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에서 사랑한다. -8

정현옥200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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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새로운 센타장이 부임했다.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사원들은 새로운 직책과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제 1년 남짓한  윤수는 고참사원이 되어버렸다.

 회사는 새로운 신입사원들을 대거 모집했다. 대부분 하나콤에 파견근무를 나갈 목적으로 모집된 임시직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들은 새로운 각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회사는 전 센타장의 말처럼 급여를 지불하지 않고 회사가 어려우니 조금만 참아달라며 직원들을 계속해서 혹사시키고 있었다. 간혹 신입사원들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센타장에게 급여에 대한 언짢은 감정을 표현하면 센타장은 조금 늦게 지급할 뿐 단 한푼의 급여도 직원들에게 피해가 나지 않게 모두 지급할 것을 약속했었다. 그렇게 또 몇개월이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가 정상화 되기만을 바라며 몇 달치 급여를 받지 못해도 묵묵히 일해왔던 직원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드디어 하나콤으로 파견나간 임시직사원들이 현장에서 일을 멈추고 파업을 선언했다. 파견현장의 역파는 각 센타의 직원들에게로 옮겨졌고 거의 전 직원이 파업을 하는 사태로 번져버렸다.

 "악덕 사주는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본사로 몰려든 각 센타의 직원들과 파견근무를 나간 임시직은 모두 한 목소리로 회사 경영진의 사과와 밀린 급여의 즉각적인 지불을 요구했다. 회사와 사원들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고 또 몇개월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결국 회사는 최종 부도를 내고 폐업을 선언했다. 윤수의 모든 노력과 각오와 목표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선배사원들이 거의 모두 떠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도 윤수는 혹시나 하면서 회사를 믿고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휴일도 반납해가며 열심히 일해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고 윤수에겐 또 다시 좌절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윤수는 유진에게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윤수가 급여도 받아오지 못하며 회사생활을 할때 묵묵히 생활을 책임져 온 유진이었다. 보험외판원 부터 한 달을 열심히 해도 십여만원 정도의 벌이 밖에 되지 못하는 부업에 이르기까지 한푼이라도 더 벌기위해 악다구니를 치며 버텨온 유진에게 급여는 커녕 퇴직금 조차 받지 못할 형편이 되어버린 현실을 무어라 해야 할지.

 '더러운 세상아! 내가 무엇을 잘못 살아왔기에 매번 하는 일마다 구정물통에 쳐박힌 쪽박처럼 깨지고 상처입는지 이유라도 알고싶다.'

 윤수는 하늘을 향해 마구 소리치고 싶었다. 가슴에 시퍼런 멍이 혈관을 타고 몸 구석구석 스며드는 것 같은 통증이 윤수를 감싸오고 있었다. 윤수는 또 다시 절망하고 있었다.

 

절망의 시작

 

 아버지의 사업이 정말로 망했구나! 나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순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나의 절박한 환경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숨을 내쉬기 조차 힘들었다.

 담임은 출석부 모서리로 내 머리를 마치 두부를 도마위에 놓고 다지듯이 수차례 내려치고 있었다.

 "정윤수 학교는 자선단체가 아니야 임마. 등록금을 내라고 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무소식이야. 너 지금 반항하는 거 맞지. 매번 종례시간마다 불려세워져 오늘처럼 수모를 당해야만 해결할래. 내가 니들같은 놈들 때문에 지겨워 죽겠다. 내일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오든지 아니면 등록금을 내던지 그것도 아니면 학교를 때려치우든지 가부간에 결단을 내려라."

 담탱이. 내 인생의 첫번째 악연이다 라는 생각이 스치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학생들을 어떠한 목적으로든지  수단화시키는 인물이었다. 학생들의 인격수양보다는 반평균이 몇점 높아졌는지가 중요했고 학생들을 두 분류로 정확히 구분시켜 우등생과 열등생의 차별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는 비평등주의에 선봉에 서있었다.

 담임의 입냄새가 내게 주어진 모욕감 만큼이나 짙게 코밑을 어지럽폈다.

 '때려치우면 되잖아.'라는 외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한계선앞에서 선생과 제자라는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그러질 무렵 담임은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비수같은 독설을 꽂아넣었다.

 "너 같이 아무생각도 없이 가방만 매고 다니는 놈은 학교에 나올 가치도 없는 놈이야. 돈 안내고 배우는 것은 예전에나 미덕이었지 도둑질과 다를 바 없는 짓이야. 도둑 강의를 듣는 놈들도 물건을 훔치는 놈들과 똑같이 취급받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공부에 관한 부분은 너무 관대하단 말야. 도둑질을 하면서도 도둑질을 하는 지도 모르고 흐리멍텅한 생각으로 얼렁뚱땅 비비적거리는 생활태도를 보면 앞날도 뻔하다고 생각되지 않냐. 네 부모의 무능력처럼 말이다."

 나는 명색이 선생이라는 작자에게서 구정물통의 악취처럼 내 뱉어지는 언어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진 야생의 초식동물 같이 물어뜯기고 상처입펴지고 있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안쓰러움을 애써 견뎌내고 있었다.

 담임이 준 모욕적인 언사는 잘 다듬어진 비수처럼 깊숙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상처를 수습할 수 있는 어떠한 겨를도 줄 수 없다는 듯이 황급히 담임은 교실을 빠져나갔다. 담임이 사라진 후에도 나는 한참동안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한 발자욱이라도 움직이면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설움이 일제히 쏟아져 나올것만 같았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인식한 것은 아마도 담임이 사라지고 난 후 수분이 더 흐른 후 였을 터였다.

 "윤수야 집에가자."

 누군가 내 어깨를 툭쳤다. 진수가 등뒤에서 내 가방을 챙겨들고 서있었다.

 

 담탱이의 독설을 들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뻔한 가정형편, 하루벌어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 같은 생활속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면 등록금얘기를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담탱이를 피해 종례시간이 되기전 진수와 담을 넘은 나는 말없이 걷고만 있었다. 가로수 사이로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도 내게 아무런 위안이 되어주질 못하고 있었다. 각자의 집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 했을 무렵 진수가 내게 말을 건네왔다.

 "누군가 네게 호의를 베푼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니? 아니면 네 자존심에 상처가 되겠니?"

 "글쎄 진심이라면 무슨 문제가 되겠니."

 "집에서 읽어봐라."

 진수는 여러차례 접은 쪽지를 내밀고는 자기 집을 향해 큰 걸음을 껑충거리며 있는 힘껏 내달리고 있었다. 내가 잘가라는 인사도 할 틈없이. 진수가 준 쪽지를 펼쳐보는 것이 왠지 두렵게 여겨졌다. 주먹안에 쪽지를 말아쥐고느 나도 진수처럼 있는 힘껏 내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무렵 집앞에 도착했다. 진수가 건네준 쪽지는 여전히 내 주먹안에 조심스레 감추어진 상태였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다락같이 어두컴컴한 내 방으로 들어갔다. 호기심을 잔뜩 품은 희미한 햇살이 창문틈으로 스며들어와 방안을 겨우 살피고 있었다. 나는 창틈사이 햇빛에 진수가 준 족지를 펼쳐보았다.

 - 등록금영수증

 가슴이 내려앉았다. 간신히 참았던 설움이 이제야 때를 만난듯이 솟구쳐 쏟아져 내렸다. 이혼 후 재가에 마저도 실패한 후 단칸방에서  진수와 함께 사는 진수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보다 켤코 나을 수 없는 형편으로 나의 등록금을 대신 내준 진수가 고맙기도 했지만 이제껏 애써 드러내지 않았던 내 자신의 초라함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음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내 자신을 간신히 지탱해온 자존심 무너지며 절망으로 휩싸인 첫번째 진저리나도록 선명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