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결과를 달리 읽을 수 없나?

지방20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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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이래서 좋다. 선거를 해야 유권자의 위력이 확인된다. 수많은 유권자들의 의지들이 실체가 되어 거대한 무게로 정치판을 강타할 때 더욱 그렇다. 잘 나가던 정치인들이 하루아침에 묵사발이 되기도 하고, 어떤 정치인은 날개 하나를 더 얻는 것과 같은 과실을 취하기도 한다. 5.31 지방선거는 끝나고 여당 당의장은 보따리를 쌌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표정 관리에서부터 내년 대선에 대한 주판알 굴리기로 한껏 고조된 분위기다.

이번 선거가 준 충격은 크다. 그러다보니 언론 보도가 홍수를 이룬다. 선거결과에 대한 기사들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선거결과를 논하는 그 많은 기사들이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여당 참패의 원인과 제 1야당의 승리에 대한 원인분석, 설명이 대동소이하다. 여당이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것이다. 야당은 잘 해서 승리한 것이라기보다 여당이 너무 잘못해서 반사이익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표출한 '의지'가 과연 무엇일까

  지방선거 결과를 달리 읽을 수 없나?     ▲ 31일 열린우리당 개표상황실에서 정동영 의장, 김한길 원내대표, 김근태 최고위원 등 당직자들이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창길 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여당의 패인에 대해서 가닥이 잡혀 정리가 되어가는 추세다. 민주당과의 분당이라는 배신행위, 호남 푸대접, 서민 경제 파탄과 부동산 정책 실패, 주한미군 문제나 한미 FTA 추진 등에서 보인 정체성의 혼란 등이 지지층의 이반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나 분석들이 어떤 조사와 검증 과정을 거쳤는지 알 길은 없다. 정치 분석가들이나 비평가들이 평소 자신의 소신을 이번 기회에 다시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치밀한 조사를 거듭한 결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 그르다 가릴 수도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때는 언론이 이런 저런 견해를 다 전달해주면 좋다. 그러나 모든 공식매체의 보도 방향이나 내용이 거의 동일하다. 내로라하는 정치학자나 사회학자,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비슷해서 그럴까? 선거 결과에 대한 설명들이 유사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매체를 접하다 보면 어쩐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전부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언론은 제 4부다. 제 목소리도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여러 가지 해설이나 설명이 나올 수 있다. 하나의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대중 미디어가 잘 짚지 않은 점을 살피고자 한다.

첫째, 이번 선거에 여당이 참패한 것은 당연하다는데 동의하지만, 그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개혁과 과거 청산, 자주성 문제 등에서 시민사회를 분통터지게 하는 일을 곧잘 저질러 왔다. 그런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진보세력들은 여권에 등을 돌렸다. 여기까지는 현실이다. 그래서 야당이 승리한 것이 아니고 여당이 패배한 것이라는 평가도 일리가 있다. 야당에 대한 질책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압승한 야당이 참여정부 출발 이후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를 비판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제1야당은 그 동안 승리를 자축할 만한 정치적 실적을 쌓은 것이 있는가? 그들은 여권의 개혁적 조치에 대해 발목잡기로 일관한 측면이 있다.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제1 야당의 부적절한 행위는 개혁을 약속하고 실천하지 못한 여권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여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다. 여권이 오만과 무능으로 탄핵 당한 것이라는데 그러면 개혁 발목 잡기로 올인 한 한나라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국민은 지난 90년대 전후 실시된 대소 선거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왔다. 그 선거 결과는 전체 사회의 민주화, 복지 증진, 남북통일 노력 등에 기여하는 쪽이었다. 97년 대선은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일부 수구언론의 집요한 대통령 만들기를 좌절시킨 것이다. 그것은 2002년 대선에서도 재연되었다.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이 국민들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주역들이 국민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한나라당 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국민의 선택은 매우 현명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표출한 의지는 과연 무엇인가? 개혁에 대한 피로감인가, 아니면 개혁을 더 잘하라는 채찍인가? 제 1야당이 개혁 발목 잡기를 잘해서 표를 몰아준 것인가? 어떤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를 고민하는 논객이나 언론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둘째,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를 살펴보면, 국민은 지방정치가 아닌 큰 정치판을 주시 하고 표를 주었다는 점이다. 이 또한 국민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국민 다수가 그런 식으로 상황을 판단한다는 것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이번 선거는 정당 선거였다는 특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향성은 중앙정치를 최우선시 하고 지방정치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중앙정치에 대한 심판, 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이다.

유권자들이 중앙정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유는 왜일까

  지방선거 결과를 달리 읽을 수 없나?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31일 저녁 8시40분경 서울 염창동 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로 나왔다.  ⓒ이창길 기자    지방정부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들의 인물, 그들이 내놓은 정책은 판단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왜 유권자들이 중앙정치를 최우선시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인가? 유권자들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나 일부 언론의 잘못된 보도 등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언론이 지난 선거 기간 동안 후보자의 인물 검증이나 정책 검증에 열심이었는데 그것이 전혀 안 먹힌 것은 왜 인가? 언론 스스로 그런 점은 진지하게 짚고 넘어갈 일이 아닌가?

셋째,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대중매체들은 여권이 공중 분해될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여권이 완전히 파탄 났으며 정계개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럴까? 여당은 원내 제 1당이다. 지방정부가 할 일이 있듯이 국회의 영역도 따로 있다.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태산 같다. 여권은 국민에게 공약한 개혁을 완성하려면 갈 길이 멀다.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반성은 하되 국회의원의 책무까지 망각해서는 안 된다. 망각한다면 국회는 존재 의의가 없다. 국민을 배신하는 꼴이 된다. 국회의원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정 등에서 보이는 태생적 한계를 쉽게 극복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내일의 대안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정치권은 잔머리 굴리지 말아야 한다.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 진정 역사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행동하고 난 뒤 깨질 수밖에 없다면 그 때 장렬히 깨져야 한다. 거기에 살 길이 있다. 여권이 좌고우면하면서 이것저것 챙기려 꼼수를 부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국민은 이런 모습에 염증을 내는 것 아닐까? 여당은 여당답게, 야당은 야당답게 해야 한다. 그러나 여야 불문하고 지켜야 할 일이 있다. 선거 때 공약한 것을 잊어먹거나 국민을 배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에 드러난 교훈은 여러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정치인은 할 말만 하고 해야 할 행동만 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하게 갈등 전선을 형성해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은 하지 말자. 유권자는 현명하다. 수구세력과 수구 언론이 아무리 엇박자를 놓아도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대세를 좌우하지 못했다. 이런 점을 읽지 못하고 수구 꼴통들과 타협하면서 개혁 지지 세력을 실망시킨다면 게도 구럭도 다 잃는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이런 점을 일깨운 준엄한 경고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