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면서 정기간행물 열람실에서 영화잡지 <스크린>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보기로 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를 거절한 이유가 자신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는 대목에서 으음, 하고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구체적으로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서 가졌던 그 무엇이 가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 감독직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쉰들러 리스트>라는 한 편의 영화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고요. 들국화의 전인권 씨에 관한 일화도 생각나는군요. 콘서트 장에서 청중들이 김광석 씨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달라고 하자 전인권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노래는 너무 슬퍼서 부르지 못하겠다고.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수원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가 보여주겠다고 해서 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갈등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자연스럽게 다른 영화를 보자고 할까,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고요. 유태인 학살에 관한 <피아니스트>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도 별로였고, 그런 이야기로 빈 가슴을 채우기에는 내 앞에 놓인 길이나,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그렇게 낭만적이지가 않아서요. 누구나 대부분 그러하듯 나 역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버렸고, 돈을 벌어야 하는 위치에 섰으며, 그런 위기감이 닥칠수록 사정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유태인의 학살은 충분히 학습 받았다는 생각이었고, 굳이 그걸 시간 내서 봐서 한 번 더 학습 받고 싶단 생각도 별로였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조심해서 모는 차를 타고 분당 씨지브이로 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경기도 대부분 지역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노무현이 이겼는데 일산과 분당 신도시에서는 이회창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그런 설명을 그래픽으로 보여줄 때 두 지역만이 섬처럼 다른 색으로 채워진 것이 참 이채로웠습니 다. 서울 안에서는 서초구와 강남구가 그랬고요. 친구가 미리 언질을 하긴 했지만, 분당 씨지브이는 광고를 굉장히 길게 했습니다. 유태인 학살에 관한 영화를 또 봐야 하는 것도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그 광고들을 또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은 사람처럼 봐야 했습니다. 손에 리모콘이 없어서 그냥 봐야 했습니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습니다. 어떤 영화들은 일부러 엽기적인 장면을 담아 장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불편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숱한 헐리웃 액션 영화나 한국 조폭 영화에 길들여져 폭력이라면 팝콘을 오물거리면서 볼 수 있는 정서가 됐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치 나 자신이 독일군이 된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유태인을 학살했던 그들이 너무나 친숙하게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나 자신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었고요.
생명을 죽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서는 아마도 우월적 감정 고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적어도 돼지보다는 우월하기 때문에 삼겹살을 먹고 돈까스를 먹고 족발을 먹고 순대국을 먹는다는. 유태인들은 영화 안에서 딱 한 번 싸웁니다. 그 한 번의 싸움을 제외하고 유태인들은 조용히, 마치 명령에 복종을 하듯이 학살당합니다. 강제수용소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광장에서 세 노인이 나누는 대화도 그렇습니다. 한 노인은 어차피 죽을 거 싸우자고 하지만 두 노인은 이 많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나도 상당히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학살 앞에서 복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분명 아무런 도움도 되지는 않는다는, 막연한 생각만 해봤습니다. 영화 안에서 유태인은 무참하게 살해당합니다. 독일군이 유태인을 죽이는 데에는 별 다른 이유가 필요 없었습니다. 줄을 세워놓고 너, 너, 너, 너 앞으로 나와, 해서는 땅바닥에 엎드리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면 유태인들은 그렇게 합니다.
독일군은 그들 뒤통수에 총알을 박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을 쏠 때는 총알이 다 떨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여유 있게 탄창을 갈아 끼웁니다. 유태인은 그때도 그냥 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머리에도 어김없이 총구멍이 납니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는 건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총소리가 이렇게 공포를 수반하며 들린 영화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저 마지막 사람이라고 치자. 나도 저렇게 누워서 총알이 머리에 박힐 때까지 기다리게 될까. 저게, 생명이란 걸까. 저게, 아직 죽지 않은 그 무엇이란 걸까. 반대로 독일군은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추려낸 사람을 한 줄로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쏴죽일 때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었을까. 저것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상인의 정신 구조로 가능한 살해 행위일까. 저 군인은 저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 식당에 가서 동료들과 전쟁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미치지 않고, 돌지 않고? 우월의식에 고취된 상태라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월한 인간의 입장에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듯이, 유태인을 유쾌하게 죽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가 바뀌는 어느 밤, 유태인들이 강제노동을 끝내고 숙소로 귀가하는데 한 독일군 장교가 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릅니다. 유태인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벽에 기댄 채 그냥 맞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그 유태인 무리에서 주인공을 끄집어내 묻습니다. 내가 왜 때리는지 알아? 나도 유태인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뭔가 들통 난 게 아닌가. 왜냐하면 그때 유태인들은 영화에 있었던 단 한 번의 저항을 위해 모종의 작전을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주인공이 겁에 질린 채 모른다고 대답하자 독일군 장교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새해잖아.
히틀러의 만행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폭력 성향으로 보였습니다. 이건 독일군이 유태인에게 저지른 짓이 아니라 우월적 사고에 고취된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권력을 취한 자가 권력을 상실한 자를 상대로 저지른 폭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유태인 학살이 아닌, 인간의 인간 학살에 관한.
그런 인간은 1900년대의 독일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런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르는 걸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교사도 결국은 그런 상황 안에서 폭력을 저지르지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은 새해라는 이유로 채찍을 휘두르는 독일군 장교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졸업장 하나를 타기 위해 그러한 폭력 앞에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내 그렇게 맞고만 있어야 했던,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실마리를 가질 수 없었던 내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나 역시 그런 질서에 하도 시달려서 군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가서 다시 졸병이 되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생활을 정상적인 사고로 견뎌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역특례업체에서 군 생활을 대신했습니다. 이 영화적 상황으로 치자면 독일군을 상대로 총을 들고 싸운 게 아니라 독일군이 지정한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타협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 사태에 투입된 군인들이 숱한 사람들을 죽였건만 여전히 군대는 그런 군인들을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그런 폭력에 시달린 한국 사회이니 외국인 노동자들로 하여금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을 “제발 때리지 마세요” 로 하게 만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값 같기도 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그토록 무고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 하건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 몇 푼으로 군대에 안 간 자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군대에 간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새해라는 이유만으로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조직 안에서 국가를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투경찰은 시위대에게 폭력을 가하지만, 그들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부대로 복귀하면 또 다시 폭력의 굴레에 발을 올려놓고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주인공이 마치 꿈과 같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의 감독직을 거부한 이유를 보다 다른 정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유태인이었고, 유년기에 그런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에게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권력만 주어지면 마치 봄볕을 받은 씨앗처럼 싹이 트고 마는 폭력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런 모습을 필름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점점 더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두드립니다.내 안에 있는 불편함도 점점 극에 달해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다음 장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피아노의 오른쪽에 벽에 기대 서 있었습니다.
스크린은 주인공의 오른쪽에 여백을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독일군 장교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반 위에, 주인공이 격정적으로 두드리던 건반 위에, 주인공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던 뇌수가 붉은 빛으로 쏟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날 거라는 생각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극장 안에서는 달리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봐야 합니다.
주인공이 아직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의 공포를 견디던 시절, 오밤중에 건너편 건물에 독일군 병사 한 무리가 들이닥칩니다. 독일군 군화 소리를 들은 건물은 하나 둘 불을 꺼 다 자는 척을 합니다. 그러다 한 가정의 불이 켜집니다. 그들 가정은 온 가족이 모여 만찬 중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가족들과 함께 불안한 눈으로 건너편 건물에서 벌어지는 그 광경을 지켜봅니다. 독일군 중 하나가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가족들이 미적미적 일어나는데 한 노인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독일군이 한 번 더 소리 질렀는데도 노인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독일군 두 사람이 노인의 양팔을 잡고 둥그렇게 앞으로 돌출된 난간으로 끌고 나옵니다.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습니다. 난간은 4층 높이였습니다. 독일군은 휠체어 탄 노인을 그냥 집어던집니다.
언젠가 시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에 관한 시사 문제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머무르는 집이 지난여름 수해로 기반이 약해져 철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새 집 마련할 돈도 없어서 공무원이 임시변통으로 마련해준 축사를 개조한 숙소에 지내게 됐습니다. 축사를 위해 만든 건물이었고, 실제로 축사로 이용했다가 사용을 중지한 건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인근 주민이 그 행정 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장애인들이 그 건물에 사는 걸 반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는, 장애인들이 근처에 살면 땅값이 떨어져서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한 인근 주민은 막 화를 내면서 차라리 원래 축사의 용도대로 짐승을 키우라고 소릴 질렀습니다. 그리고 한 장애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냥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마냥 그냥 봐야만 합니다. 두 소녀가 장갑차에 깔려 죽어도 그냥 봐야만 합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러도 그냥 봐야만 하고, 이라크 시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러도 그냥 봐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염치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그러한 삶의 궤적이
산 것인지, 살아남은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늙어서 스스로 돌아본다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피아니스트> 사는 것과 살아남는 것
도서관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를 기다리면서 정기간행물 열람실에서 영화잡지 <스크린>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보기로 한 <피아니스트>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를 거절한 이유가 자신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였다는 대목에서 으음, 하고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었습니다.
그게 구체적으로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쉰들러 리스트>를 보면서 가졌던 그 무엇이 가짜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 감독직을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쉰들러 리스트>라는 한 편의 영화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온 것 같기도 하고요.
들국화의 전인권 씨에 관한 일화도 생각나는군요. 콘서트 장에서 청중들이 김광석 씨가 다시 불러 유명해진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달라고 하자 전인권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노래는 너무 슬퍼서 부르지 못하겠다고.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친구와 나는 수원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친구가 보여주겠다고 해서 보기로 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갈등하고 있었어요.
어떻게 자연스럽게 다른 영화를 보자고 할까, 하는 생각도 없잖아 있었고요.
유태인 학살에 관한 <피아니스트>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쉰들러 리스트>도 별로였고, 그런 이야기로 빈 가슴을 채우기에는 내 앞에 놓인 길이나,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그렇게 낭만적이지가 않아서요.
누구나 대부분 그러하듯 나 역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버렸고, 돈을 벌어야 하는 위치에 섰으며, 그런 위기감이 닥칠수록 사정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으니까요.
유태인의 학살은 충분히 학습 받았다는 생각이었고, 굳이 그걸 시간 내서 봐서 한 번 더 학습 받고 싶단 생각도 별로였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조심해서 모는 차를 타고 분당 씨지브이로 갔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경기도 대부분 지역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노무현이 이겼는데 일산과 분당 신도시에서는 이회창이 이겼다는 것입니다.
방송국에서 그런 설명을 그래픽으로 보여줄 때 두 지역만이 섬처럼 다른 색으로 채워진 것이 참 이채로웠습니
다.
서울 안에서는 서초구와 강남구가 그랬고요.
친구가 미리 언질을 하긴 했지만, 분당 씨지브이는 광고를 굉장히 길게 했습니다.
유태인 학살에 관한 영화를 또 봐야 하는 것도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지겹도록 보았던 그 광고들을 또 다시 텔레비전 앞에 앉은 사람처럼 봐야 했습니다. 손에 리모콘이 없어서 그냥 봐야 했습니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습니다.
어떤 영화들은 일부러 엽기적인 장면을 담아 장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것과는 다른 종류의 불편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숱한 헐리웃 액션 영화나 한국 조폭 영화에 길들여져 폭력이라면 팝콘을 오물거리면서 볼 수 있는 정서가 됐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는데도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치 나 자신이 독일군이 된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유태인을 학살했던 그들이 너무나 친숙하게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나 자신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었고요.
생명을 죽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서는 아마도 우월적 감정 고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적어도 돼지보다는 우월하기 때문에 삼겹살을 먹고 돈까스를 먹고 족발을 먹고 순대국을 먹는다는.
유태인들은 영화 안에서 딱 한 번 싸웁니다. 그 한 번의 싸움을 제외하고 유태인들은 조용히, 마치 명령에 복종을 하듯이 학살당합니다.
강제수용소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광장에서 세 노인이 나누는 대화도 그렇습니다.
한 노인은 어차피 죽을 거 싸우자고 하지만 두 노인은 이 많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그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나도 상당히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학살 앞에서 복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분명 아무런 도움도 되지는 않는다는, 막연한 생각만 해봤습니다.
영화 안에서 유태인은 무참하게 살해당합니다.
독일군이 유태인을 죽이는 데에는 별 다른 이유가 필요 없었습니다.
줄을 세워놓고 너, 너, 너, 너 앞으로 나와, 해서는 땅바닥에 엎드리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면 유태인들은 그렇게 합니다.
독일군은 그들 뒤통수에 총알을 박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을 쏠 때는 총알이 다 떨어졌습니다.
독일군은 여유 있게 탄창을 갈아 끼웁니다.
유태인은 그때도 그냥 바닥에 엎드려 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의 머리에도 어김없이 총구멍이 납니다.
그런 장면을 지켜보는 건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총소리가 이렇게 공포를 수반하며 들린 영화도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저 마지막 사람이라고 치자.
나도 저렇게 누워서 총알이 머리에 박힐 때까지 기다리게 될까.
저게, 생명이란 걸까.
저게, 아직 죽지 않은 그 무엇이란 걸까.
반대로 독일군은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추려낸 사람을 한 줄로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쏴죽일 때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었을까.
저것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상인의 정신 구조로 가능한 살해 행위일까.
저 군인은 저렇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여 놓고 식당에 가서 동료들과 전쟁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할 수 있을까.
미치지 않고, 돌지 않고?
우월의식에 고취된 상태라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월한 인간의 입장에서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듯이, 유태인을 유쾌하게 죽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가 바뀌는 어느 밤, 유태인들이 강제노동을 끝내고 숙소로 귀가하는데 한 독일군 장교가 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릅니다.
유태인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벽에 기댄 채 그냥 맞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그 유태인 무리에서 주인공을 끄집어내 묻습니다.
내가 왜 때리는지 알아?
나도 유태인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뭔가 들통 난 게 아닌가.
왜냐하면 그때 유태인들은 영화에 있었던 단 한 번의 저항을 위해 모종의 작전을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주인공이 겁에 질린 채 모른다고 대답하자 독일군 장교가 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새해잖아.
히틀러의 만행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폭력 성향으로 보였습니다.
이건 독일군이 유태인에게 저지른 짓이 아니라 우월적 사고에 고취된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권력을 취한 자가 권력을 상실한 자를 상대로 저지른 폭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유태인 학살이 아닌, 인간의 인간 학살에 관한.
그런 인간은 1900년대의 독일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런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상대로 폭력을 저지르는 걸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교사도 결국은 그런 상황 안에서 폭력을 저지르지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은 새해라는 이유로 채찍을 휘두르는 독일군 장교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졸업장 하나를 타기 위해 그러한 폭력 앞에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내 그렇게 맞고만 있어야 했던,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실마리를 가질 수 없었던 내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나 역시 그런 질서에 하도 시달려서 군대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군대에 가서 다시 졸병이 되어 위에서 까라면 까야 하는 생활을 정상적인 사고로 견뎌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병역특례업체에서 군 생활을 대신했습니다.
이 영화적 상황으로 치자면 독일군을 상대로 총을 들고 싸운 게 아니라 독일군이 지정한 공장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타협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주 사태에 투입된 군인들이 숱한 사람들을 죽였건만 여전히 군대는 그런 군인들을 양산해내고 있습니다.
그런 폭력에 시달린 한국 사회이니 외국인 노동자들로 하여금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을 “제발 때리지 마세요” 로 하게 만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값 같기도 합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그토록 무고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려 하건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돈 몇 푼으로 군대에 안 간 자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살고 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군대에 간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새해라는 이유만으로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조직 안에서 국가를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투경찰은 시위대에게 폭력을 가하지만, 그들도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부대로 복귀하면 또 다시 폭력의 굴레에 발을 올려놓고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주인공이 마치 꿈과 같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나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쉰들러 리스트>의 감독직을 거부한 이유를 보다 다른 정서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유태인이었고, 유년기에 그런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았던 이유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에게 있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권력만 주어지면 마치 봄볕을 받은 씨앗처럼 싹이 트고 마는 폭력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런 모습을 필름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점점 더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두드립니다.내 안에 있는 불편함도 점점 극에 달해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다음 장면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피아노의 오른쪽에 벽에 기대 서 있었습니다.
스크린은 주인공의 오른쪽에 여백을 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독일군 장교가 총을 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건반 위에, 주인공이 격정적으로 두드리던 건반 위에, 주인공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던 뇌수가 붉은 빛으로 쏟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영화가 끝날 거라는 생각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극장 안에서는 달리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봐야 합니다.
주인공이 아직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의 공포를 견디던 시절, 오밤중에 건너편 건물에 독일군 병사 한 무리가 들이닥칩니다.
독일군 군화 소리를 들은 건물은 하나 둘 불을 꺼 다 자는 척을 합니다.
그러다 한 가정의 불이 켜집니다.
그들 가정은 온 가족이 모여 만찬 중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가족들과 함께 불안한 눈으로 건너편 건물에서 벌어지는 그 광경을 지켜봅니다.
독일군 중 하나가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가족들이 미적미적 일어나는데 한 노인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독일군이 한 번 더 소리 질렀는데도 노인은 일어나지 못합니다.
독일군 두 사람이 노인의 양팔을 잡고 둥그렇게 앞으로 돌출된 난간으로 끌고 나옵니다.
노인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습니다.
난간은 4층 높이였습니다.
독일군은 휠체어 탄 노인을 그냥 집어던집니다.
언젠가 시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에 관한 시사 문제를 시청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이 집단으로 머무르는 집이 지난여름 수해로 기반이 약해져 철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은 새 집 마련할 돈도 없어서 공무원이 임시변통으로 마련해준 축사를 개조한 숙소에 지내게 됐습니다.
축사를 위해 만든 건물이었고, 실제로 축사로 이용했다가 사용을 중지한 건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인근 주민이 그 행정 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장애인들이 그 건물에 사는 걸 반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유는, 장애인들이 근처에 살면 땅값이 떨어져서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한 인근 주민은 막 화를 내면서 차라리 원래 축사의 용도대로 짐승을 키우라고 소릴 질렀습니다.
그리고 한 장애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냥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는 마냥 그냥 봐야만 합니다.
두 소녀가 장갑차에 깔려 죽어도 그냥 봐야만 합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러도 그냥 봐야만 하고, 이라크 시민들을 상대로 학살을 저질러도 그냥 봐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염치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그러한 삶의 궤적이
산 것인지, 살아남은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늙어서 스스로 돌아본다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클릭, 다른 오늘의 talk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