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형제가 없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코코블럭(Lego 종류의..)을 가지고 놀았다.
점점 블록건축에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이번에는 최고의 걸작을 만들리라....'라고 다짐하고 또 했던
유년기의 추억이 지금도 옛 추억의 서랍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다짐 속에 만든 코코블럭의 작품이
기대 이상의 만족을 낳으며 완성되었을 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부숴야만 했다.
계속 보관하자니 걸리적거리기도 하거니와
중요 부품을 모조리 전작(前作)에 투자한 상태로는
완성작을 또 하나 만들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작품을 부술때의 허탈감이란....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단순했던 나로서는
또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곧잘 적응해 갔다.
그것이 소위 내 인생에 있어
"파괴와 창조"의 첫 전주곡이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고,
블록따위에 맘을 두지 못할 나이가 되어가자
내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느꼈던 경험의 축적량을 뉴런 속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를 '관념'이라는 단어로 일축하길 좋아했다.
그것들은 점차 일련의 법칙으로 작용하여 내 자아는
예의 그 '법칙적인 인간'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괴와 창조의 현상은 여기서도 예외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뉴런 속의 수용능력이 점차 그 한계점에 다다르거나,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쌓여가고 있을 무렵,
일정 관념들은 서로 규합해서 탄탄한 방어진을 구축하게 된다.
그것들은 마치 필요악과 같은 존재였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에 타성이 젖기 시작할 무렵
...정체가 불분명한 한 무리의 관념이 내 머리 속에 잠입한다.
이 이른바 '반란군'들은 전광석화 같은 신속성을 무기로
난공불락일것만 같은 수구세력의 관념을 제압한다.
...그리고 한동안 정신적인 카오스(chaos)상태가 도래한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객(客)이 내 머리 속을 들여보았을 때는
반란을 도모했던 관념들은
이미 어엿한 기득권을 획득한 정식관념으로서
내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게된다.
이것이 하나의 주기(cycle)가 된다....
처음 이 주기를 겪는 동안 내 마음은
앞서 언급한 카오스 그 이상의 혼란 속에 봉착해
한동안 방황의 늪에서 허우적대었다.
그 영향은 이미 진척된 2차 성징과 맞물려서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낳았다.
첫 관념주기...이것은 그렇게 혼란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종료되었다.
......분명 변화는 있었다.
기존의 관념보다는 쿠데타를 일으킨 무리들은
훨씬 논리적이었고, 현실적이기조차 하였다.
그들은 앞서의 요새보다도 더 탄탄한 요새로 무장하고
뇌를 관통하는 생각들을 감시하곤 했다.
결국 관념교차의 주기는 계속될수록 길어지게 되고
하지만 일단 시작되었다하면 저번보다 더 큰 혼란을 맛보아야 했다.
요즘 들어 그 주기에 하나의 법칙성을 더 발견하게 된 듯 싶다.
그것은 회가 거듭할수록
처음에는 복잡함과 완벽한 논리에 의해서만
그 법칙을 수용했던 것들이
이제는 단순한...그렇지만 저번보다 더 성숙된 관념에 의해
교체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이 한층 더 도덕적으로 되어간다.
(저번에 비교해서 착해진...)
문득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고 주장한
노자에 대해 그 필자는
"노자 당신도 그것을 앎을 통해 알지 않았습니까?" 라는 반박을 통해
앎의 필요성을 역설시킨 부분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이 부분에 동감한다.
순수로의 회귀...이것은 그저 1만을 아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1을 알고 그에 더해 2를 알았을 때
다시 1의 느낌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리라.
이에 관해 글 제목을 지을 때 파괴와 창조라는 단어 옆에
'미학'이란 용어를 달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정확하게 그 본질을 뚫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00년 10월 즈음에)
열여덟번째 이야기
집안에 형제가 없었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코코블럭(Lego 종류의..)을 가지고 놀았다. 점점 블록건축에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이번에는 최고의 걸작을 만들리라....'라고 다짐하고 또 했던 유년기의 추억이 지금도 옛 추억의 서랍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다짐 속에 만든 코코블럭의 작품이 기대 이상의 만족을 낳으며 완성되었을 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부숴야만 했다. 계속 보관하자니 걸리적거리기도 하거니와 중요 부품을 모조리 전작(前作)에 투자한 상태로는 완성작을 또 하나 만들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작품을 부술때의 허탈감이란....처음에는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단순했던 나로서는 또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하여 곧잘 적응해 갔다. 그것이 소위 내 인생에 있어 "파괴와 창조"의 첫 전주곡이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갔고, 블록따위에 맘을 두지 못할 나이가 되어가자 내가 살아오면서 생각하고 느꼈던 경험의 축적량을 뉴런 속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를 '관념'이라는 단어로 일축하길 좋아했다. 그것들은 점차 일련의 법칙으로 작용하여 내 자아는 예의 그 '법칙적인 인간'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파괴와 창조의 현상은 여기서도 예외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뉴런 속의 수용능력이 점차 그 한계점에 다다르거나,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쌓여가고 있을 무렵, 일정 관념들은 서로 규합해서 탄탄한 방어진을 구축하게 된다. 그것들은 마치 필요악과 같은 존재였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에 타성이 젖기 시작할 무렵 ...정체가 불분명한 한 무리의 관념이 내 머리 속에 잠입한다. 이 이른바 '반란군'들은 전광석화 같은 신속성을 무기로 난공불락일것만 같은 수구세력의 관념을 제압한다. ...그리고 한동안 정신적인 카오스(chaos)상태가 도래한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객(客)이 내 머리 속을 들여보았을 때는 반란을 도모했던 관념들은 이미 어엿한 기득권을 획득한 정식관념으로서 내 머리 위에 군림하고 있게된다. 이것이 하나의 주기(cycle)가 된다.... 처음 이 주기를 겪는 동안 내 마음은 앞서 언급한 카오스 그 이상의 혼란 속에 봉착해 한동안 방황의 늪에서 허우적대었다. 그 영향은 이미 진척된 2차 성징과 맞물려서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낳았다. 첫 관념주기...이것은 그렇게 혼란스럽게 그러나 '빠르게' 종료되었다. ......분명 변화는 있었다. 기존의 관념보다는 쿠데타를 일으킨 무리들은 훨씬 논리적이었고, 현실적이기조차 하였다. 그들은 앞서의 요새보다도 더 탄탄한 요새로 무장하고 뇌를 관통하는 생각들을 감시하곤 했다. 결국 관념교차의 주기는 계속될수록 길어지게 되고 하지만 일단 시작되었다하면 저번보다 더 큰 혼란을 맛보아야 했다. 요즘 들어 그 주기에 하나의 법칙성을 더 발견하게 된 듯 싶다. 그것은 회가 거듭할수록 처음에는 복잡함과 완벽한 논리에 의해서만 그 법칙을 수용했던 것들이 이제는 단순한...그렇지만 저번보다 더 성숙된 관념에 의해 교체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람이 한층 더 도덕적으로 되어간다. (저번에 비교해서 착해진...) 문득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고 주장한 노자에 대해 그 필자는 "노자 당신도 그것을 앎을 통해 알지 않았습니까?" 라는 반박을 통해 앎의 필요성을 역설시킨 부분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이 부분에 동감한다. 순수로의 회귀...이것은 그저 1만을 아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1을 알고 그에 더해 2를 알았을 때 다시 1의 느낌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리라. 이에 관해 글 제목을 지을 때 파괴와 창조라는 단어 옆에 '미학'이란 용어를 달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정확하게 그 본질을 뚫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00년 10월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