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증] 1. 깨어난 소년.

박성인2006.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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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어난 소년.


긴 잠에 깨어났을 때, 민혁은 한 대학 강단에 앉아있었다. 칠판 가득 씌여진 알 수 없는 수많은 공식들과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들... 민혁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주욱 훑어보며 멍한 두 눈을 껌뻑 거렸다. 혹, 아직 꿈이 다 깨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볼을 꼬집어보았지만, 역시나 꼬집은 볼은 따갑고 아픈 것으로 보아 꿈은 아닌 듯싶었다.

“박민혁 교수님 그러니까. 리만의 가설에서 나온 제타 함수의 정의가  1/2 s(s - 1)π-s/2 Γ(  s/2 ) ζ(s) =  1/2 s(s - 1)π-(1 - s)/2 Γ(  1 - s 2 ) ζ(1 - s)일 때 제타함수가 직선 σ = 1/2에 대하여 모종의 대칭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하고 나아가 자명하지 않은 영점들은 직선 σ = 1/2에 대하여 대칭적으로 위치해야 함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리만 가설의 논거 중에 하나이다. 는 말씀이지요?”

“아저... 그게... 하하... 에휴... 신발... 또냐...”

“예?”

민혁은 자신의 말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주위를 바라보며,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지금 것 그래왔듯 알지 모를 상황에는 기절한 척 하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서울 모 대학 병원.

이묘환은 죽은 듯 침대위로 쓰러져 있는 민혁을 바라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인턴을 막 끝내고 레지던트를 시작하며 만났던 초특급 환자가 다시금 입원했다는 소식에 혹시나 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다.

“후- 기절하지 않았다는 거 아니까. 일어나. 미치도록 상스런 드릴로 머리를 뚫어버리기 전에.”

“......”

“다시 한 번 말하는 데, 일어나. 뇌에 이상 있다고 정말 드릴로 머리에 구멍 내는 수가 있어!”

“아... 아하하하... 일어납니다. 일어나요. 거, 장난 조금 친거가지고 너무 그러시네. 한두 번 보는 사이도 아닌데…….”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더 이러는 거다 자식아...!”

가볍게 떨리는 이묘환의 목소리에 민혁이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섰다.

“세월 참 빠르네요. 청진기 하나 들고 몸을 떨 때가 어제 같은데, 이제는 환자를 협박까지 하다니. 이묘환 정말 많이컷네-”

“닥쳐 자식아!”

쿵!

헤실 웃는 머리로 내리 꽂히는 딱딱한 카르테,

민혁은 정확히 절수리를 내리친 이묘환의 카르테에 와락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환자를 이렇게 때려도 됩니까! 아- 아프네. 그것도 측면도 아니고 모서리로!”

“그러는 너는 이래도 되는 거냐! 빌어먹을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니 도움으로 논문도 잘 쓰고 박사학위에 짭짤한 대우까지 받고 잘 살고 있다만 그렇다고 니가 이러면 안 되지. 한 두 번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째야!”

“아- 거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걸. 진짜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나는 지난 번 그래, 언제였더라 1999년 화랑 이후로는 기억이 안나요. 그것도 간간히 기억이 끊.어.져.서.”

“하...!”

이묘환은 끊어져서 라는 말에 강하게 악센트를 넣는 민혁을 바라보며 어질 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세상에 누가 그 말을 믿겠냐. 너는 기억이 안 난다고 잡아 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니 정확히 12살 때부터 과학천재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저지른 일을 봐라. 대한민국 최초 최연소 미국 MIT 졸업에 석사 박사 과정까지 내놓은 논문 모두가 사이언스지에 탑으로 실렸지.”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기억을 모두 잃었잖아요. 정말 안타까운 건 순간 기억상실로 과학에 관한 모든 기억만 잃었다는 것이고요.”

“그래, 그랬지. 그 불의의 사고가 그냥 어느 날 한순간 번쩍이었다는 게 좀 수상스럽지만 말이다.”

민혁은 안경을 매만지며 말하는 이묘환을 보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하지만 사실인 걸 어떻게 해요. 다들 기억상실이라 말하고 나 역시 기억상실이라고 말하고 말았지만, 선생님은 알잖아요. 나는 기면증이에요. 이중인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것은 선생님이잖아요.”

“아아- 정정해줘. 그것으로 논문도 발표하고 대외적인 결과물을 모두 획득한 나지만, 그 것을 밝혀내고 처리한 것은 너야. 물론 본인은 기억을 못하겠지만 말이지.”

체념한 듯 내저으며 말하는 이묘환의 모습에, 민혁이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지고 보면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의 마음속 이묘환의 자리는 누구보다 컸다.

모두가 거짓이라고 믿어주지 않은 사실을 믿어주고 인정해준 단 한명의 사람이 마음에서 크지 않다면 누가 크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묘환은 싱긋 웃는 민혁의 머리를 헝클이며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물었다.

“이번, 그러니까 깨어나기 전에 수학천재라고 세상을 떠들 석하게 만든 네 녀석 역시 만나봤었다. 너는 꿈이라 말하지만, 그건 너였어. 기면증이든 다중인격이든 뭐든 간에, 내가 만나봤던 넌 다 너였어. 누구도 다라 할 수 없고 부정할 수도 부인 할 수도 없는 너 말이야.”

“아하- 이번엔 수학천재였구나. 어쩐지 깨어나서 보니까. 난생 처음 보는 곳에서 알아듣지 못할 수학공식들을 물어오더라고요. 딱, 깨어난 순간 알 수 있었죠. 또 좃댔구나... 그래서 냉큼 쓰러졌어요. 기절한척... 내 담당 의사를 믿고 말이죠.”

이묘환은 웃으며 말하는 민혁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골치 아픈 상황이지만,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저 웃음에 그런 자리를 자청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후욱- 입술을 타고 흐르는 담배연기가 병실 안으로 뿌옇게 퍼져나갔다.

“물리학, 미술, 건축학,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의학에 그리고 이젠 수학까지... 네 기면증이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너였다면 일찌감치 약 먹었다.”

“어... 지금 그거 자살 하라는 말?”

“아니, 수면제 먹고 자란 말이다. 기면증으로 천재되게.”

툭 어깨를 치고 나서는 이묘환을 보며 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해봤는데 그거 그냥 잠만 오지 잘 안되더라고요.”

“아아- 그래. 그게 됐음 니가 지금 여기 있을 리가 없지. 후- 그럼 나는 기자들한테 간다. 문 잠그고 잘 쉬어라. 거기 카르테 있지? 그 안에 니 일기장 껴놨으니까.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오케이- 그럼 저녁때나 봐요. 맛있는 거 사오는 거 잊지 말고.”

이묘환은 돌아선 등 뒤로 가벼운 손 인사와 함께 손에 쥔 담배꽁초를 튕겼다. 병실 문을 나서면, 분명 꿀을 쫓는 벌떼처럼 그들이 몰려들 것이다.

기자. 

그 골치 아픈 직업인들과의 리얼 사기 쑈가 점점 익숙해져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