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예순한살의 그저 평범한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글을 올리는 것은 지난 4, 5년간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한을 여러분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하고자 합니다. 비록 저의 글이 어눌하고 딱딱하겠지만, 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밝혀져야 할 진실이 재력과 권력이라는 먹구름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이 늙은 애미의 작은 소망을 실어 이렇듯 글을 띄우니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69년 11월 24살의 나이로 그 당시 공군 중위였던 김유년이라는 사람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 2여년 동안 교제를 하면서 서로가 깊은 관계로 발전했고, 71년에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72년 6월경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하더니, 곧 결혼을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더군요. 저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후로도 저를 계속 만나면서 번번히 몸을 요구했고, 그러던 중 72년 9월경에 또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결혼한다고 말하고도 저를 계속 만났기에 결혼한다는 것이 거짓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죄를 짓고 싶지 않았기에 73년 6월에 혼자 아이를 낳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73년 7월에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 아이라도 입적시키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저를 완전히 모르는 미친년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사람의 아버님을 만나 그 동안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에 다시 만나 “내 아들이 자기는 책임질 일을 하지 않았다며 모른다고 하니 나는 아들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며 저에게 오천원짜리 3장을 쥐어 주면서 아기를 잘 키우라고 하시더군요. 그 무렵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이미 벌어진 상황은 수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아들이 6세 되던 해 그 사람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아이의 근황을 물어보며 저를 만나고 싶어했으나, 저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미 버림받고 그는 가정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운명인지 그 후 20년만에 아들이 대학 2학년인 여름방학 때 처음 아버지를 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 큰 아들이 나타나자 무척 놀라더군요. 그 후 자기 자식인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그는 두 달에 한번씩 용돈을 준다면서 50만원씩 3번을 부치더니 끝이더군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 뵌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항상 문전박대를 하시고 할아버지는 “정일권씨 아들같이 출세해서 법으로 하면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 우리 모자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아들은 대학원까지 무사히 마치고, 2000년 1월 군에 입대하게 되자 그의 친구가 간접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들이 집을 모르나 회사를 모르나 왜 남을 통해 연락을 하냐며 야단법석을 하며 난리를 치더니(주위 사람들이 그래도 군에 가는데 아버지한테는 알려야 한다고 해서 그의 친구가 자진해서 연락한 것임), 그해 7월 아들이 공군장교 임관식때 저희 몰래 와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아들이 대견해서였는지 그해 10월경 만나서 모든 것을 감싸 않을 테니 자기한테 잘하라고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는 모습도 알아보려고 집에도 다녀갔습니다. 그 후 아들도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뿌리가 중요한 것이라느니 하며 다시 우리 모자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같이 만나기도 하고, 부인에게 초상집에 간다고 거짓말도 해가며 저와 같이 군에 있는 아들에게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친자확인이라도해서 그 동안 너에게 못한 애비노릇도 하고 싶은데, 자기 처가 말린다며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 아들을 만나 음식점이나 노래방, 그리고 유원지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시켰고, 항상 괴로워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본인이 아무리 혼외자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대로 법으로라도 꼭 그 집 호적에 올라 어머니의 가슴 아픈 한을 풀어드리고, 잃어버린 나의 뿌리도 찾겠다는 일념에 지난 2002년 3월 29일자 인지청구소송을 하여 유전자 감정을 의뢰(법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母子에게 통탄할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아파 낳은 아들임을 하늘도 알고, 모든 신들도 알 터인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게도 진실과 양심으로 살아야할 법의학 교수라는 사람이 비양심과 비도덕으로 뼈아픈 삶을 살아온 저의 母子를 더욱 고통의 구덩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에 저는 유전자 감정을 시행한 서울의대 법의학 교실의 책임자인 이정빈 교수의 비양심적인 행동을 국민 앞에 절규하며 고발합니다. 유전자 조작은 분명히 범죄 행위입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진실조차도 밝혀 낼 수 없다는 현실에 더욱 피눈물이 납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4~5년이란 세월동안 뼈를 녹이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없이 많은 민원, 고소, 고발을 하였으나, 이 일을 해결해 줄 국가(검찰, 경찰)는 한번도 조사해주지 않고 힘없는 아녀자로 무시하고 경찰은 공갈협박과 회유로 비아냥거렸습니다. 유전자 감식을 담당했던 이정빈 교수에게 유전자 감식에 부당함과 진실을 밝힐 것을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두 번이나 면담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면식이 없다고 했으며, 또한 공인의 입장이라 묵과하지만 계속 이럴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계속 진정, 고소, 고발 하였으나 묵묵부답이었음.) 공인이면 더욱더 투명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권을 가진 국가에서(검,경) 이 사건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사관님들 무엇이 그리 힘들고 두려우신가요?)
국민 여러분! 친자를 돈 주고 버리는 애비와 이에 동참한 서울대학교 법의학 교실 이정빈 박사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고 흐르는 물 막아봤자 넘치면 또 흐를 것입니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이 엄청난 사실을 저 아닌 제3, 제4의 피해자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목숨 걸고 나섰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세요!!
혹시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로 피해보신 분 없나요?ㅜㅜ
혹시나 친자확인 검사로 피해보신분은 없나요...?
아래는 요약본이고-보다 장황하지만 혹시나
도움이 될 만한 사항 아시는분 답글 부탁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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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의 한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저는 올해 예순한살의 그저 평범한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늦은 나이에 글을 올리는 것은 지난 4, 5년간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한을 여러분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하고자 합니다.
비록 저의 글이 어눌하고 딱딱하겠지만, 법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밝혀져야 할 진실이 재력과 권력이라는 먹구름으로 가려지지 않도록 이 늙은 애미의 작은 소망을 실어 이렇듯 글을 띄우니 끝까지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1969년 11월 24살의 나이로 그 당시 공군 중위였던 김유년이라는 사람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과 2여년 동안 교제를 하면서 서로가 깊은 관계로 발전했고, 71년에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지 못하고 지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72년 6월경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하더니, 곧 결혼을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더군요. 저는 너무 어처구니없고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라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후로도 저를 계속 만나면서 번번히 몸을 요구했고, 그러던 중 72년 9월경에 또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결혼한다고 말하고도 저를 계속 만났기에 결혼한다는 것이 거짓이라 믿었습니다.)
저는 또다시 죄를 짓고 싶지 않았기에 73년 6월에 혼자 아이를 낳고,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73년 7월에 결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만나 아이라도 입적시키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저를 완전히 모르는 미친년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사람의 아버님을 만나 그 동안의 모든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며칠 후에 다시 만나 “내 아들이 자기는 책임질 일을 하지 않았다며 모른다고 하니 나는 아들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며 저에게 오천원짜리 3장을 쥐어 주면서 아기를 잘 키우라고 하시더군요.
그 무렵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이미 벌어진 상황은 수습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아들이 6세 되던 해 그 사람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와서 아이의 근황을 물어보며 저를 만나고 싶어했으나, 저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미 버림받고 그는 가정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운명인지 그 후 20년만에 아들이 대학 2학년인 여름방학 때 처음 아버지를 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 큰 아들이 나타나자 무척 놀라더군요.
그 후 자기 자식인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그는 두 달에 한번씩 용돈을 준다면서 50만원씩 3번을 부치더니 끝이더군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 뵌 적이 있는데, 할머니는 항상 문전박대를 하시고 할아버지는 “정일권씨 아들같이 출세해서 법으로 하면 받아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후 우리 모자는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아들은 대학원까지 무사히 마치고, 2000년 1월 군에 입대하게 되자 그의 친구가 간접적으로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자기들이 집을 모르나 회사를 모르나 왜 남을 통해 연락을 하냐며 야단법석을 하며 난리를 치더니(주위 사람들이 그래도 군에 가는데 아버지한테는 알려야 한다고 해서 그의 친구가 자진해서 연락한 것임), 그해 7월 아들이 공군장교 임관식때 저희 몰래 와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아들이 대견해서였는지 그해 10월경 만나서 모든 것을 감싸 않을 테니 자기한테 잘하라고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는 모습도 알아보려고 집에도 다녀갔습니다. 그 후 아들도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뿌리가 중요한 것이라느니 하며 다시 우리 모자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같이 만나기도 하고, 부인에게 초상집에 간다고 거짓말도 해가며 저와 같이 군에 있는 아들에게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먼저 친자확인이라도해서 그 동안 너에게 못한 애비노릇도 하고 싶은데, 자기 처가 말린다며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는 계속 아들을 만나 음식점이나 노래방, 그리고 유원지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시켰고, 항상 괴로워했습니다.
그 후 아들은 본인이 아무리 혼외자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대로 법으로라도 꼭 그 집 호적에 올라 어머니의 가슴 아픈 한을 풀어드리고, 잃어버린 나의 뿌리도 찾겠다는 일념에 지난 2002년 3월 29일자 인지청구소송을 하여 유전자 감정을 의뢰(법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母子에게 통탄할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배아파 낳은 아들임을 하늘도 알고, 모든 신들도 알 터인데,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게도 진실과 양심으로 살아야할 법의학 교수라는 사람이 비양심과 비도덕으로 뼈아픈 삶을 살아온 저의 母子를 더욱 고통의 구덩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에 저는 유전자 감정을 시행한 서울의대 법의학 교실의 책임자인 이정빈 교수의 비양심적인 행동을 국민 앞에 절규하며 고발합니다. 유전자 조작은 분명히 범죄 행위입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진실조차도 밝혀 낼 수 없다는 현실에 더욱 피눈물이 납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4~5년이란 세월동안 뼈를 녹이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없이 많은 민원, 고소, 고발을 하였으나, 이 일을 해결해 줄 국가(검찰, 경찰)는 한번도 조사해주지 않고 힘없는 아녀자로 무시하고 경찰은 공갈협박과 회유로 비아냥거렸습니다.
유전자 감식을 담당했던 이정빈 교수에게 유전자 감식에 부당함과 진실을 밝힐 것을 내용으로 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두 번이나 면담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면식이 없다고 했으며, 또한 공인의 입장이라 묵과하지만 계속 이럴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계속 진정, 고소, 고발 하였으나 묵묵부답이었음.)
공인이면 더욱더 투명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법권을 가진 국가에서(검,경) 이 사건을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사관님들 무엇이 그리 힘들고 두려우신가요?)
국민 여러분! 친자를 돈 주고 버리는 애비와 이에 동참한 서울대학교 법의학 교실 이정빈 박사에게 진실을 밝힐 것을 촉구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리고 흐르는 물 막아봤자 넘치면 또 흐를 것입니다. 언젠가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이 엄청난 사실을 저 아닌 제3, 제4의 피해자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목숨 걸고 나섰습니다. 저에게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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