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15화> 어린이날

바다의기억2006.06.15
조회10,559

벌써 남부지방은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침수피해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전 비만 오면 무릎이 쑤셔서 영~.

 

============================ 애늙은이가 따로 없다 =============================

 

 

오페라 사건이 있고 한달여.


그 사이 주변에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와 민아의 관계는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린이 날.


마침 시험도 끝났고 다음 공연 계획도 없던 터라


우린 예전의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나섰다.



한나 - 여기 정말 오랜만에 온다~.


유니

- 오군아,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백 밤 지나면 찾으러 올게.



오군 - 에에?



...... 같은 이유로 위의 세 사람도 따라왔다.



기억 - 모처럼의 데이트가....


한나

- 어머머? 오빠,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봉사활동은 어디까지나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마음으로 이 사회에....



유니

- 그러게 한나 너도 한 명 데리고 왔으면 되잖아.


그랬음 트리플 데이트 하는 셈 치면 될 텐데...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째 혼자 딸랑 와서 그러니.



한나 - 원조교제 그룹은 빠지시죠?


유니 - 뭐시라? 원조교제? 너 지금 말 다했어?



역시나 입구도 들어서기 전부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민아와의 오붓한 한 때를 꿈꾸던 난


일찌감치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원장님

- 아유 또 오셨어요?


어떡하나요, 매번 이렇게 신세를 지고...


오늘은 친구분들도 같이 오셨네요?



원장님의 환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간 우리.


오늘 계획은 학부모 초청수업처럼


유치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1교시.


산수 시간.



민아 - 역시 산수는 기억이가 낫겠지?


기억 - .... 무리라고 봐.


한나 - 어머, 공대생이 산수 앞에 무너지는 거예요?


유니 - 그러게.... 공대생도 별 거 아니었네.


기억 - .... 그래도 안 돼.



안된다고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결국 총대를 멘 것은 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초등학교 때 배웠던 산수책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조차 생각이 안 났던 난


공대 지망생들에게나 유익할 법한


수학 단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삼각함수의 기초? 미분법?



민아

- 덧셈 뺄셈은 할 줄 안다니까...


기억이가 곱셈을 가르쳐 봐.



기억 - 응? 곱셈?



순식간에 미분에서 곱셈으로 다운된 목표.



기억

- 음.... 토끼 한 마리가 있어요.


토끼 다리는 몇 개죠?



아이들 - 4개요~.


기억 - 그럼 토끼가 두 마리 있으면 다리는 몇 개일까요?


아이들 - ..... 8개요~.


기억 - 그렇죠, 토끼가 세 마리 있으면?


아이들 - ...음.... 12개요.



기억

- 자 지금 한 걸 살펴보면


토끼가 한 마리 있으면 다리가 4개,


두 마리면 8개, 세 마리면 12개..


이렇게 한 마리 늘어날 때 마다 4개씩 늘어나죠?


이런 게 곱셈의 시작이에요.


x개가 y뭉치 있으면 총 개수는 xy 개다 하는....



유니 - 얼씨구? 얼씨구?


기억

- .... 크흠. 네, 그럼 다른 예를 한 번 살펴볼까요?


토끼 앞발을 잘랐어요.


토끼의 남은 다리는 몇 개죠? 두개죠?


그럼 이런 토끼가 세 마리 있으면....



나름대로 적절한 예시를 찾았다 생각하며


수업을 계속하려는 순간


교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1 - 토...토끼가 불쌍해....


아이2 - 어떻게 그런 짓을....


아이3 - 으아아앙.....


민아 - 지금 애들 앞에 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나 - 다른 예를 들고 싶으면 오리 같은 걸로 바꾸면 되잖아요!


오군 - 자, 자, 잔인해....



.....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2교시 체육시간.



유니 - 기억아, 넌 잠시 빠져라.


민아 - 이번엔 제가 해볼게요.



토끼 다리 절단 파문으로 인해


위험인물로 매도되어버린 나 대신


체육수업을 맡게 된 민아.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라고 했을 만큼


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녀의 수업 진행은 몹시 순조로웠다.



민아 - 오~리!


아이들 - 꽥꽥!


민아 - 저글링!


아이들 - 케케케.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스트레칭을 하며 준비운동을 마친 그녀는


곧 뜈틀과 매트가 있는 쪽으로 아이들을 데려갔다.



민아

- 자, 준비운동은 충분히 했죠?


그럼 이제부터 뜀틀을 넘어볼 거예요.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요.


기억.... 아니다. 음....한나야?



한나 - 나 지금 치마 입었는데?


민아 - 그럼... 오군?


오군 - 저, 저, 저... 뛰, 뜀틀 못하는데요.


민아 - 유니 언니...도 치마네.


기억 - 그냥 내가 할게.


민아

- 아냐, 아냐, 기억이는 잠깐 쉬어도 돼.


오군, 그냥 한 번 해봐.


간단한 건데 뭐.



오군 - 저, 지, 진짜 모, 못하는데....


유니 - 에이, 오군아~ 갔다 오면 누나가 뽀뽀해줄게~.


오군 - 지, 진짜요? 그럼...



유니의 꼬임에 넘어가 뜀틀 앞에 선 오군.


그의 어깨는 긴장감에 얕게 떨렸고


호흡은 거칠어져 있었지만


눈빛은 강렬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오군 - 가, 가, 갑니다! 으아아앗!!!



오군은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뜀틀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당탕탕타탕! 쿠직! 털썩! 콰당탕....=


오군 - 크헉?!



발판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뜀틀에 정면충돌해 안면에 심각한 충격을 받은 뒤


반시계방향으로 한바퀴 반 돌며


무너진 뜀틀 잔해에 묻혀버렸다.



유니 - 꺅! 오군!!


한나 - 붕어빵... 진짜 아프겠다...



보통 이런 장면을 보면 웃음이 터지기 마련이지만....


과연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처박혀버린 오군의 모습에


아이들은 하나 둘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1 - 무...무서워~.


아이2 - 으아아아아앙.... 아저씨 죽었나봐....


민아

- 여, 여러분. 뜀틀은 절대 위험한 운동이 아니에요.


가볍게 손으로 짚고 앞으로 넘기만 하면 되는...



기억 - 공주, 지금 상황에선 설득력이 없어....



.....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정말 정말 힘든 일 같다.




3교시.


동화 구연 시간.


보다 못한 한나가 사태진정에 나섰다.



한나 - 오늘 들을 동화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이야기예요.


아이1 - 에~ 나 그 얘기 아는데.


한나

- 본래 같은 동화라도 읽어주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오늘 들을 백설공주 이야기는


지금까지 여러분이 들어 본 백설공주 이야기 중


가장 실감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거예요.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평소 장난기 넘치는 개구쟁이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아이들의 태클 아닌 태클도 유연하게 받아넘기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한나.


푸근함이 물씬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선


프로 동화구연사의 포스가 느껴지는 듯 했다.



유니 - 의외라는 듯.... 한나 제법이네.


민아 - 나도 이런 거 할 걸...


오군 - 미, 미, 미안해요. 저 때문에....


민아 - 아냐, 다친 덴 괜찮아?



순식간에 수업 참관자로 밀려난 우린


간만에 듣는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묘한 정취를 느끼며


짧은 감상을 주고 받았다.



이번에야 말로 아무 일 없이


완벽하게 마무리 될 것 같았던 한나의 수업.


하지만. 문제는 아주 작은 의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나

- 왕자님이 백설공주에게 입 맞추는 순간,


백설공주는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떴어요.


=아함~ 잘 잤다. 응? 여긴 어디지? 왜 다들 울고 있어요?=


백설공주가 살아나자 일곱 난장이는 서로 얼싸 안으며...



아이2 - 어? 선생님! 키스를 했는데 어떻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요?


한나 - 응? 아... 그건...



아무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제.


당연히 동화니까 살아날 거라 믿었던 이야기.


하지만, 아이들은 보다 과학적이고,


신빙성 있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한나 - 왕자님이 키스하면서, 목에 걸려있던 사과가 빠진 거야.


아이2 - 키스하는데 어떻게 사과가 빠져요?


한나

- 그러니까.... 너희도 나중에 크면 알게 되겠지만


키스라는 게 그냥 입술만 겹치는 게 아니라


이 쏴악 빨아들이는 그 흡입력이....



유니

- 얼씨구? 좋~은 거 가르친다.


백설공주의 원본에 보면


왕자님은 키스를 했던 게 아니라


시종을 시켜서 관을 가져가려 했단다.


그런데 시종이 실수로 관을 떨어트려서


그 충격으로 사과가 빠지게 된 거야.


그걸 좀 더 낭만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란다.



갑자기 19금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한나의 말을


유니선배가 진정시켰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진 후였고


끊임없는 의문들이 백설공주의 부활을 막아섰다.



아이3

- 아까 유리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럼 다 깨졌을 텐데.... 백설공주 진짜 많이 다쳤겠다.



유니

- 그, 그게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관이었단다.


그렇지? 기억아?



기억

- 에... 그러니까 풀밭이 압축계수 k인 비탄성체라고 하고


유리의 단위면적당 파단강도를 P,


낙하높이를 h라고 했을 때


유리관이 버티기 위한 최소 단면적은...



아이4- 그럼 백설공주는 사과가 목에 걸려서 기절했던 거예요?


유니 - 그렇지!


아이5 - 그럼 그래도 묻었으면 생매장이네?


아이6 - 목이 막히면 숨은 못 쉬어도 심장은 뛰지 않아?


아이7 - 난쟁이들은 그런 것도 확인 안 했나?


아이4 - 그럼 백설공주는 얼마동안 숨을 못 쉰 거야?


아이8 - 진짜. 한 2분만 숨 못 쉬어도 죽지 않아?


아이9

- 그럼 뭐야. 왕비는 잘못한 거 없네.


사과에 독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혼자 사레들려서 쓰러진 거니까...


진짜 잘못한 건 신속히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난쟁이들 아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의문과 탐구.


......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수업을 모두 마치고


원장님과 아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고아원을 나서게 된 우리.



유니 - 이야.... 진짜 힘들었다. 진이 다 빠진 것 같아.


한나 - 정말로...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민아 - 그래도 아이들 좋아하는 거 보면 행복해지지 않아요?


유니 - 질렸다는 듯.... 민아 넌 정말 애들 어지간히 좋아하는가 보다.


민아 - 네~. 너무 좋아요.


유니 - 결혼하면 몇 명이나 낳을 건데?


민아 - 음.... 가능한 많이요. 가족은 많을수록 좋은 거 같아요.


유니 - 풋.... 기억아, 들었지? 힘내야겠다...


기억 - 에? 아...네. 힘내야죠.


유니 - 어머나? 깔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