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한 동거인

동거남200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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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에게 저의 고민거리를 상담하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2005년 10월 말 경에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교육방침과, 그다지 화목하지 않은 가정사에 의해서 현제 우리 가족들은 전부 따로따로 흩어져 살고 있지요. 솔직한 말로 이게 가족인지 남인지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서로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그런 가정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기 보다는 뭐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르겠군요. 결과적으로,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독립이라고 할까요? 뭐라고 할까요, 이런 걸 독립이라고 한다면 전국의 독신자 여러분께서 저에게 맹렬한 비판을 보내실까 두렵습니다만, 어쨌거나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 경, 이사할 방을 구하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돌아다니던 중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찾아냈습니다.

10여 평에, 월 30만. 보증금 없음.
비싸다면 비싸고, 적당하다면 적당한 금액이었고 나름대로 근처 지리도 마음에 들었기에 이곳으로 정하자고 마음먹은 저는 그때까지 듣고 있지도 않는 말을 떠벌리던 중개업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이 집에 벌레가 많이 나오나요?”

네, 사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벌레 때문에 상당히 고생이 많았습니다.
개미라는 조그만 친구들은 같은 방을 쓰기에는 상당히 매너가 없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자고 있는데 내 몸을 타고 넘어가는 것만큼은 참기 힘들었으니까요.

중개업자는 그 질문을 듣자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짧은 시간이었고, 제가 ‘이상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그의 표정은 이미 원래의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지요.

“솔직히 벌레가 없다고는 말씀을 드릴수가 없네요.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따듯한 화장실 보일러 쪽에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곤 해요."

바퀴벌레라. 최소한 개미보다는 나을 것 같았습니다. 바퀴벌레라는 녀석이 번식력이 좋고 징글맞기 짝이 없으며 심지어 물거나 귀에 들어가는 짓도 서슴지 않는 고약한 녀석이라고는 하지만 개미라는 난봉꾼 떼거리 보다는 나았으니까요.

중개업자가 솔직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근처의 교통사정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기에 저는 미련 없이 계약을 했습니다. 뭐 영 못살겠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무보증이란 참 편리한 놈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사를 하기로 결정한 날.
저는 친구들을 자장면 한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로 매수하여 이삿짐을 옮기게 했습니다.
용달차를 부르는 것에 비하면 거의 거저먹는 수준으로 비용이 들지 않았기에 저는 무척이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야, 뭐라고나 할까. 역시 친구들은 잘 사귀고 볼 일입니다. 하하하.

이삿짐도 나르고, 집들이도 할 겸 모인 친구들과 거하게 술 한 잔을 걸쳤습니다.
그리고 새벽 무렵에는 모두 골아 떨어져서 아직 치우지도 않은 방바닥에 엎어져 시체 놀이를 시작했지요.

얼마나 잤을까, 저는 문득 화장실에 불이 켜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화장실을 갔다가 깜빡 잊고 불을 끄지 않은 것이었겠지요. 무시하고 자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영 그 불빛이 저의 잠을 계속해서 방해했기에 저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막 화장실 불을 끄려던 참에 저는 못 볼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

누가 그런 광경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 변기위에 사람만한 바퀴벌레가 앉아있더군요.

그것도 한 손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리라고 해야 할까요. 일단 사람의 손과 비슷한 역할로 쓰이고 있었으니 손이라고 합시다. 한 손으로는 신문을,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변기에 앉아 있는 거대한 바퀴벌레를 보고 있자니, 누군가 럭스 한 통을 머릿속에 들이 부은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눈을 껌뻑이며 몇 번이고 눈을 비벼보았습니다.
그런 저를 바라보며 거대한 바퀴벌레는 담배를 슥 빨아들이더니

“퀴룩--”
그다지 고막의 건강에 안녕을 주기는 힘들 듯 한 소리를 내며 내 쉬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보던 그 바퀴벌레의 시선은 이내 관심이 없어졌다는 듯이 자신이 들고 있던 신문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신문의 1 면에는 이런 기사가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 연00 500-1 402 호에서 동료 58마리 때죽음! 원인은 인간이 뿌린 살충제로 추정되며 경시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추정중.

입을 딱 벌린 채 그 말도 안 되게 자연스런 광경을 얼어붙은 채로 바라보고 있는 저와, 그런 나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채 연신 담배만 뻑뻑 태우며 신문을 보고 있는 거대한 바퀴벌레. 만약 세스코 직원이 이런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질 무렵이, 자고 있던 내 친구 중 한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아 불 꺼, 좀! 잠 좀 자자 빌어먹을 자식아!"

친구의 목소리에 저는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화장실 안을 보자..

여전히 거대한 바퀴벌레가 담배를 태우며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거, 보통 공포 영화 같은데서 보면 이런 타이밍에서는 없어져 줘야 하는 것 아니었나? 하는 얼빠진 생각을 하며, 화장실 안쪽을 향해 바보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저기, 불 끄라는데요.”

뭐랄까, 내가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바퀴벌레는 슥 고개 (그게 고개일까요?) 를 들어 저를 바라보더니 앞다리 한쪽으로 툭툭 신문을 처 보였습니다.

그 행동으로 추측하건데 그 바퀴벌레는 ‘신문 읽고 있는 거 안보이냐’고 하고 싶었음이 틀림없겠지요. 그리고 그는 이어서 앞다리로 문을 가리키곤 휙휙 저어보였습니다.

그냥 문 닫으라는 소리겠죠?

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조심스럽게 화장실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기 직전, 문틈으로 엿본 바퀴벌레는 다시 ‘퀴룩-’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담배연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금 전까지 엎어져 자던 곳 까지 돌아와서 자리에 눕고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락스가 부글대고 있었고, 이미 하얗게 탈색까지 진행되고 있었기에 오래 생각을 하진 못했습니다.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말았지요 뭐.

다음날, 이미 아침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시간대에 깨어난 저는 아직까지 엎어져 자던 친구들을 두들겨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욕설 섞인 투덜거림을 내 뱉으면서도 친구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져라 하품을 했습니다.

근처 음식점에서 찌개류를 시켜 아침 겸, 점심을 때우며 문득 어제 본 것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니, 친구들은 찌개를 먹던 자세 그대로 저를 노려보며 험악한 말투로 으르렁댔습니다. 뭐라더라, 밥 먹을 때 꼭 그런 밥맛 떨어지는 개 꿈 이야기를 해야겠느냐, 라는 것이 이야기의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그 주제를 치장하는 단어들이 죄다 ‘견자犬子’ 라느니 ‘Shipbaby' 같은 고운 울림을 가진 소리였던 지라 저는 그냥 헤헷 웃고는 더 이상 그 주제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지요.

밥 먹고는 뭐 바로 밖으로 나가서 또 먹고 놀고 마시고 노래방 가서 되도 않는 소음 공해를 펼치고.. 말 안 해도 아실법한 그런 전형적인 패턴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도 새벽에 본 것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고요.


그리고 그대로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저는 그때에서야 잊고 있었던, 혹은 잊으려고 노력했던 사실에 대한 재발견을 해야만 했습니다.

화장실 안에서 본 그거, 대체 뭐였지?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었고, 술에 취해서 헛걸 본 것이라고 보기에는 전날 먹은 술의 양이 너무나도 적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닫혀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때까지 불이 꺼져 있지 않았던 화장실.
그러나 그 어딜 둘러봐도 간밤에 보았던 거대한 바퀴벌레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 에이, 역시 꿈이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화장실 불을 끄고 문을 닫던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다른 집 보다 조금 이상하리 만큼 큰 배수구에서 튀어나와 좌우로 흔들리고 있는 거대한 더듬이였습니다.







몇 주일 쯤 지났을 무렵 저는 그 거대한 바퀴벌레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린 채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대부분 혼자 사는 남성분들이 그렇듯 방은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지만, 저의 견해는 극히 소수를 제외하곤 남자란 생물이 혼자 살게 되면 처참하기 짝이 없는 혼돈을 만들어낸다 는 겁니다.

당연히 방에는 하나 둘씩 바퀴벌레들이 늘어났고..
그리고 어느 날 밤중에 목이 말라 불을 킨 저는 끔찍한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

싱크대에 미루어 놓은 설거지. 음식물들이 말라붙은 그릇 위에 까맣게 덥혀있는 까맣고 맨들맨들한 등딱지가 매력적인 수많은..!!

“------------!!!!”

되도 않는 고함을 지르며 집 밖으로 뛰쳐나가, 그대로 근처의 마켓에서 살충제를 3통 가량 사 온 저는 들어오자마자 싱크대와, 싱크대 밑의 벽 사이에 미친 듯이 살충제를 뿌려댔습니다. 2통째를 뿌렸을 무렵 싱크대 안쪽에서 무엇인지, 수없이 많은 바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싶더니..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싱크대와 벽 틈에서 기어 나와 배를 까뒤집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놀란 나머지 소리도 못 지르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네, 그렇습니다. 이사 온 첫 날 보았던 그 커다란 바퀴벌레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와 바닥에서 경련하는 바퀴벌레들을 안아들었습니다. 그 크기를 고려해 볼 때, 안아 들었다기 보다는 바닥에서 콩을 주워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그 바퀴벌레는 그대로 화장실 안으로 날듯이 기어.. 아니, 뛰어 들어가서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 죽어가는 바퀴벌레들을 씻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현실 감각이라는 친구의 가슴에 기관총을 5 분 동안 쏴재끼는 것 보다 효과가 좋은 광경이었고 결과적으로 현실감이란 충직한 친구는 피를 토하며 가슴 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보통 바퀴벌레 약을 한번 맞으면 아무리 물에 씻긴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는 짓이지요.
결과적으로 약을 맞은 바퀴벌레들은 물에 둥둥 뜬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커다란 바퀴벌레는 어쩐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아, 세상의 고명한 곤충학자들을 불러다 바퀴벌레에게도 어깨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기묘하기 짝이 없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었던 저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저어..”

그러자, 제 목소리가 신호라도 된 듯 커다란 바퀴벌레는 저를 휙 돌아보더니만

“퀵! 퀴륵, 퀵퀵퀵!! 퀴르르르르륵!!"

삿대질을 하며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었습니다.
그리고는 불타는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직 다 쓰지 않은 살충제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힘껏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더군요.

“퀵!"

어쩐지 콧방귀와도 흡사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바퀴벌레는 쾅!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쩐지 나쁜 짓을 한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려 (그리고 공포에 시달리며) 그날 밤은 제대로 잠들 수 없었습니다.


그 후로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저는 어디선가 저는 보는 듯 한 수많은 눈길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도, 일을 볼 때도 말입니다. 솔직히 신경이 쓰여서 변비에 걸릴 지경입니다. 그때부터 그 커다란 바퀴벌레가 내 눈 앞에 나타난 적은 없지만, 가끔씩 제 멋대로 켜지는 화장실의 불이나,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열리거나 닫히거나 하는 화장실의 문이나, 피우지도 않는 상표의 담배가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직도 제가 살고 있는 집의 화장실에는 그 커다란 바퀴벌레가 있다는 것은 분명 한 것 같습니다.

아, 이런. 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또 화장실문이 거칠게 닫힙니다. 하긴 저라도 다른 사람이 뒤에서 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겠지요.

그러니 이만 줄일까 합니다.
다들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2006년 비오는 6월 14일,

거대한 바퀴벌레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 어느 청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