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 사랑한다. -4

정현옥2006.04.05
조회28

4

 

 어느새 형사가 이야기한 2주가 이틀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유진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부동산에 연락해 전세집을 급하게 내놓았다. 하지만 2주안에 거래를 성사시키기는 다들 무리라고 급하게 내 놓은 만큼 제 값을 받기도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유진은 꼭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 당부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언제부터 였는지 창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진은 다시 한번 다이얼을 돌렸다. 수화기 저편에서 비창이 우수에 젖은 하늘을 위로하듯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연희야. 나 유진이...."

 "어쩐일이니.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

 연희의 퉁명스런 대답이 유진의 사기를 여지없이 꺽어 놓고있었다.

 "응. 그냥 잘 지내나 해서..."

 "너 혹시 보험회사 취직했니. 요즘 안그래도 미자가 자꾸 전화해서 보험들어 달라고  조르는 통해 정말 귀찮았는데 ... 너도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하긴 유진이 너야 이태리 유학을 가려던 우등생이었으니까....."

 연희의 비꼬는 듯한 말투가 계속해서 유진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유진은 그냥 잘지내라는 안부를 끝으로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가슴에서 설움이 거센 풍랑처럼 밀려와 유진의 굳은 의지를 자초시키고 있었다.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단호히 훔쳐내고는 유진은 속으로 '괜찮아.'를 반복해서 되내였다.

 윤수와 결혼을 하면서 유진은 모든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었다. 윤수와의 결혼을 기쁘게 찬성해 준 사람은 오로지 언니와 형부 뿐이었다. 결국 유진은 윤수와 강릉으로 6개월간 도피해서 동거생활을 했고 수연과 수인이가 뱃속에 생긴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었다. 뱃속의 아이들 탓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한 부모님은 유진이 돌아온 후 그간 딸자식을 걱정하며 보낸 세월탓에 생긴 화병이 원인이 되었는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유진이 돌아온지 일년후 한달 간격으로 두분 모두 돌아가시고 말았다. 남은 가족은 언니네 가족이 전부였다.

 유진은 전화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와달라고 하면 언니는 어렵지만 어떻게든 유진을 도우려 백방으로 수소문 할 것이었다. 그러나 두아이와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살고있는 언니의 형편 역시 유진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을 오히려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유진은 망설이고 있었다.

 - 따르릉 따르릉

 유진이 한없는 상념에 빠져들려하는 그 순간 적막를 깨는 아침의 수탉의 울음처럼 정신을 되돌리는 전화 벨소리가 유진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제수씨." 일수였다.

 "어쩐일로?"

 "돈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죠."

 "....."

 "제가 아는 분께 부탁해서 돈을 좀 구했어요. 많지는 않지만 윤수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될겁니다. 그리고 돈은 천천히 갚으셔도 되니까 ...... 제가 미안해서 그러니 거절마시고 ......."

 "......."

 일수는 수화기 너머에서 유진의 복받치는 설움을 억누르는 숨소리가 간신히 세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일 점심때 경찰서 앞 지난번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일수의 목소리리가 에코우되며 사그러졌다.

 전화가 끝나고 일수에 대한 고마움으로 진정되고 있는 유진 스스로를 느끼면서 유진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에게 전화해서 속상함을 모두 풀고 한없이 울고 싶다는 생각이 유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언니의 목소리를 확인 후 유진은 "언니~"

하는 부름과 함께 설움을 풀어내고 있었다.

 

둘만의 언약식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올라탄 강원도행 야간완행열차는 밤12시경 청량리를 출발해서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서야 강릉에 도착했다. 느닷없이 유진을 데리고 도망치듯 떠나온 서울에서는 아마 지금쯤 묘연해진 우리의 행방을 수소문하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집에 연락이라도 해야지 않겠어요? 많이 걱정할텐데.."

 "우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요. 나 지금 정말 행복해."

 나는 더이상 유진의 말처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지금 이순간 유진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나  설레이고 행복했다.

 "강릉은 경포대가 유명하죠. 나 지금 경포대에 가고 싶어요. 그곳에서 우리 평생을 함께할 것을 언약해요. 비록 지켜봐주고 축복해주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지만  대신 넓은 바다가 하객이 되어 바라봐 주고 동트는 태양이  우리를 위해 주례가 되어 축복하고 바닷가 해변에 수많은 조개무리와 갈매기 그리고 파도가 우리를 위한 축가를 불러줄테니. 오늘 우리 둘만의 결혼식을 해요."

 유진은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다가와 서자 내 손을 잡고 택시에 냉큼 올라탔다.

 "경포대로 가 주세요."

 경포대 해변에는 아직 이른 새벽이어서 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와 유진 둘만이 텅빈 해변에서 아직 동트지 않은 어두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유진이 피식 웃었다. 오래된 삼류영화의 장면을 기억해낸 듯 "나 잡아봐요." 하면서 두팔을 날개짓하는 새처럼 펄럭이며 껑충 껑충 뛰었다. 나도 유진을 따라 피식 웃고는 "유진~" 하고 그녀의 이름을 길게 부르고서 잡을듯 말듯 그녀의 뒤를 쫓았다. 한참을 그렇게 그녀와 달리고만 있었다. 그녀의 긴머리에서 바닷바람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향기가 풍겨왔다. 그녀는 이제 지쳤는지 내게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영화처럼 간드러지는 비음을 섞어서 "아 ~"하는 신음을 내며 풀석 주저앉았다. 그녀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나도 시치미를 떼며 "많이 다쳤어. 유진~"하고 다급한듯 그녀에 옆에 따라 넘어졌다.

 "아! 재미있다. 윤수씨도 재미있죠?" 
 "네 재미있어요. 유진씨가 행복해 하니까..."

 "이제 우리 약속대로 우리 둘만의 결혼식을 올려요."

 마침 동트는 아침 햇살에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었다. 주변을 붉게 물드린 태양의 기운이 마치 윤기나는 벨벳 커든처럼 드리워진 하늘을 향해 둘은 마주보며 손을 잡았다.

 "나 정윤수는 오늘의 언약을 평생 기억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라고 먼저 말한후 유진의 맹세가 이어지길 기다렸다.

 "나 이유진은 오늘의 언약을 평생 기억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이내 유진도 맹세했다.

 "이로써 하늘을 증인으로 둘만의 언약이 이루어 졌습니다."

 

 언니에게 한바탕 그간의 푸념을 풀어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윤수와 강릉에서 언약식을 떠올리며 유진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벌써 윤수를 기다리는 유진의 간절함이 창밖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