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매의 꿈을 향한 삼중주(2006년3월)

낮은울타리200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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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매의 꿈을 향한 삼중주

 

 

가느다란 햇살이 창가로 비춰드는 오후,

야트막한 산등을 따라 하얗게 내려앉은 소국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침대 맡에 누워 물끄러미 눈길만 던지던 희영 씨의 맑은 눈동자에도 어느 새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이번 겨울 마지막 눈일 텐데…”

소복이 쌓인 눈길 위에 하나 둘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희영 씨는 누군가에겐 너무나 사소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간절한 소망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희영씨가 고2로 접어들던 어느 해였다. 다리가 무겁다며 한 쪽 팔로 다리를 들어 올려 차에 타던 딸이 심상치 않아 아버지는 희영 씨를 이끌고 병원을 찾았다.

“봉입체근염입니다. 점점 근육이 파괴되는 희귀병으로 앞으론 혼자 걷기도 힘들어질 겁니다.”

 

이제 막 항해를 시작하려는 나이에, 혼자 걸을 수도 없다니… 하루아침에 내려진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에 숨통을 조여 오는 듯, 먹먹해져 오는 가슴을 안고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기를 어느덧 벌써 열두 해. 싹이 트는 봄도, 꽃이 피는 여름도, 바람결에 실려 오는 향기로만 계절을 느끼는 동안 희영 씨는 말라가는 꽃잎처럼 다리에서 팔 그리고 몸 전체가 굳어왔다. 그런데 그것이 거세게 불어 닥치는 폭풍우의 시작이었다니…

 


희영 씨가 병원에 입원하고 하루하루 허덕이며 보낸 시간이 어느덧 일곱 해가 되던 무렵이었다.


"병희야, 너 걷는 게 이상해."

 

쓰러질 듯 아스라이 걷는 동생을 보며 셋째 선영 씨가 까물어 칠 듯 놀라 소리쳤다. 왜냐면 자신도 점점 몸이 무거워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남매는 힘들어하는 큰 언니와 부모님을 보며, 차마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혼자 통증을 삭혀 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선영 씨와 병희 씨에게 내려진 진단 역시 희영 씨와 똑같은 근육병.

 

“세 아이가 다 근육병이라니… 부모 잘못 만나 그런 것만 같아서…”

 

어머니 희자 씨는 억장이 무너져 입조차 떼지 못했다. 세 아이를 모두 병원에 누이고, 하루도 쉴 날이 없이 병 수발을 해야 했던 희자 씨. 하루에도 몇십 번씩 희영 씨의 체위를 바꿔주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어머니는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정성껏 돌봐도 삼남매의 몸은 날이 갈수록 돌덩이라도 매달아 놓은 듯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정말 하루 아침에 온 몸이 쇠창살에 갇혀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은 엄마가 붙잡아줘야지만 몸을 일으킬 수 있고, 난간을 잡아야지만 걸을 수 있고… 하루가 다르게 굳어가는 몸을 볼 때면 정말이지 모든 걸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희망의 끝을 놓지 않는 어머니를 보며 세 남매는 또 참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병원 한 구석에서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 흐느끼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본 것이….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응?”
처음엔 아무리 물어도 별 일 아니라고만 하던 희자 씨가 하루는 힘들게 말문을 열었다.

 

“놀래지 말고 들어. 엄마… 유방암이 재발했대.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시기라는데, 아무래도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구나.”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어머니의 일렁이는 눈을 보며 남매는 차마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 목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꾹꾹 눌러내야 했다.

 

“우리들 때문인 것만 같았어요. 우리 때문에 힘들어서, 마음고생 몸 고생에 20년 전 수술 받은 유방암이 재발한 거예요…”

 

암 덩어리가 겨드랑이까지 퍼져오는 통증에도 덩치 큰 삼남매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고 일으키며, 검사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을 희자 씨.

“그래도 수술하면 나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해요. 이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하나님께 더 기도하게 됐구요.”


희자 씨는 이제 항암치료만을 남겨두고 있다. 하지만 세 남매의 병원비에 희자 씨 수술비까지 눈덩이같이 불어난 병원비는 아직 몸도 추스르지 못한 희자 씨의 작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집마저 넘어가 항암치료 후 퇴원을 해도 이젠 들어갈 집조차 남아있지 않은 형편. 남편이 돈을 마련하려고 밤에는 이곳저곳에서 새우잠을 청하며 낮에는 일용직 일자리마다 뛰어다니지만 산더미같이 불어난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나는 이제 주사 안 맞아도 되니까, 너희들만 맞아.”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집마저 넘어가게 되면서 희영 씨는 그동안 맞아오던 주사도 끊었다. 근육병이라는 것이 뚜렷한 치료방법은 없지만, 병의 진행을 늦춰주는 주사가 전부인데, 한번에 40~50만원씩 하는 주사를 형편이 안 되니 맞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도 괜찮으니까, 작은 누나가 맞아.”
“내가 병희 너보다 훨씬 몸이 좋으니까, 네가 맞아.”

병희 씨는 조금이라도 몸이 더 좋은 선영 씨에게 맞으라고 하고, 선영 씨는 진행속도가 자신보다 훨씬 빨라 하루가 다르게 나빠져만 가는 동생을 뒤로하고 혼자 주사를 맞을 수 없다고 하고. 세 남매는 그렇게 서로에게 주사를 미루며 눈물겨운 고집만 펴고 있다.

 


“누나, 성경책 읽어줄까?”

 

병희 씨가 희영 씨 침상 옆에 앉아 성경책을 펼쳐든다. 희영 씨는 동생이 나직한 목소리로 성경책을 읽어주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비록 제자리에 누워 스스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희영 씨지만 근육병이란 병명을 처음 받아들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동생이 이렇게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 감사할 뿐이다.


“처음엔 원망 많이 했지요. 하지만 다리가 굳고, 팔이 굳어 갈수록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려고 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제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살고 싶어요.”


마음대로 걸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세 남매. 다른 이들에겐 평범하기 그지없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이제 이들에겐 숨 가쁜 운동이 되어버렸지만, 아프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고 싶다는 꿈은 꾸지도 못했을 거라며 감사함을 고백하는 이들.


“하나님은 비록 우리에게 많은 평범함을 주시진 않았지만, 포기라는 두 글자 대신 시련을 이길 수 있는 용기라는 두 글자를 주신 것 같아요. 꿋꿋하게 우리에게 맡겨진 이 길을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이 시련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희영 씨와 선영 씨 그리고 막내 병희 씨가 함께 걸어갈 그 길을 바라보며, 저녁하늘을 물들이는 붉은 노을처럼 그들의 얼굴 사이로 피어난 환한 미소가 세상 가득 번져나갈 그날을 기다려 본다.



온 몸이 굳어가며 열두 해가 넘도록 투병생활을 해 온 세 남매.

게다가 얼마전 어머니마저 유방암이 재발해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병원비와 수술비 때문에 병의 진행을 늦춰준다는 주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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