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상담원의 고백〃

김상민2006.04.10
조회45
안녕하세요.
저는 이동통신사에서 민원상담을 하고 있는 이혜영이라고 합니다.
2년이 훨씬 넘게 고객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 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요.
그날따라 불만 고객들이 유난히 많아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지요.
하지만, 업무의 특성상 고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해도
저희 쪽에서 할 수 있는 말이란,
"죄송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 다시 조치하겠습니다."
이런 말 외에 같이 흥분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는 없거든요.

그날도 비까지 오는데다 컨디션도 많이 안 좋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사정이기 때문에 걸려오는 전화에
제 기분은 뒤로 숨긴 채 인사멘트를 했죠.
목소리로 보아 중학생 정도의 여자애였어요.

이혜영 :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텔레콤 이혜영입니다."

고객 : "비밀번호 좀 가르쳐주세요."

목소리가 무척 맹랑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혜영 : "고객님 사용하시는 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고객 : "*** - **** - ****이요."

이혜영 :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고객 : "난데요. 빨리 불러주세요."

나이도 어린 것이 엄청 건방지군.

이혜영 : "가입자가 남자분으로 되어 있으신데요? 본인 아니시죠?"

고객 : "제 동생이예요. 제 동생이니까 빨리 말해주세요."

이혜영 : "죄송한데 고객분 비밀번호는 명의자 본인이
     단말기소지 후에만가능하십니다.
     저희는 밤 열 시까지 근무하니 다시 전화 주시겠어요?"

고객 : "제 동생 죽었어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해요?"

가끔 타인이 다른 사람의 비밀번호를 알려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혜영 : "그럼 명의변경을 하셔야 하니까요.
     사망 진단서와 전화주신 분 신분증 또는 미성년자이시니까
     부모님 동의서를 팩스로 좀 넣어 주세요."

고객 : "뭐가 그렇게 불편해요. 그냥 알려줘요."

너무 막무가내였기 때문에 부모님을 좀 바꿔달라고 했죠.

고객 : "아빠. 이 여자가 아빠 바꿔 달래."

여학생뒤로 아빠와 엄마 말소리가 들리더군요.

고객 : "비밀번호 알려 달라고 그래. 빨리."

아빠 : "여보세요..."

이혜영 : "안녕하세요. ○○텔레콤인데요.
     비밀번호 열람 때문에 그러는데요.
     명의자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아빠 : "제 아들이요? 6개월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앗! 그럼 사실이란 말이야? 그때부터 미안해지더군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아빠가 딸에게 묻더군요.

아빠 : "얘야. 비밀번호는 왜 알려고 전화했니?"

딸이 화난 목소리로,

고객 : "엄마가 자꾸 혁이(그 가입자 이름이 김혁이었거든요.)
    호출번호로 인사말 들으면서 계속 울기만 하잖아.
    그거 비밀번호 알아야만 지운단 말이야."

전 그때 가슴이 꽉 막혀왔습니다.

아빠 : "비밀번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혜영 : "아. 예..... 비밀번호는 명의자만 가능하기 때문에
     명의 변경을 하셔야 합니다. 의료보험증과
     보호자 신분증을 넣어 주셔도 가능합니다."

아빠 : "알겠습니다."

전,"감사합니다."로 멘트 종료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도 모르게,

이혜영 : "죄송합니다. 확인 후 전화주십시오."
라고 말하고 말았죠.

아빠 : "고맙습니다."

이혜영 : "아. 예..."

그렇게 전화는 끊겼지만 왠지 모를 미안함과
가슴 아픔에 어쩔 줄 몰랐죠.
전 통화 종료 후, 조심스레 호출 번호를 눌러봤죠.

역시나...

"안녕하세요. 저 혁인데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멘트가 녹음되어 있더군요.
전 조심스레 사서함을 확인해 봤죠.

좀 전에 통화한 아빠였습니다.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혁아.....아빠다..........이렇게 음성을
남겨도 니가 들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은 니가 보고
싶어 어쩔 수 가 없구나...
미안하다. 혁아! 아빠가 오늘 니 생각이 나서 술을 마셨다.
니가, 아빠 술 마시는 거 그렇게 싫어했는데.........
안춥니? 혁아..., 아빠 안 보고 싶어? ........"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혁이의 엄마는 사용하지도 않는 호출기임에도
앞에 녹음되어 있는자식의 목소리를 들으며 매일밤을 울었나 봅니다.
그걸 보다 못한 딸이 인사말을 지우려 전화를 한 것이고요.

가슴이 많이 아프더군요.
일년이 훨씬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족을 위해 부족한 저이지만 다시 한 번 기도 드립니다.
이젠 혁이 엄마, 더는 울지 않으시길...
절대 잊을 수 없겠지만 이젠 덮어두시고 편히 사시길....

그리고 제 기도가 하늘에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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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 David Leahy_。
  글 :  양명호님의 '콩나물 시루 中'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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