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으로 티 없는 아침해를 맞이하고 싶다.===

qwerty200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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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제발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요. 정치하는 사람들도 정신을 차린 거 같고,

 

기업의 사람들도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은 것 같다. 이렇게만 나간다면 길거리의 많은 실업자들도 줄 것 같고,

 

TV화면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사람들의 노기에 찬 얼굴도 보지 않게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무슨무슨형 비리라는 부정부패도 우리의 신문에서 사라지고 선량한 시민들이 세금 내는 것을 억울해 하지 않게 될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해에는 제발 어느 어느 지역의 시민들이 선거 때 투표 잘못했다고 손가락을 잘라서 바다에 띄우겠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이 시중에 떠돌아다니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새해에는 지난해 보다 사업이 더욱 잘 되기를, 아들 딸 들이 입학시험에 합격하기를 처녀 총각이 좋은 배필 만나 시집장가 잘 가기를, 연만

하신 집안 어른들이 더욱 건강하시기를 군에 간 내 아들이 무사히 복무 마치고 어른 되어 돌아오기를 바라는 그런 일상적인 소원들로 충만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은 소원으로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따르고서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願)을 세우고 그 원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것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는 각오를 가지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의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을 입안하는 지도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만 집단 이기주의의 세찬 욕망을 떨쳐버릴 용기가 필요하다 나라를 생

각하지 않고 자기나, 자기 집이나,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정치인을 응징할 수 있는 민주 시민적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새해에는, 소원을 세워봤자 필요 없더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고 우리 모두 간절한 소원을 세우자. 그리고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힘을 한데 모으자. 아직도 새해가 돼 봤자 그게 그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나에게,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소원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서 원을 세우고 그 길을 위해 매진하자.

 

그래서 다음 해의 첫 날에 산에 오르고 바다를 찾는 우리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울 수 있도록 꿈을 갖자. 
 

분주하게 한 해를 보냈지만 돌아보니 특별히 한 일이 없다.

 

욕심만 가득 채웠다가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회한만 허망하게 쏟아 놓고 말았다.

세월은 왜 이렇게 바삐 달음박질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저만치 와 있고, 앞을 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어제의 내일 앞에 서 있다.
하루 한나절 먼지처럼 작은 입자로 날개를 나풀거리다 더 이상의 삶도 잠깐 스쳐지나는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하루살이가 느끼는 하루라는 시간이나 사람이 느끼는 백년이라는 시간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루살이의 일생 속에도 탄생과 성장과 소멸의 과정이 있다. 백년이 하루일 수 있고 하루가 백년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종착점에 서면 허무함의 크기는 같다. 그렇게 허공 중에 떠돌다 사라지는 바람처럼 세상 속에 한 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지만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 아름다움이 가까이 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새해가 찾아 오는 것처럼 말이다.

책상 위에 딱 한 장의 캘린더를 남겨 놓고 있다. 지난 열한 장의 나날 속에 담긴 시간들이 섬마을의 불빛처럼 뜸뜸이 깜박이고 있다. 지난 초엔 동갑내기 처남이 세상을 등져 남아 있는 혈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좀체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의 돌연한 떠남을 아무도 예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설악산 가을 단풍의 뚝뚝 떨어지는 다홍빛 향연이며 계곡의 은어 낚시 동반 등 어쩌면 그렇게 예감하지 못한 이별잔치이었을까. 이후 50여 일 만의 이별은 나에게 벼랑 끝에 떨어지는 돌멩이 하나가 되어 망연자실하게 하는 참담함을 안겨 주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왜 이리 아옹다옹 거리며 살았을까. 그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여 한참을 울었다. 모든 의미의 시작과 끝은 무엇을 남기는 것인가.

내일이면 이 나이에도 오늘보다 상큼한 일들이 나를 찾아와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뭔가 성과를 기대할 탑도 쌓지 않았으면서 내게 기쁨이 와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늘 틀에 박힌 삶 속에서 일탈을 꿈꾸는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글쎄, 내년엔 큰 아들이 혼인을 하여 튼실한 손자아이라도 내 품에 안겨 준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듯 싶다. 하지만 문제는 큰 아들 녀석이 아직 여자친구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지 않아 내 기대가 이루어질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인연이란 하늘이 미리 점지해 두었다가 때가 되면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고 하지만 이제 서른이 넘은 아들의 색시감이 어떤 처녀일까 기대하게 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몫이라고 하기에 더욱 그런 모양이다. 가끔 두 아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시작할 새 삶이 새해 아침의 싱그러움처럼 늘 푸른 가슴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화애로움의 출발이었으면 하고 소원하고 있다.

친구 하나가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줄이고 요즈음 무리에서 벗어나 일찍 일찍 귀가하고 있다. 이제 백일을 갓 지낸 손자녀석 얼굴이 보고 싶어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득문득 아기의 웃는 모습이나 우는 모습까지 눈에 밟혀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아기가 할아버지를 한참 바라보며 옹알이를 할 때는 할아버지를 알아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백일 지난 아기가 엄마도 아닌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대단한 손주 사랑이 아니겠는가 싶다.

과연 나도 그 친구처럼 좋아하는 술 담배도 끊고 손자의 재롱에 빠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친구만의 유별한 애착이 아니라고 한다.

아들의 혼인이 하루라도 앞당겨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 생명의 분신인 아들, 그 아들의 분신인 손자가 소중할 것임엔 분명하다.
한 해를 접는 달력 앞에 서서 나를 닮은 새 생명이 새해 첫 날의 태양처럼 내년엔 내 품에 안겨질 수 있기를 욕심 부려본다. 보내고 맞는 것은 무엇일까.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한 해의 끝에 서서 다시 지난 내 삶의 전부를 돌아본다. 손에 쥔 것이 없다. 보이는 건 아들자식 둘 뿐이지만 그들 역시 내 행동 반경 안에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자식들이 펼쳐나갈 세계를 지켜보며, 그들이 나의 그림자임을 대견해 할 것이다.
머지않아 맞이할 새해의 의미도 그들 속에 있다는 걸 부인하지 못한다. 지난 일년 동안 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이별의 아픔을 겹겹이 맞이했었다. 보내고 맞는 우리의 삶의 끝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어떤 이유에서건 태어나 한 평생을 살게되지만 살아온 세월 속에서 지워야 할 것들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듯 말끔히 정리하고 빈 마음으로 티 없는 2003年아침해를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