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의 역사적 허구성

교독기2006.05.28
조회1,648

 

 

돌아온 탕자님...

 

탕자님은 신(하느님, 하나님, 하늘님)과 예수와 성령을 동일시하는

 

삼위일체론에 입각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로마시대에 카톨릭에 의해 만들어진 교리입니다..

 

다음의 글이 좀 길지만 천천히 음미해보십시오.

 

죽 읽어보시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하시겠지요..?

 

그러나 삼위일체가 거짓이라면 기독교는 성립될 수 없기에

 

성경적으로 해석한 글을 올립니다..

 

물론 조작된 성경을 가지고 조작된 삼위일체론을

 

변증했으니 조작으로 조작을 밝힌 이이제이 수법이긴 합니다만..

 

 

 

****

 

삼위일체설의 역사적 실체

삼위일체설...

그것에 대해 고찰해 보기 위해서, 우선 그 역사적인 상황에 대해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생전의 예수는 자신을 여호와와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초기 교회에서는 신과 예수를 동일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삼위일체설이란 종교를 정치에 이용해 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날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콘스탄티누스 가 주재한 '니케아 1차 종교회의 참조' <--- 

콘스탄티누스때엔 당시 로마에서 스스로 황제라 지칭하는 사람이 6명이나 되었다고하는,혼란의 시기였다고 한다.

로마의 황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식의 강력한 황제가 아니라, 황제는 프리켑스(princeps=제 1의시민)또는 가이사(caesar)이라 불렸으며, 민주주의와 다신교를 숭배하는 로마인의 자유로운 사상때문에 시이저마저도 황제가 되려다가 공화파에게 로마시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암살 당하는기까지 했으며, 그의 양아들 옥타비우스는 황제라는 명칭을 포기하고 프리켑스라는 명칭을 썼다.

[옥타비우스는 그 명칭보다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존엄한자)라는 명칭을 들었음]

그후 폭군으로 알려진 칼리귤라(=가이우스)와 네로황제가 암살당한후,군인황제시대 서기69년에는 한해동안 무려4명의 황제가 등장하기도 했었을 만큼 황제의 권위와 권력세습체계가 미약했으며, 누구든 힘있는 자가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6명의 황제 중에 프랑스와 브리튼의 로마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 부제는 마지막 라이벌인 막센티우스를 쓰러뜨린 후 유일한 황제가 되긴 했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경쟁자가 나올 것을 막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던 것이다.

우선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의 자유로운 사상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미트라 종교의 수명이 다했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 동안 핍박했던 크리스트교를 서기312년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며,후임황제에게 유언으로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명했고 392년에 크리스트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었다.

한편 크리스트교는 박해를 받았던 서기 320년무렵까지는 예수의 신성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인성을 위주로 예수를 파악하는 초대교회가 아리우스와 그의 제자 세쿰을 중심으로 지하에서 로마제국에 투쟁했었다.


삼위일체설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확립하기위해 서기325년 콘스탄티누스가 개최한 [니케아]종교회의(=니케아 공의회)에서 아타나시우스라는 자가 최초로 주장하였는데, 그는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아첨하여 그(콘스탄티누스)를 신과 인간의 사이를 중개하는 교황이라 추대하여 아첨을 떨었던 것이다.

신성을 여호와만이 가질 수 있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등장한 이 이론은,

교황으로서의 로마황제는 신의 대리인으로 추앙받고 무오류(로마황제의 행동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별의별 아첨이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의 법칙도 이때 확립되었다.


삼위일체설은..

당시 정통의 아리우스파들조차도 부정했는데, 이유는 예수가 스스로를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늘 말했으며,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와 여호와와 일치한다는 말이 없었다.

즉, 예수=여호와=성령이라는 공식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 당시 그들의 반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제의 권력을 등에 업은 아타나시우스파는 그들의 삼위일체설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는 극소수 예수제자들의 이론을 마치 예수 자신의 입장인 것처럼 떠벌렸다.   

결국 삼위일체설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투표'로 결정났다.
기독교의 진리는 결국 '투표'로 정해진 것이다.  
종교란 승자의 정신적 먹이이다.

그 로마황제에 대한 아첨꾼들이 두 번 다시 아리우스의 정통파가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는 적그리스도파라고 못을 박아버렸고 이는 아리우스파를 결국 박해와 순교에 소멸되도록 만들어 버린다.

--->초기 교회에서는 '아타나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가 분리되어
예수를 신과 동일시 하는 내용과 예수는 신이 아니다는 내용으로
의견을 통합하지 못하였는바, 1차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삼위일체'가 투표로서 예수의 신권을 인정한 후 '아리우스파'의 몰락으로 자연스럽게 초기교회가 로마교회로 통일 되면서 "예수는 신이다"라는 명제하에 삼위일체론이 만들어 진 것이다. <--- 


크리스트교 공인과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나온 삼위일체설, 그것은 종교를 정치에 이용해 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고도의 정치전략 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정통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북한의[우리식 사회주의]처럼, [삼위일체설]도 당시의 기독교인들로부터도 외면받은 정치적인 논리였던 것이다.(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격이다) 


삼위일체 교리의 기원은 무엇인가?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백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쉬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신명기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 ... 4세기 말에 이르러 ... 삼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 후 그대로 유지되었다." - (1976년판), 마이크로패디아, 제 10권, 126면.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알려 준다. "유대교에서 나온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엄격히 (여호와는 한분의 인격체라고 믿는) 유일신파였다.

예루살렘에서 니케아에 이른 길은 거의 곧은 길이 아니었다. 제 4세기의 삼위일체론은 여호와의 본성에 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 (1956년 판)), 제 27권, 294면 좌단.

예수회의 죤 L.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서 사전」(dictionary of the Bible)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위격들의 본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는 희랍 철학 용어인 '위'와 '본성'이란 용어로 정의된다. 사실상 그 용어들은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위일체의 정의는 일부 신학자들이 그러한 용어들과 '본질' 및 '품성'과 같은 다른 용어들을 여호와에게 그릇되게 적용한 오랜 논쟁의 결과로 생겨났다." - (뉴욕, 1965년 판), 899면.

성서는 "'성령'이 한 위"라고 가르치는가?

성령을 언급하는 몇몇 성구들은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성령이 '가르치고','증거하고','말하고','듣는' 보혜사(희랍어, 파라클레토스; "돕는자", 신세 ; "협조자", 공동)로 언급되어 있다. (요한 14:16,17,26 ; 15:26 ; 16:13)

그러나 다른 성구들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성령으로'[침례]를 받'거나 '기름부음 받'았음을 알려준다. (누가 1:41 ; 마태 3:11 ; 사도 10:38)

성령에 대한 후자의 언급은 명백히 인격체에 적합하지 않다.

성경에서는 아버지의 고유한 이름이 여호와라고 알려 준다.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라고 알려 준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에 대한 어떤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사도 행전 7:55,56에서는 스데반이 "예수께서 여호와의 우편에 서신" 하늘의 환상을 보았다고 알려 준다.
그러나 그는 성령을 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또한 계시록 7:10 ; 22:1,3 참조.)

「신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처럼 인정한다.

"신약의 대부분의 성구들은 여호와의 영을 어떤 인물이 아니라, 어떤 것으로 나타낸다.

특히 그 사실을 여호와의 영과 여호와의 능력이 대응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1967년 판, 제 13권, 575면) 그 사전은 또한 이와 같이
알려 준다.

"호교론자들(제 2세기 희랍의 그리스도인 필자들)은 그 영에 대하여 아주 모호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아주 비인격체로 말했을 것이라고도 상당히 기대할 수 있다." - 제 14권, 296면.

 

성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분리된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자들의 견해와 일치한가?

"[예수께서]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더라.]" [마태 26:39] (아버지와 아들이 별개의 개체가 아니라면, 그러한 기도는 의미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는 자신에게 기도하였을 것이며, 자기의 뜻이 당연히 아버지의 뜻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요한 8:17,18]

예수는 자신이 아버지와 분리된 별개의 개체임을 명백히 말했다.


 성서는 삼위일체에 속했다는 모든 위가 영원하며,
아무도 시작이 없다고 가르치는가?

" 그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있는 것들이라.]" [골로새서 1:15,16]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모든 창조물보다 [중에서, 신세] 먼저 나신 자"인가?

(1) 삼위일체론자들은 "먼저 나신"이란 말은 으뜸가는, 가장 뛰어난, 가장 탁월한 이란 뜻이며, 따라서 그리스도는 창조물의 일부가 아니라 창조물과 관련하여 가장 탁월한 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사실이 그렇다면, 또한 삼위일체 교리가 사실이라면, 아버지와 성령 역시 모든 창조물 중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나 성서는 아들에게만 이 표현을 사용한다.

"먼저 나신"이란 말의 통상적인 의미로 보면, 예수께서 여호와의 아들들로 이루어진 가족 중에서 장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2) 골로새서 1:15 이전에, '...의 먼저[처음] 난 자[것]' 혹은 "장자"란 표현이 약 30회 이상 나오며, 그 말이 생물에게 적용된 경우에는 매번 같은 의미가 적용된다.

즉 먼저 난 자[것]는 그 집단에 속한다.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스라엘의 아들들 중 한사람이며, "바로의 장자"는 바로의 가족 중 한 사람이고, "생축의 처음 난 것"은 그 짐승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골로새서 1:15에 나오는 그 말에 다른 의미를 적용하는가? 그것은 성서의 용법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이미 고수하고 있고 증거를 찾고자 하는 신앙에 기인한 것인가?

(3) 골로새서 1:16,17에서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말씀은 예수를 창조물에서 제외시키는가? 여기서 "만물"로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파스의 변형인 판타이다.

누가 13:2의 경우에 「새」에서는 그 단어를 "다른 모든"으로 번역하였다. ("다른 모든", 「공동」) (또한 누가 21:29을 「공동」으로, 또한 빌립보서 2:21을 「예루살렘」으로 보라.) 성서에서 아들에 관하여 가르치는 그밖의 모든 점과 일치하게, 「신세」에서는 골로새서 1:16,17에 나오는 판타에서도 같은 의미를 적용하며, 그 일부분을 인용하면 이와 같다.

"다른 모든 것들[이] ... 그분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그분은 하나의 창조물이며, 여호와께서 만드신 창조물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여호와가 그에게 주[신 것이라.]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여호와의 창조의 근본[희랍어, 아르케 ; 시작, 공동]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시 1:1 ; 3:14]

그러한 번역은 정확한가? 일부 사람들은 아들은 '하느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었으며, 창조의 '근원'이었음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취한다.

그러나 리델과 스코트 공편 「희영 사전」(Greek-English Lexicon)은 "시작"을 아르케의 첫 번째 의미로 열기한다. (옥스포드, 1968년 판, 252면)

논리적인 결론은 계시록 3:14에 언급된 분은 여호와의 첫 번째 창조물인 하나의 창조물이며, 그에게는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잠언 8:22과 비교해 보면, 많은 성서 주석자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그 아들은 의인화된 지혜로 일컬어진다.

「공동」에서는 거기에 나오는 말하는 자가 '지음을 받았다'고 알려 준다. 미가 5:2에서는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적으로,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알려 준다.

그 사실은 그분이 여호와와 동일한 분이 되게 하는가?

그 성구에서 "태초"라고 하였음에 유의할 만하다. 「공동」은 그 말을 "까마득한 옛날"로, 「신세」는 "정해지지 않은 때의 날"로 번역하였다. 위에서 논의된, 계시록 3:14에 비추어 생각하면, 미가 5:2은 예수가 시작이 없었음을 증명하지 못한다.

 

성서는 삼위일체의 개개의 구성원은
아무도 상대방보다 크거나 작지 않으며, 모두가 동등하며,
모두가 전능하다고 가르치는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 13:32]

(몰론, 아버지, 아들 및 성령이 동등하며, 하나의 여호와를 구성한다면,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일부 사람들이 넌지시 말하는 것처럼, 아들이 인간 본성으로 인해 아는 면에서 제한을 받았다면, 여전히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성령이 알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 예수께 ...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나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태 20:20-23]

(만일, 주장대로, 예수가 여호와라면 얼마나 이상한가?
여기의 예수는 단지 "인간의 본성"에 따라 대답하셨는가?
삼위일체론자들의 말처럼, 만일 예수께서 과연 이편도 저편도 아닌, 신이면서 인간 즉 신인이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설명을 하는 것이
과연 모순이 없을 것인가?

마태 20:23은 오히려 아들이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으며, 아버지께서 혼자서 얼마의 특권들을 보유하셨음을 알려주지 않는가?)

"사람의 모든 좌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 12:31,32]

(만일 성령이 인격체이며 신이라면, 이 성구와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모순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어떤 면에서 아들보다 더 클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것은 그 "영"을 소유하신 아버지께서 인자인 예수보다도 더 크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한 14:28]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 고린도 전 11:3 ]

(그러므로, 분명히,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아니다. 여호와는 그리스도보다 높은 지위에 계신다. 이 말은 예수가 하늘로 되돌아가신 지 약 22년 후인, 기원 55년 경에 기록되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언급된 진리는 하늘에 계신 여호와와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적용된다.)

"[여호와가] 만물을 저[예수]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여호와가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 15:27, 28 ]

히브리어 단어 샤다이란 말과 희랍어 단어 판토크라토르는 둘다 "전능자"로 번역된다.

원어의 두 단어는 거듭해서 아버지인 여호와께 적용된다. (출애굽 6:3 ; 계시 19:6) 둘 중 어느 표현도 아들이나 성령에게 적용된 적이 결코 없다.

 

성서는
삼위일체에 속하였다는 각 위가 신이라고 가르치는가?

예수는 이렇게 기도했다.

"아버지여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여호와와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 17:1-3]

(대부분의 번역판들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란 표현을 아버지와 관련하여 사용한다. 「공동」에는 "참되시고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이라고 되어 있다.

만일 그와 동등한 다른 여호와가 둘이 더 있다고 하면 그분이 "참되시고 오직 한분이신 신"이 되실 수 있겠는가?

"신들"로 불려지는 다른 어느 것도 헛된 것이거나 여호와를 모방한 것에 불과한 것임에 틀림없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호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린도 전 8:5,6]

(이 말씀은 아버지를 그리스도인들의  신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와는 구별되는 위치에 계신 분으로 알려 준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 [베드로 전 1:3]

(예수가 승천하신 후일지라도, 거듭해서, 성서에서는 아버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여호와"으로 일컫는다.

요한 20:17에서, 예수께서 부활되신 다음, 그분은 친히 아버지를 "내 아버지"이라고 말씀하셨다.

후에, 하늘에 계실 때, 계시록 3:12에 기록된 것처럼, 그분은 다시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여호와는 아들을 "나의 여호와"라고 불렀다는 성서 기록은 전혀 없다.
아버지나 아들이 성령을 "나의 여호와"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신학 연구」(Theological Investigations)에서, 예수회의 카알 라아너는 이처럼 인정한다. "신은 성령에 대하여 사용된 적이 전혀 없다."

또한 "[문자적으로, 여호와, the God]가 [성령, holy spirit]에 대하여 사용된 적도 전혀 없다." - 독일어에서 번역됨, (메릴랜드 주, 보올티모어, 1961년판), 제 1권, 138, 143면.


 삼위일체론자들이 그들의 신조를 지지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성구들이 그 교리에 대한
확고한 근거를 제시하는가?

처음부터 삼위일체의 "증거"로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성구들은 실제로 삼위가 아니라, 이위만을 언급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령 그 성구들에 관한 삼위일체론자들의 설명이 정확하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 성서가 삼위일체를 가르친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의 내용들을 고려해 보자.

여호와께 속한 칭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거나 예수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하는 성구들

알파와 오메가 : 이 칭호는 합당하게 누구에게 속하는가?

(1) 계시록 1:8에서는 그 소유자가 전능한 분인 여호와라고 알려 준다. 「흠정」에 의하면, 11절에서 그 칭호가 그 후의 설명에서 알려주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학자들은 11절에서 알파와 오메가의 언급하는 것은 허위임을 인정하며, 따라서 「개역」,「새」,「공동」에는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2) 계시록을 히브리어로 번역한 많은 번역판들은 8절에 설명된 분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고, 신의 고유한 이름을 거기에 회복시켜 놓았다. 「신세」1984년 참조주판 참조.

(3) 계시록 21:6,7에서는 영적 승리자가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알파와 오메가라고 하는 분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알려 준다.

그 말씀은 결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자기 "형제"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 2:11 ; 마태 12:50 ; 25:40) 그러나 예수의 "형제"는 "여호와의 아들"로 불려진다. (갈라디아 3:26 ; 4:6)

(4) 계시록 22:12에서, 「오영역」은 예수라는 이름을 삽입하므로, 13절에서 알파와 오메가에 관한 언급이 그에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게 되어 있다.

그러나 희랍어로는 예수라는 이름이 거기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번역판들은 그것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5) 계시록 22:13에서, 알파와 오메가가 또한 "처음과 나중"으로 알려져 있다.

그 표현은 계시록 1:17,18에서 예수께 적용되어 있다.
비슷하게도, "사도"라는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특정한 추종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들이 동일한 인물이며 동등한 지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히브리 3:1) 그러므로 제반 증거는 "알파와 오메가"란 칭호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이신 전능하신 여호와께 적용된다는 결론을 맺게 한다.

구원자(구주) : 성경은 거듭해서 여호와를 구원자로 일컫는다.
이사야 43:11에서 여호와는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말씀까지 한다.

또한 예수도 구주로 불려지기 때문에, 여호와는 예수는 같은 분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디도서 1:3,4은 "우리 구주 여호와"에 관하여 말한 다음, "여호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에 관하여 말한다. 그러므로 두분은 모두 구주이시다.

유다 25은 "우리 구주 ... 여호와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하면서 그 관계를 알려 준다. (또한 사도 13:23 참조)

사사기 3:9에서는, 이사야 43:11에서 사용된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모흐시아, "구원자" 혹은 "구출자"로 번역됨)가 이스라엘의 사사인 옷니엘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옷니엘이 여호와가 된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이사야 43:1-12을 읽어 보면 11절에서 여호와께서만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 혹은 구출을 가져오신 분이시며, 구원은 주위 민족들의 어떤 신으로 부터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 : 이사야 43:10에서 여호와께서는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예수가 이사야 9:6에서 예언적으로 "전능하신 여호와("능하신 신", 신세)으로 불려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여호와임에 틀림없다는 뜻을 내포하는가? 또 다시 문맥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우상 숭배하는 이방 민족들 중 아무도 여호와보다 먼저 존재한 신을 만들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실제하며 살아 있고 예언을 할 수 있는 신을 장래에 만들지도 못할 것이다. (이사야 46:9,10)

그러나 이것은 여호와께서 적절하게 하나의 신으로 불려지는 자를 전혀 존재하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시 82:1,6 ; 요한 1:1, 신세)

이사야 9:6의 예수의 경우와 똑같이, 이사야 10:21에서 여호와께서 "능하신 여호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여호와만이 "전능한 신"으로 언제나 불려진다. - 창세 17:1.

특정한 칭호 또는 묘사가 성경의 여러 곳에 나올 경우, 그것은 반드시 동일한 인물을 말하고 있다고 성급히 단정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추리하면 느부갓네살이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냐하면 둘 다 "열왕의 왕"으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다니엘 2:37 ; 계시 17:14, 개표)

또는 예수의 제자들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이유는 둘 다 "세상의 빛"으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마태 5:14 ; 요한 8:12)

우리는 항상 그 문맥과 성서 안에서 동일한 표현이 나오는 다른 경우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버지, 아들 및 성령을 함께 언급하는 성구들

마태 28:19과 고린도 후서 13:13은 그러한 경우이다. 그 성구 중 어느 것도 아버지, 아들 및 성령이 동등하다거나 모두 영원하다거나 모두가 여호와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제시된 성경적인 증거는 그 성구들을 그런 견해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임을 증명해 준다.

맥클린톡과 스트롱의 「성서, 신학 및 교회 문학 백과 사전」(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은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지만, 마태 28:18-20에 관하여 이와 같이 인정한다.

"그러나 이 성구는 그 자체만으로는, 언급된 세 주체의 인격성 또는 동등성 또는 신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하지 못할 것이다." (1981년 재판, 제10권, 552면) 또한 그 셋을 함께 언급하는 다른 성구들에 관하여, 동 「백과사전」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데 "불충분하다"는 점을 시인한다. (비교 디모데 전 5:21. 그 성구에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천사들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명사형의 복수형이
여호와에게 적용된 성구들

창세기 1:1에서 "신"이란 칭호는 히브리어 복수형인 엘로힘에서 번역된다. 삼위일체론자들은 그것을 삼위일체의 암시라고 해석한다. 또한 그들은 삼위일체의 구성원들의 연합을 암시하기 위하여 신명기 6:4을 설명한다.

그 성구는 "신[엘로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니라"라고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여기에 나오는 명사의 복수형은 존엄 혹은 탁월성을 나타내는 복수형이다. (참조 성 조셉편 「성서 사전」, 330면; 「신 가톨릭 백과사전」, 1967년판, 제5권, 287면.)

그 말은 한 신 안에 여러 위들이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지 않는다.

비슷한 방법으로, 사사기 16:23에서 거짓 신 다곤을 말할 때, 엘로힘이라는 형태의 명칭이 사용되며, 함께 사용되는 동사는 단수형이며, 단지 하나의 신에 관한 언급임을 알려준다. 창세기 42:30에서, 요셉은 애굽의 "주"(아도네, 탁월의 복수형)로 불려진다.

희랍어에는 '존엄 혹은 탁월을 나타내는 복수형'이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1에서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은 엘로힘에 대응되는 말로 호 데오스(신, 단수형)를 사용하였다.

예수가 신명기 6:4을 인용하여 말한 그의 대답이 들어 있는 마가 12:29에도 마찬가지로 희랍어 단수형 호 데오스가 사용되어 있다.

신명기 6:4에, 히브리어 성구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두 번 들어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더 함당하다.
"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삼위일체를 믿지 않았다.

사용하는 성서 번역판에 따라서,
여러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는 성구들

만일 한 성구가 문법적으로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다면, 정확한 번역은 어떤 것인가? 성서의 나머지 부분과 일치한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서의 다른 부분을 무시하고 자기의 믿음을 특정한 구절의 마음에 드는 번역문을 중심으로 세워 나간다면, 그의 믿음은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는 자기 개인의 견해나 혹은 다른 불완전한 사람의 견해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요한 1:1,2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여호와와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신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여호와와 함께 계셨[느니라.]" (「새」도 비슷한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세」로는 다음과 같다.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여호와와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그분은 시초에 여호와와 함께 계셨다."

요한 1:1,2의 어느 번역판이 그 문맥과 일치한가?

요한 1:18에서는 "본래 여호와를 본 사람이 없"다고 알려 준다.
14절에서는 분명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고 알려 준다. 또한 1,2은 시초에 그는 "여호와와 함께" 계셨다고 알려 준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사람일 수 있는가?
요한 17:3에서, 예수는 아버지를 가리켜 "유일하신 여호와"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의 신"으로서, 그분의 아버지의 신성을 반영할 뿐이다. - 히브리 1:3.

"신"(a god)은 그리스어 문법에 맞게 번역한 것인가?

일부 참고 문헌들은 그 그리스어 성구를 "말씀은 여호와이셨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필립 B. 하너는 "특성을 나타내는 무관사 서술 명사; 마가 15:39과 요한 1:1"이라는 논문에서, 요한 1:1에 있는 것과 같이 "동사 앞에 무관사 서술어가 나오는" 절들은 "의미상 주로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로고스가 테오스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하였다.

하너는 이렇게 제안한다. "아마도 그 절은 '말씀은 여호와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 (「성서 문헌지」(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73년, 85, 87면)

따라서, 이 구절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테오스라는 단어에 정관사(호)가 없고 그 단어가 그리스어 문장에서 동사 앞에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요한 1:1을 "말씀은 여호와이셨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번역자들도, 동사 앞에 단수 무관사 서술 명사가 나오는 다른 구절들을 번역할 때는, 부정관사(a, an)를 주저없이 사용한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서」와 「제임스 왕역」은 모두 요한 6:70에서 가롯 유다를 "마귀"(a devil)로 언급하며, 요한 9:17에서는 예수를 "예언자"(a prophet)로 묘사한다.

예수회의 죤 J. 맥킨지는 그의 편저 「성서 사전」(Dictionary of the Bible)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요한 1:1은 엄밀히 말해 '말씀은 여호와[=아버지]과 함께 계셨고, 하나의 신성을 지닌 존재이셨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 (괄호 표시는 그가 한 것임: 가톨릭 교회의 공식 인가를 받아 출판되었음.)(뉴욕, 1965년 판), 317면.

위의 사실과 일치하게, 「미역」의 번역은 이와 같다. "말씀은 신성이었다." 「모팻」으로는 "로고스는 신성이었다"이다.
「보판」으로는 "말씀은 하나의 신이었다."이다.

루드비히 팀메는 그의 독일어 번역판에서 이처럼 표현한다.

"말씀은 여호와와 같은 분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말씀을 "하나의 신"으로 부르는 것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 용어를 사용한 경우와 일치한다.

예를 들면, 시편 82:1-6에서는 이스라엘의 인간 재판장들이 "신들"로 언급되었다. (히브리어, 엘로힘; 희랍어,테오이, 요한 10:34 참조) 왜냐하면 그들이 여호와를 대표하여 그의 율법을 말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요한 8:58 :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그리스어,에고 에이미] 하시니[라.]"

(「현대」에는 '나는 있다'라고 되어 있고, 일부 영문 번역판들은 칭호의 개념을 나타낼 수 있도록 대문자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표현을 출애굽기 3:14과 연결지으려고 노력한다. 그 성구에서, 그들의 번역에 의하면,

여호와는 자신을 "나는 있느니라"(스스로 있는 자, I Am)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일컬었다.) 그러나 「새」에는 요한 8:58의 후반부가 이처럼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다." (「공동」의 표현도 같은 뜻을 나타낸다.)

어떤 번역이 문맥과 일치한가? 예수가 대답한 유대인들의 질문(57절)은 신분이 아니라, 나이와 관련이 있었다.

예수의 대답은 논리적으로 그분의 나이 즉 그분이 존재한 기간과 관련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에고 에이미란 말을 성령의 칭호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

A.T. 로버트슨저, 「역사적 연구에 비추어 본 그리스어 신약 문법」(A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in the Light of Historical Research)은 이와 같이 말한다. "그 동사[에이미]는 ... 때때로 다른 동사처럼 술어로서 존재를 나타낸다. [에고 에이미](요한 8:58) 경우와 같다." - 테네시주 내시빌, 1934년판, 394면.

사도 20:28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여호와가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새」,「현대」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공동」에는 그 절의 후반부가 "당신 아드님의 피"라고 되어 있다. (「신세」에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

어느 번역(들)이 "그[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요한 1서 1:7과 일치한가? (또한 계시 1':4-6 참조.) 요한 3:16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우리가 생명을 얻도록, 여호와가 독생자를 보내셨는가 아니면 그가 친히 인간으로 왔는가? 흘려진 피는 여호와의 피가 아니라, 그의 아들의 피였다.

로마 9:5 :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여호와이시니라. 아멘." (「새」,「현대」도 비슷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공동」에는 그 절의 후반부가 이렇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도 인성으로 말하면 그들에게서 나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여호와를 영원토록 찬양합시다. 아멘" (「신세」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만물을 다스리시"며, 따라서 그가 여호와이시라는 말인가? 아니면 여호와와 그리스도는 다른 개체이며, 여호와께서 "만물을 다스리"신다고 말하는가?

로마 9:5의 어느 번역이, 먼저 여호와를 그리스도와 구별한 다음 "여호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을 촉구하는, 로마 15:5,6의 내용과 일치한가?

(또한 고린도 후서 1:3과 에베소 1:3 참조.) 로마 9장에 계속되는 부분을 고려해 보자. 6-13절에서는 여호와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육체에 따른 상속에 달려 있지 않고 여호와의 뜻에 달려 있음을 알려 준다.

14-18절은 여호와가 만물 위에 계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출애굽기 9:16에 기록된대로, 바로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인용한다.

19-24에서는 토기장이와 그가 만드는 토기 그릇의 비유를 들어 여호와의 탁월함을 더 설명한다. 그러므로, 5절에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합시다."라고 말한 것은 얼마나 적절한가? - 공동.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은 이렇게 말한다.

"로마서 9:5은 논란이 되고 있다. ... 어학적으로 볼 때, 그 표현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구절은 이렇게 번역되곤 한다. '만물 위에 계신 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찬양 받으실지어다. 아멘.' 그렇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신과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성한 본성을 가진 분으로 묘사되었을 뿐일 것이다. 그 이유는 테오스라는 말에 관사가 없기 때문이다. ...

훨씬 더 개연성있는 설명은 그 진술이 여호와에게 돌리는 찬미의 시라는 것이다." - 독일어에서 번역됨,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 1976년판), 제 2권, 80면.

빌립보 2:5,6 :    「흠정」은 이러하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정신을 여러분 안에 품으시오. 그는 하느님의 형태로 계셨으며, 여호와와 동등됨을 약탈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와 같다. "그는 여호와와 동등된 상태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신세」에는 그 구절의 후반부가 이처럼 되어 있다. "그는 비록 신의 모습으로 존재하셨지만, 장악[그리스어, 하르파그몬]하려고, 곧 신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개역」, 「새」도 비슷한 사상을 나타낸다.)

어떤 사상이 문맥과 일치한가? 5절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서 논하고 있는 부면에서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교훈한다.

그들이 신과 동등됨을 약탈이 아니라" 권리로 생각하도록 교훈받고 있는가? (흠정)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악하려고, 즉 ... 신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신 분을 본 받을 수 있다. (신세) (비교 창세 3:5) 또한 그러한 번역은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 요한 14:28.

해설자의 그리스어 성서」(The Expositor's Greek Testment)는 이와 같이 말한다.

"[하르파조] 혹은 [하르파그몬을 포함한] 어떤 파생어가 '가지고 있는' 즉 '보유하는'의 의미를 나타내는 성구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항상 '탈취하다','강제로 빼앗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올바른 의미인 '취하려하다'에서 '굳게 보유하다'라는 온전히 다른 의미로 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 로버트슨 니콜편,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즈, 1967년판), 제 3권, 436, 437면.

골로새 2:9 :   「흠정」은 이와 같다. "신[그리스어,테오테토스]의 모든 충만이 그[그리스도] 안에 몸으로 거합니다."         그러나 「개역」은 이와 같다.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느니라.]"(「새」,「공동」은 "하느님" 대신에 "하나님의 신성"이라는 말을, 「현대」는 "신의 성품"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비교 베드로 후 1:4.

분명히, 모두가 골로새서 2:9을 동일하게 해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영감받은 「골로새서」의 나머지 부분과 일치한가?

예수는 삼위일체에 속한 신이시기 때문에 본래 그에게 속한 무언가를 가지고 계셨는가? 아니면 그분 안에 거하는 "충만"함은 다른 누구의 결정으로 인하여 그에게 속하게 된 것인가?

골로새서 1:19(공동, 현대 참조)은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함이 거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기꺼이 주'셨기 때문임을 알려 준다. 「새」는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된 것임을 알려 준다.

골로새서 2:9의 가까운 문맥을 고려해 보자.

8절에서는 철학과 인간 전통을 옹호하는 자들의 미혹을 받지 말도록 경고한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고 알려 주며, "그 안에서 행하"며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

믿음에 굳게 서"라고 촉구한다. (3,6,7절) 어떤 값진 것의 "충만"함은 인간 철학의 창시자나 교사들이 아니라, 그분 안에 거한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함" 때문에 그리스도가 바로 신이시라고 설명하였는가? 골로새서 3:1에 의하면 아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알려 준다. - 새, 공동 참조.

리델과 스콧 공편 「희영 사전」(Greek-English Lexicon)에 의하면 테오테스(주격, 테오테토스의 원형)는 "신성, 신의 본성"을 의미한다. (옥스포드, 1968년판, 792면)

참으로 "신성" 혹은 "신의 본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여호와의 아들인 예수가 아버지와 동등하고 똑같이 영원한 분이지 못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인간성" 혹은 "인간의 본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모두가 동등하고 연령이 같아지지 않는 것과 같다.

디도 2:13 :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비슷한 표현이 「새」에도 나온다.] 그러나 「공동」은 이와 같다. "위대하신 여호와와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줍니다.' (「현대」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다.)

어느 번역이 "여호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라고 말하는 디도서 1:4과 일치한가?

성경에서 여호와를 구주라고도 말하지만, 이 성구에서는 명백히 여호와와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는 수단이 되는 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차이를 나타내 준다.

일부 사람들은 디도서 2:13이 그리스도가 여호와이시며 구주 되신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개역」,「새」는 디도서 2:13을 그러한 견해를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게 번역하지만, 데살로니가 후서 1:12을 번역할 때에는 동일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헨리 앨포드는 「그리스어 성서」(The Greek Testament)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디도서 2:13에서, 여호와와 그리스도와의 차이를 명백히 나타내는 번역]은 그 문장의 모든 문법적인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며, 구조상으로나 문맥상으로도 더욱 가능하고, 사도들이 기록한 방법에 더욱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 (보스톤, 1877년), 제 3권, 421면.

히브리서 1:8 :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니이다.]" (「새」,「공동」,「현대」도 비슷하게 번역한다.) 그러나 「신세」는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 아들에 관하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히 신은 당신의 보좌이시요." (「미역」,「모펫」,「이십」,「바잉턴」도 비슷한 사상을 나타낸다.)

어떤 번역이 문맥과 일치한가? 앞에 나오는 구절들은 여호와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또한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야기를 듣는 자가 지존하신 여호와가 아니라 그 신의 숭배자임을 알려준다.

히브리서 1:8은 원래 이스라엘의 인간 왕에게 이야기한 시편45:6을
인용한 것이다.

분명히 그 시를 쓴 성서 필자는 그 인간 왕을 전능하신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동」은 시편45:6을 "여호와의 영원한 옥좌에 앉으신 임금님"으로 번역한다. (「신영성」에서는 "당신의 보좌는 하느님의 보좌와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원래 시편 45편의 말씀을 들은 왕은 솔로몬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호와께서 주신 위[보좌]에" 앉았다고 알려져 있다.

(역대 상 29:23)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왕권의 "보좌" 즉 근원과 옹호자되신다는 사실과 일치하게, 다니엘 7:13,14 및 누가 1:32은 하느님께서 그러한 권세를 그에게 주신다고 알려 준다.

히브리서 1:8,9은 시편 45:6,7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 점에 관하여 성서학자인 B.F.웨스트코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칠십」은 두 가지 번역을 허용한다. [호 테오스]는 두 경우(오 하느님이여, 당신의 보좌... 그러므로, 오 하느님이여, 당신의 하느님...)에 호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는 그것은 처음 경우(하느님은 당신의 보좌입니다. 또는, 당신의 보좌는 하느님입니다. ...)에는 주어(또는 술어)로, 그리고 두 번째 경우(그러므로 하느님, 바로 당신의 하느님...) 는 [호 테오스 수]의 동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 [엘로힘]이란 칭호가 원본에서 왕에게 사용될 수 있다고는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칠십」에서 [호-테오스]가 호격이라는 가정은 그러한 견해와 반대된다. 그러므로 전체로 보아서, 처음 절에서 다음과 같은 번역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게 보인다. 하느님은 당신의 보좌입니다.(또는, 당신의 보좌는 하느님입니다.)

즉 '당신의 왕국의 기초는 여호와, 요동하지 않는 바위입니다.'" -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한」(The Epistle to the Hebrews) (런던 1889년판), 25,26면.

요한 1서 5:7,8 :   「 흠정」은 이러하다. "하늘에 증언하는 자 셋이 있으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신이라 이 셋은 하난이니라 또한 땅에 증언하는 자 셋이 있으니 영과 물과 피라 이 셋이 또한 하나로 일치하니라." (「두에이」역시 이 삼위일체론의 성구가 들어 있다.)

그러나 「개역」에는 "하늘에 증언하는 자 셋이 있으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신이라. 이 셋은 하나이니라. 또한 땅에"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새」,「공동」에서도 삼위일체론의 구절을 뺀다.)

그 삼위일체론의 구절에 관하여, 원문 대조 비평가인 F.H.A.스크리브너는 이와 같이 기술하였다.

"성 요한이 논쟁이 된 그 표현을 기록하지 않았으며, 본래 그것은 8절에 관한 신성하고 공인된 주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난외주에서 아프리카의 라틴어 사본으로 도입되었으며, 그 라틴어에서 두 세 개의 후기 희랍어 책자본으로 교묘히 들어왔고,

그때부터 인쇄된 희랍어 원문에 들어오게 된 것이며, 그 부면에 대해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없었다는 우리의 확신을 밝히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 - 「신약 비평의 간이 개론」(A Plain Introdution to the Criticism of the New Testment) (케임브리지, 1883년, 3판) 654면.

또한, 「예루살렘」에서 이 성구들의 각주 및 「신세」 1984년 참조주판 부록, 1580면 참조.

삼위일체론자들이 그 교리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다른 성구들

그 성구들 중 첫 번째는 아들만을 언급하며, 나머지 다른 성구는 아버지와 아들을 언급하지만, 어느 성구도 아버지와 아들 및 성령을 언급하지 않으며, 그들이 하나의 신을 구성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하라.

요한 2:19-22 :     예수가 그러한 말씀을 하심으로써,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스스로 부활되신 것을 나타내셨는가?

사도 행전 2:32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라고 하였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라는 뜻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견해는 예수의 부활의 원인을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리는 갈라디아 1:1과 모순될 것이다.

비슷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면서, 누가 8:48에서는 예수께서 한 여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알려 준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여자는 자기 자신을 치료하였는가?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에게서 나온 능력이, 그 여자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치료해 주었다. (누가 8:46 ; 사도 10:38)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완전한 순종을 함으로써, 아버지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셔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써 인정하실 수 있는 도덕적인 기초를 마련하셨다. 예수께서는 충실한 행로를 걸으셨기 때문에, 자신의 부활에 대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적절히 말할 수 있었다.

A.T.로버트슨은 「신약에서의 생생한 묘사」(Word Pictures in the New Testment)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신 [요한] 2:19을 생각해 보자. 그분은 동인(動因)으로서 아버지의 도움없이 죽은 자 가운데서 스스로 부활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시지 않았다. (로마 8:11)" - (뉴욕, 1932년 판), 제 5권, 183면.

요한 10:30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는 두분이 동등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가? 일부 삼위일체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는 요한 17:21, 22에서 그분의 추종자들에 관하여 이와 같이 기도했다.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부언하였다. 그 모든 경우에 그분은 "하나"에 해당되는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헨)를 사용했다.

분명히,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삼위일체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일치된 목적을 갖게 된다.

그것은 여호와와 그리스도를 하나가 되게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치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고수하는
자들은 어떤 입장에 놓이게 되는가?

그들은 매우 위험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성서에 없으며,
성서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다는 증거는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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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완계획"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