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와 8학군 아들 이야기.

강남2006.06.07
조회566
김강남씨는 결혼후 지난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까지 강북의 어느 동네에서 살다가 아들인 김학군 군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아무래도 자식교육은 강남 8학군에서 시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까지 살던 정든 강북집(2억원)을 팔고 저축해둔 예금을 털어서 3억5천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여 강남구 대치동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한 분이다.

그리고 김강남씨는 L 그룹 계열사에 다니는 연봉 6500 정도의 샐러리맨이며 그의 아들 김학군 군은 이제 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등학생이 되었다.

김강남씨는 요즘 지난 7-8년간의 생활을 반추보곤 한다. 무척 힘든 생활이었다. 회사에서 자신이 받는 월급이 평균적으로 보면 적지 않은 액수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들 하나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매달 200만원에 이르니 그 돈을 감당하기가 무척 벅찬 세월이었다.

게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직업이나 수입 그리고 재산규모가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월한 것이어서 김강남씨 자신이나 가족들은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열등감을 간직하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하여 그이는 인간마음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신의 수입이 대한민국 평균인 수입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고 남들이 다들 갖고 싶어한다는 강남아파트를 갖고 있음에도 심연을 후비는 complex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김강남씨는 자신의 아파트 값을 생각할 때 마다 회심의 미소를 짓곤 한다. 그것만 생각하면 사교육비로 자신을 그렇게도 힘들게 한 아들녀석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비록 아들놈의 학교성적이 들인 공에 비해서 턱없이 못 미치는 것이어서 속상하기는 하지만 그 아들녀석 교육문제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강남부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는지도 모르지.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혹은 학교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직장동료와 학교친구들이 강남 사는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치 않고, 정부에서 '강남', '강남'할 때 마다 죄인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더욱이 대학에 다닐 때 '민중'을 되뇌고 다녔던 자신의 옛모습을 생각하면 무거워지는 마음 가눌 길이 없지만, 그래도 어쩔 것인가.

월급쟁이인 자신이 언감생심 15억을 넘어서 20억 자산가가 될 수 있었겠는가. 강남부자가 됐는데 그런 값싼 도덕적 부채감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쩌면 그 정도의 사회적 비난은 내가 그간 벌은 부의 대가로 캄프라치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아이 교육문제로 이곳에 온 것이니 적극적 투기꾼도 아니질 않는가. 김강남씨는 그러면서 자신을 위로하곤 하였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회사일이다 이런 저런 모임이다 해서 정신없이 몇 주를 보내다가 모처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날이다. 그런데 아들놈이 부산한 모습이다. 강북에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롤러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이윽고 아들놈은 밖으로 나갔고 집에는 마눌님과 자신만 남았다. 그래서 단 둘이서 외식을 하기로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해질녁이 되었다. 길가 가로수의 신록이 아름다웠고 살갗에 부딪히는 바람도 처녀속살처럼 보드랍게 느껴졌다.

"여보 양재천에 산책이나 갈까." "그래요."

양재천에는 인근 아파트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모두들 여유롭고 넉넉한 표정의 사람들이었다. "도심 속에 이런 개천이 있다니 그때 이사오길 너무 잘했어. 암 그렇고 말고." 김강남씨가 이렇게 말하자, "이런 것 생각하면 15억이 뭐야 30억은 돼야지 암요."하고 마눌님이 맞장구를 쳤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놈이 와 있었다.

"롤러스케이트는 잘 탔니?" 아버지가 물었다.

"예.." 아들놈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그 친구 이름이 뭐였지. 아 "이강북"이었지.

"예, 맞아요"

"그 친구 아직도 강북에 사니"

"예, 아직 그때 우리 살던 그 아파트에 산데요"

"공부는 어떻대"

"원래 머리가 좋은 아이였잖아요. 지금도 늘 1등 한 대요."

"다행이구나. 하지만 '강북'이라서..."

"그런데, 아빠 그 친구가 좀 이상한 말을 했어요."

"무슨 말".

다음은 아버지 김강남씨와 아들 김학군 군의 대화내용이다.

아들: 자기 아버지한테서 강남사람들은 모두 부동산투기꾼이라고 들었대요. 그러면서 아버지도 투기꾼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직장에 다닐뿐 투기꾼이 아니라고 했지만 영 찝찝해요. 아빠 제 말이 맞지요. 아빠 투기꾼 아니지요.

아버지: 그래. 아빠는 투기꾼이 아니다. 네가 보다시피 회삿일로 바쁜데 투기꾼 할래도 할 틈이 없지 않니. 그 친구 아버지가 강남집값이 워낙 많이 오르니까 화나서 그랬을 것이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좋지 않은 심보다. 사촌 논사면 배아프다더니 원..

아들: 허긴 그래요. 우리 엄마 아빠 늘 힘들게 사시는데 투기꾼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맞아요. 그런데 말이에요 아빠! 제가 집에 돌아와서 '부동산투기'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한 번 찾아 봤어요. "시가(時價) 변동에 따른 차익(差益)을 노려서 하는 매매 거래"라고 되어 있더군요. 그렇다면 우리집 살때와 지금 가격의 차이가 얼마나 돼요?

아빠: 아빠가 이 집 살 때 3억 5천만원 들었으니 한 11억원 정도 난다.

아들: 그렇다면 불과 6-7년 사이에 11억원을 벌은 셈이군요. 물론 이와 같은 시세차익을 노리고서 집을 샀던 것은 아니었지요.

아버지: 그럼. 너도 알다시피 널 이곳 8학군지역 학교로 보내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거잖아.

아들: 그건 알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돈을 번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그렇지 않고 이곳 강남사람들만 그런 방법으로 돈을 모은 다면 다른 지역사람들이 강남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아버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니. 아버지가 이 집을 사서 번 돈을 뱉어낼 수도 없는 일이구.

아들: 그러면 아빠께서는 지난 번 정부에서 보유세 올린다고 하니깐 왜 정부욕을 했어요. 제생각에는 그것 당연한 것 같은데..

아버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갑자기 많이 올린다니깐 화가 나지 않겠니. 우리 집에 돈을 쌓놓고 있는 것도 아니구.

아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그 친구가 그러는데 지방에는 1억도 안되는 집도 많다고 하던데 우리는 재산이 그 분들보다 15배나 많으니 세금 많이 내는 것 당연하고 형평에도 맞잖아요. 게다가 평소 아빠께서는 저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집 재산 대부분은 '성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잖아요. 물론 엄마 아빠가 성실하게 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아버지: 그래 네 말이 맞다. 대한민국이 계속 이래서는 안될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너와 이야길 하다 보니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 집 팔고 다른데로 이사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렸을 적 살던 그 동네도 한 번 생각해 보겠다. 빚을 내서라도 내야될 세금 모두 낼 생각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고가주택의 경우 보유세금을 무겁게 매기지 않으면 더 오를 것이라는 말은 맞는 소리다. 이런 집을 보유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야 사람들이 집을 내놓을 것이고 그래야 집값이 떨어질 것이니..

사실 그간 아빠도 집값이 올라서 좋기는 하였다만 마음은 무거웠다. 이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돈 때문에 그런 마음을 모두 잊어 버렸다.

이 집을 처분한 후 새로 집을 마련하고도 돈이 좀 남으면 남는 돈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야 겠다. 그때 집값이 내려가서 차익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아들 이제 많이 컸구나. 아빠는 오늘 아들 덕분에 옛날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찾을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아들: 뭘요. 저도 남들의 질시어린 시선을 받는 강남부자 아빠보다 저 어렸을적 늘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셨던 그런 아빠가 더욱 좋아요.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