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부상..종속과 번영의 갈림길

송호섭200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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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부상', '신중화시대'.......21세기 새로운 수퍼파워로 떠오르는 중국의 급부상을 둘러싼 이와같은 수사(rhetoric)는 이제는 더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1842년 아편전쟁이래 '아시아의 병자'라는 굴욕적 호칭으로 상징되는 비극의 역사를 끝내고, 지난 수천년간 누려왔던 '절대적 지위(absolute supremacy)'로 다시 복귀하려 하고 있다. 얼마전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긴축정책 발언에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 등, 중국의 발전은 단순한 신흥공업국의 차원을 넘어서 '중국이 기침을 하면, 세계는 감기에 걸릴' 정도가 된 것이다. 지난 150여년간 세계사의 주변부에 머물러 왔던 세계최대국가의 중심부로의 회귀는 따라서 우리가 그동안 머물러왔던 익숙한 세계질서에 필연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21세기 미국과의 관계설정, 동아시아에서의 역할, 세계 경제에서의 비중 그리고 북한 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관련된 중층적 차원의 이슈들은 하나같이 '전지구적 차원(global level)'의 영향을 담보하며, 그와 같은 수준의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부상은 세계사적 맥락에서 봤을 때, 어떤 함의를 지니는 것일까? 중국의 부상과 관련된 논의에서 바로 이 점이 먼저 명확히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중국의 부상은 기타 지역에서 역사상 보아왔던 '특정 국가의 부상'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기존 질서에 변화를 일으키며 국제질서의 한 특정 행위자(곧 국가이다.)가 부상하여 세계사에 이름을 내민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적절한 예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근대 유럽의 역사이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 후, 여러 왕국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유럽에서 가장 먼저 절대왕정을 수립하며 제1의 강국으로 떠오른 프랑스를 비롯하여, 오랜 몽고지배에서 벗어나 표트르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시대를 지나 유럽의 주요 행위자로 떠올랐던 제정 러시아 그리고 오랜 분열을 끝내고 비스마르크의 영도아래 통일국가를 이루며 유럽 최강국으로 떠오른 독일제국 등, 유럽의 역사는 기존 질서의 변화와 함께 흥망성쇠하는 국가들의 산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국가가 부상할 때마다 유럽의 역사는 소용돌이쳤고, 복잡한 힘의 합종연횡이 뒤따랐고 때론 전쟁이라는 극단적 대립으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의 중국의 부상은 이 같은 유럽의 역사를 예고하고 있는 것일까? 기존 질서가 변화를 맞고, 불안정한 과도기적 질서가 예상된다는 점에서 분명 유럽의 역사는 앞으로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제한적인 도움은 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본질적인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중국의 부상은 역사에서 흔히 목격되어온 유럽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 점은 근대 유럽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차이점을 살펴봄으로써 분명해진다. 1648년 피비린내나는 30년 종교전쟁이 끝나고 '웨스트팔리아 조약(Westphalia Treaty)'의 체결로 근대 주권국가(sovereign nation)의 시대가 시작된 이래, 유럽의 국제질서는 비슷한 국력을 가진 주권국가간의 끝없는 대립과 갈등, 그리고 협력의 역사였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전세계적 주권국가의 시대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질서는 근본적으로 국가간의 수평적 관계(horizontal relations)를 전제로 하며, 합리적 국가이성(raison de' tat)을 최대로 발휘하여 국가의 생존과 국익을 추구하는 국제질서의 행위자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유럽국가간의 끝없는 경쟁은 19세기 동안 제국주의적 해외 식민지 쟁탈경쟁으로 나타났고, 이것이 한계에 이르렀던 것이 두 번의 세계대전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의 국제관계는 오늘날 우리가 국가간의 관계에서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특징을 보인다. 동아시아의 역사속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시기를 제외하고는 국가간의 수평적 관계에 근거한 대립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 서양세력의 침략이전까지는 동아시아에서는 '근대주권국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주권'의 개념조차도 모호한 실정이었다. 그 자리를 중국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식의 '위계서열화된 질서(hierarchical order)'가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은 단순히 유럽의 프랑스나 독일처럼 단순히 '동아시아의 강국'이 아니라, 조선을 비롯한 여러 정치체제를 조공체계하에 복속시켰던 '큰 형님(Big Brother)'이었고, 좀 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동아시아 그 자체(East Asia itself)'였던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 독일 등이 비록 강국이긴 해도 '유럽의 한 국가(one of the European countries)'들이며 각 국가에 대해 '상대적 행위자(relative actor)'들이었음에 반해, 중국은 '그 자체로 동아시아'였으며 주위의 국가와 민족에 대해 '천하(天下)'로 여겨지는 '절대적 행위자'였던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중국이 분열되었을 당시와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정도일텐데, 이것조차도 근대 주권국가간 경쟁이라기 보다는 중국과 한민족내에서 벌어지는 '내전'에 가까운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부상이 여타 국가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유과 바로 이와같은 역사적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동안 차지해왔었던 동아시아에서의 '절대적 지위'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즉, 한국이 중국의 명목적, 실질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던 지난 100여년 간의 극히 예외적인 시간을 지나, 지난 수백년간 그래왔던 것과 유사한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체제' 질서하의 하위국가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물론 지난 반세기동안의 우리 현실은 미국 주도의 질서하의 하위동맹국가라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 주도의 신 중화체제와 현재 미국주도의 세계 시스템하에 놓이는 것은 우리 생존과 국익추구의 관점에서 매우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지리적 근접성(geographical proximity)'에 근거한다. 국제관계에서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대 과학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그 의미가 과거에 비해 많이 퇴색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지리적 근접성'의 개념은 국제관계의 형성과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한말 개항의 역사는 이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알다시피, 조선은 오랜 쇄국정책끝에 일본의 강압에 의한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을 하게되고 비로소 세계사의 물줄기에 편입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서양열강이 아닌 일본에 의한 개항은 이미 그 자체로 우리 민족의 큰 불행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선은 그 후, 끊임없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간섭과 침탈속에서 개항으로 주어진 자주근대국가 건설의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침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리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위치에 오른 일본에 의해 합방되는 비극을 맞는다. 일본 역시 1854년 미국에 강압에 의한 '미일화친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으로 강제개항된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강제개항의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주변국가에서 당당히 제국주의 열강의 하나로 발전했던과는 달리, 조선은 왜 식민지로 전락해야 했을까? 물론 개항을 근대 국가의 건설로 이끌어갈 수 있는 국내 사회적 여건도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다만 국제적 요인만을 고려해 본다면, 지리적 근접성의 개념이 이 놀라운 두 동아시아국가의 운명의 갈림속에 숨어있다. '지리적으로 먼' 미국에 의해 개항된 일본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일본에 의해 개항된 조선이라는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양열강의 주된 관심은 조선이나 일본이 아닌 중국진출이었다. 조선과 일본은 중국진출에 따르는 부산물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본을 개항시킨 미국도 일본자체를 통해서 정치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 했었던 것이 아니라, 중국진출을 위한 중간기지로써의 일본의 역할에 주목한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개항 이 후, 미국과 다른 서양열강이 중국진출에 열을 올리며 일본에 최소한의 간섭에 머무는 사이, 특유의 실용적이면서 유연한 문화적 기질을 살려 적극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마침내 '메이지유신'을 통해 강력한 근대국가로 단시간내에 탈바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운명은 달랐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김용구 교수의 지적대로, '멀리 있는' 다른 서양열강이 아닌, '너무나 가까이 있던' 일본에 의해 개항되었던 것이 조선에겐 역사의 불운이었다. 일본도 서양열강들처럼 궁극적 팽창의 목적은 중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진출의 중간과정으로서의 조선의 의미는 '멀리 있는' 서양열강과 '가까이 있는' 일본에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서양열강은 중국진출에 조선이 필요없었지만, 일본은 '지리적으로 근접한' 조선은 중국진출에 있어서 반드시 통제 하에 놓아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근대화를 위한 내부적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전제하에서, 조선이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서양열강에 의해 개항되어 근대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면, 우리민족의 근대사는 그리 비극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바로 '지리적 근접성'은 곧 '영토적 이해관계(territorial interest)의 심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미래 한-중관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미국주도질서하의 하위국가와 중국주도질서하의 하위국가사이의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이유이다. 우리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대해 그랬던 것과 별반 다름없이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절대적 영향하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체발전을 담보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이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와는 특별한 영토적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국영토 그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단 얘기다. 그것은 미국 자체의 영토도 광대하고, 직접 지배하지 않고 자국의 동맹체제하에 묶어놓을 수 있는 미국만의 특수한 '포섭적 권력'에 따른 것도 있지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앞으로 미국과 유사한 국력을 가지고 유사한 역할을 하는 강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지만, 지리적으로 인접하다 못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리 한국으로서는 훨씬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다. 개인간의 관계에서도 그렇듯이, 힘센 놈은 멀리 있는게 좋지, 가까이 두면 문제가 생긴다. 사이좋게 잘 지내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힘센 놈을 가까이 하고 있는 힘 약한 놈은 치명적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과거 종속적 중화체제로의 복귀라는 의미와 함께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고, 다르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이유이다. 그럼 우리는 중국의 패권속에 놓이게 될 미래 동아시아 질서하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이라는 거대패권국가이자 경제권하에서 정치,경제적으로 휘몰린 끝에 종속되는 운명을 감수해야 할까? 사실 중국의 부상을 현실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인접소국으로서의 한국의 선택은 극히 제한적이다. 돌아온 거대 중국의 패권적 지위하에서 중국이 제공하는 기회를 충분히 이용하되 '독립적인 국가'로서 번영을 담보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중국자체에 변화가 발생하여 거대패권국가로의 부상을 방해받는 것이다. 과거 한 때, 논의가 되었던 이른바 '중국분열론'이다. 현재 급속한 중국의 경제성장 속에 드리워진, 빈부격차, 지역간 격차, 실업문제, 금융권의 거대부실채권 및 상이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사이의 모순관계 등의 구조적 문제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면, 중국은 상당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고,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순조로운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울러, 과거 역사속에서 우리나라가 비교적 자율성을 가지고 번성했었던 때는 중국이 분열되어 있었던 시기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중국 분열론은 그것이 줄 잠재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다. 그러나 중국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현대국가가 쉽사리 분열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므로 중국 분열론은 현실화되기 힘든 선택이 될 것이다. 둘째로는 당연한 소리지만, 우리 한국 자체의 경제적, 군사적 역량의 배양이다. 첨단기술에 근거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해서, 중국의 저가공세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수출선을 다변화하여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첨단 전략무기 도입을 통해 장거리 정밀타격능력을 확보하고, 잠수함 전력을 증강하는 등 해공군의 전력증강을 지속적으로 이뤄나아가 궁극적으로 일반적으로 군사전략가 사이에서 억제효과가 나타나는 최소기준이라고 여겨지는 중국 군사력의 70%정도의 종합전력을 유지해야 한다. 세째로, 더욱 굳건한 한미동맹을 유지,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국력 측면에서나, 앞서 말한 지리적 근접성의 측면에서나 우리의 독립성을 크게 침해받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는 사실상 미국뿐이다. 이것이 곧 미국에 종속되자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시아에서 미국의 힘은 감소할 것이나, 그 힘의 공백을 자체 국력배양으로 채우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여전히 세계 최강의 지위를 유지할 미국의 힘을 최대한 아시아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네째로, 또 하나의 떠오르는 대국인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애야 한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진 모르나, 인도는 중국과 맞먹는 인구와 영토, 그리고 잠재력을 갖춘 국가로서 중국의 서남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중국 못지않은 첨단 기술력을 자랑하며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중이다. 이런 인도는 따라서 중국과 필연적으로 대립,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라는 말처럼, 하나의 국가의 부상을 견제할 수 없다면 부상하는 또 하나의 국가를 통해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 이미 인도와 정기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중국견제라는 목적에 3국이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인도와 다방면에 걸친 관계증진을 통하여, 신뢰구축과 우호적관계를 설정해 나가면서 궁극적으로 팽창하는 중국을 공동으로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마 이것이 향후 중국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일 것인데, 바로 중국과 인접 국가들 그리고 미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협의체(multilateral security regime)'을 구성하여 중국의 팽창하는 힘을 제도화된 틀 안으로 흡수하여 억제하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APEC같은 초보적인 경제협력체는 존재하고 있으나, NATO와 같은 집단안보수준의 안보협력체는 전무한 실정이고 '아세안지역포럼(ARF)'이 그 역할을 떠맡기엔 힘이 부쳐 보인다.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역내국가간의 현격한 국력격차, 역사적 신뢰부재등으로 공통의 다자간 협의체를 구성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우리 한국의 경우, 다자안보노력이 한미동맹이라는 양자동맹과 상충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고민이다.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중요한 건 팽창하는 중국의 힘을 효과적으로 수렴시켜 우리의 번영과 독자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다자협력체제를 구성해야 한다는 절대적 필요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다자안보체제라는 제도화된 안보협력틀이 동아시아에 구축될 경우, 미중간 직접대립에서 오는 불필요한 긴장을 피하면서 효과적으로 제도적 틀 내에서 중국의 힘을 견제할 수 있고, 아울러 잠재적인 일본의 군사대국화도 같이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각인시켜, 미국을 적극적으로 다자안보논의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한미동맹이라는 가장 확실한 레버리지를 잃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다자안보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국의 부상은 역사적으로 나타났던 그 어떤 국가의 부상과도 그 의미가 다를 뿐더러, 지리적으로 인접한 우리에겐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의 시대를 끝내고 원래 위치했었던 '동아시아에서의 절대적 지위'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다. 물론, 잠재되어 있는 여러 구조적 문제로 인해 중국의 순조로운 성장이 언제까지 계속되리라고 예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인접한 우리에겐 거대 중국의 부활은 그 자체만으로 '국운을 건 도전'이다. 우리가 가진,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여견과 상황을 냉철히 분석한 후, 거대 중국의 부활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때다. 이는 거대 중국의 시장만을 바라보고 기회라고 너무나 경솔하게 낙관적 사고에 빠져버리는 기존 관념과 상당히 다른 접근을 요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