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고전의 전반을 보고 이번 월드컵은 한국에서 일찌감치 파장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역전으로 꺼진 불씨가 되살아났다. 월드컵 원정경기에서, 그것도 유럽에서 첫승을 따낸 기쁨에 취한 군중의 물결 속에서 우리 벤치를 찾아와 정다운 인사를 나누는 토고선수들을 보노라니 좀 머쓱해진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토고는 참 묘하게 생겼다. 왼쪽에는 가나, 오른쪽에는 베냉, 위로는 부르키나 파쏘, 이렇게 삼면이 빈틈없이 포위된 채 겨우 아래만 기니 만(灣)으로 열린 작은 애벌레의 형국을 띤 이 나라는 원래는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1차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통치되었는데, 통일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영국령 토고가 1956년 가나로 편입되면서 프랑스령 토고만 1960년 독립을 선언한다. 서구제국주의의 착종하는 질곡 속에 이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독립했지만 탈식민 이후의 역사 또한 기구했다.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에야데마는 토고를 여행자와 투자자의 천국으로 재설계했으나 1980년대 초의 불황으로 경제는 파탄의 구렁으로 빠져들었다.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토고, 독재자 에야데마의 아들이 여전히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이 나라에서 축구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가장 유력한 탈출구다. 그 집합적 열망이 아프리카 축구의 약소국이었던 이 나라를 2006년 월드컵에서, 검은 돌풍의 주역 세네갈 카메룬 등을 제치고 아프리카 대표로 들어올린 것이다. 전국민적 지지 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한국축구가 이런 토고를 이겼다고 뽐낼 일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축구가 전쟁이라지만 토고에 대한 승리만을 부추기는 언론과 그에 일방적으로 호응한 우리들 모두 깊이 자성할 일이다. 승부는 승부대로 받아들이되 토고에 대한 이해는 그것대로 심화하는 계기로 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선수단과 응원단 들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나라를 불문하고 아프리카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토고도 코트디부아르도 앙골라도 가나도 각 나라가 아니라 검은 아프리카를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아프리카인으로서 식민주의와 식민주의 이후의 질곡 속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현실 너머 찬연하게 동틀 아프리카의 미래를 탐탐북의 생명력으로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다. 가난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이 아프리카적 연대에 비하면 아시아 나라들은 아시아에 대한 충성이 거의 결핍이다. 이 현상은 특히 동아시아에 우심하다. 한국은 일본의 승리를 기원했을까? 일본은 한국의 승리를 바랐을까? 일본과 호주의 경기 내내 한국응원단은 거의 일방적으로 호주를 지지했다. ‘한국을 위해 기필코 일본에 이기겠다’고 공표한 히딩크의 영리한 언론플레이는 그렇지 않아도 일본을 응원하지 않을 구실만 찾던 한국인들에게 마음껏 반일감정을 발산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경기 후 일본인들이 한국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에 저주를 퍼붓는 격렬한 반응보다도 나는 침묵하는 일본인의 소리가 더욱 안쓰럽다.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이 혼혈 속에 태어난 2세, 이 소수자들이 겪을 압박감도 그렇지만, 한일 사이의 건강한 시민연대를 위해 노고한 일본인 친구들이 직면한 당혹감을 짐작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지난 월드컵 공동개최로 싹튼 상호배려의 단초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인가? 동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탈아입구(脫亞入毆)에 안달하는 못난 형국이 아니라 함께 축구의 변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프리카처럼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풍경의 월드컵이 그립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호주전 이후 한국 안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한 직후 일본언론이 서운함을 애써 잊고 한국축구를 칭찬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지난 월드컵 때 한국축구의 성공을 시기하며 온갖 비난을 퍼붓던 중국언론도 한국축구를 ‘아시아의 자랑’이라고 특필했다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또한 북한이 한국축구의 행진을 방영한 것도 큰 진전이다. 핵문제에 이어 미사일까지 겹쳐 동아시아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이때, 한국축구가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의 기꺼운 자부심이 되어 지역평화 구축에 종요로운 역할까지 맡게 된다면 작히나 좋으랴.
(절대공감!!) 월드컵 속의 동아시아
월드컵 속의 동아시아
최원식(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서남포럼 운영위원장)
토고전의 전반을 보고 이번 월드컵은 한국에서 일찌감치 파장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역전으로 꺼진 불씨가 되살아났다. 월드컵 원정경기에서, 그것도 유럽에서 첫승을 따낸 기쁨에 취한 군중의 물결 속에서 우리 벤치를 찾아와 정다운 인사를 나누는 토고선수들을 보노라니 좀 머쓱해진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토고는 참 묘하게 생겼다. 왼쪽에는 가나, 오른쪽에는 베냉, 위로는 부르키나 파쏘, 이렇게 삼면이 빈틈없이 포위된 채 겨우 아래만 기니 만(灣)으로 열린 작은 애벌레의 형국을 띤 이 나라는 원래는 독일의 식민지였으나 1차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분할통치되었는데, 통일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영국령 토고가 1956년 가나로 편입되면서 프랑스령 토고만 1960년 독립을 선언한다. 서구제국주의의 착종하는 질곡 속에 이처럼 기이한 모습으로 독립했지만 탈식민 이후의 역사 또한 기구했다.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에야데마는 토고를 여행자와 투자자의 천국으로 재설계했으나 1980년대 초의 불황으로 경제는 파탄의 구렁으로 빠져들었다.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토고, 독재자 에야데마의 아들이 여전히 대통령으로 군림하는 이 나라에서 축구는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가장 유력한 탈출구다. 그 집합적 열망이 아프리카 축구의 약소국이었던 이 나라를 2006년 월드컵에서, 검은 돌풍의 주역 세네갈 카메룬 등을 제치고 아프리카 대표로 들어올린 것이다. 전국민적 지지 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한국축구가 이런 토고를 이겼다고 뽐낼 일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축구가 전쟁이라지만 토고에 대한 승리만을 부추기는 언론과 그에 일방적으로 호응한 우리들 모두 깊이 자성할 일이다. 승부는 승부대로 받아들이되 토고에 대한 이해는 그것대로 심화하는 계기로 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선수단과 응원단 들이 인상적이다. 그들은 나라를 불문하고 아프리카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다. 토고도 코트디부아르도 앙골라도 가나도 각 나라가 아니라 검은 아프리카를 대변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의 아프리카인으로서 식민주의와 식민주의 이후의 질곡 속에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현실 너머 찬연하게 동틀 아프리카의 미래를 탐탐북의 생명력으로 간절히 기원하는 것이다. 가난 속에서 더욱 아름다운 이 아프리카적 연대에 비하면 아시아 나라들은 아시아에 대한 충성이 거의 결핍이다. 이 현상은 특히 동아시아에 우심하다. 한국은 일본의 승리를 기원했을까? 일본은 한국의 승리를 바랐을까? 일본과 호주의 경기 내내 한국응원단은 거의 일방적으로 호주를 지지했다. ‘한국을 위해 기필코 일본에 이기겠다’고 공표한 히딩크의 영리한 언론플레이는 그렇지 않아도 일본을 응원하지 않을 구실만 찾던 한국인들에게 마음껏 반일감정을 발산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경기 후 일본인들이 한국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 축구에 저주를 퍼붓는 격렬한 반응보다도 나는 침묵하는 일본인의 소리가 더욱 안쓰럽다.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인, 이 혼혈 속에 태어난 2세, 이 소수자들이 겪을 압박감도 그렇지만, 한일 사이의 건강한 시민연대를 위해 노고한 일본인 친구들이 직면한 당혹감을 짐작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지난 월드컵 공동개최로 싹튼 상호배려의 단초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인가? 동아시아 각국이 경쟁적으로 탈아입구(脫亞入毆)에 안달하는 못난 형국이 아니라 함께 축구의 변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프리카처럼 서로를 격려하는 아름다운 풍경의 월드컵이 그립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호주전 이후 한국 안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들린다. 프랑스와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한 직후 일본언론이 서운함을 애써 잊고 한국축구를 칭찬했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지난 월드컵 때 한국축구의 성공을 시기하며 온갖 비난을 퍼붓던 중국언론도 한국축구를 ‘아시아의 자랑’이라고 특필했다니 더욱 감사한 일이다. 또한 북한이 한국축구의 행진을 방영한 것도 큰 진전이다. 핵문제에 이어 미사일까지 겹쳐 동아시아에 먹구름이 끼고 있는 이때, 한국축구가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의 기꺼운 자부심이 되어 지역평화 구축에 종요로운 역할까지 맡게 된다면 작히나 좋으랴.
출처 : 서남포럼 www.seonamfor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