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이야기] `오뚝이` 박지성 다시 일어서는 삶 감동

장민석200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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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오뚝이’였다. 끝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화려하게 비상했다. 3일 방송된 KBS 1TV ‘수요기획’은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박지성의 성장 과정을 조명했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박지성은 끝없는 시련을 극복하고 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 박지성은 왜소한 체격 때문에 늘 고민이 많았다. 그의 어릴 적 일기장에는 ‘엄마가 주신 약은 꼭 먹고 골고루 먹어 덩치가 커지고..’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로 빨리 자라고 싶어했다. 심지어 개구리 다리를 삶아서 먹기도 했다고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밝혔다.

비록 체격은 작았지만 박지성은 “달리기가 느리더라도, 키가 작더라도, 몸이 왜소하더라도 축구장 안에서 누가 잘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축구에 몰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그는 힘겹게 대학을 들어갔다. 그 후 잠시 청소년 국가대표로 뛰었지만 국내의 프로팀에 들어가지 못해 일본 프로리그로 향해야만 했다.

2000년 박지성은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했다. 그를 주목하는 곳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 축구의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그의 핸드폰 벨소리는 ‘애국가’였다. 19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박지성은 빠르게 적응해 나갔고 리그 최하위였던 소속팀을 2002년 일왕배 FA컵 우승으로 이끌며 `교토의 별`로 불렸다.

박지성에게 또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로 꼽혔던 것. 박지성은 잉그랜드와 프랑스 평가전에서 한국팀의 해결사로 활약했고 월드컵을 거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올라섰다. 월드컵이 끝난 후 그는 네덜란드 PSV 아이트호벤 선수로 뛰게 됐다.

여기서 박지성은 축구 인생 동안 가장 힘겨운 시련을 겪게 됐다. 입단 전 무릎 부상으로 벤치 신세를 지거나 교체 선수로 나서야 했다. 경기에서도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해 팬들의 야유가 뒤따랐다.

이에 대해 박종성씨는 “팬들이 먹다 남은 맥주병을 던지곤 했다”며 “(지성이)엄마도 울고 어떻게 취할 방법이 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박지성에게 1년 동안 경기장과 집이 전부였다. 당시 생활에 대해 박지성은 ‘축구 교도소’라고 표현할 정도였다고 방송은 전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3-2004시즌에서 박지성은 다시 부활했다. 지칠줄 모르는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볐고 그의 발끝에서 골이 만들어졌다. 팬들은 박지성에게 야유 대신 응원가 ‘Song for Park’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온 ‘골 머신’ ‘위송 빠르크’(지성 박)는 네덜란드를 흥분시켰다. 이어 박지성은 UEFA 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유럽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떨쳤다. 결국 그는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 유나이티드 맨체스트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방송 후 시청자들은 “너무 재밌고 감동적이었다”(sukja81), "힘든 박지성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godgo51), "우리나라에서 나올까 말까 한 선수"(westlife85)라며 박지성의 투혼에 격려를 보냈다. 또한 재방송을 부탁하는 시청자들 또한 많았다.

아직 박지성에게는 팀 적응 문제, 주전 경쟁, 기술 보완 등 프리미어리그 성공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박지성은 특유의 성실성과 끈기로 이를 극복해낼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로서 다시 한 번 한국인의 긍지를 높여 줄 날이 올 것이라고 많은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사진=방송에서 소개한 박지성의 모습)[TV리포트 조헌수 기자]pillarcs3@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