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 제 >-2

네시사십오분..2006.06.10
조회591

 


민석은 오랜만에 유민이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그때 미처 못빌리고 나왔던 비디오를 볼까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집에 다시 가기가 싫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비디오가게 아가씨를 보는게 두려웠다. 그때 그녀를 처음 봤을때의 느낌은 아직까지 민석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민석은 확실히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느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내는 게 왠지 두려웠다.


-형 왔어요?


언제나처럼 유민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즘 잘 지내냐?

학교는..


-방학한 지가 언젠데요..


-벌써?


-대학교는 일찍 방학한다구요..

다 잊었어요?


민석이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이거 이번달생활비다..


-됐어요..안받을래료. 저 지금 아르바이트 하고 있어서 생활비며 학비며 충분히 벌 수 있어요..


-하루종일 아르바이트 하고 언제 공부할래?


-형 정말 왜그래요..왜이렇게 나한테 잘해줘요.


-몰랐어? 투자하는 거야..너 나중에 이용해먹을려구..

아~ 배고프다.


민석은 라면을 먹기 위해 창가에 마련된 자리로 향했다.


-또 그소리..

벌써 5년째에요..

도대체 언제 날 이용할건데요?


그러면서 유민은 민석이 좋아하는 라면을 뜯었다.

그때 손님이 들어왔다고 문위의 종소리가 알려왔다.


-어서오세요..어? 누나..


-아~ 배고프다…라면 하나 끓여 줄래?


-알았어요..기다리세요..

저기 멋있는 남자분 있죠? 옆에 앉아서 얘기라도 나누시던가..


-뭐야? 어디어디?ㅋ


연희는 장난으로 유민의 말을 받아쳤다. 비디오가게를 차리고 나서부터 줄곧 연희는 이편의점의 단골이었다. 유민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6개월전부터 둘은 친남매처럼 지내왔다. 하지만 유민에게 민석과 같은 형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잇었다.

연희는 장난스레 그쪽의 남자를 보는 척 했지만, 정작 그 남자가 얼마전에 왔던 이상한 남자라는 것을 알게되자 왠지 반가운 맘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때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했던 행동하며 그사람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갔던 일..또 그남자의 눈빛..! 연희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그때처럼 민석은 연희의 말을 씹은채 쳐다보기만 했다.


-저 건너편의 비디오가게 주인인데요..

저번에 오셨다 그냥 가셨잖아요..


-근데요?


엥? 막상 그렇게 물으니 연희는 할말이 없어졌다.


-아니..전 그냥…


무안함에 치를 떨고 있는데 다행히 유민이 라면을 들고 왔다..


-어? 둘이 아는사에요?

난 또 둘 소개시켜 줄려고 햇는데…잘됐네


갑자기 민석이 벌떡 일어섰다.


-유민아..이따 거기에서 보자..


-어? 형 벌써 가게요? 라면은요..이렇게 끓여 왔는데..


-됐어..나간다..


-형..


유민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민석은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연희는 그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인간 도대체 뭐야..


갑자기 연희도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어? 누나..어디가요? 라면은요..



#


저만치 걸어가는 민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그냥 가게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다리는 이미 그 생각을 무시한채 제멋대로 민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연희는 그때처럼 민석의 팔을 붙잡고 그를 억지로 돌려세웠다.


-이봐요…사람 정말 이렇게 무안줘도 되는거에요?


민석은 또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그녀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봐요..내가 말하고 있잖아요..듣고 있어요?


순간 연희는 민석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민석의 반대편 손이 서서히 그의 옷을 붙잡고 있는 연희의 손위로 포개어 졌다.

그의 체온이 닿자 연희의 가슴도 왠지모르게 뛰기 시작했다.


-다신...날 함부로 돌려세우지마..

다시는.............


그리고 민석은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

- 내일 1시 대한 건설 이회장과의 점심 약속....


박실장의 보고를 받고 있던 영훈은 갑자기 이상한 기운에 사로 잡혔다.

영훈은 고개를 돌려 주위의 사물들을 살폈다.


‘이 한기는 뭐지?


자신이 평소에 가장 아끼던 박제에 시선을 둔 순간 영훈은 그 박제의 머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분명 하늘은 등지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던 박제였는데 그것의 머리가 창문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다.


-박실장…지금 봤어?


-네? 뭘 말입니까?


-저 독수리 박제말이야..고개를 움직였어


-네?


박실장도 영훈을 따라 그 박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박제는 예상대로 그대로 서있었다.


박제가 움직일리 없잖아..살아있는게 아닌데..


영훈의 말을 잠시나마 믿었던 자신이 한심하게느껴졌다.


-사장님..괜찮으십니까?


-나 분명 봤어..저 박제가 움직이는 걸..

박실장 내말이 안믿기지?

나도 안믿겨..

아~ 아냐..내가 잘못봤나부다..


-요즘 일을 너무 무리해서 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봐..좀 쉬어야겟어.

근데…

민석이 지금 어디있나?


-아까 전화왔었는데 김사장 만나 일보고 곧바로 집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전화해볼까요?


-아니..됐어..

나가봐


-네..


‘내가 잘못본거겠지..


영훈은 이미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은 불안감을 애써 몰아내고 있었다.



#


일치감치 문을 닫은 연희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생수와 라면을 사기위해 또다시 편의점에 들렸다. 거기에는 이미 교대시간을 넘긴 유민이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누나? 부탁이 있어요..


-어? 뭔데..


-나 지금 어떤 사람이랑 공원에서 농구하기로 약속했거든요..

근데 제 교대하는 애가 오늘 못나올꺼 같다고 해서 제가 대신 일을 해야할 것 같아요..

누나가 거기 나가주면 안돼요?


-나 농구 못해..

그냥 못나간다고 전화해..


-지금 벌써 가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형 모처럼만에 쉬는건데..약속을 깨기가 좀 그래요.

그 형 워낙 외로운 사람이라 지금 누군가가 필요하다구요.


-형? 혹시 아까 낮의?


유민이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연희는 왠지 그사람을 다시 보고 싶었다. 솔직히 아까부터 줄곧 그 사람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의 말투하며..강렬한 눈빛. 그리고 그 흔들림..

연희는 최대한 티나지 않게 인심쓴다는 듯이 말했다.


-할 수 없지..니가 그렇게 원한다니.

거기가 정확히 어딘데..



#

한적한 공원이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사실 여기에서 깡패들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많아 밤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았다. 혹시 그 깡패가 저사람? ㅋ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연희는 그를 찾았다. 저기 유민이 가르쳐준 위치에 농구를 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민석이 분명했다. 와이셔츠소매를 걷어올리고 열심히 골대를 향해 날아오르는 그의 모습을 연희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진짜 멋있단 말이야..말투만 좀 고치면..

하지만 그것도 매력이지..

연희는 언제나 처럼 하이톤의 목소리로 민석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연희를 보자 민석의 표정이 순신간에 놀라움으로 변했다.


-여긴 어떻게..


-유민이가 대신 나가달라고 해서요..


-유민이 이자식..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연희가 재빨리 다가가 전화기를 낚아챘다.


-그러지 말아요…유민은 다 당신생각해서 그런건데..

당신이 외롭게 시간 보낼까봐, 나보고 같이 놀아주라고 했단 말이에요..


-미친자식..


-우리 재밌게 놀아요..네?


민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하! 코웃음을 쳤다.


-우리 둘이..여기에서 뭐하고?


'이제야 대화다운 대화를 하게 되는군..ㅋ'


연희는 손으로 농구공을 가리켰다.


-농구하고 놀아요..

내가 자유투라면 좀 자신있으니까 우리 내기할래요?

각각 5개씩 넣기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 부탁들어주기..

어때요?


-무모하군.. 그리고 난 당신한테 부탁할 게 없어..당연히 내가 이길건데 그럼 소용없잖아..


-왜이렇게 거만해요.. 당신 내 자유투 실력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난 당신한테 부탁이 아주 많다구요.


-좋아! 방금 당신한테 바라는게 딱 한가지 생각났어…

내가 이기면 내앞에서 영원히 사라져주는 것! 어때?


-이겨나 보시죠..


연희는 거칠게 공을 민석에게 던졌다. 민석의 입가에 오랜만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공을 한 두어번 바닥에 튕겼다.


-게임룰을 다시 짜는게 좋겠어..

우리 둘다 똑같이 5개씩 넣는건 불공평해.


-그럼 나보고 6개 넣으라구요? 당신보다 잘하니까?


-하하 재미있군…

당신은 넣을필요 없어..나만 넣을께. 5개중에 내가 하나라도 못넣으면 당신이 이긴걸로 하지.

어때?


-당연히 좋죠. 아싸 당신한테 무엇을 부탁하지?


연희는 벌써 이긴 것처럼 좋아했다.

민석은 어이없어하며 공을 던졌다.

정말 그의 농구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공은 아무런 장애물없이 시원하게 들었갔다.

민석의 얼굴에 여유만만한 미소가 퍼지고 그와는 반대로 연희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연희는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운이 좋군요.


-운? 이건 실력이야..


그리고 민석은 두번째 슛을 날렸다

마치 골대가 공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공은 안전하게 들어갔다.

연희는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셋째골..넷째골이 주저없이 골대에 곶히자 연희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대론 안돼.뭔가를 해야돼..


민석은 리듬을 깨지 않으려고 연희쪽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정신을 집중하며 골대를 향해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연희가 갑자기 민석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하는 거지? 비켜…


-아니..당신은 골 넣어요.내가 여기있다고 못 넣는거아니잖아요…


-그러다 튕켜 오르는 공에 맞을텐데..


민석은 상관 안하고 다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앞에 연희가 있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그위로 공을 던지려는데..

갑자기 연희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민석의 정신을 흩트리기 위해서 연희가 쓰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개다리춤부터…웨이브..어설픈 꺽기..온갖 코믹한 춤은 다 추었다. 아무리 안보려고 해도 안볼수가 없었다. 민석은 자세를 다시 내렸다.


-뭐하는거야?


-당신 정신 교란시키는 거에요..


-이런다고 내가 실수 할 것 같애?


-그럼 어디 해봐요..


연희는 이제 아예 노래까지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사람은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골대를 향해 공을 던지려 하고 한 여자는 그 앞에서 미친듯이 춤을 추고..

정말 웃지못할 광경이었다.

드디어 민석이 공을 던졌다. 이번엔 연희도 숨을 멈추고 그공을 쳐다보았다. 전과 다름없이 골대를 향해 신나게 돌진하던 공은 갑자기 목표지점이 현저히 좁아진걸 느꼈다. 결국 그 공은 무참히 튕켜져 나갔다.


-앗싸!


연희는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었고.. 민석은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좋아..당신이 이겼어. 원하는 게 뭐야?


-어…

그때 우리가게에서 못빌렸던 비디오 빌려가기. 내가 골라주는 걸로..


민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런식으로 영업하나..좋아! 하나 빌려주지..


-그리고 나랑 같이 봐요…


-뭐?!!



#


그날 이후로 그들은 함께 비디오를 보는날이 많아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