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십자인대 파열이랍니다. 황선홍과 고정운 등 많은 축구 선수들을 힘들게 했던 십자인대 파열. 대체 이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의사인 사촌 형에게도 물어보고 검색도 했습니다. 사촌 형도, 인터넷도 모두 십자인대 파열에 대해서는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후 대략 6개월~1년 정도 지나야 다치기 전의 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였습니다. 또한 "수술을 하지 않으면 무릎관절이 불안정한 상태로 연골 및 반월상 연골판이 손상되어 퇴행성 관절염으로 진행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수술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결국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따라서 이동국 선수는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도 재활 치료를 선택했습니다. 즉 재활치료를 통해 근력을 끌어올려 십자인대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윤영설 KFA 의무분과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재활치료의 경우에도 제 기량을 100% 찾기가 어렵답니다. 더욱 무리하다가는 선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이동국 선수는 재활 치료를 택했습니다.
월드컵에서의 이동국 선수
월드컵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동국 선수는 딱 한 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것도 딱 13분 동안 피치를 누볐습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19세의 나이였던 이동국 선수는 팀이 네덜란드에 0-3으로 지고 있던 후반 32분 교체 투입되었습니다. 팀은 두 골을 더 내어주었지만 이동국 선수는 통쾌한 중거리슛을 보여주며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동국은 0-5의 대패를 당하며,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돌아온 한국 축구를 다시 끌어올릴 `희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이동국 선수는 98년 K리그에서 11골(컵 대회 포함)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는 등 멋진 활약을 보인 그는 1999년 북중미 골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회 직전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전한 캐나다전 이후 그는 부상이 악화되어 2000년 K리그 전반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부상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고 9월에 있은 올림픽, 10월에 있었던 아시안컵에 무리하게 출전한 이동국 선수는 부상의 악순환에 발목을 잡히고 말죠.
그리고 맞이한 2002년 월드컵. 이동국 선수는 자국에서 열리는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구상하는 전술의 틀에 맞지 않아 결국 마지막 순간 대표팀에서 탈락하게 되었죠.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부상이기는 했습니다.
월드컵의 붉은 물결이 한국을 강타한 2002년 여름 이동국 선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절치부심했습니다. 당시 TV로 월드컵을 보지 않을 만큼 상심이 컸던 것이죠. 그리고 이동국 선수는 홀연히 광주 상무로 입대합니다.
그 후 4년. 이동국 선수는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대표팀의 주전 원톱으로서 자리매김합니다. 특히 지난 1월 6주간 전 세계를 도는 혹독한 전지훈련을 치르면서도 강한 월드컵 출전 의지를 보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개막한 2006 K리그. 이적 파문을 딛고 이동국 선수는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피치를 누빕니다. 7경기 출전에 6골. 전지 훈련의 여파로 소속 팀 선수들과 발을 맞추어 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 선수는 탁월한 골결정력과 넓은 활동 반경을 보여주며 팀의 에이스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이동국 선수가 독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본인 역시 자신을 믿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축구계에는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경미한 부상에 시달리지만 몸이 너무 좋으면 큰 부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동국 선수가 바로 그런 모습이지요. 지난 인천과의 경기에서 당한 부상. 공간을 보고 치고 들어가며 자기 팀 선수가 연결해준 공을 잡기 위해 뛰어가다가 당한 부상.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8년간 만에 잡은 기회를 앞에 두고.
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모든 축구 선수에게 월드컵은 꿈의 무대입니다. 이동국 선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요. 특히 어린 시절 월드컵 무대를 잠시 맛보았었던 그에게 27살로 전성기에 맞이한 이번 월드컵 무대는 8년간 절치부심하며 준비했던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이번에 당한 부상은 이동국 선수 본인을 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했습니다. 월드컵을 포기하고 수술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선수 생명을 걸더라도 월드컵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동국 선수는 주저 없이 월드컵을 선택했습니다. 윤영설 위원장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숙명처럼 월드컵을 선택했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제 가슴은 이동국 선수에게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격려하고 있지만 제 머리는 그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이동국 선수의 노력을 먼 발치에서 지켜봐 왔고 그의 월드컵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 싫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동국 선수가 수술대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역시 이런 말을 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싫고, 아직까지 이동국 선수의 부상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이동국 선수의 기량을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동국 선수 본인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동국 선수는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야 합니다. 이동국 선수의 그 멋진 플레이들을 앞으로 더욱 K리그에서 그리고 A매치에서 나아가 유럽무대에서 보고 싶습니다. 만약 이번에 무리한 재활 치료 후 더욱 상태가 악화되어서 이전과 같은 플레이를 두 번 다시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말 슬플 것입니다.
이 동 국 #20
이동국 선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십자인대 파열이랍니다. 황선홍과 고정운 등 많은 축구 선수들을 힘들게 했던 십자인대 파열. 대체 이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고 싶어 의사인 사촌 형에게도 물어보고 검색도 했습니다.
사촌 형도, 인터넷도 모두 십자인대 파열에 대해서는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후 대략 6개월~1년 정도 지나야 다치기 전의 활동으로 돌아갈 수 있다" 였습니다. 또한 "수술을 하지 않으면 무릎관절이 불안정한 상태로 연골 및 반월상 연골판이 손상되어 퇴행성 관절염으로 진행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동국 선수는 수술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결국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따라서 이동국 선수는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라도 재활 치료를 선택했습니다. 즉 재활치료를 통해 근력을 끌어올려 십자인대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윤영설 KFA 의무분과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재활치료의 경우에도 제 기량을 100% 찾기가 어렵답니다. 더욱 무리하다가는 선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답니다. 그러나 이동국 선수는 재활 치료를 택했습니다.
월드컵에서의 이동국 선수
월드컵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동국 선수는 딱 한 번 월드컵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것도 딱 13분 동안 피치를 누볐습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19세의 나이였던 이동국 선수는 팀이 네덜란드에 0-3으로 지고 있던 후반 32분 교체 투입되었습니다. 팀은 두 골을 더 내어주었지만 이동국 선수는 통쾌한 중거리슛을 보여주며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동국은 0-5의 대패를 당하며,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 돌아온 한국 축구를 다시 끌어올릴 `희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이동국 선수는 98년 K리그에서 11골(컵 대회 포함)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오르는 등 멋진 활약을 보인 그는 1999년 북중미 골드컵에 참가하게 됩니다. 그러나 대회 직전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전한 캐나다전 이후 그는 부상이 악화되어 2000년 K리그 전반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부상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고 9월에 있은 올림픽, 10월에 있었던 아시안컵에 무리하게 출전한 이동국 선수는 부상의 악순환에 발목을 잡히고 말죠.
그리고 맞이한 2002년 월드컵. 이동국 선수는 자국에서 열리는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구상하는 전술의 틀에 맞지 않아 결국 마지막 순간 대표팀에서 탈락하게 되었죠.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부상이기는 했습니다.
월드컵의 붉은 물결이 한국을 강타한 2002년 여름 이동국 선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절치부심했습니다. 당시 TV로 월드컵을 보지 않을 만큼 상심이 컸던 것이죠. 그리고 이동국 선수는 홀연히 광주 상무로 입대합니다.
그 후 4년. 이동국 선수는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대표팀의 주전 원톱으로서 자리매김합니다. 특히 지난 1월 6주간 전 세계를 도는 혹독한 전지훈련을 치르면서도 강한 월드컵 출전 의지를 보이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개막한 2006 K리그. 이적 파문을 딛고 이동국 선수는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피치를 누빕니다. 7경기 출전에 6골. 전지 훈련의 여파로 소속 팀 선수들과 발을 맞추어 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국 선수는 탁월한 골결정력과 넓은 활동 반경을 보여주며 팀의 에이스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이동국 선수가 독일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본인 역시 자신을 믿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축구계에는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경미한 부상에 시달리지만 몸이 너무 좋으면 큰 부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동국 선수가 바로 그런 모습이지요. 지난 인천과의 경기에서 당한 부상. 공간을 보고 치고 들어가며 자기 팀 선수가 연결해준 공을 잡기 위해 뛰어가다가 당한 부상.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8년간 만에 잡은 기회를 앞에 두고.
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모든 축구 선수에게 월드컵은 꿈의 무대입니다. 이동국 선수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요. 특히 어린 시절 월드컵 무대를 잠시 맛보았었던 그에게 27살로 전성기에 맞이한 이번 월드컵 무대는 8년간 절치부심하며 준비했던 것이지요. 그런 와중에 이번에 당한 부상은 이동국 선수 본인을 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했습니다. 월드컵을 포기하고 수술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선수 생명을 걸더라도 월드컵을 선택할 것인가?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이동국 선수는 주저 없이 월드컵을 선택했습니다. 윤영설 위원장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숙명처럼 월드컵을 선택했습니다. 이동국 선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제 가슴은 이동국 선수에게 용기를 북돋우어주고 격려하고 있지만 제 머리는 그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의 이동국 선수의 노력을 먼 발치에서 지켜봐 왔고 그의 월드컵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 싫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동국 선수가 수술대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역시 이런 말을 하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도 싫고, 아직까지 이동국 선수의 부상이 만우절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이동국 선수의 기량을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동국 선수 본인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동국 선수는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해야 합니다. 이동국 선수의 그 멋진 플레이들을 앞으로 더욱 K리그에서 그리고 A매치에서 나아가 유럽무대에서 보고 싶습니다. 만약 이번에 무리한 재활 치료 후 더욱 상태가 악화되어서 이전과 같은 플레이를 두 번 다시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말 슬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