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을 거부했던 내 삶의 이야기...

김모양2006.05.23
조회42,090

저의 친구 하나가. 이글을 읽고 절 알아보고는 싸이에 글을 남겨놨떠군요.

깜짝놀래서. 혹시나하고 들어와보니. 어저께만해도. 3천건이던 조회수가. 오늘보니. 2만이 넘어있더라구요. 어찌 톡이댔는지.. 저를 응원해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한분한분의 리플을 보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정말 다들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내가 18살 . 즉 고2때의 일이다.

부모님께 그동안 못한 효도도 하고. 가슴에 꽃도 달아드려야했던 어버이날.

난 그러지못했다. 오히려. 그런날. 우리 엄마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무릎을 꿇고. 울며 빌고있었다.

학교에서 사고친 나에게 학교에서 자퇴를 권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한번만 봐달라며 선생님께 빌고 또 빌고.

그런데 나는. 학교를 그만두겠따고 했다. 난 그때 그게 멋인줄 알았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둔 나는. 동내에 겜방에서 야간에 알바를 하게되었다.

밤 8시부터 아침 9시까지.

여자로써는 힘든일이었찌만. 학교도 그만두고 집에서 놀고있을수만은 없어 글케 그 일을 시작했다.

한달정도가 지났을 무렵인가. 밤에 일을 했던 나는. 몸도 안좋아지고 생리도 불순이고 해서. 그냥.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하루는 엄마가 무슨 바가지같은곳에 소변을 받아오라고 하셨다. 그냥 별생각없이 소변을 받고 엄마에게 주었다. 그러고 이틀후. 엄마가. 어딜가자고 하길래 쉬는날이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엄마의 발걸음이 멈춘곳은. 모 산부인과 앞..

생리불순때문에 그런가 싶어서. 아무생각없이 따라 들어가 검사를 받던나는.

너무 놀라 기겁을했다. 임신 3개월가량 됐다는 의사의 말.

술먹고 한번 실수한일이... 엄마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의사에게 바로 낙태수술을 시켜달라고 했다.

자궁에 무슨 이상한약을 넣고 1~2시간 있어야 시작되는 수술.

그 이상한 약을 자궁에 넣고 병원에 마련되있던 조그만한 방에 누워있으면서. 난 하염없이 울어야만 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이대로 도망갈까? 아니야. 내가 지금 이 아이를 낳는다고해도 어떻게 키울지.

겁도나고. 슬프기도하고.

더이상 엄마를 실망시킬수 없었끼에 낙태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마취가 깨어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미역국 한숟가락을 뜨며서. 계속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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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그 다음해..

그동안 엄마 속을 너무 마니 썩힌 죄책감에. 난 다시 학교를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3월. 학교를 복학하고. 정말 열심히 학교를 다녔는데.

끝내 학교 적응을 하지 못하고. 3개월이 지난 어느날 학교를 또 그만두었다.

도저히 부모님 얼굴을 볼수없었던 나는. 학교 그만둔 바로 다음날. 가출을 했다.

빵가게. 비디오가게등등. 배운것도 없고. 졸업장도 없고 나이도 안됐끼에.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해서 먹고 살아야했다.

부모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전화도 할수 없었고.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일년정도 지난 후였나. 동생에게 잘있냐는. 전화를 한 나는.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한마디에. 또 하염없이 울어야만 했다... 나때문인것 같았다..

나 때문에 두분이 너무 힘들어 하셨으니.. 내가 죄인이었다.

한글을 몰라 변변한 직장한번 갇지 못하고. 막노동만 해야했던 아빠는.

차마 동생들을  델꼬 살처지가 못되서. 동생들은 다 엄마와 살게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동생과 통화를 하고. 다른 말은 안하기에. 힘들어도 좀만 참으라 위로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일후. 겜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메일을 확인하는데.

첫째동생에게 메일이 한통 와있었다. 나한테 연락할수있었던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끼에.

다행히도. 바로전날 보내진 메일. 기쁜맘 반. 걱정반. 그렇게 메일을 확인하였다.

막내동생이 집을 나갔따는 것이다. 갇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막내동생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심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서도. 동생과 재일 친했떤 친구 하나가.

다른 친구들한테 막내동생을 이간질 시켜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따고 했다.

막내동생이 성격이 활발한 편이라. 절대 왕따같은거 당할꺼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난 급히 막내동생을 찾아야만 했다.. 부모님 힘들게 하고. 학교도 재대로 못다니고.

인생을 망쳐야만 했떤건 나하나로 족했어야했으니까..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수없었던 나는. 막내동생에게 메일을 보냈다.

머라고 안할테니. 제발 나한테만이라도 연락을 좀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일주일쯤 지났나. 막내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대전에서. 조그만한 분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난 동생을 설득시켰다. 학교를 도저히 다니지 못하겠으면.. 집에 도저히 못들어가겠으면.

나와 같이 있자고.  동생은 망설였으니.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껀지. 이야기도 들어보고.

동생은 도저히 그 학교는 다시 못다니겠따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데리고 학교로 찾아가. 자퇴서를 썻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잘못하고 있는건지 그땐 잘 몰랐찌만. 지금 생각하면 잘한것 같다.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같이 살던 도중.

내가 일하고 있떤 빵가게에서 . 알바를 짤리고 말았다.

내가 금고에 손을 댄다는 것이다. 너무 기가 막혔찌만. 결백을 증명할만한 증거가 없었끼에.

그렇게 힘없이. 월급도 한푼 받지 못하고. 그대로 그 가게를 그만둬야만 했다.

너무 막막했다. 모아둔 돈도 없었고. 내 주머니에 가진거라곤. 돈 12000원이 전부였으니.

그때 살고있던 집에서도 쫒껴났다. 일하던 빵가게가. 조그만한 외진 동내에서 일하고있었는데.

살고있던 집이. 일하던 빵가게 사장님이  부탁해서 살게된 곳이었끼에.

사장님이 살고있던 집주인에게 . 쟤들 손버릇이 나쁘다며. 그렇게 말을 했던 것이다.

동생과 나는 어쩔수 없이 그날 부랴부랴 옷가지들만 챙겨서 그 집을 나와야만 했다.

갈때도 없었던 우리를. 우선 겜방에 갔다.

우선 조이천사. 그때 당시 한참 유행하던 화상채팅을 켰다.

친한 친구 하나가. 매일 거기 들어와서 살았끼 때문에 친구과 상의를 해볼까 하고 그곳에 들어갔다.

친구와 이래저래 자초지정을 예기하고 있던도중. "아가씨구함" 이런 쪽지가 한통 날라왔다.

머지. 하고 무슨 아가씨요? 하고 답장을 보냈는데. 1:1 대화 신청이 걸려왔다.

자기가 다방을 하는데. 아가씨를 구한다고 했다. 숙식제공 다 되고. 월급 6:4? 나눠먹기로  한달 150이상 벌고.안되는줄 알면서도. 귀가 솔깃했다.  시중에 돈도 없고.당장 잘곳도 없었으니까.

우선 전화번호를 받고. 고민을 했다.. 몇시간  생각을 해본후. 그 사람한테 전화를 했다.

일하겠따고 했다. 그랬떠니 그 사람이 바로 델러오겠따고 했다.

두어시간이 지났을까. 나 있는곳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우선 가기전에. 대화를 하자고 청했다. 첨가는 곳이고. 나한테는. 데리고 있어야할 동생이 있었끼에.

자초지정을 설명한후. 동생을 같이 일하는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다.

동생도 같이 밥도 먹여주고 하겠다고..

그 약속을 믿고 나는. 그 사람이 하는 다방에 일을 하려고 따라갔다.

동생한테는 너무 미안했찌만. 나로써는. 당장에 어찌할수있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렇게 그곳에 적응을 하고. 3개월 일을 했을때 200만원 정도의 돈을 모았다.

그 모은돈으로. 다방아가씨들과 같이 숙소에서 지내고 있던 동생이 안쓰러워서.

동생한테 방을 하나 구해주었다. 이곳에서 나 나쁜일 하고 나쁜모습 보여주는게 싫었으니.

동생 있는곳에서 출퇴근 하는걸 요구했찌만. 안된다고 하기에. 계속 숙소에서 지내면서. 주말마다 동생 집에 가서 반찬도 해주고. 동생 몇푼이라도 용돈도 주고 오고 그랬다.

그때 일하면서 한 남자를 알게되었다.

그 지역에 현장때문에 잠깐 오게되었따던 건설회사 사람이었는데.

그때당시 난 20살 이었고. 그 사람은 31살 이었다.

난 그냥. 내가 다방아가씨니까. 머 어찌 해보려고. 만나는거라 생각했다.

어느날 밤 12시에 일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숙소앞에 마니 보던 차 한대가 서있었다.

그 사람이었다. 밤 9시부터 나 퇴근시간을 몰라서. 거기서 계속 기다렸던 것이다.

감동받았다. 그 사람이 점점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귀게 된건지 모르겠다.

둘중 누구하나 딱히 사귀자고 말한적이 없었끼에. 그 사람을 만나던 횟수가 많아졌을때쯤.

내 지나온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져 유산도 했었고. 부모님도 이혼하시고. 고등학교도 못나왔고.

우리 관계가 어떻게 더 발전될지는 모르겠찌만. 나중에 발전이 되고 나서

상황이. 어찌어찌 대서 지금 동생도 데리고 있고. 이렇게 이런일을 하고 있다고.

.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것보다. 서로 관계가 깊어지기전에. 해야겠다고,,

그래야 끝낼꺼라도. 서로 더 좋아하기 전에 빨리 맘접는게 낳을꺼라고 생각했끼에.

나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해주고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런 나라도 괜찮겠느냐고. 괜찮다고 한다면. 나도 당신을 맘놓고 좋아하겠다고.

그 사람은. 잠시 생각하는것 같더니. 지나온 과거가 무슨 상관있냐고 했다. 지금부터가 중요한거라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하고. 이사람이라면. 내가 믿고 의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후 이 사람은 나 몰래 동생한테 찾아 가서 동생 밥도 사주고. 용돈도 조금씩 주고오고.

너무 고마웠다. 동생도 이 사람을 잘 따르는듯 했고. 그렇게 사랑을 키워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겨울이 다가올때쯤. 동생을 앉쳐놓고. 이야기를 했다.

학교를 어떻게 하고싶냐고. 너는 나같이 되는 거 보고싶지 안으니까. 니가 하고 싶은걸 예기하라고.

동생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부산에 있는. 미용고등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예기했다.

난 걱정했다. 나도 한번 복학했던 경험이 있으니.

하지만 동생의 경우는 달랐다. 고등학교를 재입학 하는 거여서. 다들 고등학교 입학할때 같이 새로 입학하는 거였으니. 다들 서로를 모를때이니까.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동생과 이야기를 끝내고. 그 사람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난 지금부터. 동생 학교를  보내야대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동생이 그쪽 학교에 가게되면. 난 학비를 보태줘야했끼에 지금부터는 더 독하게 살아야한다고.

그런 내가 보기 힘들어 떠날것 같으면. 지금 떠나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괜찮다고 나보고 잘 생각했따고 했다.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 또 나는 돈을 모았다. 돈을 모아서 동생이 다니고 싶다는 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그때 몇년만에 엄마한테 처음으로 전화를 했다.

동생이 다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말라고.

엄마한테 정말 못난 모습만 보여준 나였기에. 다시 엄마 목소리를 듣고. 또 한없이 울었다.

엄마는. 나보고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난 엄마에게. 나중에 내가 떳떳해지거든.

또 전화하겠따고. 엄마 정말 미안하다고. 그말을 남긴채. 전화를 끊었다.

 

그때 입학을 시키면서. 동생은. 나에게. 친구네 집이 하숙을 하는데. 거기에서 지내고 싶다고 하였다.

살고있던곳이. 마산이었끼때문에. 거기서 학교를 다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어찌보면. 친구와 같이 지내면. 동생이 학교다니는데도. 편할테고. 학교와 멀지안으니. 쉽게 다니겠다 싶어서. 동생이 하고 싶다는데로 해주었다.그리곤. 일하던 다방을 그만두었다.

동생한테도. 계속 그런모습을 보여서 미안하고. 나를 믿어주는 그 사람에게도.

이제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학교 입학금과. 교복비. 그리고 한달 40만원이나 하는 하숙비.

사립학교인데다가 미용고등학교라. 한달에 들어가는돈이 몇십만원씩이나 됐다.

난 어쩔수없이. 방 보증금을 빼서. 지 입학금과. 교복등. 동생에게 다 해주었다.

다시 내게 남은 돈이라고는. 땡전 한푼도 없었다. 방 보증금을 뺏끼에 난 그 집에서 나와야했다.

동생을 그 하숙집에 보내고. 나는. 또 몇일 있음 방을 빼줘야했끼에 그 사람에게. 예기했다.

천안으로 올라가바야겠다고. 거기엔 친구도 있고 하니까. 거기서 돈을 벌어서 동생 학비를 대줘야겠다고.그 사람은. 생각좀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몇일후. 그 사람을 만났는데.

나보고 가지말라고 했다. 자기도 멀리있는 사람 사겨바서 아는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딴 사람은 모르겠찌만. 자기는 경험해보니 그렇더라고.

그러면서 같이 살자고 했다. 동생도 자기랑 같이 공부 시키자고..

고마웠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까지 짐을 짊어지게 할순 없었다. 그래서 안되겠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나에게 커다란 노트 한개를 주었다. 멀리 가게되면. 거기에. 일기를 쓰라고.

나중에 다시 만날때. 니가 어떻게. 지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기도 알수있게. 거기에 힘든거 기뻤떤거. 다 일기에 담으라고.

난 또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람이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주고 있을줄이야..

난 알았다고 대답하고 그 노트를 받아 집에와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렇게 멀리 가게되면.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일을 고민하고 난후. 방을 빼기 이틀전.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살자고 했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이 조금 놀랬떤지. 정말? 하고 되물었다.

우린 바로 다음날. 같이 살집을 구하러 다녔다. 그렇게 같이 살게되었다.

다행히 동생있는곳과. 한시간 반거리여서. 가끔 동생 있는곳에 가서. 동생 얼굴도 보고 했다.

동거가 나쁜거라고는 알고있었찌만. 난 그때의 내 행동이 나쁜거라고는 생각치 안았다.

그렇게 동생도 가르치고 그 사람 뒷바라지도 하면서. 6개월정도 됐을때였나.

그사람이 현장이 끝나서 본사 출근해야된다고 했다. 난 이대로 또 떨어져야대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난 또 그 사람의 말을 승락했고.

그 사람이 이제 부모님께 같이 산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했다.

난 기뻣다. 날 부모님께 소개한다는 소리였으니. 솔찍히 겁도 났다.

듣기로는 그사람의 어머님이 결혼전 동거라던지. 그런거엔 절대 용납 못하시는 분으로 알고있었끼에.

본사있는 양산으로 이사를 가던날. 이삿집으로 그사람의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무슨말을 하실찌 겁이 났다. 집을 둘러보신후 어머님은. 나에게. 그사람이 절대 미래를 생각하지안코 이런일을 벌일 아들이 아닌걸 알기에. 동거하는걸 허락하시겠다고 하셨다.

난 기쁨반 두려움반..  그사람의 부모님께 너무 감사했다.

그러곤 아버님께서 나에게 잘포장된 조그만한 상자 하나는 주셨다. 먼가하고 열어보니. 지갑이었다.

며느리될지도 모르는데. 선물이라면서.. 우리 막내아들 잘 부탁한다고..

너무 고마웠다. 그사람 부모님께도 그 사람에게도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충 이사를 마치고. 집까지 찾아와준 그 사람 부모님에게 저녁을 대접하였다.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는데. 어머님께서 잠시 어디좀 가자면서 발걸음을 옮기셨다. 가구점이었다.

난 어리둥절해하며 가구점을 따라갔는데. 우리집에 가구가 아무것도 없으니.

좁은집에 다 들여놀순 없고. 침대만 사주겠다고 하셨다. 좋은거 골라보라고..

너무 좋으신분들이었다. 정말 잘해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했다.

그렇게. 1년 9개월을 같이 살다 작년 12월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 엄마가 오셨다. 물론 내가 결혼한다고 엄마한테 연락했다. 그리고 결혼식때 새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친아빠와는 사정이 있어서 연락을 끊고 지낸다.

이 이야기까지 하자면. 너무 길다. 끝까지 나를 믿어준 우리엄마.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 있는 그대로만을 봐주는 그 사람...

같이살면서도. 내내 불안했다. 혹시나. 싸우게 되면. 내 과거 예기를 꺼내진 안을까.괜히 예기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한번도 그런 예기를 꺼내지 안아서 너무 고마운 그 사람..

결혼 5개월이 조금 넘은 지금.. 동생은. 이제 3학년이다. 1년만 더있으면 졸업을 한다. 이제 얼마 안남았꾸나.. 조금만 더 참으면 노력하면된다.. 그리고 아버님 어버님.. 지금도 너무 잘해주신다.

너무 고마우신분들이다.

물론 아버님 어머님은 나의 과거사는 모르신다.그 사람이 그런건. 알려드리지 안아도 된다고.

그런건. 너도 나도..  다 지난 과거니. 아픈 과거는. 생각하지 말자고 해서. 말하지안았다.잘한것 같다.

이젠 엄마와도. 자주 통화를 한다. 아무렇치도 안케... 그게 부모님인가보다.

난 정말 불행한 사람인지. 아니면 정말 행복한 사람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주위엔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것은 알고있다.

우리 엄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신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울 신랑.

끝까지 믿고 날 따라와준 내 동생. 정말 다들 고맙고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그 사람을 더욱 더 사랑하며 잘 살께요.

난 지금 어느누구보다...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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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끝까지 읽어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평범을 거부했던 내 삶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