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 사랑한다. -3

정현옥200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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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서 문이 열리고 유진이가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들어오고 있었다. 윤수는 유진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일이야? 형사님 무슨일이죠? 큰 사고는 아니죠~."

 유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끝을 흐리며 형사에게 물었다. 유진의 눈에선 눈물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형사는 유진을 의자에 앉히고 진정하라며 의경에게 100원짜리 커피를 가져오도록 했다.

 "폭행입니다. 소장의 머리가 찢어져 15바늘이나 꿰멨어요. 어떻게든 합의를 하셔야 합니다. 다행이도 전과가 있지는 않으니 합의만 하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2주안에 합의하셔야 구치소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윤수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실수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진의 미세한 떨림만을 응시해야 했다.

 "자기야 다 잘되거라더니.. 왜 하필 당신만 여기에 온거야?"

 그때 뒤에 있던 일수가 유진을 나지막히 불렀다.

 "제수씨."

 유진은 고개를 돌려 일수를 바라봤다. 간단한 목례를 하고 일수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기를 갈망하는 눈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하시고 잠시 저와 얘기 좀.... 나가시죠."

 유진은 일수를 따라 나서면서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유진과 눈이 마추칠때면 어김없이 윤수는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일수는 한동안 아무 말없이 담배만 피워댔다. 유진은 일수의 동작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일수의 행동 하나 하나를 주시했다.

 "일주일 전쯤 소장이 여직원을 성추행 했어요. 사무실에 소장과 여직원 단 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윤수가 그때 나타나서 소장을 제압하고 여직원을 피신시켰죠."

 일수는 다시 말을 끊었다. 다시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흩어지는 연기처럼 모든것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일수는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성추행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말고 멈추어 섰다.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스김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이러지 마세요. 소장님~."

 말끝이 흐려지는 미스김에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났다. 소장은 미스김의 애원에도 아랑곳 않고 미스김에게 다가섰다. 미스김은 두어걸음 뒷걸음 치다 소파에 다리가 걸려 소파위로 넘어졌다. 소장은 입가에 느끼한 웃음을 머금었다. 마치 굶주린 호랑이가 움츠렸다 먹이감의 목덜미를 물어뜯듯이 소장의 몸이 미스김의 몸을 덮치고 있었다. 미스김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었다. 소장의 더러운 입김이 미스김의 여기 저기를 훓고 지나갔다. 미스김은 소장의 완력에 기운이 모두 소진된 듯 팔을 늘어뜨리고 말았다. 미스김의 눈에서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갈등했다. 모른체 해야하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서 뛰어들어가 구하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나는 사무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소장의 팔을 등뒤로 꺽었다.

 "아! 뭐야."

 "뭐하는 짓입니까?"

 나른 강경한 어조와 눈빛으로 소장을 쏘아보았다. 소장의 팔을 꺽은 채로 소장을 일으켜 세웠다. 미스김은 풀어헤쳐진 앞가슴을 추스리며 힘에 겨운듯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미스김에게 눈짓으로 자리를 피하라고 말했다. 힘겨운 발걸음을 애써 옮기다 미스김이 획 돌아서더니 소장의 뺨을 올려붙였다.

 미스김이 나가고 난후 난 꺽었던 소자의 팔을 풀어주었다. 소장은 사냥꾼을 피해 달아나는 멧돼지같은 형상으로 입김을 씩씩 뿜어냈다. 나를 위아래로 훓어보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절호의 기회를 강탈해 간것을 몹시 못마땅해 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입단속 해라!"

 소장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않고 사무실 문을 쾅하고 발로 걷어차고 나가버렸다.

 나는  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만족해하며  승리감에 도취되었다. 무엇보다도 소장에게 한방 먹였다는 생각에 통쾌했다. 피식하며 웃음이 나왔다. 일수가 숨을 헐떡이며 문을 밀치고 뛰어 들어왔다. 무슨일이 있었음을 직감하고 있는 듯 했다.

 "오다가 미스김 만났어. 분명 무슨일이 있었는데... 미스김은 울기만 하더라. 넌 알지?"

 "조용히 해. 괜히 시끄럽게 일만들지 말고, 소장이 미스김을 겁탈하려고 했어. 내가 사무실에 들어오다가 목격하고는 소장을 막았어."

 "그 새끼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미스김을 평소에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더니만..."

 "입단속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미스김만 곤란해져."

 일수는 무언가 큰 비밀을 알게되었다는 표정으로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언가를 저지를 것만 같은 기운이 일수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나는 일수와 소장이 화장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일수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소장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있었다. 소장은 한동안 말없이 듣고 있다가 몹시 불쾌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어디 마음대로 해봐."

 소장이 일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회 하실텐데..."

 일수는 씁쓸하고 간사한 웃음을 흘리며 소장을 힐끗거렸다. 소장이 더이상은 귀찮다는 듯 획 돌아서서 가버리자 일수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라며 돌아서는 소장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몹시 불쾌한 표정으로 사무실로 들어오다가 소장은 나를 보고는 "개자식."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소장과 일수 사이에 오간 일에는 끼고 싶지않아서 소장을 보는체 만체 하고는 하던 일에 열중해버렸다. 월말 매출 보고서와 거래처 미수금 회수및 불량거래처 대처보고서 등 할 일이 쌓여있기도 했다. 여하튼 일수와 소장 사이에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일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소장을 협박했어요. 이번 진급심사에서 손을 좀 써달라고 벌써 몇년째 진급에서 누락됐거든요. 이번만은 꼭 진급하고 싶었어요. 미스김 사건을 들었을 때 기회다 싶었죠. 이번에도 진급에 누락되면 미스김과의 일을 본사에 폭로하겠다고 소장을 다그쳤는데..."

 일수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돌아갔어요. 느닷없이 미스김은 사표를 냈고 저와 윤수는 멀쩡하던 거래처가 부도거래처로 둔갑했고 관리하는 차량의 상차 재고가 터무니없이 모자르고 소장새끼가 손을 쓰고 있구나  직감했죠."

 일수는 웨이타를 불러 아주 찬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웨이터가 물을 가져오자 테이블에 내려놓기도 전에 손에 받아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목이 한여름의 메마른 논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차대리 그 개자식!"

 일수는 모든 것이 소장과 협작하여 일을 꾸민 차대리의 탓이라고 확신하는 듯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믿었는데. 제가 소장을 엿먹일 방법이 없겠냐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차대리에게 미스김과 소장의 일을 의논했어요.차대리 그 새끼 저보다 더 흥분하더라구요. 왜 그 날있죠. 윤수가 만취되어 집으로 들어갔던 날. 차대리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면서 직원들을 모두 술집으로 데려갔어요. 그 날 엄청마셨죠. 다음달 차대리 말대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로만 알았죠. 차대리가 하자는 대로 우리는 파업을 하기로 했어요. 차대리는 자기도 소장에게 쌓인게 많았다며 부당했던 소장의 처사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뜯어고쳐 놓자고 건배하고 소리치고 가관도 아니었는데... 오늘 아침에 약속장소에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저하고 윤수만 그곳에 갔어요. 다른 직원들은 카페앞에서 김대리에게 듣고 회사로 복귀했는데 저와 윤수에게는 아무도 귀뜸해주지 않았어요. 아마 소장하고 차대리하고 짜고서 우리 둘을 오히려 엿먹인 꼴이 됐죠. 저하고 윤수는 파업을 선동한 주범으로 몰려서 지금 이꼴이 되어버렸네요. 제가 신중하지 못했어요."

 유진은 길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직원을 성추행한건 소장인데. 왜 우리 윤수씨가 잡혀간거죠? 소장님 머리는 왜 찢긴거구요?"

 "아무도 약속장소에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죠. 그 때 장남진씨 한테 전화가 왔어요. 파업 주동자로 몰려 일이 커지고 있다고, 빨리 들어와서 소장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라도 보라고. 그냥 두면 큰일 나게 된다고. 본사에 재고 부족분에 대한 변상조치처리 보고 들어가고 부실거래처 부도처리후 부도금 변재처분까지 해야하고 사표도 내야할 것 같다고 했죠. 그 많은 금액을 한꺼번에 변재해야 하는 것도 억울한데  회사까지 짤리게 됐으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을 거예요. 남진씨 말처럼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라도 해보려 했던거 같은데 소장새끼 욕이란 욕은 다퍼부어재고 업무처리 미숙자 취급하며 따귀까지 때리고 장난도 아니었나봐요. 소장이 너무 심하게 구니까 윤수는 참다못해 소장을 막으려고 했던것 뿐인데 재수가 없었죠. 넘어지다 케비넷 모서리에 부딪쳐서 피도 많이 흘리고 가벼운 뇌진탕증상까지... 제가 갈 필요없다고 말렸는데.....정말 죄송합니다. 제수씨."

 유진은 일수의 얘기를 모두 듣고나서 강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오히려 잘됐네요.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잘됐어요. 돈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 윤수씨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전해주세요."

 일수를 혼자 남겨두고 유진은 서둘러 커피숖을 빠져나왔다. 거리에 가득한 인파를 헤치며 유진은 발걸음 재촉했다. 어서 윤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외엔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저녁 기운이 산등성이 너머에서 태양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태양을 잃고 검붉게 물든 하늘처럼 유진의 가슴도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검붉게 물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