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 서울대 경영대학 학장

정석희200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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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편한 것만 찾았다. 한학기를 뒤돌아 볼때 너무 편히 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과거의 자신을 과소평가한 것인가? ---------------------------- 유학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요즈음 대학생들이 가진 관심사 중에서 다섯 가지 이슈가 크게 부각되는 듯 하다. 이를 순서 없이 늘어놓으면 동성 친구와의 우정과 갈등, 이성친구와의 교제와 사랑, 아르바이트와 용돈 걱정, 졸업 후 취업 문제, 그리고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외국 유학은 젊은이가 미래를 설계할 때, 그리고 특히 공부를 계속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고려하게 되는 대안이다. 외국 여행이 보편화 된 오늘날 외국 유학에 대한 경제적 장벽, 심리적 장벽은 거의 사라졌다. 최근 만난 중국 대사관 교육참사관에 의하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이 6천명인 반면, 한국에서 중국으로 유학 간 학생이 2만 2천명이라고 한다. 중국에 있는 우리 유학생이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 유학생의 네 배에 가깝고, 중국에 있는 유학생 6만 명에서 셋 중 하나가 한국 유학생인 셈이다. 또 미국 국제교육연구소에 따르면 2001-2002년 미국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 58.3만 명 중 인도 학생이 6.7만 명으로 1등, 중국 학생이 6.3만 명으로 2등, 한국 학생이 4.9만 명으로 3등이라고 한다. 젊은이 중에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깊은 생각 없이, 그리고 철저한 준비 없이 유학 가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 하다. 어학연수를 포함한 해외유학이 유행병처럼 젊은이라면 꼭 거쳐야 하는 의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유행병이 그렇듯이 준비 없이 시도하는 유학은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보통이다. 해외유학간 학생 중 상당수가 주위에서 기대하는 공부는 하지 않고 현지에서 마약을 비롯하여 인생을 황폐하게 하는 향락에 물들고 마는 불행한 사태가 나는 것도 바로 철저한 사전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첫째, “나는 유학을 왜 가려고 하는가”에 대해 먼저 심각한 자기 성찰을 하면서 뚜렷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둘째로는 유학에 필요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평가하고, 이에 대한 충분한 자신이 있을 때 유학을 결심해야 한다. 셋째, 유학을 결심한 후에도 유학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지에서의 삶을 이끌어가는데 있어 바람직한 자세를 확립해야 한다. 첫째, 사람들이 유학을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려면 해외 유학과 국내 수학, 즉 국내 대학, 대학원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길을 비교해보아야 한다. 해외유학이 주는 직접적 효과는 실로 다양하다. 외국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은 해외유학이 주는 가장 직접적인 매력이다. 한국에 비해서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최근 우리나라도 수많은 대학이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교육시설,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교과과목, 그리고 휴먼웨어에 해당하는 교수와 직원의 질 면에서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 메커니즘, 즉 교수와 시설, 교과과목이 한데 어울려 진행되는 교육 그 자체는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수십,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외국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메커니즘은 우리가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직접적 효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적응력과 순발력이다. 외국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언어 외에도 상식, 예절 등에서 부족한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족한 면을 하나하나 배워갈 수는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은 정면으로 부딪쳐서 해결하고, 불필요한 갈등은 회피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도 하면서 적응력과 순발력을 습득하게 된다. 또 다른 효과로서, 유학생은 우리와 전혀 다른 전통, 문화, 생활 속에서 자라난 현지인,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또 다른 외국유학생들과 친구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독일이 나은 세계적인 문호 궤테는 “외국어를 아는 사람만이 자국어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유학생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사귀는 가운데 자신이 가진 장점과 단점,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유학생들은 세계인으로서의 인격과 성품, 그리고 능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 해외 유학에 필요한 세가지 조건은 경제력, 정신력, 체력이다. 해외유학을 위해서는 항공료를 포함해서 현지에서 필요한 생활수단을 우송하고 준비하는 이주비용, 그리고 생소한 환경에서 사는데 따르는 추가비용을 포함한 생활비가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마음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고, 마라톤과 같은 공부를 하면서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져야 한다. 이 세가지 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정신력이고, 경제력은 최소한의 조건이지만 장학금, 현지에서의 아르바이트 등 극복하지 못할 절대적인 장벽은 아니다. 셋째, 유학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필자는 1973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하면서 직접 경험한 바를 기초로 해서 다음 세가지 충고를 유학 떠나는 제자들에게 해준다. 첫 번째 충고는 “강-약-중강-약”이다. 해외유학은 생소한 언어, 제도, 습관을 비롯해서 새로운 환경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이다. 모험에서 위험을 회피하려면 매사에 긴장하고, 철저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계속 긴장된 자세를 가지는 사람은 곧 피곤해진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4/4박자 음악에서 사용하는 강-약-중강-약의 리듬이다. 예컨대 4년이 필요한 박사학위과정의 경우 첫해에는 강, 둘째 해에는 약, 셋째 해에는 중강, 넷째 해에는 약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4개월로 구성된 매 학기의 경우에도 첫 달은 강, 둘째 달은 약, 셋째 달은 중강, 넷째 달은 약으로 살 필요가 있다. 또 한 주일의 삶에서도 첫날은 강, 둘째 날은 약, 셋째 날에는 중강, 넷째 날에는 약 하는 식이다. 필자가 경험한 사례를 통해서 이 의미를 설명해보자. 첫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 통계학1이 있었는데 이 과목에서 필자는 철저한 준비를 해서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공교롭게 두 번째 학기에도 필자는 같은 교수가 개설한 통계학2를 수강하게 되었다. 필자는 첫 학기에 워낙 공부에 집중했던 탓에 2학기에는 긴장이 다소 풀어졌고 그 결과 중간시험에서 몇 개 틀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은 필자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다음 시간에 사라졌다. 그 교수는 강의실에 들어오자 말자, 필자를 지목하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조동성 군은 이번 시험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답변을 썼는데, 지난 학기에 조 군이 발휘한 실력을 보건대, 모르고 쓴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 것 같아서 만점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첫 학기에서 특출하게 실력을 발휘했던 후광효과 (halo effect)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 경험 이후 필자는 유학에서의 성공 여부가 첫 해, 첫 학기, 첫 과목, 첫 시간에 결정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체득했다. 두 번째 충고는 “Far and Away”이다. 탐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배우로 등장한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 충고는 가급적 한국 유학생들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라는 충고이다. 유학생활 중에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배움이다. 그러나 대학 기숙사, 또는 기혼자 아파트에 가보면 예외 없이 한국 유학생이 두셋에서 수십 명 같은 건물에서 살게 된다. 한 동네에서 같이 살다 보면 저절로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그러다 보면 한국인 사회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일요일이면 같이 교회를 가거나 야유회를 가게 되고, 같이 장보러 다니며, 자녀가 있는 가정들은 서로서로 애기를 봐주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손쉽고 편한 삶이 보장된다. 그러나 이런 삶은 장소만 바뀔 뿐, 한국에서의 삶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 있게 되면 그 나라 문화를 익히는 것은 고사하고, 그 나라 언어도 습득할 기회를 가지기 어렵다. 식당이나 수퍼마케트에 장보러 가도 손짓만으로도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으니 그 나라 언어가 거의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해외에 3년 동안 있으면서 그 나라 언어를 단 한마디도 못하고 한국 음식만 잔뜩 먹고 왔다는 웃지 못할 경우도 발생한다. 필자 역시 하버드에서 마련해준 피버디 테러스라는 기혼자 아파트에 가보니 한국에서부터 알던 친구를 포함해서 한국인이 세 가구 있는 것이었다.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하던 필자는 주말에 극장가고 여름에 바닷가 놀러 가자는 한국친구들의 제안을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졸졸 따라다닐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빠졌다. 그래서 단안을 내려 하버드경영대학원이 있는 보스톤에서 20마일 떨어진 베드포드란 시골로 이주해서 살았다 그 곳에는 미국 중산층이 사는 동네로서 보스톤보다 집값도 쌌다. 우리 아이들은 말을 기르던 옆집 아이들과 친해져서 말 타는 법도 배우고 영어도 완벽한 원어 발음을 구사하게 되었다. 세 번째 충고는 “고학(苦學)만세”이다. 학생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목적은 물론 공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공부란 학교 강의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교수 연구실은 물론이고, 학생회관, 식당, 공원 등 사람들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공부는 이루어진다. 필자는 유학을 떠나기 직전 형님이 사업에서 부도를 낸 바람에 고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학비를 학교에서 면제해 준 덕분에 필자는 생활비만 벌면 되었다. 그러나 유학 길을 떠나기 전에 이미 결혼하고 아들까지 둔 상황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3인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는 학교에서 교수들이 연구를 위해 조교를 모집한다는 방을 붙이면 작업 내용을 불문하고 덤벼들었고, 학교 밖에서 돈 벌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어렵고 쉬움을 가리지 않고 손에 잡았다. 경영수학으로 시작되었던 필자의 박사과정 전공영역은 국제경영과 전략을 전공하는 로버트 스토보오 교수의 연구 조교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오늘날 필자가 한국에서 국제경영과 전략분야를 개척한 학자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게 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보스턴 대학에서는 필자에게 경영학 학부 강의를 맡겼다. 필자는 이 강의를 통해서 돈도 제법 벌었을 뿐 아니라, 미국 학부에 다니는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금, 토요일 저녁에는 미국 식당에서 바운서 (bouncer)라고 불리는 “기도”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이 직장에서도 꽤 큰 돈을 벌었을 뿐 아니라 식당에서 같이 일하는 웨이터, 웨이트리스, 주방 요리사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미국 서민들의 애환도 느끼고, 이들이 사용하는 구어체 영어도 익힐 수 있었다. 어느 여름에는 두 달 동안 시원한 병원 영안실에서 시체를 운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스턴의 더위를 이기고, 생로병사에 대해서 심각하게 사색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미국에서 6년밖에 안 살았던 필자가 지금도 미국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전 세계 어느 식당에서도 전문가답게 식사를 주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식당에서 1년간 일한 덕분이다. 유학 당시 미국에서 지냈던 삶을 되돌아볼 때, 하버드 강의실에서 공부한 것 못지 않게 교수 연구실, 식당, 병원에서 얻은 경험이 필자가 세계인으로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지게 된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유학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이여, 유학 길을 떠나기 전에 다음 세 질문을 스스로 하기 바란다. “나는 왜 유학을 가려고 하는가?” “나는 유학을 가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가?” “나는 현지에서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준비한다면 유학은 여러분을 성공의 길로 이끌 것이다. 서울대 경영대학 학장 조동성 (한국하버드총동창회 회장) (dsch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