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번째 이야기

문형채200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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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번째 이야기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카사노바라는 인물에 대해 참 많이 다루고 있는것 같다. 덕분에 이렇게 사진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 글을 쓸때 참고할 자료가 그리 많지 않아서 조금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 < 카노사(?)의 굴욕 > 고등학교 때 세계사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 중에 (중세시대 교황과 왕의 권위 싸움에서 교황'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하인리히4세'를 눈속에서 3일 동안무릎꿇게 만든 대사건) 이른 바 . 정말 시험에 누누히 나온다고 선생님께선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설명하셨고, 시험시간 주관식 문제에서 그걸 발견했을 때 내 친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뒤 시험결과 발표 날... 그가 작성한 답안은 공부에 찌들어 굳어진 우리들을 포복절도 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카사노바의 굴욕" ......그렇다. 그는 거기에 그렇게 적어놨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2년여 세월이 지났다. 이제까지의 고정관념을 깨고 카사노바에 대해 조사해볼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과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찾아 보았으나, 그에대한 기록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우선 놀란 것은 요즘 발렌타인데이에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하는 초콜릿이 실은 카사노바가 섹스를 나눌 때 감정을 유발시키는 사랑의 미약(媚藥)으로 썼다는 것에서 기인됐다는 그 유래의 발견이었다. 또한 카사노바는 그 존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만큼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파도바 대학에 들어가 17세에 법학박사를 취득하였음은 물론, 화학·의학·역사·철학·문학에 정통했고, 점성술·연금술·마술에도 솜씨를 지녔으며, 라틴어·그리스어·프랑스어·히브리어에 능통했고 영어와 스페인어도 조금은 한 것으로 전한다. 여기에다 무용·펜싱·승마·카드놀이에 빼어난 솜씨를 지닌 데다가 듣고 읽고 말한 것은 물론이고 만난 얼굴도 반드시 기억한 천재였다고 한다. 이러한 남성은 흔지 않았고 오늘날도 흔지 않다. 그 자체만으로도 후세에 길이 남을 일화를 만들기엔 충분하다. 아니 어쩜 여자가 주위에 많았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데도 그를 무턱대고 나쁜놈이라고 비판하기는 .....좀 망설여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관점을 조금 돌려서 1000명이 넘는다는 애인. 카사노바의 이런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18세기의 베네치아는 유럽 귀족문화의 종말에 해당하는 로코코문화의 중심지이자 환락의 도시로 일년 내내 카니발이 그치지 않았다. 카사노바는 바로 이곳 베네치아에서 태어났고, 베네치아의 향락 속에서 살았다. 당시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이 풍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앙보다는 이성을, 종교적 속박보다는 자유를 원했다. 카사노바 역시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이 되었던 자유를 삶의 원칙으로 삼았다. 아까 얘기했듯 여러 능력을 지녔던 카사노바는 어떤 직업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유럽의 모든 나라를 넘나들며 살았다. 카사노바의 저서 중 이런 말이 있단다.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그는 쾌락이 인간내부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며,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삶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섹스에 관련된 엄청난 수의 범죄를 저지른 그는 베니스의 납으로 덮인 감옥(왕궁의 다락방에 있던 감옥으로 지붕이 납으로 되어 있음)에 갇히기도 한다. 그러나 타고난 자유주의자를 가둬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탈옥을 감행한 그는 18년 동안 유럽을 방황하며 수많은 섹스 행각을 벌이게 된다. 사실 카사노바는 명성만큼 많은 여자의 숫자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사라 베르나르, 기드 모파상, 엘비스 프레슬리 등에 이어 10위에 그칠 정도이다. 결국 카사노바는 양보다 질을 선택한 경우라 하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느낌과 감각으로 충분히 즐기고 감상하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이다. 대략적으로 카사노바가 관계한 여자는 132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기록에 연연해 하지 않았던 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이부분은 약간의 논란거리가 있다. 만약에 그가 기록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런 기록들을 남길 필요가 있었는지?) 50명은 더 추가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츠바이크라는 학자는 카사노바를 스페인의 전설적인 가공의 인물 '돈 후안'(그 역시 수많은 여인들을 후려내었다고 한다.)과 비교한다. 돈 후안은 금기와 윤리적인 제약 속에갇힌 여인을 정복하는 그 자체에서 승리자의 쾌감을 느꼈으며, 그 과정에서 여인의 쾌락 여부는 문제삼지 않았고, 일단 정복하는 그 순간이 지나면 그의 관심은 다른 데로 돌려진다. 당연히 이런 경우 상대편 여인은 돈 후안을 그리워하기보다는 증오와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한편 카사노바는 자신이 여성에게 접근하여 상대와 함께 쾌락을 누리며, 헤어진 뒤에도 여성은 그에 대하여 그리움을 추억으로 간직한다. 그런 짓을 하고도 정작 유린된 여인들 사이에선 이렇다할 말이 없는 것은 그의 이런 매력 때문이다. 그 여인을 유린하는 그 과정에서만큼은 그 대상을 진정코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기나긴 장문의 결론을 내릴때이다. '사랑이 없다면 인생따위는 아무런 재미도 없다'고 믿고 그대로 행동했던 카사노바는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구제불능의 사내였고, 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방랑자였다. 이에 필자는 그의 화려함속에 감춰진 집착의 병을 조금은 알 수 있었고 연민을 느꼈다. 나를 바롯한 남자들이여......!!!! 일단 그를 부러워하기 전에 그의 사상과 재능과 고독을 이해하려 해보라. 그런 다음 그의 여성 편력을 운운하는 작업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00년 10월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