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그녀의 살내음이 느껴진다 기분 좋은, 달큰하면서도 짙지 않은 살내음. 내 어깨에 있는 그녀의 팔을 살짝 치우고, 내 팔을 베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베어 주었다. 침실을 나와 베란다를 보니 아직 날은 밝아 있지 않아 시계를 보니 5시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국을 끓였다 콩나물 대파 마늘 매운고추로 국을 끓이고 김치를 썰고 계란을 풀어 계란찜을 만든다. 넉넉하게 2인분은 충분히 나올 수 있게끔 했다. 손에 물기를 엉덩이에 닦고 오디오를 튼다. ‘사랑아 가지마’가 흘러 나온다. 살며시 침실의 방문을 여니 그녀가 아직도 자고 있다 그녀의 고운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만지고 싶지만 만지면 깨어날것 같다. 도도하지도 않고 웃음이 헤프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꾸밀 줄도 아는 그녀. 내가 원해서 명문대에 들어가 주고 내가 원해서 매주 나를 찾아와 주던 사람. 그녀가 사준 셔츠와 청바지를 나는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다. 다시 한번 더 침실에 들어가니 여전히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이름을 부를까하다가 가만히 그녀의 눈썹을 쓰다듬었다.
“굿모닝.”
“굿모닝.”
그녀의 몸이 따뜻했다. 일으켜 세워달라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아 일으켜 주자 몸에서 뜨거움이 훅 일어났다. 밥 먹으라는 말과 함께 일어서려는데 침대위에 걸쳐 앉아 있는 나를 그녀가 두 팔로 꼭 안았다. 그녀가 웃음을 머금은 체 중얼거렸다.
“좋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잠깐 욕실에서 들어갔다 오고 그녀와 나는 밥을 먹었다. 당신이 만든거야? 당연하지. 많이 늘었네? 이제 안심하고 결혼해도 되겠네? 나는 웃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 오면서 그녀 뒤의 풍경도 밝아진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말했다 설거지 좀 부탁해. 공부하고 올게. 가지 않으면 안돼? 안돼. 그녀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을 물었다. 9시에 끝나.
나는 집을 나섰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날씨가 흐리다 바람에 바닷내음이 느껴진다. 오늘은 일어수업이 있다 히라가나가 싫다. 수업이 끝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면역에 그녀가 있어 금새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뭐할까? 영화 보자 영화. 그녀가 내 팔을 두팔로 껴안았다 내 눈의 안경을 그녀가 뺏어 썼다. 도수도 없는 안경을 쓴다고 그녀가 키득거렸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려고 했지만 아직 9시는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연곳이 없었다. 그녀가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세븐일레븐의 종업원이 바닥을 대걸래로 닦고 있다. 코에서 물 내음이 났다. 그녀를 세워두고 프렌치카페를 사서 빨대를 꽂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보고싶었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왠지 가슴에 무언가가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 팔을 그녀가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 있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봐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긋 웃었다. 나를 보며 말을하던 그녀도 말을 멈추고 방긋 웃었다. 둘이서 서로를 보면서 방긋 웃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밖으로 나오니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예쁘다. 예쁘지? 어디 가고 싶어? 우리 그냥 여기 있자. 잠시 벤치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참 좋다. 내 손을 잠은 그녀가 말했다. 날이 밝아 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어느새 그림자는 짧아지고 벚꽃은 더욱 화사하게 변해간다. 그녀의 표정도 조금 더 화사해졌다. 나의 얼굴을 그녀가 쓰다 듬었다. 그녀가 무언가 말할 듯 말듯 하다가 그녀가 말했다. 많이 아파. 아니.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10시반이야. 우리 롯데백화점에서 영화 보자. 그녀가 앞서 걸었다. 그녀의 뒷모습에 왠지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표를 예매하고 다시 나란히 그녀와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사실 오늘 학교 쉬는 건 거짓말이었어.”
“...알아.”
“미안해.”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곤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화를 내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게 화를 내지 못한다. 나에게 험한 말을 하면 나를 잃을까봐 그녀는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한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소한 잘못을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다. 사과하고 싶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다.
“나...”
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듯 했다. 나는 말했다.
“그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미안해. 조금 신경 못 썼다.”
그녀가 실망한듯 말했다.
“아냐...어제 좋았어. 네 전화 받고.”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해도 내일 수업이 없다고. 괜찮다고 내려와 내 옆에서 술친구가 되어준 그녀에게.
“밥 사줘.”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백화점의 식당코너에서 무엇을 먹을까 하며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롯데리아에 갔다 왜 롯데리아야? 먹고 싶어 그냥. 새로 나온게 있다더라. 그녀가 먹고 싶다는 것을 사서 가져다 주자 그녀가 웃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깨물어 먹고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쓰레기를 버리는데 일하시는 어머니뻘의 점원분이 말했다. 두 사람 참 보기 좋네. 몇 살이야? 21살요. 오빠는? 23살이예요. 사귀는 사이야?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라고. 그런데도 보기 좋다며 둘이 사겨 하는 모습에 그녀는 나의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었다.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본다. 스윙걸즈. 여주인공의 모습에 비슷하다고 비슷하다고 내가 키득거리고 남자주인공의 어벙한 모습에 내 모습이라고 그녀가 속삭였다. 여주인공들이 마네킹에 키스하는 모습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내가 살짝옆으로 보자. 그녀가 엄지손가락에 키스하고 그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녀와 내가 웃었다.
영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켜니 그녀의 집에서 전화가 와있다. 그녀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는 통화를 했다. 걱정마세요 아저씨. 잘 있어요. 네. 아니요. 아뇨. 저희 그런사이도 아니구 저도 그애 아끼는 걸요. 걱정마세요 저녁먹기전까지 올려 보낼께요 네. 건강하시구요. 그녀에게 돌아온 나는 대뜸 물었다.
“집에서 걱정안해?”
“응? 집?”
그녀가 토끼처럼 눈이 뚱그래졌다. 집에 말했어. 걱정 마. 그래.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지하도로 갔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다. 돈 많아? 많이 썼잖아. 괜찮아. 아직 생명수당 남은 것도 있고 집 이사하면서 잔금도 많이 남았어. 차도 팔아버릴 생각이야. 그녀가 쑥쓰러우면서 좋은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좋냐는 말에 그녀가 웃으며 좋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나는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가는 팔에 팔찌를 해주고 싶다. 그녀의 작고 하얗고 부드러운 몸에 어울릴 팔찌. 그녀가 이 것 저 것을 고르다가 백금으로 된 팔찌 하나를 골랐다. 심플하면서 부드러운 느낌. 캐주얼에도 정장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지하철을 타자 그녀가 물었다. 어디가는 거야. 부산역. 그녀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진다. 왜? 왜? 그녀의 물음에 아저씨가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한 댓 발이 튀어 나온다. 그녀가 고개숙인 체 뒤돌아 선다.
“나는 말야. 널 좋아하지만. 책임지지 못하잖아. 내 편인 아저씨가 걱정할 정도면 너 빨리 보내야 해.”
“저녁먹고 가게해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올라가. 그녀의 손을 잡고 역 매표소로 끌었다. 함께 걷지 못하고 그녀는 나의 손에 끌려 오듯이 걷는다. 매표소에 와서 그녀가 서울발 KTX표를 끊는 것을 나는 지켜본다. 기차표를 손에 쥔 그녀가 시무룩하다. 그녀가 말했다. 아빠가 전화 했구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나는 뭐가 미안하냐고 되물으면서 도시락가게에 가서 그녀가 기차 안에서 먹을 도시락을 사고 그녀가 볼 책도 한권 샀다. 그녀에게 음식과 책을 싼 봉투를 쥐어주었다. 그녀의 팔에 채워진 팔찌가 반짝인다. 그녀와 나는 대합실에 말없이 앉아 있다.
서울발 KTX표를 개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몇 분 남지 앉았다. 그녀의 이름을 나직히 불렀다. 아무말 않던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갔다. 그녀의 얇은 검은색 정장 바지가 휘날리고 하이힐 소리가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까지 오는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그녀의 핸드백이 그녀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다. 그녀가 한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그녀의 귀의 귀거리가 찰랑거린다.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바라보다가 그녀가 도시락과 책을 싼 봉투를 놓아두고 가버린 것이 보였다. 그녀는 개찰구에 거의 다 다랐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멈춰섰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 넓은 부산역사 내에서 그녀는 나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두 팔을 내 겨드랑이에 넣고 손을 뒤로 돌려 어깨를 감싸 앉았다. 그녀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내 팔을 간지럽힌다. 주위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보거나 웃으면서 우리를 처다보며 지나갔다. 개찰구의 철도직원아저씨가 아가씨 어서 와요 어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자 그녀가 울음 섞인 빠른 말투로 말했다.
“닥터에게 말을 들었어. 오빠 약 꼬박 꼬박 먹구. 힘들어도 밥 먹구. 아프니까 술 마시지 말구 담배두 피지 말구. 오빠 응? 오빠 약속해줘 응?”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 손을 쥐고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다시 울음이 반쯤 섞인 빠른 말투로 말했다.
“나 이렇게 가슴 뛰는 거 기억하구 나 가슴 뛰는 거 느꼈으면 오빠도 가슴 뛰어야해 알지? 오빠 내말 잊지마 나랑 약속해 알지? 나 전화하는거 못 받지 말구 나 전화할테니까 못 받으면 안돼는거야. 못 받으면 미워할꺼야. 응? 약속해?”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뒤돌아서 가려 했다. 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책과 도시락이 든 봉투를 쥐어 주었다. 그녀가 봉투를 쥐고는 다시 내게 입맞춤을 했다. 내 뺨에 그녀의 물기가 어렸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뒤돌아 뛰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시원하게 흔들린다. 그녀가 가는 것을 나는 본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되돌아갔다. 그녀는 다시금 멀어졌다. 그녀는 떠났다.
부산역 건물을 나오자 햇살이 약간은 누렇게 변한 것만 같다. 나는 부산역 광장을 걸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둘기들. 아이의 손을 쥐고 걸어가는 아주머니. 역 벤치에 누워 있는 노숙자. 지나가는 연인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다시금 변형된 연골이 신경을 누르는 것 같다. 담배를 물고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바위에 기대어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처다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라이터를 뒤졌다. 하지만 나는 라이터를 손에 떨어 뜨렸다. 아파서도 아니었고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다리가 풀린 듯이 바위에 기대어 주저 앉았다.나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도 떨어뜨렸다. 주위사람들이 이상하다 듯이 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앉아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한손은 얼굴을 가린채로 주위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이 멀어진다. 세상이 싫어졌다.
세상이 싫어졌다
눈을 떴다. 그녀의 살내음이 느껴진다 기분 좋은, 달큰하면서도 짙지 않은 살내음. 내 어깨에 있는 그녀의 팔을 살짝 치우고, 내 팔을 베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들어 베개를 베어 주었다. 침실을 나와 베란다를 보니 아직 날은 밝아 있지 않아 시계를 보니 5시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국을 끓였다 콩나물 대파 마늘 매운고추로 국을 끓이고 김치를 썰고 계란을 풀어 계란찜을 만든다. 넉넉하게 2인분은 충분히 나올 수 있게끔 했다. 손에 물기를 엉덩이에 닦고 오디오를 튼다. ‘사랑아 가지마’가 흘러 나온다. 살며시 침실의 방문을 여니 그녀가 아직도 자고 있다 그녀의 고운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만지고 싶지만 만지면 깨어날것 같다. 도도하지도 않고 웃음이 헤프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꾸밀 줄도 아는 그녀. 내가 원해서 명문대에 들어가 주고 내가 원해서 매주 나를 찾아와 주던 사람. 그녀가 사준 셔츠와 청바지를 나는 입었다. 시계를 보니 6시다. 다시 한번 더 침실에 들어가니 여전히 그녀는 눈을 감고 있다 이름을 부를까하다가 가만히 그녀의 눈썹을 쓰다듬었다.
“굿모닝.”
“굿모닝.”
그녀의 몸이 따뜻했다. 일으켜 세워달라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아 일으켜 주자 몸에서 뜨거움이 훅 일어났다. 밥 먹으라는 말과 함께 일어서려는데 침대위에 걸쳐 앉아 있는 나를 그녀가 두 팔로 꼭 안았다. 그녀가 웃음을 머금은 체 중얼거렸다.
“좋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일어섰다. 그녀가 잠깐 욕실에서 들어갔다 오고 그녀와 나는 밥을 먹었다. 당신이 만든거야? 당연하지. 많이 늘었네? 이제 안심하고 결혼해도 되겠네? 나는 웃었다. 날이 조금씩 밝아 오면서 그녀 뒤의 풍경도 밝아진다. 나는 식사를 끝내고 말했다 설거지 좀 부탁해. 공부하고 올게. 가지 않으면 안돼? 안돼. 그녀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을 물었다. 9시에 끝나.
나는 집을 나섰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날씨가 흐리다 바람에 바닷내음이 느껴진다. 오늘은 일어수업이 있다 히라가나가 싫다. 수업이 끝나자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면역에 그녀가 있어 금새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뭐할까? 영화 보자 영화. 그녀가 내 팔을 두팔로 껴안았다 내 눈의 안경을 그녀가 뺏어 썼다. 도수도 없는 안경을 쓴다고 그녀가 키득거렸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려고 했지만 아직 9시는 이른 아침이라 아직 문을 연곳이 없었다. 그녀가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세븐일레븐의 종업원이 바닥을 대걸래로 닦고 있다. 코에서 물 내음이 났다. 그녀를 세워두고 프렌치카페를 사서 빨대를 꽂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보고싶었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던 그녀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왠지 가슴에 무언가가 슬그머니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 팔을 그녀가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땀이 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 있지...”
그녀가 무슨 말을 할까봐 나는 고개를 돌려 방긋 웃었다. 나를 보며 말을하던 그녀도 말을 멈추고 방긋 웃었다. 둘이서 서로를 보면서 방긋 웃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밖으로 나오니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예쁘다. 예쁘지? 어디 가고 싶어? 우리 그냥 여기 있자. 잠시 벤치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참 좋다. 내 손을 잠은 그녀가 말했다. 날이 밝아 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 어느새 그림자는 짧아지고 벚꽃은 더욱 화사하게 변해간다. 그녀의 표정도 조금 더 화사해졌다. 나의 얼굴을 그녀가 쓰다 듬었다. 그녀가 무언가 말할 듯 말듯 하다가 그녀가 말했다. 많이 아파. 아니. 그녀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10시반이야. 우리 롯데백화점에서 영화 보자. 그녀가 앞서 걸었다. 그녀의 뒷모습에 왠지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표를 예매하고 다시 나란히 그녀와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사실 오늘 학교 쉬는 건 거짓말이었어.”
“...알아.”
“미안해.”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곤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화를 내고 싶을 것이다. 나에게.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게 화를 내지 못한다. 나에게 험한 말을 하면 나를 잃을까봐 그녀는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한다. 화를 내고 싶은데 화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사소한 잘못을 말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겠다. 사과하고 싶다.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다.
“나...”
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듯 했다. 나는 말했다.
“그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미안해. 조금 신경 못 썼다.”
그녀가 실망한듯 말했다.
“아냐...어제 좋았어. 네 전화 받고.”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온 그녀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해도 내일 수업이 없다고. 괜찮다고 내려와 내 옆에서 술친구가 되어준 그녀에게.
“밥 사줘.”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백화점의 식당코너에서 무엇을 먹을까 하며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롯데리아에 갔다 왜 롯데리아야? 먹고 싶어 그냥. 새로 나온게 있다더라. 그녀가 먹고 싶다는 것을 사서 가져다 주자 그녀가 웃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깨물어 먹고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쓰레기를 버리는데 일하시는 어머니뻘의 점원분이 말했다. 두 사람 참 보기 좋네. 몇 살이야? 21살요. 오빠는? 23살이예요. 사귀는 사이야?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라고. 그런데도 보기 좋다며 둘이 사겨 하는 모습에 그녀는 나의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었다. 영화관에 들어가서 영화를 본다. 스윙걸즈. 여주인공의 모습에 비슷하다고 비슷하다고 내가 키득거리고 남자주인공의 어벙한 모습에 내 모습이라고 그녀가 속삭였다. 여주인공들이 마네킹에 키스하는 모습에 그녀가 키득거렸다. 내가 살짝옆으로 보자. 그녀가 엄지손가락에 키스하고 그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다 댔다. 그녀와 내가 웃었다.
영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켜니 그녀의 집에서 전화가 와있다. 그녀에게 화장실을 간다고 하고는 통화를 했다. 걱정마세요 아저씨. 잘 있어요. 네. 아니요. 아뇨. 저희 그런사이도 아니구 저도 그애 아끼는 걸요. 걱정마세요 저녁먹기전까지 올려 보낼께요 네. 건강하시구요. 그녀에게 돌아온 나는 대뜸 물었다.
“집에서 걱정안해?”
“응? 집?”
그녀가 토끼처럼 눈이 뚱그래졌다. 집에 말했어. 걱정 마. 그래.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지하도로 갔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사주고 싶다. 돈 많아? 많이 썼잖아. 괜찮아. 아직 생명수당 남은 것도 있고 집 이사하면서 잔금도 많이 남았어. 차도 팔아버릴 생각이야. 그녀가 쑥쓰러우면서 좋은 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좋냐는 말에 그녀가 웃으며 좋다고 한다. 그것을 보고 나는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가는 팔에 팔찌를 해주고 싶다. 그녀의 작고 하얗고 부드러운 몸에 어울릴 팔찌. 그녀가 이 것 저 것을 고르다가 백금으로 된 팔찌 하나를 골랐다. 심플하면서 부드러운 느낌. 캐주얼에도 정장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지하철을 타자 그녀가 물었다. 어디가는 거야. 부산역. 그녀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진다. 왜? 왜? 그녀의 물음에 아저씨가 걱정하신다고 말했다. 그녀의 입술이 한 댓 발이 튀어 나온다. 그녀가 고개숙인 체 뒤돌아 선다.
“나는 말야. 널 좋아하지만. 책임지지 못하잖아. 내 편인 아저씨가 걱정할 정도면 너 빨리 보내야 해.”
“저녁먹고 가게해줘.”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서 올라가. 그녀의 손을 잡고 역 매표소로 끌었다. 함께 걷지 못하고 그녀는 나의 손에 끌려 오듯이 걷는다. 매표소에 와서 그녀가 서울발 KTX표를 끊는 것을 나는 지켜본다. 기차표를 손에 쥔 그녀가 시무룩하다. 그녀가 말했다. 아빠가 전화 했구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나는 뭐가 미안하냐고 되물으면서 도시락가게에 가서 그녀가 기차 안에서 먹을 도시락을 사고 그녀가 볼 책도 한권 샀다. 그녀에게 음식과 책을 싼 봉투를 쥐어주었다. 그녀의 팔에 채워진 팔찌가 반짝인다. 그녀와 나는 대합실에 말없이 앉아 있다.
서울발 KTX표를 개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몇 분 남지 앉았다. 그녀의 이름을 나직히 불렀다. 아무말 않던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갔다. 그녀의 얇은 검은색 정장 바지가 휘날리고 하이힐 소리가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슴까지 오는 진한 갈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그녀의 핸드백이 그녀의 어깨에 고정되어 있다. 그녀가 한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그녀의 귀의 귀거리가 찰랑거린다.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바라보다가 그녀가 도시락과 책을 싼 봉투를 놓아두고 가버린 것이 보였다. 그녀는 개찰구에 거의 다 다랐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멈춰섰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그녀가 내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 넓은 부산역사 내에서 그녀는 나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두 팔을 내 겨드랑이에 넣고 손을 뒤로 돌려 어깨를 감싸 앉았다. 그녀의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내 팔을 간지럽힌다. 주위 사람들이 신기한 듯이 보거나 웃으면서 우리를 처다보며 지나갔다. 개찰구의 철도직원아저씨가 아가씨 어서 와요 어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자 그녀가 울음 섞인 빠른 말투로 말했다.
“닥터에게 말을 들었어. 오빠 약 꼬박 꼬박 먹구. 힘들어도 밥 먹구. 아프니까 술 마시지 말구 담배두 피지 말구. 오빠 응? 오빠 약속해줘 응?”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내 손을 쥐고 자기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녀가 다시 울음이 반쯤 섞인 빠른 말투로 말했다.
“나 이렇게 가슴 뛰는 거 기억하구 나 가슴 뛰는 거 느꼈으면 오빠도 가슴 뛰어야해 알지? 오빠 내말 잊지마 나랑 약속해 알지? 나 전화하는거 못 받지 말구 나 전화할테니까 못 받으면 안돼는거야. 못 받으면 미워할꺼야. 응? 약속해?”
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뒤돌아서 가려 했다. 내가 그녀의 팔을 잡고 책과 도시락이 든 봉투를 쥐어 주었다. 그녀가 봉투를 쥐고는 다시 내게 입맞춤을 했다. 내 뺨에 그녀의 물기가 어렸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뒤돌아 뛰었다.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시원하게 흔들린다. 그녀가 가는 것을 나는 본다.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되돌아갔다. 그녀는 다시금 멀어졌다. 그녀는 떠났다.
부산역 건물을 나오자 햇살이 약간은 누렇게 변한 것만 같다. 나는 부산역 광장을 걸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비둘기들. 아이의 손을 쥐고 걸어가는 아주머니. 역 벤치에 누워 있는 노숙자. 지나가는 연인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다시금 변형된 연골이 신경을 누르는 것 같다. 담배를 물고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바위에 기대어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처다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라이터를 뒤졌다. 하지만 나는 라이터를 손에 떨어 뜨렸다. 아파서도 아니었고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다리가 풀린 듯이 바위에 기대어 주저 앉았다.나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도 떨어뜨렸다. 주위사람들이 이상하다 듯이 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앉아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한손은 얼굴을 가린채로 주위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세상이 멀어진다. 세상이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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