사들이 이교도의 거룩한 수호자들로부터 신성한 도움을 받았다고 묘사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는데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누스는 로마 광장에 있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육중한 석상 위에 자신의 두상을 얹어놓게 했고, 그의 모습을 헬리오스와 함께 동전에 새겨 넣게 했다. 그리고 그는 폰티펙스 막시무스---이교도 세계의 최고 사제---라는 호칭을 여전히 사용했다.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인 황제들도 382년까지 그런 호칭을 사용 했다.

대부분의 로마 황제와 마찬가지로 콘스탄티누스는 사악하고 무자비한 인간이었다. 골족과의 전쟁(306-312) 중에 그는 다음과 같은 짓을 했다.



그가 바르바리(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의 왕들을 수천 명의 부하들과 함께 야수의 먹이로 던져 주었을 때 이교도들까지도 충격을 받았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로 개종을 한 후에도 여전히 사악하고 무자비했다. 325년에 그리스도교인들의 니케아 공의회를 주재한 직후, 그는 자신의 계모인 파우스타와 친아들 크리스푸스를 살해했다. 그는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세례받는 것을 고의로 연기했다. 계속 죄를 짓다가 마지막 순간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거룩한 내세를 보장 받기 위해서였다.

콘스탄티누스의 악명은 로마 교회조차도 차마 그를 성자로 만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그래서 ‘대제(大帝)’ 라는 수식어로 만족해야 했다 : 저자주).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조금 더 먼저 교인이 된 그의 어머니 헬레나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녀는 콘스탄티누스의 계모 살해에 연루된 후 추방이 되었는데, 내친김에 성지 순례에 나섰다. 거기서 그녀는 기적적으로 그리스도의 무덤이자 탄생지인 동굴을 발견했다. 골고다에서 예수와 두 도둑을 못 박은 십자가 3개도 함께 발견했다. 이것은 정말 별난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예수가 못 박혔다는 날로부터 300년이 지나는 동안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유대인이 수천 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처럼 뜻밖에 발견한 성지에 교회를 세웠다. 그곳은 오늘날까지도 성스러운 곳으로 기려지고 있다.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들은 제국의 도처에 보내졌고, 가톨릭 교회는 헬레나를 ‘진짜 십자가의 발견자, 성 헬레나’로 기리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또 로마에 있는 베드로의 묘지로 여겨진 성소 부지에 거대한 공회당을 세웠는데, 이 공회당은 장차 로마 가톨릭 신앙의 발전소인 로마 교황청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처럼 그저 문자주의자와 영지주의자로만 분열되어있는 게 아니라, 문자주의 공동체 자체도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니케아 공의회가 시작되자마자 그리스도교인들은 동료 교인들을 고발하는 탄원서를 황제의 무릎에 첩첩이 쌓아 올렸다고 한다!(황제는 그것을 모두 불태웠다 : 저자 주)

콘스탄티누스는 신학을 전혀 몰랐다. 사실 그는 이교에 가까운 연설을 해서 사람들을 당혹케 했다. 그러나 그는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강제로 통합시켰다.

니케아에서는 하나의 신조가 만들어졌는데, 오늘날에도 전세계의 교회에서 그것을 되뇌고 있다. 신조에 동의하기를 거부한 주교들은 황제가 직접 재판하여 범죄자로 몰아 제국에서 추방시켰다. 동의한 주교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손님 자격으로 니케아에 초대 받아 황제즉위 20주년 잔치에 참석했다. 많은 주교들은 동의 서명을 한 후 후회를 했다. 훗날 어느 주교는 황제에게 이런 글을 써 보냈다.

‘우리는 그대가 두려워서 신성을 모독한 글에 서명함으로써 불경한 짓을 저질렀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 제국은 훨씬 더 무자비한 그리스도교인 황제들의 치하에서 점점 더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다만 율리아누스 황제(재위 361-363)가 이교 신앙을 부흥시키려고 한 잠깐의 기간만이 예외였다.

율리아누스는 플라톤 학파의 철학자로 자처했는데, 미트라스와 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의 입문자였다. 그는 하나인 신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찬가를 썼으며 겸손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모든 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했고,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반유대 그리스도교인 교회의 소망대로 그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율리아누스 덕분에 이교 신앙이 잠깐 부흥했지만, 곧바로 그리스도교가 다시 살아나서 훨씬 더 맹렬히 세력을 확대해 갔다.

니케아 신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교회는 영구히 분열된 채 신약 논쟁으로 위장된 정지적 내부 투쟁을 끊임없이 계속했다. 권위적 분위기 속에서 패배자들은 파문 당했고, 그들의 견해에 동조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안전하지 못했다. 오늘의 ‘정통’이 내일의 ‘이단’ 일 수 있었던 것이다. 4세기 말경에 프랑스 푸아티에의 주교 힐라리우스는 낙담한 나머지 이렇게 썼다.



매년, 아니 매달 우리는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사소하고 애매한 것을 묘사하는 새로운 신조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한 짓을 후회하고, 후회한자들을 옹호하며, 우리가 옹호했던 자들을 파문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남들의 교리를 저주하거나, 남들이 지닌 우리 자신의 교리를 저주하고, 서로 상대방의 교리를 갈가리 찢으며, 서로의 멸망의 원인이 되어 왔다.



이 무렵 문자주의자 교인들조차도 로마 교회를 더 이상 그리스도의 계획 완수로 보지 않고, 오히려 ‘반그리스도’의 작품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무튼 지금부터 희대의 희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서기 325년의 니케아, 그 재판장으로 안내하겠다.
여기서 잠깐, 피고와 원고등 재판에 관련된 자들을 소개하겠다.


*혐의 내용:예수는 과연 신인가?
*피고:예수
*피고측 변호인:알렉산드리아 주교, 아타나시우스


*원고및 검사:알렉산드리아 사제, 아리우스
*재판관:미트라교 혹은 태양교의 신도로 알려진 콘스탄티누스 로마 황제
*배심원:알렉산드리아,안디옥,니코메디아 등에서 온 대략 300여명의 주교,사제들


그러면 우선, 원고 측 검사인 아리우스의 고발을 들어 보기로 하자.

[신은 철학에서 말하는 '모나드'에 해당하고, 실재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심적,물적 요소니까, 그렇지 않은 예수는 인간과 동위는 아니지만 야훼와도 동위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신은 궁극적이고 영원한 요소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존재인 반면, 지상에 태어나고 살고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는 이런 의미에서 신일 수 없다...]


예수를 결코 신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를 신으로 옹립할려는 주교단의 음모를 통렬히 고발하는 젊디 젊은 아리우스....이에 대한 반대 변론을 펴는 변호인단의 수장은 불행하게도 아리우스와 같은 교구의 주교였으며 스승이기도 했던 아타나시우스였다 한다.


결국 개혁파의 기수였던 아리우스와 몇몇 사제들은 재판에 패소하고 덤으로 파문을 당하고 난 뒤, 멀디먼 갈리아 국경 지대로 유배되었다하는데, 아래는 승소한 아타나시우스가 기초한 소위 니케아 신경이 되겠다.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만드신 창조자이시다.


그리고 한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로부터 나신 자이시며,
독생자이시다.
즉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오신 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며,
빛으로 나오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참 하나님이시다.
낳으신 자이시고 만들어진 자가 아니시다.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를 통해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존재케 되었다.
그는 사람들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육신하셨고, 인간이 되셨으며,
고난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는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아들이 계시지 않았던 때도 말하는 자들,
탄생 전에는 아들이 계시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들,
아들은 무에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
하나님의 아들은 상이한 본질 혹은 본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아들이 피조되었다든지
혹은 변화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카톨릭 교회는 저주한다. ]

 

  그리고 이러한 니케아 신조와 함께 현재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혹은 현재의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는 신조에 대하여 자료의 의미로 첨가 합니다

 

2)콘스탄티노플 신조(381)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만드신 자를 믿나이다.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모든 세대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나신(出生) 자요, 빛으로부터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참 하나님이시요, 나시되 만들어지신 것은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본질이시니라. 이를 통하여 만물이 생겨났으며, 그는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사 성령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시었고, 사람이 되시었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못박히시었고, 고난받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시었다가 성경대로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영광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무궁하리라.

또한 성령을 믿사오니, 이는 주 되시며 생명을 주시는 자이시니, 아버지로부터 발출(發出)(proceeds)하시며, 곧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함께 경배받으시며, 함께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여 오신 분이시니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나이다. 우리는 죄의 사유를 위한 한 세례를 고백하나이다.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을 바라고 있나이다. 아멘.


3)칼케돈 신조(451)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우리는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모두가 일치하여 가르치는 바는 그 동일하신 분은 신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동일하신 분이 인성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참으로 사람이시며, 동일하신 분이 이성 있는 영혼과 육신으로 되시느니라.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며 동일하신 분이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본질이시니 죄 이외에는 모든 점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시니라. 신성에 있어서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 나시었으며 그 동일하신 분이 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하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사 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이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었느니라.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는 두 성품에 있어서 인식되되 혼합됨이 없으시며 변화됨이 없으시며 분리됨이 없으시며, 분할됨이 없으시며 ― 이 연합으로 인하여 양성의 차이가 결코 제거되지 아니하며, 오히려 각 성의 특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한 품격 한 개체에 있어서 결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두 품격으로 분할되거나 분리되거나 하지 않으며 한 분이시오, 동일하신 아들, 독생하신 하나님,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는 옛적에 선지자들이 가르친 바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에 대하여 가르치신 바이며 교부들이 신조로서 우리에게 전하여 내려오는 바와 같으니라.

결국 초기 교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 신조가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즉 삼위일체론을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를 지탱하는 신조는 역시 사도신경이 아닌가한다.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결론적으로 주교단과 그에 대해 반항하는 젊은 아리우스 그 둘간의 전쟁에서 주교단이 승리 함으로써 예수께서 삼위 일체 하느님이 되셨다는 소리 입니다

  재판관은 이교도의 황제 였구요

 

  그 이후의 삼위일체 신의 변천 과정입니다

 


1)서기 335년

*황제:콘스탄티누스
*죄목:반역죄....이집트 곡물 중단 사건 관련 유언비어 유포
*고발자: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그의 동료들
*유배지:독일의 트리어


니케아에서 대승리를 거둔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30년 황제의 종교 고문 호시우스의 자리를 대신하게된 유세비우스의 복권과 더불어 그 명암을 달리하게 되었다 한다.


종교회의에서는 승리했으나, 그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 까지 즉 서기 327년까지 귀양살이를 못면한 아타나시우스의 인생유전이 묘하기만 하다. 물론 예수는 인간으로 당연히 환원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5년 동안 신으로 군림하다가  330년부터 7년 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까지 다시 인간으로 복귀하였다는 뜻이 되겠다.


1)서기 335년

*황제:콘스탄티누스
*죄목:반역죄....이집트 곡물 중단 사건 관련 유언비어 유포
*고발자: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그의 동료들
*유배지:독일의 트리어


니케아에서 대승리를 거둔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30년 황제의 종교 고문 호시우스의 자리를 대신하게된 유세비우스의 복권과 더불어 그 명암을 달리하게 되었다 한다.


종교회의에서는 승리했으나, 그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 까지 즉 서기 327년까지 귀양살이를 못면한 아타나시우스의 인생유전이 묘하기만 하다. 물론 예수는 인간으로 당연히 환원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5년 동안 신으로 군림하다가  330년부터 7년 후 콘스탄티누스가 죽을 때까지 다시 인간으로 복귀하였다는 뜻이 되겠다.

2)서기 339년

*동방 황제: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둘째 아들)
*원인:황제의 아리우스파 신봉
*로마로 피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사후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던 아타나시우스와 다시 신으로 복귀한 예수의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황제 사후 삼등분이 되었던 로마는 장남 콘스탄틴 2세의 전사 후 동 서 두개의 로마로 분열되었고 그와 함께 예수는 인간으로 다시금 원위치하게 되었다 한다.


3)서기 356년

*황제: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둘째 아들)
*원인:유일한 황제가 된 콘스탄티우스의 재숙청 작업
*이집트 오지의 수사(修士)들 틈에 피신


서기 346년 서방 황제 콘스탄스(콘스탄티누스의 셋째 아들)의 간청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감독직에 재복귀된 아타나시우스는  350년, 마그넨티우스(Magnentius)의 지지자들에 의해 콘스탄스가 살해당하고 이를 진압한 콘스탄티우스가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자 재차 숙청당하게 되었다 한다.


예수 역시 10년 정도 신으로 둔갑했다가 다시 인간으로 복원해야만 하는 수모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4)서기 362년

*황제:쥴리안(콘스탄티우스의 사촌)
*죄목:이방신들의 원수


콘스탄티우스의 재위 기간 중 동가숙서가숙 유랑 신세를 면치 못하던 아타나시우스는 서기 361년 황제가 사망하고 그뒤를 이어 황제의 사촌, 쥴리안이 등극하자 잠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이 황제는 기독교가 아닌  플라톤 철학 신봉자로서 기독교가 제국의 암적인 존재라는 판단하에 그동안 기독교에 주어졌던 모든 특권을 박탈했다 한다.


대신 종교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그동안 박해를 받아왔던  아타나시우스파 관련자들의 유배와 추방도 모두 취소를 해주었다. 이때 아타나시우스도 풀려났으나, 문제를 자꾸 일으키자 황제는 모든 신들의 원수라는 죄목하에 다시 추방해 버렸다고 전한다.


쥴리안 황제시, 아타나시우스의 신세와는 무관하게 예수는 그저 인간으로 머물러야만 했다.


5)서기 365년

*동방 황제:발렌스(발렌티니안 1세의 동생)
*원인:황제의 니케아파 혐오
*아타나시우스는 시골집으로 낙향


쥴리안 황제가 서기 363년 작고하고 그후 죠비안 황제를 거쳐 발렌티니안 1세가 통치권을 가지게되었는데, 그는 동방의 효과적 통치를 위해 동생 발렌스에게 동방 황제의 지위를 주었다 한다.


죠비안 황제 시절 잠시 자유를 누렸던 아타니시우스에겐 니케아파를 혐오하던 발렌스의 즉위가  다시금 찾아온 불행이라고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발렌스의 수명이 너무나 짧았고 그의 후계자로 그라티안이 서기 366년 즉위하자 곧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한다. 그후 5년 정도 더 살다가 373년에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결국 아타나시우스는 예수가 완전히 신으로 자리잡게 되는 서기 381년 데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한
콘스탄티노플 종교 회의는 못보고 죽은 셈이다.


결국 서기 325년 신으로써 등극하셨던 예수님의 지위가 고작 5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여러 권력의 이동에 따라서 그 위가 변화 하는 모습이라 생각 하시기를

 

그리고 최근에도 바이블을 악용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조지워싱턴: 우리의 당면 목표는 인디언 부락의 전면 파괴와 유린이다.기본적으로 토지작물을 파괴하고, 더이상 경작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지상의 문명인들을 위해서 저 미개인들을 근절하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술(알콜)이 적절한 수단이 될 것이다.


*존 마셜 대법관: 이땅에 살았던 인디언부족들은 전쟁을 직업으로 삼고 숲에서 나오는 산물로 생계를 이어온 야만인이었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법, 그리고 규정해야만 하는 법은 그러한 상황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그 대륙을 매입하든 정복하든, 인디언의 점유권을 소멸시킬 수 있는 독점권을 주었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 창조주로부터 많은 사람을 도와 그 지역을 문명화시킬 운명을 부여받은 경우, 과연 소수의 야비한 미개인들이 거주하는 곳을 자연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공평한 분배일까?


*필립 셰리던 장군: 내가 지금껏 보아온 인디언 중 선량한 자라고는 죽은 인디언 뿐이었다.

 

첫번째 바이블은 신의 말씀이 아닙니다

 

두번째 바이블은 그대로 믿기만 하기에는 그 내용이 모호한 부분도 많으며 서로 상충되는 내용들 투성이 입니다

 

세번째 각 경전들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에 대한 포괄적이고 역사적인 그리고 해당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읽어도 될만한 문서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 해석이 천차만별로 틀려지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서로간의 반목을 부르기 때문인 겁니다

 

그리고 네번째

 

이러한 바이블의 폐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역사상 존재해온 기독교의 피의 역사의 주역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현재에 맹신을 부추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 신을 믿지 않습니다

 

쓰다보니 바이블의 부정적인 내용만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각경전마다 우리가 금과옥조와 같이 마음속에 새겨둘만한 내용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가 다 그러한것은 아닙니다(기독인 여러분들께서 안티들을 욕하실때처럼)

 

즉 맹신 혹은 바이블을 신의 말씀이라 착각 하는 행위들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라는겁니다

 

역사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그러한 믿음을 이용하려드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2~6) >>

 

상기 귀절은 신약(마 8:17,행 8:30-35) 에도 인용되어 있지만 대다수의 기독인들은 이 글이 예수의 형상을 묘사한 글이며 그 수난사를 예언한 것이라는데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우선 이 문장은 52장 13절 부터 53장 12절 까지가 한 단락이 됨을 우선 알아야 된다.소위 네번째 야훼의 종이라는 찬송이 되겠다.(보편적으로 기독인들은 한 문장 가지고 해석하기를 즐겨함을 기억하자.) 그러면 여기에 표현된 종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라는게 오늘의 주제가 되겠다.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 오르리라.
무리가 그를 보고 기막혀 했었지. 그의 몰골은 망가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 때문이다. (이사야 52:13~53:12) >>

 

우선 구약에서 메시아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 보기로 하자.
주지하는 바  메시아의 의미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메시아는 승리자로, 기름부음 받은 다윗 왕으로써 내정되어 있다. 이사야 11장을 보시라. 그 뜻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 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 주리라.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성실로 띠를 띠리라. (이사야 11:3~5) >>

 

즉 유대인의 메시아관은 다스리고, 악을 파괴하며 멸망시키는 승리자의 모습, 그러한 개념이 유대인의 보편적 메시아관이 아니던가?

이러한 승리의 지배자가 동시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가 되며, 자기의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겠는가?라는 유대인의 일반적 의문이 마태 8장에 묘사된 제자들의 의문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구약의 유대인들이 갈망하고 기대하는 메시아는 승리자이지 고난받는,처참한 모습이 아니란 것을 기억하자.부언하자면 그리스도는 정복하고 지배하기로 되어있지, 정복되고 고난받기로 되어있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종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신학자들의 견해를 우선 소개하기로 하겠다.
*제이 이사야 저자 자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특별히 고난을 많이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일 거라는 주장
*여호야김이나 시드기야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외 이스라엘 공동체라고 해석한다 등등

 

여기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종에 대한 관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사료된다.한번 정리해 보기로하자.

 

<<"이제 나의 종은 할 일을 다 하였으니, 높이높이 솟아 오르리라. (이사야 52:13) >>

*이 문장을 보면 종은 확실히 이스라엘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너희 가운데 야훼를 두려워하는 자가 있거든 그의 종이 하는 말을 들어라. 한 가닥 빛도 받지 못하고 암흑 속을 헤매는 자가 있거든 야훼의 이름에 희망을 걸 일이다. 자기 하느님을 의지할 일이다. (이사야 50:10) >>
*여기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다. 즉 예언자 정도로 보면 되겠다.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이사야 49:3) >>
*이 문장에선 다시 이스라엘을 뜻한다.

 

<<야훼께서 나를 지극히 귀하게 보시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신다. 야곱을 당신께로 돌아 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모여 들게 하시려고 나를 태중에 지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신 야훼께서 이제 말씀하신다. (이사야 49:5) >>
*확실히 종은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문장이 되겠다.

 

대개 이 정도가 제2 이사야서에 서술된 종에 대한 개념인데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나 다윗의 지배자라고 불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되겠다.

이러한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여기서의 종은 "고난 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증으로 아래의 문장을 보시라.
<<그리하여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오래 살리라....(이사야 53;10) >>
만약 그가 예수라면 예수의 후손이 누구이지? 하는 의문을 풀어야 하는 숙제도 생긴다.

 

동의하시는가?
적어도 이사야서에 묘사된 종은
메시아가 아님은 확실하다고 사료되는데 그대의 생각은 아직까지도 예수로 생각하시는가?

 

그러면 제이 이사야 기자가 생각한 메시아는 누구였을까?

 

이 대답은 황당하게도 이방인 왕인 페르샤의 고레스왕이 되겠는데 이방인을 유대인의 왕이요 제사장이며 메시아인 기름받은 자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변형된 사고관을 이 글에서는 볼 수 있다.
물론 처참했던 유배 시절을 끝내게 해주고 더우기 야훼를 믿어도 된다는 신앙의 자유도 허락하는 고레스 왕이 메시아 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필자의 과문함일까? 유대인의 그 선민사상과 철저히 반함에 연민을 가져 본다.일단 그 장면을 보기로 하자.

 

<<나는 고레스에게 명령한다. "너는 내 양을 쳐라." 그는 내 뜻을 받들어 이루리라. "너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여라. 성전의 기초를 놓아라." (이사야 44:28) >>


<<야훼께서 당신이 기름 부어 세우신 고레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아 주어 만백성을 네 앞에 굴복시키고 제왕들을 무장해제시키리라. 네 앞에 성문을 활짝 열어 젖혀 다시는 닫히지 않게 하리라. (이사야 45:1) >>

 

결국 유대인들은 고레스에 대한 기대감과 고마움을 야훼에 대한 신앙으로 왜곡함을 엿볼 수 있는데,고레스가 만약 이 글을 봤다면 웃었을까?....아니면 가련한 민족....하며 비웃었을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우리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났을 때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만이 우리 민족 고유의 "옥황상제" 혹은 "단군할아버지"의 힘을 빌어 우리나라를 해방시켰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겠다.

 

어쨋던 이방의 왕을 그들의 메시아로 생각했음은 발상의 큰 전환이라고 보여 진다.
아마 이러한 경향이 먼 후일 기독교의 이방 선교의 합리화에 기여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 본다.

 

분명한 것은 이사야 53장은 예수의 고난사를 예언한 것은 분명아니라는 사실이 되겠다.

 

사족:만약 이사야서의 종이 메시아 혹은 야훼의 아들로 둔갑했다면 예수는 필히 장가를 가서 후손을 두고 오래 오래 (33년 정도가 아니고...)살았어야지 이사야서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보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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