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부시맨 니카우를 만났다.
그의 영혼은 웬일인지
고향 칼라하리사막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니카우.
지난 여름, 실로 오랜만에 당신의 소식을 들었는데
하필이면 부음이어서 안타까왔습니다.
● 그렇게 됐습니다.
생명의 길고 짧음은 어차피 신의 소관이지 않습니까.
우리 부시맨은 사후세계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담담하게 받아들였죠.
◎ 당신이 죽어서도 칼라하리 사막 창공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 보츠와나 정부가 칼라하리 사막 내의 야생 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우리 부시맨들을 내쫓으려고 야단입니다.
부시맨족은 그동안 보츠와나 정부의 강제 이주정책에 맞서
생명을 건 사투를 벌여왔어요.
작년에는 급기야 칼라하리 사막 근처 부시맨 거주지역에
식수까지 중단하는 야만적인 짓을 했지요.
야생 동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그 땅을 수만 년 지켜온 민족을
제멋대로 강제이주 시키는게 도대체 어느 나라 법이랍니까?
◎ 보츠와나 정부 측은..
부시맨을 강제이주 시키는 게 야생 동물 보호뿐 아니라
부시맨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하던데요.
● 그건 다 헛소리예요.
누가 페스투스 보츠와나 대통령의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알고요.
칼라하리 사막엔 예로부터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들이 노리는 건 바로 그 다이아몬드라구요.
그리고 우리에게 교육과 의료 등의 문명을 전파시킬 속셈인가본데
누가 그걸 원하기나 한대요?
◎ 하지만 니카우, 문명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어요.
● 천만에. 우린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문명이란 건 그럴듯한 포장을 한 나쁜 선물에 불과해요.
그렇게 고상한 문명을 누리는 사람들이 한다는 생각이 고작해야
다이아몬드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을 짐승처럼 죽이는 건가요?
2만년간 그 땅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주체성이나 전통은
어떻게 되든지 다이아몬드나 손에 넣겠다는 건,
문명이 뭔지도 모르는 우리 같은 미개인도 하지 않는 짓이에요.
◎ 외람된 말씀이지만 문명사회에서 다이아몬드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거예요.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주는 대신 그에 합당한 것을
요구할 수도 있잖아요.
● 우리는 우리 부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그 이상을 원치 않아요.
우리 땅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겠다는데 도대체 누구와,
무슨 타협을 해야 한다는 거요.
그리고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먼저 정착촌으로 옮겨간
우리 부시맨들에게 그들이 해주는게 뭔지 알아요?
흙탕물이 나오는 우물과 정어리 통조림이에요.
사막을 뛰어다니며 동물을 사냥해 먹던 우리에게
통조림을 주는게 말이나 되며, 그것도 넉넉하게 주기나 했게요?
모두들 가난에 찌들어서 산다구요.
부시맨들이 정착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동물을 사냥하는 건, 우리의 신성한 노동이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단 말이에요.
그걸 빼앗고 몇 푼의 돈을 쥐어줬으니
사람이 제 정신으로 살겠어요?
마을은 온통 폭력과 알코올 중독에 병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가 문명인가 뭔가를 받아들여야 한단 말이오?
보다못한 인권단체들도 보츠와나 정부를 인권침해 혐의로
고소해 놓은 상태요.
◎ 저런 보스와나 정부가 애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군요.
● 글쎄, 그렇대두요. 중동이 한창 개발한다고 시끄러울 무렵,
백인들은 아파튼지 뭔지를 잔뜩 지어놓고 원주민들더러
들어가 살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사람들이 기르던 말과 양 따위의가축들을 들여놓고,
자기들은 아파트 공터에 천막을 쳐놓고 생활했다더군요.
정히 문명을 전파하고 싶다면
그런 식의 일방통행식 문화왜곡행위를 저지르면 안 되죠.
우리는 우리방식으로 지켜가야 할 전통이 있단 말이예요.
◎ 니카우 씨는 부시맨으로서의 자존심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 우리 부시맨족이 콩고분지의 피그미족과 함께
'가장 오래 전에 갈라진 현생인류' 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 결과 밝혀졌어요.
뭐 그 전부터도 인류학자들에 의해
'살아있는 화석' 이라 불리기도 했었고요.
우리는 사막에서 장기간 물이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우리만의 지혜를 갖고 있어요.
보츠와나 정부는 지하에서 물이 나오도록 해주겠다고 속였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막상 지하에서 물이 나오자 우리를 내쫓고 말았는데요.
지금은 5만명 정도가 여기저기 정착촌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나는, 그들이 사는 걸 생각하면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아요.
◎ 영화 이야기를 좀 들려줘요.
「부시맨」도 흥행에 성공하고, 홍콩 영화에도 출연하시더니
어느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가셨는데요.
● 사람들은 「부시맨」을 코미디 영화로 알고 있겠지만
난 그 영화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봐요. 처음에 우리 부족은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이
신의 선물인 줄 알았어요. 그걸 서로 갖겠다고 싸우다가
그 평화스럽던 부족이 전쟁터가 됐구요. 그때 난 결심했죠.
그 콜라병을 과감히 버리기로요. 비록 신의 선물이라도
그것이 동족간의 다툼의 원인이 된다면 버리는 거죠.
문명인이든 비문명인이든 간에
뭘 버려야지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예요.
가지려고 해서는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는 게
유한한 물질앞에 무한한 욕망을 가진 인간의 딜레마지요.
영화가 성공했다고 내가 계속 헐리우드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요?
아닐 거예요. 유명세든, 생명이든, 콜라병이든 버릴 때는 버려야죠.
미련없이.
◎ 부시맨에게 독특한 관습이 있죠?
● 대표적인 게 성년식이죠.
부시맨 청년이 성년을 맞으면 우선
독사에게 물리는 숙제를 통과해야 해요.
그러고도 살아남으면 사막에 들어가 혼자 2개월 동안 견뎌야 해요.
사막의 야수들과 더위를
혼자서도 이겨낼 수 있나를 테스트 하는 거죠.
그게 끝이 아니에요.
여기서도 통과한 다음엔 다른 종족 - 우리 민족에 해를 가한 -
의 목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이런 통과의례를 거친 부시맨들은 대부분 용맹스럽고,
종족보존능력이 뛰어나죠.
◎ 찰스 다윈이 부시맨족의 생태를 연구한 결과,
이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냈던 걸 알고 있나요?
● 그럼요. 공산체제처럼 강요되는 전체함의제가 독재의 극치라면,
강요되지 않은 전체합의제는 민주주의의 극치일 거예요.
저 공부 많이 했죠?
문명의 효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 하고 거부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특히 정치 쪽은 관심있게 분석을 해봤죠.
어쨌든, 우리 부족은 전체합의제 형식인데
그것이 우리를 원시상태에 잡아둔 셈이에요.
체제(?)안위에 관한 시급한 사안마저도 갑론을박 중구난방
배가 산으로 올라가도록 의견을 묻고 있으니 발전과는
담쌓고 살아온 거죠.
그런데 그래서 우리가 뭘 손해봤냐 하면 전혀 아니거든요.
새삼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행복지수는 서구 어느 나라보다
높게 나오잖아요.
◎ 1991년도에 영화 홍보차 한국에 오셨을 때 소감이 어떻던가요?
● 어후.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한강은...바다처럼 큰 강이었어요.
근데 사람이 그렇게 많아도 밟혀죽지 않나요?
그렇게 사람이 많으면 싸워서 이긴 사람만 생존할 수 있을 텐데...
◎ 싸움이요? 아, 그래서 우리는 늘 전쟁이라는 걸 하고 있지요.
입시 전쟁, 범죄와의 전쟁, 취업 전쟁, 심지어 출근 전쟁까지...
그는 아직도 하나에서 열까지만 셀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살다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썩 불행해 보인다거나 슬퍼 보이진 않았다.
『사과나무』
〃부시맨 '니카우'와의 상상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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