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강

은하철도200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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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강



김씨는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며 시무룩한 표정이다. 텔레비전에서는 오늘 밤 열 시에 한국팀이 16강 진출을 놓고 격돌한다며 하루 종일 떠벌렸다. 대학 다니는 큰 녀석은 고등학생인 여동생과 어제부터 축구이야기만 했다.

“오빠는 어디로 거리응원 나갈 거야?”

“그거 알아서 뭣해? 어른이 어디를 가는지 미성년자가 물으면 못 써요.”

“칫.”

텔레비전에서는 모두 서울광장으로 모이자는 광고가 나왔다. 김씨는 코를 찡긋하고는 재떨이를 끌어당겨 담배를 물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깟 공하나 차고 뜀박질하는데 대한민국사람 모두가 목을 맨 느낌이었다.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서 노닥거리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짜증이 났다. 김씨는 슬며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혼자 앉았다. 하얗게 매달린 담뱃재가 떨어지려고 했다.

“영애야, 재떨이 가져오너라.”

딸은 축구이야기에 넋이 나갔는지 대답이 없다. 김씨는 벌컥 화가 났다.

“야, 이 녀석아, 재떨이 가져오란 말이 안 들려?”

거실이 잠깐 조용해지더니 딸이 후다닥 일어나서 재떨이를 가져왔다. 재떨이를 탁자위에 놓으며 슬슬 눈치를 보던 딸은 얼른 거실로 물러갔다. 아이 둘이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아버지의 심사가 불편한 것을 눈치 챈 애들은 주방을 슬쩍슬쩍 훔쳐보다가 스르르 밖으로 사라졌다.

김씨는 시계를 올려다봤다. 여덟시가 넘었다. 쌀을 꺼내어 씻어서 솥에 넣고 가스렌지에 올렸다. 그리고 아까 사다놓은 소고기와 무를 썰어 냄비에 넣었다. 마늘을 다져서 넣은 다음에, 다듬어 놓은 파를 칼로 썰었다. 탁탁탁 썰어가다가 손가락 끝이 뜨끔했다. 날카로운 칼에 손끝이 베인 것이었다. 빨간 피가 흘러나왔다. 손가락이 아파야 할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그 붉고 붉은 피가 가슴에 턱 걸리며 찌르르 심장이 아려왔다. 얼른 텔레비전 아래의 서랍장을 열어서 약상자를 꺼내었다. 텔레비전에는 온통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김씨는 또 코를 찡끗했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삿대질하면서 중얼댔다.

“붉은 악마? 임마, 이게 진짜 붉은 악마다. 짜식들 배때기 부르니깐 맨날 저 지랄이야.”

잠시 후에 김씨는 솥을 살짝 열어봤다. 뜸은 다 들었지만 누룽지가 누르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국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김씨는 다용도실을 열어서 먼지가 뽀얗게 쌓인 상을 꺼냈다. 물로 상을 닦아내고 행주로 말끔히 훔쳤다. 아까 시장에서 사온 나물반찬과 부침개, 나박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가지런히 놓고, 밥과 국을 퍼서 나란히 상에 올렸다. 시계를 올려보니 열한시가 넘었다. 김씨는 어흠, 헛기침을 하고는 상을 들고 안방으로 갔다. 창가 아래에 상을 놓더니 책상서랍을 열어서 아내의 사진을 꺼냈다. 휴지로 액자를 쓱쓱 문지르더니 물끄러미 사진을 내려다봤다. 아내는 독사진이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소요산에 둘이 놀러갔을 때에 자기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제사상에 올랐다.

아내와는 재혼이었다. 아이 둘을 낳은 첫 아내는 아이가 어렸을 때에 집을 나갔다. 고등학교 다닐 때에 좋아했던 오빠라고 했던가,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인지 얼굴도 모르지만 하여튼 아내는 첫사랑에 죽고 못 사는지 그 잘나빠진 첫사랑을 찾아 애들을 버리고 가출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쪽으로 간 아내가 또 아이를 낳았다고 했다.

“씨팔, 애새끼는 잘 까.”

다른 남자의 애까지 낳았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김씨는 모두 글렀다는 판단이었다. 이제는 훨훨 날아간 년이라고 침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땅에 퍼부어댔다.


아내가 도망간 후에 아이 둘을 데리고 쩔쩔 매던 김씨는 조선족 여자를 파출부로 썼다. 이름이 상미였다. 그녀는 친구를 따라 한국에 와서 미싱사로 일년간 일했지만 반년 치 봉급을 받지 못했다. 체류기간이 지나자 그녀는 오류동 쪽방에 기거하면서 일자리를 찾았으나 불법체류였기에 기껏해야 노래방이 전부였다. 술 취한 남자에게 희롱당하며 몸까지 팔아야 하는 수치를 견딜 수 없어서 중국으로 돌아가려다가 마침 김씨에게 연결되었던 것이었다. 김씨에게는 불법체류 하던 여자라서 봉급을 적게 줘도 되기에 좋았고 그녀는 적은 봉급이지만 돈 안들이고 숙식이 해결되었기에 편했다. 그녀는 부지런했고 아이 둘을 잘 돌봤다. 상미는 중국에서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한 명 있었고, 중국연변의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달에 50만원의 봉급을 타면 그녀는 친정집에 그 돈을 몽땅 붙이는 모양이었다. 주변에서는 알뜰하고 바지런한 그녀를 아예 데리고 살라는 사람도 있었고, 한국에 온 조선족여자는 돈만 알기에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 그녀와 김씨는 같은 또래였다. 어느 날 약간 술에 취한 김씨가 그녀를 안방으로 불렀다.

“저...... 이런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런 몸가짐으로 상미는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김씨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돈을 벌면 중국으로 꼭 돌아가야만 하나요?”

상미는 어렴풋이 느껴지던 김씨의 뜻 모를 눈빛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네...... 중국에 아이도 있고 그러니 가야디요.”

단호한 듯한 상미의 말투에 김씨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하여튼 여기 계시는 동안만이라도 제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김씨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미 없는 자식을 바로 곁에 두고 키우기도 안쓰러운데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고 멀리 떠나온 상미의 가슴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 상미를 볼 때마다 김씨는 떠난 아내에 대한 울화가 치밀었다.

“첫사랑 좋아하네. 저렇게 사는 여자도 있는데 오라질 년 같으니, 여기저기 새끼나 까고 다니고, 흥,”

김씨는 전기공이었다. 가끔 전기공사현장에서 이틀 삼일씩 지낼 때도 있지만 상미 덕분에 애들이나 집안걱정은 없었다. 전부는 아니라도 반쯤은 아내 같았다. 누가 재혼하라고 여자를 소개하면 김씨는 도리질 치며 말버릇처럼 내뱉었다.

“대한민국 여자는 싫어.”

사실 김씨는 대한민국 여자들이 다 도망친 아내처럼 사치스럽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좀 잘 사는가 싶으니깐 별 지랄을 다 떠는 거지, 언제 제까짓 것들이 고급 화장품을 골라가며 쓰고, 차를 팡팡 몰고 다니고, 산으로 들판으로 철따라 놀러 다니고, 뭔 쇼핑인지 개핑인지 지랄을 떨었는가, 그것도 모자라서 사랑이 어쩌구, 여성의 섬세한 감정이 저쩌구, 다 필요 없는 짓이지, 앞으로는 시집도 서너 번씩 가면서 창피한 줄도 모를 거야, 이제는 대한민국 여자도 막판까지 간 거지.

이런 김씨의 생각 뒤에는 늘 상미가 자리했다. 상미에게는 옛날 우리부모 세대가 겪던 가난의 향기와 속으로 삼키는 참을성이 있었다. 신문지나 폐지를 네모반듯하게 오려서 화장지 대용으로 쓰거나, 비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꼼꼼히 다 쓰는 알뜰함, 배추나 열무를 다듬으면서 버릴 것 하나 없이 벌레 먹은 이파리 하나까지 아껴서 김칫독에 담그는 손길이 상미에게는 있었다.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상미는 김씨 옆에 앉아서 자꾸 계기판을 들여다보곤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상미는 계기판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것이 유량계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김씨가 대답하자 상미는 눈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는 휘발유가 여기까지 있었는데, 벌써 이만큼 닳았시요.”

상미는 주유소에서 십만 원이 기름값으로 지불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유량계를 조마조마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애들이 친할머니네 놀러간 날이었다. 김씨는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술이 얼큰히 올랐지만 왠지 기분은 쫙 가라앉은 상태였다. 상미는 김씨의 저녁상을 차려놓고 자기 방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목욕탕에 들어가 젖은 옷을 다 벗고 샤워를 하는데 밖에서 상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여기 밖에 속옷을 놔두었시오, 목욕 다하면 갈아 입으시라우요.”

순간 김씨의 가슴을 콱 치고 지나는 열정이 있었다. 김씨는 목욕탕 문을 슬쩍 열었다. 옷을 바닥에 놓고 돌아서는 상미와 얼굴이 마주쳤다. 김씨는 알몸인 채 밖으로 썩 나서더니 상미의 허리를 꽉 안았다. 눈이 동그라진 상미가 김씨의 가슴을 밀치며 몸을 빼려고 했다.

“에그머니, 왜 이러시오? 이러지 말라우요.”

김씨는 상미를 거실바닥에 눕혔다.

“나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소.”

“어머나, 정말 이러지 말라우요. 정말 왜 이러시오?”

“나도 잘 모르겠소.”

그러는 동안에 상미의 치마가 벗겨져 나갔고 속옷마저 김씨의 손에 걸려 아래로 내려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어머나, 진짜 왜 이러시오?”

“나도 진짜 잘 모르겠소.”

김씨는 상미의 살결이 몸에 닿자 미친 듯이 품을 파고들었다. 저항하는 몸짓과 정복하려는 몸부림이 겹치며 둘의 몸은 거실바닥을 쿵캉쿵캉 거리며 거슬러 올랐다. 그러다가 상미의 머리가 거실 끝의 화분 사이에 쳐 박아졌다. 넓은 화분의 이파리가 상미의 얼굴을 가렸다. 김씨는 그 이파리 위에다가 숨결을 토하며 상미를 정복해나갔다.

한참 지난 후 상미는 자기의 방문을 닫아걸고 울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안방에서 멍하니 밖의 빗줄기를 내다봤다. 담배만 뻐끔거리다가 상미 방 앞에 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저...... 상미씨, 저 하고 얘기 좀 해요.”

그러자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시오. 할 이야기 없시오.”

“제가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요.”

“됐시오. 들을 말 없시오.”

다음날 아침 주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에 김씨는 잠을 깼다. 밤새도록 울었는지 눈두덩이 벌겋게 부어오른 상미는 김씨를 보자 고개를 숙이며 냉장고를 열어보였다.

“여기 김치도 새로 담갔시오. 마른 반찬은 따로 이 통에 담았시오. 저는 오늘 떠나겠으니 그리 아시오.”

김씨는 상미가 떠난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휙 돌아서 자기 방에 들어가는 상미를 얼른 쫓아 들어갔다. 상미의 짐이 이미 다 꾸려져 있었다. 김씨는 털썩 주저앉더니 멍하니 상미를 쳐다봤다. 김씨는 잘못했다고 말하려 했지만 굳이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상미가 좋았을 뿐이었다. 안색이 변하며 낙담하는 김씨를 보자 상미의 가슴도 왠지 답답해왔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만 침묵을 두드렸다. 창가로 시선을 둔 상미가 조그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빨리 출근하시라우요. 내가 알아서 갈 것이요,”

김씨는 방문 앞에 앉아서 거실바닥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대답했다.

“필요 없어요. 출근 안 할래.”

상미는 여전히 반대편에 고개를 둔 채 말했다.

“하루에 15만원씩 버는데 아깝지 않아요?”

김씨는 여전히 거실바닥에 대고 말했다.

“그깟 돈이 뭔 상관이에요? 돈 벌어봐야 다 소용없지.”

상미의 벌겋게 충혈 된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역시 창밖에 대고 물었다.

“왜 필요 없시오?”

김씨는 헛험 하더니 겨우 토하듯 대답했다.

“뭐...... 사람도 가는데 돈은 벌어서 뭐해?”

상미의 얼굴에 한줄기 웃음기가 스쳤다. 슬쩍 고개를 돌려 김씨를 바라보다가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김씨의 무릎에 눈길이 고정되었다.

“근데 왜 무릎은 그렇게 다 까졌시오?”

김씨는 머뭇머뭇 대더니,

“이거...... 이거 말이요, 어제 거실에서 상미씨한테 대들다가....... 헛험”

무슨 말인가 해서 빤히 바라보던 상미가 별안간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삼켰다. 김씨는 팔을 들어 보이며 입을 삐쭉대고 말했다.

“무릎만 그런가, 팔꿈치도 이렇게 까졌는데,”

상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만 웃음을 킥킥 터뜨렸다. 벌겋게 부어오른 눈두덩 아래로 눈빛이 반짝였다. 김씨는 눈을 흘겼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웃긴......”

상미는 일어나더니 약상자를 가져와 김씨의 무릎과 팔꿈치에 약을 발라주었다. 그날 둘이서는 우산을 함께 쓰고 공원을 거닐었다. 김씨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간 상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내리는 비도 참 정겨웠다.


김씨는 향을 피우고 잔에 술을 따랐다. 오늘이 상미의 제삿날인데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아이들이 미웠다. 하기야 애들이 제삿날을 기억할리도 만무했고 김씨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비록 친엄마는 아니라도 8년씩이나 뒷바라지 하며 얼마나 속상했던 엄마인가, 친엄마라는 작자는 자기 핏줄을 키워준 여자인데도 아이들한테 전화질해서 떼년이라고 욕을 해댔다. 애들까지 버리고 떠났으면 그만이지 왜 가끔 애들한테 전화해서 집안을 들쑤시는지 몰랐다. 상에 잔을 올리고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동글동글한 얼굴의 그 어디에도 악한 구석이 없는 상미였다. 콧등이 시큰해왔다. 별안간 텔레비전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방문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어 거실에 켜진 텔레비전을 보니 한국팀이 한골을 넣은 모양이다. 김씨는 코를 찡긋했다.

“응? 한국팀이 한골 넣었구나. 동점이네.”

다시 제사상 앞에 선 김씨는 꾸벅 절을 했다. 그리고 상미가 좋아했던 누룽밥을 정성스럽게 떠와 상에 올렸다.

“이게 당신의 디저트잖소. 일부러 누룽밥을 만들었지.”

상미는 한국에서 월드컵축구경기가 벌어지던 사년 전에 간암으로 죽었다. 암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별안간 쓰러져서 병원에 가보니 이미 간암 말기였고, 진단이 떨어진지 한 달을 못 넘겼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축구경기로 발칵 뒤집혔었다. 병실에서도 환자들이 축구경기에 열중했다. 안정환선수의 헤딩슛이 상대방의 골문을 흔들자 병원에서는 일제히 함성이 터졌다.

“대~한민국”

바로 그 대~한민국소리가 터질 때 상미는 숨을 거두었다. 남들이 대~한민국을 외칠 때 김씨는 상미야~ 상미야~ 하고 통곡을 쏟아냈다. 김씨는 그때 대~한민국이 서러웠다.

“에휴ㅡ 하필이면 월드컵 때에 죽을 게 뭐람.”

엉엉 울면서 아내가 죽었다고 간호사실에 뛰어갔을 때 텔레비전에 머리를 박고 있던 간호사들은 모두 희색이 만연하여 대~한민국이었고, 의사도 역시 대~한민국이었다. 김씨는 세상에서 동떨어져 나온 느낌이었다. 자기만 아이고, 흑흑, 이고 모두 대~한민국이었다. 그 화려한 조국인 대한민국을 떠나는 상미가 너무 초라해 보여 김씨는 더욱 목 놓아 울었다.


상미는 마음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그 마음의 고통스런 열기가 간으로 몰려서 암에 걸린 것이라고 김씨는 생각했다. 김씨는 상미와 국제결혼절차를 밟아 호적에 올렸다. 제법 부부로서의 정이 들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미운 오리새끼처럼 놀았다. 아이학교의 학부형회에서도 조선족발음을 쓰는 상미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다. 애들 친구도 가끔 상미의 말투를 흉내 내며 놀렸다. 그냥 파출부로 생활할 때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어려움이 상미에게 닥쳤다. 조선족이 아닌 한국인으로서, 그것도 두 아이의 엄마노릇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파트부녀회에서도 상미의 어눌한 사투리 때문에 약간 얼얼한 여자취급을 했다. 어찌 보면 상미는 대한민국하고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아예 외국인라면 별 문제겠지만 조선족이라는 어중 띤 국적이 흉을 잡히기 일쑤였다. 아이 친엄마는 가끔 애들한테 전화해서 충동질을 일삼았다.

“무식한 중국년이 뭐를 아니? 그러기에 너희들 학교성적이 그 모양 그 꼴이지.”

애들은 노골적으로 상미를 경멸하는 친엄마의 태도를 닮아갔다. 정면으로 상미에게 대들기도 했다. 어느 날 김씨는 아이들이 친엄마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애가 들고 있는 전화기를 뺏어서 마구 퍼부어댔다.

“그렇게 똑똑한 년이 애들 버리고 도망을 가? 이 뻔뻔스런 년아. 무슨 낯짝으로 애들한테 전화 걸고 그러는 거야? 다시 또 이런 짓하면 너한테 쳐들어가서 다 뭉게 버릴 거야.”

그래도 어떻게 쏘삭댔는지 모르지만 애들은 친엄마 편이었다. 상미한테 절대로 정을 주려하지 않았다. 애들은 자라면서 더욱 거칠어져만 갔고 상미는 쩔쩔맸다. 화가 솟구친 상미가 애들을 몰아세우면 애들은 더욱 독기 어린 눈빛으로 맞섰다. 이럴 때 김씨는 애들 보이지 않게 상미에게 눈짓을 하고는 상미를 야단치는 시늉을 했다. 아무리 양해를 구하고 벌이는 쇼지만 상미의 가슴에 뭔가 턱 얹힐 때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잠자리에서 등 돌리고 누운 상미의 손을 은근히 잡아끌어 가슴에 품는 김씨였다. 등 돌린 상미의 어깨가 약간 떨려왔다. 흐느끼는 것이었다.

김씨가 퇴근하여 돌아온 어느 날 상미는 전화통에 대고 중국말로 열을 올리고 있었다. 중국에 있는 딸애와 통화하는 모양인데 상기된 그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김씨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마구 퍼붓던 상미는 인기척을 느끼고는 전화통을 놓았다. 슬쩍 김씨를 올려다보던 상미는 시선을 피했다. 뺨을 씰룩대더니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딸이 가출하여 북경으로 갔다는 말이었다. 며칠 후에 상미는 중국에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왔다. 딸을 겨우 찾아서 친정집에 데려다주고 왔다고 말하는 상미의 얼굴이 흐려보였다. 이래저래 상미는 엄마로서의 위치를 찾지 못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김씨는 상미의 손을 꼭 보듬어 안으며 약속했다.

“아이들이 모두 당신을 저버려도 내가 거둘 테니 걱정 말아.”

그 동안 자기가 관리하던 통장도 몽땅 상미에게 넘기며 엄마로서의 위신을 세워주었다. 그러나 상미는 제 명대로 살지 못했다. 죽기 직전에 고향인 연변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몸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사실 연변이 그의 국적이고 고향이었다. 아무리 동일민족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잘 산다는 대한민국이지만 상미 가슴에는 넓은 벌판과 먼 지평선을 뜨고 내리는 태양이 숨쉬고 있었다.

“못 살아도 편해요.”

이것이 상미가 자주 말하던 고향의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은 조선족인 그녀에게 괄시와 경멸만 가져왔지 아무런 포근함도 제공하지 못했다.


김씨는 제사상을 앞에 놓고 꾸벅꾸벅 졸았다. 세상에 상미만한 여자가 또 있을까, 상미가 죽은 후에 또 선을 보라고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지만, 김씨는 언젠가의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을 되풀이했다.

“대한민국 여자는 싫어.”

오십 중반에 들어서니 여자라는 존재가 낯설어지기만 했고, 여자들은 계산이 빨랐다. 어떤 여자들은 노골적으로 통장에 얼마를 넣어주면 같이 살겠다고 했다. 괜히 겉멋 들려 휘돌아 치거나 자기 늙은 나이를 전혀 생각도 못하고 인생은 오십이니, 육십부터라는 말을 들어보면 가관이었다.

“에잇, 제대로 된 여자가 어디 있어? 늙으나 젊으나 다 공주병들이지.”

김씨는 가끔 혼잣말을 이렇게 중얼거렸다. 날이 갈수록 여자들이 거칠어지고 영악해지는 느낌이었다. 차를 몰고 돈이나 펑펑 쓰러 다니라면 좋아할까, 절대로 상미의 발꿈치도 못 따라올 것 같았다. 필리핀이나 월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자들은 그저 남편과 자식 그리고 살림만 안다는데, 그것도 다 젊은 사람들의 말이다.

꼬박꼬박 졸던 김씨의 입에서 침이 길게 늘어지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입맛을 쩝쩝 다시던 김씨는 다시 꼬박꼬박 졸음에 젖어들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터진 함성에 깜짝 놀라 깼다. 한국선수가 동점골에 이어 또 안정환선수가 결승골을 넣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천둥 같은 응원소리가 터졌다.

“엉? 우리가 이겼나?”

엉거주춤 거실로 나선 김씨는 안정환선수가 두 팔을 흔들며 운동장을 뛰는 장면에 중얼거렸다.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저 짜식은 마누라가 죽을 때도 골을 넣더니, 이제는 제삿날에도 골을 넣네. 그것 참. 성질도 참 이상한 새끼야.”


상을 다 치우고 소파에 앉았던 김씨는 밖에서 들리는 함성에 고개를 들었다. 창 밖을 보니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도로 한복판을 마구 달리고 있었다.

“저 새끼들 미친 거 아냐? 뭐가 그리 좋다고 난리야?”

중얼대던 김씨는 밖으로 나왔다.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쳤고 그 박자에 맞춰 자동차는 경적을 울려댔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이라고 마구 외쳐대지만 그게 뭐란 말인가, 다 껍데기들의 공허한 소리로 느껴졌다. 혼동에 휩싸인 김씨가 머리를 갸웃대는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번호를 보니 딸한테서 온 것이었다.

“아빠, 큰일 났어요. 오빠가 경찰서에 끌려갔어요.”

정신이 퍼뜩 들었다. 딸이 말하는 경찰서로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아들은 어떤 중년남자와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들 녀석이 남의 승용차 위에 올라가서 대~한민국을 외쳤고, 그 때문에 차의 천정이 내려앉았다는 말이었다. 김씨는 차를 고쳐주겠다고 말하며 경찰관에게 선처를 구했다. 경찰관도 훈방조치로 끝내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서 마당에 나온 김씨는 옆에 따라오던 아들의 머리통을 한 대 콱 쥐어박았다.

“대~한민국이 밥 먹여 주냐, 옷을 주냐, 뭔 대~한민국이야? 이 미친 것아.”

아들이 머리를 감싸며 낑낑대자 옆에 있던 딸애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김씨는 딸애의 웃음소리에 화가 벌컥 났다. 아무리 친엄마가 아니라도 지들을 8년 동안 키워준 엄마의 제삿날인데 이것들이 뭐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상미가 죽었을 때에 간호사실을 울면서 달려가자 축구를 보던 간호사들의 신이 난 얼굴이 떠올랐다. 김씨의 주먹이 딸애의 머리통에 퍽 떨어졌다.

“너는 년아, 뭐가 좋아서 그렇게 헤헤 거려?”

애들이 서너 발자국 뒤로 쳐져서 따라오고 있었다. 김씨는 사방을 흔드는 대~한민국이 왠지 서러웠다. 그 함성이 컥컥 가슴에 얹혔다. 건널 수 없는 강이 자기를 감싸고, 그 강 건너에서 대~한민국을 낯선 사람들이 외치는 느낌이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김씨는 별안간 두 팔을 번쩍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뒤에서 딸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들려왔다. 김씨의 눈시울이 한꺼번에 붉어지며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들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