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학력을 보니, 박사, 석사출신도 있고, 대학, 대학원 재학중인 학생, 고졸, 중졸, 중퇴 다양하더군.. 후보자간 토론을 보면 말로 하지는 않지만, 눈빛이나 말투로 서로의 학력을 내세운 자존심 싸움 하는것을 종종본다.. 물론 주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 학력위주 이어선 안되겠지.. 저학력자들이 주로 강력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매너없이 행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라고 전에 "왜 무식한 사람들은 욕을 먹을까.."란 글에서 쓴 적도 있다.. 학력을 내세운 자존심 싸움, 이거 참 무서운거다.. 난 대학교 시절엔 농대, 대학원 시절엔 자연대를 다녔다.. 대학원 시절 내가 다닌 학과 학생들은, 비록 같은 k 종합대학이라는 명칭 아래 있으면서도, 나를 완전히 타 대학 학생 취급하고, 그들의 대학에 취직자리 하나 구걸하러온 거지 취급했지.. 글쎄 멀쩡한 사람도 소매치기로 편견을 갖고 보면, 그 사람 행동하는것이 다 소매치기 같아 보이는 것처럼, 편견을 가지고 보니 내가 거지처럼 보였겠지.. 내가 취직 목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면, 학부시절 부전공했던 학과나, 그 당시 취직잘되던 공대쪽 대학원을 선택했겠지... 그런데 왜 난, 전산학(340점 만점에 커트라인 230점)과 빼고는 취직 잘 안되기로 소문난 자연대를 택했을까.. 그것도 의대생들이 가장 많이 고전한다는 어려운 생화학을.. (생물처럼 외우는 것도 많고, 화학처럼 복잡한 계산도 해야하고, 비젼 또한 밝지 않은 학과였지.. 그 당시(94년)한국은 생명과학쪽이 지금처럼 세게수준은 아니였지..) 말하긴 곤란 하지만, 누구나 내 입장이 되면 생화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특히 생리 쪽으로.. 인생이 안보이는 상황이였으니까.. 이미 내 신체상태를 보고 눈치 챈 실험실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난 심각한 무좀(혈압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생화학과를 선택한 거였지.. 하지만 그 심각한 문제는 간단히 풀렸다.. 약국가서 약 사서 바르면 되는거였지.. 사실대로 적기가 싫어서 "무좀"으로 표현했다.. 무좀이 생화학에 관심을 갖게된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사실상 생화학은 그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한 나에겐 참 재미있는 학문이였다.. 이론상으로만.. 실험은 머리쓰는거 하나없이 귀찮고 고달프기만 했지.. 무좀 박멸을 위해서 내가 처음 들어간 실험실이 생리실험실 이었지.. 다른 실험실과는 달리 대학원생 달랑 한 명 있는 썰렁한 곳.. (아마 취직이 목적이었다면, 생화학과 내에서도 대학원생도, 학부생들도 많이 있는 디,앤,에이 관련 실험실을 택했겠지..그 곳 실험실엔 박사 과정 대학원생이 2명이나 있었고, 과 생긴이래(한 8년 됐나..) 처음으로 1호박사 배출을 2년정도 앞둔 상황이었지..) 어쨌든 거기 생리 실험실에서, 석사과정 졸업해 나가는 여학생이 교수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실험 안 가르쳐주고 졸업해서, (아! 가르쳐 줬다, 실험쥐 발병시켜서, 배 가르는 것 까지만.. 그 여학생이 나에게 실험을 안 가르쳐 주는 사실을 알고, 교수님이 취직자리 알선 안해 주니까. 마지못해, 취직을 위해서..) 1학기 내내 논문만 읽다가, 단백질 실험실로 옮겼지, 거기도 대학원생은 달랑 1명 뿐인 썰렁한 곳이였지.. 취직이 목적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안했겠지.. 바보라도 알거야.. 하지만 취직이 목적이 아니었더라도, 거기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외국나가서 박사과정을 밟으려면 자존심 죽이고 실험을 배워햐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거지취급 하면서 실험 가르쳐줘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였지.. 그런데 거지취급은 참겠는데 바보취급 하는것은 못참겠더군.. 그들은 4년 전공 한데다가, 학부시절부터 실험실 들어와서 대학원생들 어깨 너머로 실험을 배운 사람들이니까, 실험면에서는 내가 그들을 이길수가 없었지, 아니, 이기는건 고사하고 배워야 할 입장이었지.. 게임이 안되잖아.. 실험가지고 바보만들려면 난 얼마든지 바보가 되겠지.. 실험을 배울때도 자꾸 말투나 눈 빛이 나를 무시하는거 같아서 그거 신경 쓰다가, 말하는 걸 못 알아듣고 그런 경우가 종종 생겼고, 그들이 실험하다 잘못하면 그 들은 그 학과 출신 이니까 당연한거고, 내가 실수하면 타 학과 출신이 생화학과 와서 그들 재산을 축내는걸로 여겨지는 상황이었지.. 내가 그들보다 한 학번 어리다면 애교로 봐주겠지만, 한 학번 높은 상황에다 타 학과에서 왔으니 더욱 바보같아 보였겠지, 그래서 난 실험에 자신감을 잃어갔고.. 그리고 실험 조차도 내가 하고 싶었던 실험이 아니고 엉뚱한 당뇨병 실험, 단백질 수용체 실험 이런거 였다.. 별로 관심없는... 이학석사 과정을 노가다라고 부른다.. 머리 쓰는거 하나도 없이, 실험 메써드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눈썰미 있는 고등학생들도 가르쳐 주면 할수있을 정도로 쉽다.. 실험은 머리쓰는거 하고 전혀 무관하다, 육체적으로 고달프기만 하지.. 하지만 나에겐 그 과정이 쉽지않았다. 실험을 잘 안 가르쳐 준것도 있었지만, 실험은 고사하고 복도에서, 길에서, 식당에서 마주치는 학부생들의 웃음과 비아냥 거림에 일상생활 조차 힘들정도 였다.. 그들은 그들 선배 대학원생의 말한마디에, 쉽게 타학과 출신 대학원생인 나를 바보나, 적으로 생각할수 있는 학부생들이니까.. 자연대 학부생들이 타학과 출신 대학원생인 나를 가르켜, 비아냥 거리며 부르던 별명이 있었다.. "개 밥그릇 "이다.. 주인이 밥 담아주기를 기다리는 개밥그릇에 비유한 모욕적인 별명이지.. 한 마디로 거지란 뜻이지.. 물론 난 이학석사 과정을 마쳤지만, 그 이학계통으로 계속 공부하면 농대 출신이라서 늘 무시당할것 같아서, 이학계통으로 나가길 포기했다.. 나의 첫번째 지도교수가 건대 축산학과 출신인데 생화학 비전공자라고, 학생들 에게도, 교수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는걸 보고 결심한거지.. 그게 석사 1학기 마쳤을 때이고, 그 당시 지도교수에게도 말하고, 대학원생 들에게도 말했다.. 예전엔 대입학력고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320점 만점에 체력장 20점 더해서 340점이 만점 이였다.. 체력장은 아무리 몸 약한 학생들도, 힘센 학생들이 대신해주고 해서, 대부분 만점 받았다.. 기억나지? 93년 자료인지 94년 자료인지 기억은 확실이 안 나는데, k대 학과별 커트라인 자료가 있었다.. 그 자료엔 대학원 때 나의 전공인 생화학과 커트라인도 있었다.. 203점 이었다..물론 체럭장 20점 제하면 183점인 셈이지.. 183/320=57점.. 이게 뭐니? 이게.. 이것도 점수니.. 이 밥튀들아.. 난 출생해서 고 2 때 까지, 모의고사 시험에서도 다 한과목도 점수에 5자를 달아본적이 없다.. 아! 물론 간혹 있을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 내가 학부시절 다닌 학과는 커트라인이 200점, 그러니까 100점 만점으로 환산 하면 180/320=56점이였지.. 생화학과와 겨우 1점차다.. 나는 고 2 때 까지는 자타공인 모범생 이였지만, 고 3 때 고민에 빠져서 야간 자율학습도 안하고, 그냥 나 혼자 집에가서 음악 들으면서 놀았다.. 삶과 인생, 생로병사에 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고민이였지.. 사실대로 적기 싫어서 "고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내가 고 3 때 좀 노느라고 공부 못했다는게 그 뜻이 아니고, 이뜻이다.. 혼자서 집에서 클래식 감상하면서 조용히 놀았다는 뜻이지.. 얼마 전, 이젠 내가 40이 되어가는데도, 어머니가 종종 아직도 고민하냐고 물으시길래, 그 때, 나 고 3 때, 고민한게 아니였고,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고민에 빠졌다고 거짓말 했다고 말했더니, 걱정을 푸시더군.. 노인네 걱정시킬 필요있나.. 이런 거짓말은 많이 해도 괞찮은것 같다.. 내가 k대 간건, 창피하다고 재수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 잘둔 덕이지.. 내가 재수하겠다고 했을 때,아버지 첫 마디가 "우리집에 재수는 없다"였지.. (그 이전에 늘 하던말도 있었지.. "등록금 싼 국립대 아니면 생각도 하지말아" 였지..)그리고 아버지는 말하셨지, "아무 대학이나 나와서 목구녕에 풀칠만 하면 되는거여" 라고.. 아주 유식한 멘트였지... 나 고 2 때 이던가(그 땐 공부좀 했지..) 아버지는 약주 하시고 들어와서, 술주정 하며 나에게 말하셨지.. "야! 너 의대가라.. 배 한 번 쭉 재면 500만원 이란다." 라고.. 아주 유식한 멘트였지... 그 때, 난 의사들이 백정처럼 느껴지면서 의대는 절대 안가기로 결심했지. 대학 1년 다니고 학교 그만두고 재수한다 할때도, 아버진 안된다고 했지.. 대학 2년 마치고 편입 하겠다고 할때도, 아버지는 안된다고 했지.. 대학원 때도 대학원 그만두고 취직하겠다 할때도, 아버지는 안된다고 헀지.. 아버지는 "아무따나"가 생활신조이다.. 아무따나 그냥 졸업만 해서 밥만먹고 살면 되는 줄 알았나 보다.. 먹고 사는거야 살겠지만 그 질이란게 틀리고, 학벌이란게 평생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건데.. 저학력자인 아버지가 그런 걸 알리는 없고.. 아무따나, 대충대충, 빨리빨리.. 이건 어글리 코리안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현재 60,70,80 대 들의 공통된 행동방식이다.. 각설하고.. k대 86년 이과계열 점수 공개한다.. 체력장 20점 포함해서 340점 만점에. 농대 커트라인이 200점, 자대는 205점, 공대가 230점, 약대가 260점, 의대는 아직 없었다.. 봐, 약대 빼고는 다 고만 고만힌 애들이잖아. 그런데 왜 같은 학교 내에서도 서로 자존심 내새우고 철없이 감정 싸움을 하느냐는 말이지.. 옆에서 킥킥웃는 원주의 에스대나, 와이대 원주 분교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니들도 만만찮은 댥*가리 이시잖아요.. 웃지마.. 점수 니들 스스로가 잘 알잖아.. 수 십년간 점수 똑같은 것도 잘 알잖아.. 뭐가 부끄럽다고 점수를 숨길려고 하고, 점수 공개에 분개하느냐는 말이다.. 연세대, 고려대 앙숙 이듯이, 꼭 고만 고만한 것들끼리, 점수 따져서 자존심 싸움하지.. 타 대학도 점수는 틀리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 종합대 내, 단과 대학별 성적비율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점수차 별로 안나는, k대 자연대생들이 나를 농대 출신이라고 무시하는건 나쁘고, 고득점의 서울대 의대생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괞찬다는게 아니다.. 점수를 떠나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겸손해지라는 말을, 94년 95년도에 나하고 같이 학교 다녔던, 젊은 95학번까지의 자연대 학생들에게 하는거다.. 학교 다닐때는 내 앞에서 k대 자연대생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겠지만, 졸업하니까 어때? k대 자연대가 아직도 대단해 보이는지 묻고싶다.. 그땐 학생의 신분이었으니까, 자연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집단심리로 나를 무시하고 미워했겠지만, 이젠 사회인 이니까 진실을 말할수 있잖아... 대학시절 전공 살려서 사회생활 하는 사람 몇 프로 안돼잖아.. ----학생시절, 그 자부심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같은 사고에서 나온, 옹졸한 자부심인지 이젠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반성하겠지만, 너희들도 반성해 봐.. ---
한국에서 전공 바꾸는것은 참 힘들다..
요사이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학력을 보니, 박사, 석사출신도 있고,
대학, 대학원 재학중인 학생, 고졸, 중졸, 중퇴 다양하더군..
후보자간 토론을 보면 말로 하지는 않지만, 눈빛이나 말투로 서로의
학력을 내세운 자존심 싸움 하는것을 종종본다..
물론 주민의 대표를 뽑는 것이 학력위주 이어선 안되겠지..
저학력자들이 주로 강력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매너없이 행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라고 전에 "왜 무식한 사람들은 욕을
먹을까.."란 글에서 쓴 적도 있다..
학력을 내세운 자존심 싸움, 이거 참 무서운거다..
난 대학교 시절엔 농대, 대학원 시절엔 자연대를 다녔다..
대학원 시절 내가 다닌 학과 학생들은, 비록 같은 k 종합대학이라는 명칭
아래 있으면서도, 나를 완전히 타 대학 학생 취급하고, 그들의 대학에
취직자리 하나 구걸하러온 거지 취급했지..
글쎄 멀쩡한 사람도 소매치기로 편견을 갖고 보면, 그 사람 행동하는것이
다 소매치기 같아 보이는 것처럼, 편견을 가지고 보니 내가 거지처럼
보였겠지..
내가 취직 목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다면, 학부시절 부전공했던 학과나,
그 당시 취직잘되던 공대쪽 대학원을 선택했겠지...
그런데 왜 난, 전산학(340점 만점에 커트라인 230점)과 빼고는 취직 잘
안되기로 소문난 자연대를 택했을까..
그것도 의대생들이 가장 많이 고전한다는 어려운 생화학을..
(생물처럼 외우는 것도 많고, 화학처럼 복잡한 계산도 해야하고,
비젼 또한 밝지 않은 학과였지.. 그 당시(94년)한국은 생명과학쪽이
지금처럼 세게수준은 아니였지..)
말하긴 곤란 하지만, 누구나 내 입장이 되면 생화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특히 생리 쪽으로.. 인생이 안보이는 상황이였으니까..
이미 내 신체상태를 보고 눈치 챈 실험실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난 심각한 무좀(혈압관련)이 있었다.. 그래서 생화학과를 선택한 거였지..
하지만 그 심각한 문제는 간단히 풀렸다.. 약국가서 약 사서 바르면
되는거였지.. 사실대로 적기가 싫어서 "무좀"으로 표현했다..
무좀이 생화학에 관심을 갖게된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사실상 생화학은
그 응용분야가 무궁무진한 나에겐 참 재미있는 학문이였다..
이론상으로만.. 실험은 머리쓰는거 하나없이 귀찮고 고달프기만 했지..
무좀 박멸을 위해서 내가 처음 들어간 실험실이 생리실험실 이었지..
다른 실험실과는 달리 대학원생 달랑 한 명 있는 썰렁한 곳..
(아마 취직이 목적이었다면, 생화학과 내에서도 대학원생도, 학부생들도
많이 있는 디,앤,에이 관련 실험실을 택했겠지..그 곳 실험실엔 박사 과정
대학원생이 2명이나 있었고, 과 생긴이래(한 8년 됐나..) 처음으로 1호박사
배출을 2년정도 앞둔 상황이었지..)
어쨌든 거기 생리 실험실에서, 석사과정 졸업해 나가는 여학생이 교수님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실험 안 가르쳐주고 졸업해서,
(아! 가르쳐 줬다, 실험쥐 발병시켜서, 배 가르는 것 까지만.. 그 여학생이
나에게 실험을 안 가르쳐 주는 사실을 알고, 교수님이 취직자리 알선 안해
주니까. 마지못해, 취직을 위해서..) 1학기 내내 논문만 읽다가, 단백질
실험실로 옮겼지, 거기도 대학원생은 달랑 1명 뿐인 썰렁한 곳이였지..
취직이 목적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안했겠지.. 바보라도 알거야..
하지만 취직이 목적이 아니었더라도, 거기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외국나가서
박사과정을 밟으려면 자존심 죽이고 실험을 배워햐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거지취급 하면서 실험 가르쳐줘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였지..
그런데 거지취급은 참겠는데 바보취급 하는것은 못참겠더군..
그들은 4년 전공 한데다가, 학부시절부터 실험실 들어와서 대학원생들
어깨 너머로 실험을 배운 사람들이니까, 실험면에서는 내가 그들을 이길수가
없었지, 아니, 이기는건 고사하고 배워야 할 입장이었지..
게임이 안되잖아.. 실험가지고 바보만들려면 난 얼마든지 바보가 되겠지..
실험을 배울때도 자꾸 말투나 눈 빛이 나를 무시하는거 같아서 그거 신경
쓰다가, 말하는 걸 못 알아듣고 그런 경우가 종종 생겼고, 그들이 실험하다
잘못하면 그 들은 그 학과 출신 이니까 당연한거고, 내가 실수하면 타 학과
출신이 생화학과 와서 그들 재산을 축내는걸로 여겨지는 상황이었지..
내가 그들보다 한 학번 어리다면 애교로 봐주겠지만, 한 학번 높은 상황에다
타 학과에서 왔으니 더욱 바보같아 보였겠지, 그래서 난 실험에 자신감을
잃어갔고.. 그리고 실험 조차도 내가 하고 싶었던 실험이 아니고 엉뚱한
당뇨병 실험, 단백질 수용체 실험 이런거 였다.. 별로 관심없는...
이학석사 과정을 노가다라고 부른다..
머리 쓰는거 하나도 없이, 실험 메써드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니까..
눈썰미 있는 고등학생들도 가르쳐 주면 할수있을 정도로 쉽다..
실험은 머리쓰는거 하고 전혀 무관하다, 육체적으로 고달프기만 하지..
하지만 나에겐 그 과정이 쉽지않았다. 실험을 잘 안 가르쳐 준것도 있었지만,
실험은 고사하고 복도에서, 길에서, 식당에서 마주치는 학부생들의 웃음과
비아냥 거림에 일상생활 조차 힘들정도 였다..
그들은 그들 선배 대학원생의 말한마디에, 쉽게 타학과 출신 대학원생인
나를 바보나, 적으로 생각할수 있는 학부생들이니까..
자연대 학부생들이 타학과 출신 대학원생인 나를 가르켜, 비아냥 거리며
부르던 별명이 있었다.. "개 밥그릇 "이다..
주인이 밥 담아주기를 기다리는 개밥그릇에 비유한 모욕적인 별명이지..
한 마디로 거지란 뜻이지..
물론 난 이학석사 과정을 마쳤지만, 그 이학계통으로 계속 공부하면
농대 출신이라서 늘 무시당할것 같아서, 이학계통으로 나가길 포기했다..
나의 첫번째 지도교수가 건대 축산학과 출신인데 생화학 비전공자라고,
학생들 에게도, 교수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는걸 보고 결심한거지..
그게 석사 1학기 마쳤을 때이고, 그 당시 지도교수에게도 말하고,
대학원생 들에게도 말했다..
예전엔 대입학력고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는데, 320점 만점에 체력장 20점
더해서 340점이 만점 이였다.. 체력장은 아무리 몸 약한 학생들도, 힘센
학생들이 대신해주고 해서, 대부분 만점 받았다.. 기억나지?
93년 자료인지 94년 자료인지 기억은 확실이 안 나는데, k대 학과별
커트라인 자료가 있었다..
그 자료엔 대학원 때 나의 전공인 생화학과 커트라인도 있었다..
203점 이었다..물론 체럭장 20점 제하면 183점인 셈이지..
183/320=57점.. 이게 뭐니? 이게.. 이것도 점수니.. 이 밥튀들아..
난 출생해서 고 2 때 까지, 모의고사 시험에서도 다 한과목도 점수에 5자를
달아본적이 없다..
아! 물론 간혹 있을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
내가 학부시절 다닌 학과는 커트라인이 200점, 그러니까 100점 만점으로
환산 하면 180/320=56점이였지.. 생화학과와 겨우 1점차다..
나는 고 2 때 까지는 자타공인 모범생 이였지만, 고 3 때 고민에 빠져서
야간 자율학습도 안하고, 그냥 나 혼자 집에가서 음악 들으면서 놀았다..
삶과 인생, 생로병사에 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고민이였지..
사실대로 적기 싫어서 "고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내가 고 3 때 좀 노느라고 공부 못했다는게 그 뜻이 아니고, 이뜻이다..
혼자서 집에서 클래식 감상하면서 조용히 놀았다는 뜻이지..
얼마 전, 이젠 내가 40이 되어가는데도, 어머니가 종종 아직도 고민하냐고
물으시길래, 그 때, 나 고 3 때, 고민한게 아니였고,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고민에 빠졌다고 거짓말 했다고 말했더니, 걱정을 푸시더군..
노인네 걱정시킬 필요있나.. 이런 거짓말은 많이 해도 괞찮은것 같다..
내가 k대 간건, 창피하다고 재수 허락하지 않는 아버지 잘둔 덕이지..
내가 재수하겠다고 했을 때,아버지 첫 마디가 "우리집에 재수는 없다"였지..
(그 이전에 늘 하던말도 있었지.. "등록금 싼 국립대 아니면 생각도
하지말아" 였지..)그리고 아버지는 말하셨지, "아무 대학이나 나와서
목구녕에 풀칠만 하면 되는거여" 라고.. 아주 유식한 멘트였지...
나 고 2 때 이던가(그 땐 공부좀 했지..) 아버지는 약주 하시고 들어와서,
술주정 하며 나에게 말하셨지..
"야! 너 의대가라.. 배 한 번 쭉 재면 500만원 이란다." 라고..
아주 유식한 멘트였지...
그 때, 난 의사들이 백정처럼 느껴지면서 의대는 절대 안가기로 결심했지.
대학 1년 다니고 학교 그만두고 재수한다 할때도, 아버진 안된다고 했지..
대학 2년 마치고 편입 하겠다고 할때도, 아버지는 안된다고 했지..
대학원 때도 대학원 그만두고 취직하겠다 할때도, 아버지는 안된다고 헀지..
아버지는 "아무따나"가 생활신조이다.. 아무따나 그냥 졸업만 해서
밥만먹고 살면 되는 줄 알았나 보다.. 먹고 사는거야 살겠지만
그 질이란게 틀리고, 학벌이란게 평생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건데..
저학력자인 아버지가 그런 걸 알리는 없고..
아무따나, 대충대충, 빨리빨리.. 이건 어글리 코리안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현재 60,70,80 대 들의 공통된 행동방식이다..
각설하고..
k대 86년 이과계열 점수 공개한다..
체력장 20점 포함해서 340점 만점에. 농대 커트라인이 200점, 자대는 205점,
공대가 230점, 약대가 260점, 의대는 아직 없었다..
봐, 약대 빼고는 다 고만 고만힌 애들이잖아. 그런데 왜 같은 학교 내에서도
서로 자존심 내새우고 철없이 감정 싸움을 하느냐는 말이지..
옆에서 킥킥웃는 원주의 에스대나, 와이대 원주 분교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한데, 니들도 만만찮은 댥*가리 이시잖아요.. 웃지마..
점수 니들 스스로가 잘 알잖아.. 수 십년간 점수 똑같은 것도 잘 알잖아..
뭐가 부끄럽다고 점수를 숨길려고 하고, 점수 공개에 분개하느냐는 말이다..
연세대, 고려대 앙숙 이듯이, 꼭 고만 고만한 것들끼리, 점수 따져서 자존심
싸움하지..
타 대학도 점수는 틀리지만 위에서 언급한 동 종합대 내, 단과 대학별
성적비율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점수차 별로 안나는, k대 자연대생들이 나를 농대 출신이라고 무시하는건
나쁘고, 고득점의 서울대 의대생이 나를 무시하는 것은 괞찬다는게 아니다..
점수를 떠나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겸손해지라는 말을, 94년 95년도에
나하고 같이 학교 다녔던, 젊은 95학번까지의 자연대 학생들에게 하는거다..
학교 다닐때는 내 앞에서 k대 자연대생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겠지만,
졸업하니까 어때? k대 자연대가 아직도 대단해 보이는지 묻고싶다..
그땐 학생의 신분이었으니까, 자연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집단심리로 나를
무시하고 미워했겠지만, 이젠 사회인 이니까 진실을 말할수 있잖아...
대학시절 전공 살려서 사회생활 하는 사람 몇 프로 안돼잖아..
----학생시절, 그 자부심이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같은 사고에서 나온,
옹졸한 자부심인지 이젠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반성하겠지만, 너희들도 반성해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