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따듯했다. 오늘 바람이 불며,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다. 고기압이 북쪽에서 등고선을 긋고 내려온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대문을 잠그러 현관을 나섰다. 집옆 도토리 나무가 앙상하게 가지를 들어내 놓고 빽빽히 서 있었다. 지난가을 수많은 열매를 떨구어 동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도토리나무다. 지금도 그 남은 열매가 바닥에 뒹구는 걸 보니 여간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새삼 감탄스럽다. 도토리는 흉년에 잘 달린다는 속담을 읽은적이 있다. 아마 작년 수해를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닌지 도토리 나무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이란게 그대로 두면 다 제 몫을 하는데도 사람은 그 자연을 더 괴롭히며 인간이 살기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 길을 내고 숲을 없앤다. 길이 생기면 사람들은 더 넓게 다니고 싶고 더 편하게 다니고 싶어한다. 내가 사는 시골산길을 가다보면 산업쓰레기들이 널려있다. TV는 물론 냉장고며 문짝 부서진것 유리조각 스티로폴 같은 것들을 그곳에 길이 있는걸 어찌알고 갔다 버렸을까? 어렸을 때 유리조각을 하나 주어다 창호지를 뚫고 문살틈에 발랐다. 추운겨울에 밖을 내다 보려면 문을 열지 않고도 볼 수 있어 유리조각 하나면 안방의 창문 가운데를 뚫고 붙여놓은 집을 부러워 했던 기억도 있다. 밧데리로 충전한 TV를 보러 부잣집 마당에 모여드는 동네사람들을 위해 마루에 보물처럼 자리잡은 TV를 보다가 밧데리가 나가면 화면이 줄어들다 꺼지기 일 수 였다. 그 흑백 TV의 아쉬움을 보는듯 산길 숲속에 버려진 TV를 보며 세월이 빠름을 직감했다.
한참을 서서 싸늘한 겨울 공기를 마시고 들어왔다. 밝은 겨울달이 키큰 참나무가지에 걸렸다. 나는 가지에 걸린 달을 좋아한다. 그 모습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모른다. 혼자 뜬 달 보다 어우러진 가지위에 걸린 달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밸런스를 유지하고 여유롭다. 바람이 부는 가지는 일렁이면서도 그 달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을 내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시간이 가면 나무는 달을 놓아준다. 아쉽지만 혼자만 걸리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에게 인계하는 배려의 몸짓처럼 보인다. 사람도 그와 같이 제 좋아하는 것을 갖으려 노력한다. 갖으면 언젠가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듯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유하며 즐기다 언젠가 제 임자를 찾게끔 놓아 주어야 한다. 가끔 사무실 진열장에 진열된 골동품 도자기며 훌륭한 수석을 바라보다가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던 그들의 임자가 늙어가는 것을 한탄한다. 그것들을 소유할때는 정말 늙지 않을줄 알고 물불 가리지 않고 소유에만 욕심을 부렸다. "다 소용이 없어...저걸 제 임자를 잘 만나야 할텐데.." 사무실을 찾아오는 지기들에게 이야기하며 내가 사는 방법과 방향의 변함을 알린다. 얼마나 소유하기위해 많은 열정을 쏟았는지 모른다. 소유란게 그 시간의 한계를 갖고 있기에 만일 내 아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금파리와 돌덩이에 불과 할것이다.
일찍 욕심을 버렸어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욕심의 과함으로 실패한 것들이 너무많다. 그러나 내 운명이 그것밖에는 유지하지 못하게 타고 태어났다고 자위 하지만 가끔 밤잠을 못이루며 안타까워 한다. 그 안타까움도 또한 과한 욕심이리라... 버릴줄 아는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살수있다는 어느 스님의 책을 수없이 읽고 남에게 수백번의 이야기를 전했으면서 나자신은 그 욕심을 진작 버리지 못하였다. 그게 사람사는 모습일지언정 이제 딱 한가지 다가온 문제만을 해결하면 놓으리라고 겨울달이 비치는 거실 창문앞에서 아내에게 약속하고 다짐한다. 나 역시 그렇게만 된다면 더 세월이 가기전에 아내와 전국에 있는 사찰과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라 맘먹는다. 그 또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 바램마저 꺾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듯하여 가냘픈 아내의 허리를 보며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바람소리는 달빛을 물결처럼 흩어지게 한다. 나뭇가지가 서로 부댓기며 소리내는 것을 듣는 행복도 고향의 달빛 때문이다. 겨울달빛이 유난히 밝은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이 추운 기온으로 맑아져 바라보는 눈이 깨끗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월 보름이 아마 한달 정도 남은듯하지만 저달이 기울고 다시 만월이 되면 온동네 산위에 청정한 마음으로 올리는 횃불놀이가 펼쳐질 것이며, 침체된 나라의 경기를 살리고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에 소원을 빌고빌수 있도록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육십 몇억원의 복권을 탄 사람처럼 국민 모두가 한가지 복이라도 골고루 받아 모두가 희망가를 부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 아마 달그림자에 제눈속으로 달려드는 그 무엇이 있었나보다. 오늘 바라본 겨울달은 한번 더 삶을 관조하게 하고 나 스스로를 참으로 다시 반성하게 해주었다. 세월에 맞게 소유하다 조금씩 더 버림으로 떠날 때 아주 홀가분해 질 수 있다는 진리를 말없이 보여준 겨울달은 지금도 창문을 두두리며 지나간다. 달을 보며 원함이 있다면 다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만 해달라고 바랄뿐이다.
40방의 여러님들도 오늘같은 밤이 오면 알싸한 밤공기를 마시며 맑고 밝은 달빛을 한번 쯤 보게되길 바란다.
홀로 바라보는 겨울달
몇일 따듯했다.
오늘 바람이 불며, 기온이 내려간다는 예보다.
고기압이 북쪽에서 등고선을 긋고 내려온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대문을 잠그러 현관을 나섰다.
집옆 도토리 나무가 앙상하게 가지를 들어내 놓고 빽빽히 서 있었다.
지난가을 수많은 열매를 떨구어 동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도토리나무다.
지금도 그 남은 열매가 바닥에 뒹구는 걸 보니 여간 많은 열매를 맺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새삼 감탄스럽다.
도토리는 흉년에 잘 달린다는 속담을 읽은적이 있다.
아마 작년 수해를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닌지 도토리 나무가 예사롭지 않았다.
자연이란게 그대로 두면 다 제 몫을 하는데도 사람은 그 자연을 더 괴롭히며 인간이 살기 편한 것만을 추구한다.
길을 내고 숲을 없앤다.
길이 생기면 사람들은 더 넓게 다니고 싶고 더 편하게 다니고 싶어한다.
내가 사는 시골산길을 가다보면 산업쓰레기들이 널려있다.
TV는 물론 냉장고며 문짝 부서진것 유리조각 스티로폴 같은 것들을 그곳에 길이 있는걸 어찌알고 갔다 버렸을까?
어렸을 때 유리조각을 하나 주어다 창호지를 뚫고 문살틈에 발랐다.
추운겨울에 밖을 내다 보려면 문을 열지 않고도 볼 수 있어 유리조각 하나면 안방의 창문 가운데를 뚫고 붙여놓은 집을 부러워 했던 기억도 있다.
밧데리로 충전한 TV를 보러 부잣집 마당에 모여드는 동네사람들을 위해 마루에 보물처럼 자리잡은 TV를 보다가 밧데리가 나가면 화면이 줄어들다 꺼지기 일 수 였다.
그 흑백 TV의 아쉬움을 보는듯 산길 숲속에 버려진 TV를 보며 세월이 빠름을 직감했다.
한참을 서서 싸늘한 겨울 공기를 마시고 들어왔다.
밝은 겨울달이 키큰 참나무가지에 걸렸다.
나는 가지에 걸린 달을 좋아한다.
그 모습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모른다.
혼자 뜬 달 보다 어우러진 가지위에 걸린 달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밸런스를 유지하고 여유롭다.
바람이 부는 가지는 일렁이면서도 그 달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을 내미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시간이 가면 나무는 달을 놓아준다.
아쉽지만 혼자만 걸리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무에게 인계하는 배려의 몸짓처럼 보인다.
사람도 그와 같이 제 좋아하는 것을 갖으려 노력한다.
갖으면 언젠가는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영원한 것은 없듯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소유하며 즐기다 언젠가 제 임자를 찾게끔 놓아 주어야 한다.
가끔 사무실 진열장에 진열된 골동품 도자기며 훌륭한 수석을 바라보다가 그들을 사랑하고 아끼던 그들의 임자가 늙어가는 것을 한탄한다.
그것들을 소유할때는 정말 늙지 않을줄 알고 물불 가리지 않고 소유에만 욕심을 부렸다.
"다 소용이 없어...저걸 제 임자를 잘 만나야 할텐데.."
사무실을 찾아오는 지기들에게 이야기하며 내가 사는 방법과 방향의 변함을 알린다.
얼마나 소유하기위해 많은 열정을 쏟았는지 모른다.
소유란게 그 시간의 한계를 갖고 있기에 만일 내 아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을 사금파리와 돌덩이에 불과 할것이다.
일찍 욕심을 버렸어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욕심의 과함으로 실패한 것들이 너무많다.
그러나 내 운명이 그것밖에는 유지하지 못하게 타고 태어났다고 자위 하지만 가끔 밤잠을 못이루며 안타까워 한다.
그 안타까움도 또한 과한 욕심이리라...
버릴줄 아는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살수있다는 어느 스님의 책을 수없이 읽고 남에게 수백번의 이야기를 전했으면서 나자신은 그 욕심을 진작 버리지 못하였다.
그게 사람사는 모습일지언정 이제 딱 한가지 다가온 문제만을 해결하면 놓으리라고 겨울달이 비치는 거실 창문앞에서 아내에게 약속하고 다짐한다.
나 역시 그렇게만 된다면 더 세월이 가기전에 아내와 전국에 있는 사찰과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기라 맘먹는다.
그 또한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 바램마저 꺾기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듯하여 가냘픈 아내의 허리를 보며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바람소리는 달빛을 물결처럼 흩어지게 한다.
나뭇가지가 서로 부댓기며 소리내는 것을 듣는 행복도 고향의 달빛 때문이다.
겨울달빛이 유난히 밝은 것은 아마도 우리의 마음이 추운 기온으로 맑아져 바라보는 눈이 깨끗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정월 보름이 아마 한달 정도 남은듯하지만 저달이 기울고 다시 만월이 되면 온동네 산위에 청정한 마음으로 올리는 횃불놀이가 펼쳐질 것이며, 침체된 나라의 경기를 살리고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에 소원을 빌고빌수 있도록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다.
육십 몇억원의 복권을 탄 사람처럼 국민 모두가 한가지 복이라도 골고루 받아 모두가 희망가를 부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가 달을 보고 짓는다.
아마 달그림자에 제눈속으로 달려드는 그 무엇이 있었나보다.
오늘 바라본 겨울달은 한번 더 삶을 관조하게 하고 나 스스로를 참으로 다시 반성하게 해주었다.
세월에 맞게 소유하다 조금씩 더 버림으로 떠날 때 아주 홀가분해 질 수 있다는 진리를 말없이 보여준 겨울달은 지금도 창문을 두두리며 지나간다.
달을 보며 원함이 있다면 다만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만 해달라고 바랄뿐이다.
40방의 여러님들도 오늘같은 밤이 오면 알싸한 밤공기를 마시며 맑고 밝은 달빛을 한번 쯤 보게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