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때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 수필형식으로 써 오라는 교수님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것이 12년이라는 공교육기간 동안에 나는 존경할만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내 감정이 가뭄에 쩌억 갈라진 논처럼 황량하거나 아니면 지금껏 만난 선생님들이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지 않거나. 학창시절 나는 선생님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공부를 썩 잘 한 것도 아니었고 사고뭉치도 아니었다. 친구나 선생님 사이에서 '기웅서'는 군계일학도 필부필부도 아닌, 뭐랄까? 참 뭐라고 표현못할 그런 존재였다. 지난 학창시절은 무미건조한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이러한 학창시절의 경험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꿈은 선생님이다. 나 자신이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되고픈 것이다. 먼 훗날 총신대학교에 입학한 내 제자가 교육학개론 시간에 나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광경을 상상해보며 나 또한 옅은 미소를 지어본다. 다시 과제물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겠다. 3년 전에 나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지 못하고 내가 존경할만한 이상적인 선생님상에 대해 그것도 부욱 찢은 노트에 써냈다. 추억 속에 있는 선생님이 아닌 추억하고 싶은 선생님을 상상 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찌나 후회가 되는지. 가상인물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도 존경하는 선생님을 추억해보라는 의도에서 과제를 내신 교수님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꼭 같은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나는 또 다시 번민에 휩쌓였다. 3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내 기억력을 빈곤케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는 것을. 하지만 3년 전의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 어떻게 해서든 흐릿한 기억 속의 선생님 한 분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 사람을 찾아냈다. 10년도 더 된 추억이라는 이름의 잃어버린 지갑 속에서 말이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한 사람의 이름도,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말 잃어버린 지갑을 찾은 기분이었다. 거기에는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내 얼굴도 화알짝 웃고 있었다. 김미자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름이다. 김미자 선생님은 가녀린 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미운소리 한 번 제대로 안하시고 언제나 약간 홍조와 미소를 띤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셨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 선생님은 천사표로 통했다. 목소리도 가냘팠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열정으로 약간은 격양된 상태였다. 선생님은 뭐랄까?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제목처럼 '향기로 말을 거는 꽃'같았다. 선생님의 존재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 마치 한 송이 꽃 같은 분이었다. 바지보다는 치마가 잘 어울리고 생머리보다는 약간 파마한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그런 분이었다. 우리 반에는 주먹 깨나 쓰는 두 녀석이 있었다. 문제는 그 주먹을 의로운 곳에 사용하지 못하는 점이었다. 그들은 힘을 가진 자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아이들을 억누르고 휘두르기 위해 주먹을 썼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들까지 그 주먹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은 선생님 모르게 주먹을 썼다. 물론 그들만의 생각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으리라. 하지만 꾹 참고 계셨으리라. 이것도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갈등구조를 위한 조금은 유치한 등장이다. 그는 왕따다. 선생님만큼이나 가녀린 체구에 나비모양 안경을 쓴 남자아이다. 공부를, 특히 산수를 썩 잘해서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도시락에 있는 맛있는 반찬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늘 혼자만 먹는 얄미운 친구다. 또 약간은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못하다. 등하교길에 그는 늘 혼자이다. 그 때 당시에는 왕따라는 말 자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있기에 지금부터 그 친구를 왕따 친구라고 부르겠다. 그 친구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왕따 친구는 주먹친구의 희생양이었다. 주먹친구 둘은 말 그대로 심심하면 왕따 친구를 때렸다. 왕따 친구는 나름대로 늘 반항했지만 완력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2대1의 싸움이었다. 하루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의 구타가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저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는 없었다. 권력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이 대개 그러한가보다. 하긴 나도 그러했다. 왕따친구는 괴로워했다. 찡그린 얼굴이 '나 좀 도와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도와 줄 만한 배짱 있는 녀석도 없었거니와 주먹친구들의 주먹은 이미 학교 전체에서 이름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가혹한 구타가 끝났다. 왕따 친구는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망간 게 틀림없으리라. 아이들은 주먹친구들의 위세등등한 모습에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꾹 참아야했다. 화가 미칠지도 모르니까. 맞는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니까. 왕따 친구도 기분 나쁘겠지만 나는 기분나쁘고 싶지 않으니까. 잠시 후. 김미자 선생님이 열린 교실 뒷문으로 뛰듯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주먹친구 둘을 불렀다. "OOO, OOO(주먹친구들의 이름이다) 너희들 이리와!" 교실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꽃 같은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 선생님이 화를 내시다니. 아이들은 일순간 침묵했고 주먹친구 둘은 쭈뼛거리다가 교실 뒤쪽으로 걸어왔다. 이윽고 선생님의 구타(?)가 사작됐다. 거의 매를 들지 않던 선생님이 손으로 주먹친구를 때렸다. 주먹친구들이 상대해 온 녀석들의 주먹에 비해서는 턱 없이 약한 힘으로 말이다. 하지만 주먹친구들은 그들의 상대처럼 반항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한 짓을 알고 있었고, 지금 눈 앞의 상대는 선생님이 아닌가. 선생님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셨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탄식 비슷했다. 아니, 그것은 울먹이는 소리였다. 그렇다. 선생님은 울고 있었다. 아이들을 때리며 울고 있었다. 정작 울어야 할 왕따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훌쩍거리면서 계속 주먹친구들을 때렸다.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선생님이 울고 있다. 도대체 왜? 6학년의 심정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졸업식 때 선생님은 두 번째로 눈물을 보이셨다. 선생님은 안타까워했다. 왜 힘 없는 친구를 괴롭히냐고.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왜 괴롭히냐고. 그리고 어두운 표정의 아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너희들은 왜 가만히 있었냐고. 왜 뜯어말리지 못했냐고. 맞는 게 두려웠냐는 식으로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랬다. 맞는 게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다. 왕따친구에게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왜 진작에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계속 맞았으면서 왜 이제와서 이야기하냐고. 선생님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통곡을 하셨다.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주먹친구들은 잠자는 비둘기처럼 고개를 가슴팍에 푸욱 박고 있었다. 왕따친구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 안타까움, 미움, 동정심, 정의감, 미안함, 서운함 등등. 6학년의 눈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어렴풋이 느껴진다.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의 눈물은 나무로 된 교실 바닥을 적셨다. 왁스걸레로 박박 닦은 바닥이어서 눈물은 나무에 맺히지 않고 고였다. 마치 유리에 떨어진 것처럼. 유리같이 투명한 아이들의 마음에도 선생님의 눈물은 고였다. 선생님은 천천히 들어온 뒷문으로 나가셨다. 주먹친구는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왕따친구도 앉았다.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일까. 아니면 주먹친구들을 향한 분노를 형상화된 정념 속에 쏘아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선생님의 눈물을 향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일까.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눈물에 정화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내재되어있다고 본다. 김미자 선생님의 눈물도 그러했으리라. 아쉬운 것은 주먹친구들이 그 이후에도 주먹질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눈물로 인해 그들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좋았을것을'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피엔딩을 싫어하는 요즘 세태와 들어맞기에 어찌보면 바람직한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주먹친구들과 왕따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하다. 김미자 선생님은 어디서 또 어떠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실지도 그러하다. 이젠 나무바닥이 아닌 대리석이나 잘 닦인 교실 바닥에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으실까? 믈론 조금 더 교활해지고 조금 더 강퍅해진 아이들을 대하며 격세지감을 느끼시겠지만 그것이 교사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일게다. 세월의 흐름에 딱딱한 나무처럼 경직되어 있다간 부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갈대같이 흔들리더라도 중심만은 잃지 않을 김미자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따스한 격려의 한 마디를 추억 속으로 퐁당 던져보고 싶다. 어쨌든 10여 년 전 김미자 선생님의 눈물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과연 교사로서 학생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릴 수 있을까?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학생들의 잘못때문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영혼의 문제를 위해서 나는 울 수 있을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눈물흘릴 수 있을까? 아직 교사가 아니기에 스스로에게 확답을 줄 수 없다. 그저 막연한 한 기대감으로나마 부족한 자신을 채워나가야겠다. 김미자 선생님을 추억함으로써 오히려 나는 교사를 지향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김미자 선생님은 내가 존경할만한 은사시다. 제자를 위해 눈물흘리며 기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도 제자를 위해 눈물흘리기를 소망한다. 눈물의 씨앗이 열매맺는 그날까지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 씨앗을 뿌려야겠다. 그것이 험한 세대의 빛이 되는 또 하나의 모습이려니 생각하며. --------------------------------------------------------- 옛 추억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
학창시절의 추억
1학년 때 존경하는 선생님에 대해 수필형식으로 써 오라는
교수님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것이
12년이라는 공교육기간 동안에 나는 존경할만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내 감정이 가뭄에 쩌억 갈라진 논처럼 황량하거나 아니면
지금껏 만난 선생님들이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지 않거나.
학창시절 나는 선생님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공부를 썩 잘 한 것도 아니었고 사고뭉치도 아니었다.
친구나 선생님 사이에서 '기웅서'는 군계일학도 필부필부도 아닌, 뭐랄까? 참 뭐라고 표현못할 그런 존재였다. 지난 학창시절은
무미건조한 시간이었다. 학교생활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기에. 이러한 학창시절의 경험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꿈은 선생님이다. 나 자신이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되고픈 것이다. 먼 훗날 총신대학교에 입학한 내 제자가 교육학개론 시간에 나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광경을 상상해보며
나 또한 옅은 미소를 지어본다.
다시 과제물이라는 현실로 돌아와야겠다. 3년 전에 나는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지 못하고 내가 존경할만한 이상적인 선생님상에 대해 그것도 부욱 찢은 노트에 써냈다. 추억 속에 있는 선생님이 아닌
추억하고 싶은 선생님을 상상 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찌나 후회가 되는지.
가상인물을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자신에게도 존경하는 선생님을 추억해보라는 의도에서 과제를 내신 교수님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꼭 같은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인해 나는
또 다시 번민에 휩쌓였다. 3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이 내 기억력을
빈곤케했음은 두 말 할 나위 없는 것을.
하지만 3년 전의 후회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아 어떻게 해서든
흐릿한 기억 속의 선생님 한 분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간신히 한 사람을 찾아냈다.
10년도 더 된 추억이라는 이름의 잃어버린 지갑 속에서 말이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한 사람의 이름도,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정말 잃어버린 지갑을 찾은 기분이었다. 거기에는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내 얼굴도 화알짝 웃고 있었다.
김미자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이름이다.
김미자 선생님은 가녀린 분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랬다. 아이들에게 미운소리 한 번 제대로 안하시고 언제나 약간 홍조와
미소를 띤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셨다. 반 친구들 사이에서 선생님은 천사표로 통했다. 목소리도 가냘팠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들을 향한 열정으로 약간은 격양된 상태였다. 선생님은 뭐랄까?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제목처럼 '향기로 말을 거는 꽃'같았다.
선생님의 존재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
마치 한 송이 꽃 같은 분이었다. 바지보다는 치마가 잘 어울리고
생머리보다는 약간 파마한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그런 분이었다.
우리 반에는 주먹 깨나 쓰는 두 녀석이 있었다.
문제는 그 주먹을 의로운 곳에 사용하지 못하는 점이었다.
그들은 힘을 가진 자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다. 아이들을 억누르고 휘두르기 위해 주먹을 썼다. 심지어는 여자아이들까지 그 주먹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들은 선생님 모르게 주먹을 썼다. 물론 그들만의 생각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으리라. 하지만 꾹 참고 계셨으리라. 이것도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갈등구조를 위한 조금은 유치한 등장이다. 그는 왕따다. 선생님만큼이나 가녀린 체구에
나비모양 안경을 쓴 남자아이다. 공부를, 특히 산수를 썩 잘해서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도시락에 있는 맛있는 반찬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늘 혼자만 먹는 얄미운 친구다.
또 약간은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못하다. 등하교길에 그는 늘 혼자이다.
그 때 당시에는 왕따라는 말 자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있기에
지금부터 그 친구를 왕따 친구라고 부르겠다.
그 친구가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왕따 친구는
주먹친구의 희생양이었다. 주먹친구 둘은 말 그대로 심심하면
왕따 친구를 때렸다. 왕따 친구는 나름대로 늘 반항했지만
완력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2대1의 싸움이었다.
하루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의 구타가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저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이는 없었다. 권력 앞에 선 사람의 모습이 대개 그러한가보다. 하긴 나도 그러했다. 왕따친구는 괴로워했다. 찡그린 얼굴이 '나 좀 도와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그 또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도와 줄 만한 배짱 있는 녀석도 없었거니와 주먹친구들의 주먹은 이미 학교 전체에서
이름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가혹한 구타가 끝났다. 왕따 친구는 절룩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망간 게 틀림없으리라.
아이들은 주먹친구들의 위세등등한 모습에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꾹 참아야했다.
화가 미칠지도 모르니까. 맞는다는 것은 기분나쁜 일이니까.
왕따 친구도 기분 나쁘겠지만 나는 기분나쁘고 싶지 않으니까.
잠시 후. 김미자 선생님이 열린 교실 뒷문으로 뛰듯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주먹친구 둘을 불렀다.
"OOO, OOO(주먹친구들의 이름이다) 너희들 이리와!"
교실에는 싸늘한 냉기가 돌았다. 꽃 같은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가?
선생님이 화를 내시다니. 아이들은 일순간 침묵했고 주먹친구 둘은 쭈뼛거리다가 교실 뒤쪽으로 걸어왔다. 이윽고 선생님의 구타(?)가 사작됐다.
거의 매를 들지 않던 선생님이 손으로 주먹친구를 때렸다.
주먹친구들이 상대해 온 녀석들의 주먹에 비해서는 턱 없이 약한
힘으로 말이다. 하지만 주먹친구들은 그들의 상대처럼
반항할 수 없었다. 자신들이 한 짓을 알고 있었고,
지금 눈 앞의 상대는 선생님이 아닌가.
선생님은 뭐라고 소리를 지르셨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탄식 비슷했다. 아니, 그것은 울먹이는 소리였다. 그렇다.
선생님은 울고 있었다. 아이들을 때리며 울고 있었다.
정작 울어야 할 왕따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훌쩍거리면서 계속 주먹친구들을 때렸다.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선생님이 울고 있다. 도대체 왜? 6학년의 심정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졸업식 때 선생님은 두 번째로 눈물을 보이셨다.
선생님은 안타까워했다. 왜 힘 없는 친구를 괴롭히냐고.
보살펴주지는 못할망정 왜 괴롭히냐고.
그리고 어두운 표정의 아이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너희들은 왜 가만히 있었냐고. 왜 뜯어말리지 못했냐고.
맞는 게 두려웠냐는 식으로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그랬다. 맞는 게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다.
왕따친구에게도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왜 진작에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계속 맞았으면서 왜 이제와서
이야기하냐고.
선생님은 손을 내렸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통곡을 하셨다.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주먹친구들은 잠자는 비둘기처럼
고개를 가슴팍에 푸욱 박고 있었다.
왕따친구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 안타까움, 미움, 동정심, 정의감, 미안함, 서운함 등등.
6학년의 눈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마음이 10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어렴풋이 느껴진다.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의 눈물은 나무로 된 교실 바닥을 적셨다.
왁스걸레로 박박 닦은 바닥이어서 눈물은 나무에 맺히지 않고
고였다. 마치 유리에 떨어진 것처럼. 유리같이 투명한
아이들의 마음에도 선생님의 눈물은 고였다.
선생님은 천천히 들어온 뒷문으로 나가셨다.
주먹친구는 한 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왕따친구도 앉았다.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딘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일까.
아니면 주먹친구들을 향한 분노를 형상화된 정념 속에 쏘아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선생님의 눈물을 향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일까.
눈물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부여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눈물에 정화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내재되어있다고 본다.
김미자 선생님의 눈물도 그러했으리라. 아쉬운 것은
주먹친구들이 그 이후에도 주먹질을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생님의 눈물로 인해 그들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좋았을것을'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피엔딩을 싫어하는 요즘 세태와 들어맞기에 어찌보면 바람직한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주먹친구들과 왕따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새삼 궁금하다. 김미자 선생님은 어디서 또 어떠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실지도 그러하다. 이젠 나무바닥이 아닌
대리석이나 잘 닦인 교실 바닥에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으실까? 믈론 조금 더 교활해지고 조금 더 강퍅해진 아이들을 대하며
격세지감을 느끼시겠지만 그것이 교사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일게다. 세월의 흐름에 딱딱한 나무처럼 경직되어 있다간
부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갈대같이 흔들리더라도 중심만은
잃지 않을 김미자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따스한 격려의 한 마디를 추억 속으로 퐁당 던져보고 싶다.
어쨌든 10여 년 전 김미자 선생님의 눈물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과연 교사로서 학생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며 눈물 흘릴 수 있을까? 비단 겉으로 드러나는
학생들의 잘못때문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영혼의 문제를 위해서 나는 울 수 있을까?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눈물흘릴 수 있을까? 아직 교사가 아니기에 스스로에게 확답을
줄 수 없다. 그저 막연한 한 기대감으로나마 부족한 자신을
채워나가야겠다.
김미자 선생님을 추억함으로써 오히려 나는 교사를 지향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 김미자 선생님은 내가 존경할만한 은사시다. 제자를 위해 눈물흘리며 기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나도 제자를 위해 눈물흘리기를 소망한다. 눈물의 씨앗이 열매맺는 그날까지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
씨앗을 뿌려야겠다. 그것이 험한 세대의 빛이 되는
또 하나의 모습이려니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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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