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즈 워드 이벤트 - 발단은 우리 사회의 자격지심

송민영2006.04.05
조회169

뉴스 위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4050113

 

뉴스 요약:

NFL 에서 올해의 선수인가 뭔가 하는 상을 받은 하인즈 워드가 혼혈인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놀러와 청와대 오찬까지 초대받아 노대통령과 이야기와 선물을 주고받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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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시작:

 

( "혼혈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들어있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너무 싫다. 혼혈이 아닌 사람은 그럼 "순혈"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더 적합한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글에서 계속 사용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말의 산 증인이 바로 이 하인즈 워드의 경우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 단 한번이라도 혼혈인들을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준 적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흑인 혼혈을?? 그런데 미국에서 성공하니 왜 갑자기 "한국인 워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청와대로 초청을 하고 행사를 열고 이 난리를 피우는가?

 

나는 이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워드 모자 금의환향"라는 헤드라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미성숙함이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번의 '하인즈 워드 바람'은 절대 혼혈인에 대한 관심과 온정에서 나온 것이 절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미국에 대한 자격지심의 집단적 표출이다. 특히 대중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먹으려드는 언론들이 주범이다. 뉴스의 헤드라인들은 마치 우리 사회가 혼혈인들에 대한 인식이 나아진 척 하려는 듯한 뉘앙스가 풍긴다. "우리 사회는 이제 워드를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만큼 성숙했다"라는 걸 보여주고싶은 듯 말이다. 그러나 이번의 이 북새통의 시작점은 그저 워드를 이용하여 우리 사회의 미국에 대한 자격지심을 없애보겠다는 심보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워드가 미국에서 성공하지 않고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성공했더라도 우리 나라에서 이런 대접을 해주었을까? 답은 당연히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안다. ㅎㅎ... 이번 "워드 냄비"를 끓이는 언론의 불이 꺼지고나면 우리 사회의 피부색 차별 문제는 또 구석 어딘가로 찌그러져 버릴 게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내에서 조차 찬밥이던 혼혈인이 왜 미국에서 성공하면 갑자기 한국인이 되고, 비강대국에서 성공하면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걸까? (심지어는 증조할아버지가 한국계였던 97년 Miss Universe 까지 한국에서 초청해대고 광고를 찍고 개난리) 왜 그 동안 수많은 혼혈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왜 그 동안 수많은 혼혈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은 청와대에 초청되어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사실 우리는 아직 혼혈인의 인권문제에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고, 또 사회에 뿌리 깊히 박혀버린 서열화 문화 때문이다. 갑자기 너무 끈금없는 얘기이겠지만 꼼꼼히 읽어주길 바란다.

 

우리 나라 사람들 중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등수를 매김으로써 자신의 자아정체감을 형성한다.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 따로 이야기) 예를 들면 "쟤는 직업이 XXX이니 1등 짜리. 나는 XXX라서 5등짜리. 너는 XXX니까 10등짜리" 이런 식이다. 자신의 서열관계에서 상위에 놓인 사람에게는 직종과 나이에 상관없이 굽신거린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이런 서열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 스스로 떳떳해지거나 행복해질 수 없다. 자아정체감 자체가 "등수"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 등수를 높이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서 크게 성공하고 직위를 올리는 것만이 인생의 성공으로 간주되고 훌륭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세상을 언제나 강자와의 대결구도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강자 앞에서 굽신거리는 한편, 그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탐색하게 된다.

 

그래서 사소한 것을 통해서도 자긍심을 느끼고 싶어하고, 그렇게해서라도 등수가 올라간듯한 느낌을 가지고 싶어한다. 자신의 학벌, 인간관계, 또는 물질적 풍요로움 등을 지나치게  내세우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그 예다. (아.. 자신의 술주정을 말리는 웨이터에게 "왜그래!! 나 XX대 교수야!!!!!" 하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즉, 어딘가 꼭 부족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지나친 자랑쟁이가 된다는 거다.

 

같은 맥락에서, 교과서는 우리 나라는 단일민족의 국가임에 자부심을 느끼라고 강조한다. 오죽 자부심을 느낄 것이 없어서 단일민족국가라는 걸 교과서에서까지 강조해대나? 그래, "단일민족"이라는 말의 오류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 일단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한번 쳐보자. 그래서 도대체 단일민족이라서 좋은 게 뭔가? 단일민족이 아닌 국가들을 비웃어보자는 수작인가? 단일민족이 되는 것에 걸림돌이 되는 혼혈인들을 끝까지 내치겠다는 수작인가? 단일민족국가를 강조하던 휘황찬란한 그 미사여구들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목은 "한국은 세계에서 흔치 않게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는 구절과 맞먹는 코믹함을 선사한다. 아, "한반도의 면적은 남북 다 합해서 영국과 비슷하다"라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나라가 자격지심을 느끼는 가장 큰 상대는 미국과 일본이고, 이는 물론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다. 우리가 그들에게 당한 것은 무척 많은데 아직 되갚을 능력이 되지 못해 자격지심만 가득 쌓여있는 상태이다. 마치 덩치 큰 아이에게 매일 맞기만 하던 덩치 작은 아이가 앙갚음을 하고는 싶은데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줄 능력은 되지 못할 때 느끼는 그럼 심정 말이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이기면 거기에 더 민감하게 흥분하고 열광한다. 그래서 언론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점차 더 선정적인 어휘가 되어간다.
"당당한 태극 전사", "야구의 본토에 태극기를 꽂다" 이런 거 말이다.

 

다시 워드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워드는 한국에서 가장 아래층에 있던 혼혈인의 처지에서 "우리 보다 강한 미국"땅에서 갑자기 신분 상승을 해버린 거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들이 내쫓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던 워드 가족을 갑자기 한국인이라고 부르며 금의환향한다고 좋아한다. 워드를 우리들과 동일시하며 "장한 한국인"이라고 좋아하고, 워드의 성공이 마치 우리 전체가 미국에서 성공한 듯 착각하는 것이다. 이는 한창 거세게 불어대던 반미열풍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나 그 내면에 깔린 심리상태는 일맥상통한다. 바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비하하고 싶으나, 정작 나 자신 또는 나랑 관련된 인물이 그것을 가지면 나와 동일시 하여 나도 같이 상승의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 '상승의 기분' 동일시하여 즐기는 데에는 그 상대가 혼혈인이라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를 찾는 우리 사회의 사람들은 항상 불행하다.그래서 영원히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더 강하고 잘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자격지심이 너무 강하다. 단체로.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줄 마음의 여유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혼혈인이나 장애인, 성적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의 인권 문제는 여전히 "논외"거리로 남아있게 되고, 심지어는 그들은 '다른 이들의 등수를 높여주는 밑바닥 존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이렇게 점점 썩어서 악취를 풍기는 고인 물인 채로 수십년의 현대사회를 지내왔다. 그래서 자신이 약해서 억울한 이들은 출세를 하는 수밖에 없다.

 

하인즈 워드의 금의환향 사례는 '혼혈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달라진 시각'을 보여주는 사건이 될 수 없다. 평소에 우리 사회나 언론이 전혀 그런 태도를 일관성있게 꾸준히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소수자들의 인권에 조명을 비추어보는 개기가 된 것은 매우 환영이다. 이는 하인즈 워드 개인의 힘이 크다. 과거 한국에 살던 시절에 뼈에 사무치도록 받았던 고통에 대한 기억 때문에 한국 언론들과는 인터뷰조차 거부했던 그의 어머니와는 달리, 그는 한국에 돌아와 언론을 통해 혼혈인들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하고 꿋꿋하게 관심을 요구한다. 대통령이 워드와  이 문제에 대해 약속을 하고, 언론도 이런저런 관련 글들을 적기 시작했다. 하인즈 워드의 이러한 노력과 열성은 정말 훌륭하고 가상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석구석까지 자리잡은 서열문화와 서열화된 자아형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인권 문제 뿐 아니라 여러가지 사회 문제는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