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나 사진 : 평양 정성수액약품공장 앞에서 정재환 홍보대사와 정성제약연구소의 전영란 소장 정재환방송인한글문화연대 부대표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홍보대사 1996년이었을까, 1997년이었을까? 또렷한 건 북한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도한 방송을 본 다음이다.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고, 바짝 말라있던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회원이 되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지만 회원이 된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고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해서 북한어린이들을 기아에서 구해내야지. 아마 나 말고도 회원이 된 사람들이 무척 많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행사 사회를 봐달라는 연락이 왔다. 담당자가 방송국의 연출자를 통해서 어렵게 전화를 했고, 조심스럽게 행사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국토순례단이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해서 지금 서울로 오고 있는데, 서울에 도착하면 여의도에서 환영대회를 하니 그 사회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조금도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사회를 보는 것은 내가 늘 하는 일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약속을 했다. 국토순례단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여의도 시민공원의 녹지를 장식하고 나는 그들을 정중히 영접했다. 뜨거운 태양에 지친 몸은 인차(북쪽말, 남쪽말로는 ‘곧’) 쓰러질 듯해도 그들의 눈동자와 영혼은 숭고한 의지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나는 먼길을 걸어온 그들의 노고에 감사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환영했다. 처음부터 저들과 함께 국토를 종단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상에도 젖었었다. 환영행사도 잠시, 곧 그들을 국토순례의 종착지인 판문점으로 떠나보내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전,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나는 부탁(?)의 말을 남겼다. 그 후로 가끔 연락이 왔다. 덕분에 옥수수죽도 먹어 봤고, 다음해에는 부산역에 가서 국토순례단을 향해 ‘출발!’이라고 크게 구령도 붙여봤다. 난생처음 인천항 부두에 나가 계란을 실은 배를 출항시키기도 했다. 내가 직접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저 소중한 계란이 북쪽의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물론 내 역할을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난 성의를 다했고, 작은 보람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운동’의 회원이라는 사실도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방송 일정 등으로 직접 갈 수 없는 날이면 ‘통일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주변의 동료를 꼬드겨 대신 보내기도 했다. 1999년이었던가, 홍보대사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망설였다. 솔직히 부담스러웠고, 그런 감투를 쓴다는 게 송구스럽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사양을 하면서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홍보대사는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돌아보면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의구심이 생기지만 오래도록 인연의 끈은 이어졌고 튼튼히 꼬아졌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정성수액공장 준공식 사회를 보러 평양에도 다녀왔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쪽의 동포들이 이제 더는 ‘맥주병링거’를 맞지 않겠지! 정말 많은 분이 이 일을 위해 마음을 쓰고 열정을 쏟고 큰돈을 기부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그야말로 ‘작은 봉사 큰 기쁨’이었다. 평양에 다녀오면서 다시 홍보대사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더는 사양하기 어려웠다. 실상 통일부장관을 하라는 것도 아닌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처럼 하면 됩니까? 아니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됩니까?” 결국, 난 이것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지난해 12월에 위촉장을 받았다. 위촉장을 받으면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래 홍보대사라는 옷이 좀 화려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내 식대로 열심히 하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열심히 알리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고 통일을 이뤄나가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차분히 해나가자. 그럼 이제 홍보대사로서 한 말씀 올리자.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에는 꼭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올해가 병술년이니까, 저는 올해는 눈 오는 날 팔짝팔짝 눈밭을 뛰는 개처럼 열심히 뛰겠습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나 - 정재환홍보대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나
사진 : 평양 정성수액약품공장 앞에서 정재환 홍보대사와
정성제약연구소의 전영란 소장
정재환
방송인
한글문화연대 부대표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홍보대사
1996년이었을까, 1997년이었을까?
또렷한 건 북한의 어린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도한 방송을 본 다음이다.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고, 바짝 말라있던 내 눈물샘을 자극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아내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로부터 얼마 후 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회원이 되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지만 회원이 된 것만으로도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고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 운동에 참여해서 북한어린이들을 기아에서 구해내야지. 아마 나 말고도 회원이 된 사람들이 무척 많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행사 사회를 봐달라는 연락이 왔다.
담당자가 방송국의 연출자를 통해서 어렵게 전화를 했고, 조심스럽게 행사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국토순례단이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해서 지금 서울로 오고 있는데, 서울에 도착하면 여의도에서 환영대회를 하니 그 사회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조금도 어려울 게 없는 일이었다. 사회를 보는 것은 내가 늘 하는 일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약속을 했다.
국토순례단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여의도 시민공원의 녹지를 장식하고 나는 그들을 정중히 영접했다.
뜨거운 태양에 지친 몸은 인차(북쪽말, 남쪽말로는 ‘곧’) 쓰러질 듯해도 그들의 눈동자와 영혼은 숭고한 의지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나는 먼길을 걸어온 그들의 노고에 감사했고 진심으로 그들을 환영했다.
처음부터 저들과 함께 국토를 종단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감상에도 젖었었다.
환영행사도 잠시, 곧 그들을 국토순례의 종착지인 판문점으로 떠나보내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 전,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나는 부탁(?)의 말을 남겼다.
그 후로 가끔 연락이 왔다.
덕분에 옥수수죽도 먹어 봤고, 다음해에는 부산역에 가서 국토순례단을 향해 ‘출발!’이라고 크게 구령도 붙여봤다.
난생처음 인천항 부두에 나가 계란을 실은 배를 출항시키기도 했다.
내가 직접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저 소중한 계란이 북쪽의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물론 내 역할을 보잘것없는 것이었지만 난 성의를 다했고, 작은 보람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운동’의 회원이라는 사실도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방송 일정 등으로 직접 갈 수 없는 날이면 ‘통일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주변의 동료를 꼬드겨 대신 보내기도 했다.
1999년이었던가, 홍보대사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망설였다. 솔직히 부담스러웠고, 그런 감투를 쓴다는 게 송구스럽기도 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사양을 하면서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홍보대사는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돌아보면 그 약속을 잘 지켰는지 의구심이 생기지만 오래도록 인연의 끈은 이어졌고 튼튼히 꼬아졌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정성수액공장 준공식 사회를 보러 평양에도 다녀왔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북쪽의 동포들이 이제 더는 ‘맥주병링거’를 맞지 않겠지! 정말 많은 분이 이 일을 위해 마음을 쓰고 열정을 쏟고 큰돈을 기부하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그야말로 ‘작은 봉사 큰 기쁨’이었다.
평양에 다녀오면서 다시 홍보대사를 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잠시 고민했지만 더는 사양하기 어려웠다. 실상 통일부장관을 하라는 것도 아닌데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처럼 하면 됩니까? 아니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됩니까?”
결국, 난 이것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지난해 12월에 위촉장을 받았다.
위촉장을 받으면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래 홍보대사라는 옷이 좀 화려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내 식대로 열심히 하자.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열심히 알리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고 통일을 이뤄나가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차분히 해나가자. 그럼 이제 홍보대사로서 한 말씀 올리자.
“국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에는 꼭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회원이 되어 주십시오! 올해가 병술년이니까, 저는 올해는 눈 오는 날 팔짝팔짝 눈밭을 뛰는 개처럼 열심히 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