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을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과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형제자매들께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신앙으로 믿고 있는 분의 존재를 이성적으로도 알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빌려서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분들께 영적인 유익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려면 이 논리들도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택하시든 이 글들을 읽고 택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읽으시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아시고 느끼게 되신 분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구원과 멸망 그리고 천국과 지옥 그리고 가
치있는 삶과 의미 없는 삶이 걸려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들은 이글을 읽으시고 잘 기억하셨다가 유익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1. 집과 목수의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지상에 있는 모든 집에는 그 집이 아무리 작은 집일지라도 그 집을 지은 목수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든 집을 지은 목수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지라도 누군가 그 집들을 지은 이가 있었다는 사실 만큼은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삼라만상이 모여 사는 이 세상도 유심히 보면 땅의 터 위에 하늘의 지붕 아래 산천초목의 기둥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지 같은 큰 집이 어찌 저절로 생겼겠습니까?
이 놀라운 천지 만물에도 지은 목수가 있음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 목수를 본 적은 없지만 이 모든 세계를 지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3장 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2. 시계와 시계공의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만약 우리가 사막에서 길을 걷던 중에 다른 사람이 흘리고 간 시계를 우연히 발견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상황에서 그 시계에 대해 우연히 발생하게 된 것이라거나 진화에 의해 생겼다거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 눈을 돌려 우리의 몸과 우주의 삼라만상이 어떠한 질서와 조화와 작용 속에서 유지되고 있고 운행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몸 중에서 눈 하나만 보더라도, 이 세상에서 각양각색의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주공간에서 지구주변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만 보더라도 이 세상의 질서와 조화와 작용이 사막에서 발견한 시계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막에서 발견한 시계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도 당연히 설계자와 제조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믿고 있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페일리 신부의 신존재 증명
3. 무신론자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화
무신론자: 신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제게 증명해 보시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영혼과 정신을 보지 않고도 볼 수 없어도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찌 알며 어떻게 나에게 그 사실을 증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신론자: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영혼과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왜 지금 저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당신의 신체의 작용 몇 가지만 보고도 당신의 영혼과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명하게 깨닫고 있으면서 왜 이 세상속의 천지만물이 질서와 조화 속에서 창조되고 있고 유지되고 있고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십니까?
무신론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에대한 추언:
A.D354~430년에 활동한 교부 신학자,
참회록.은혜론.삼위일체론.신국론.기독교 교육론을 저술함 ,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와 개신교 각교파와 이단들과 이교 사상
가와 철학자와 법학자들까지도 존경을 하고 있는 성자,
" 하나님 제 영혼이 당신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기까지 제 영혼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부터도 결코 쉼을 얻지못하였나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고대교회의 대표 신학자.
4. 뉴턴의 일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이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란 과학자는 기독교인 이였습니다. 그러한 뉴턴에게도 무신론자인 친구가 있었답니다. 그의 무신론자인 친구는 뉴턴처럼 인간과 지구와 우주에 창조자가 있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뉴턴은 태양계모형을 만들고 행성들이 태양계 주변을 회전하는 그 당시로서는 신기하게 보일 수 도 있는 장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무신론자인 그의 친구도 뉴턴의 집을 방문하여 그 모형장치를 작동해본 후 신기해하며 뉴턴에게 본인이 직접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뉴턴은 처음에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의 무신론자인 친구는 진지하게 다시 뉴턴에게 누가 만든 것인지 물었습니다. 뉴턴은 이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게 여기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뉴톤의 친구는 화를 내며 어떻게 이런게 아무도 만들지 않고 그냥 갑자기 생길 수 있냐고 뉴턴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뉴턴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 우주와 지구 그리고 인간까지도 그냥 우연히 생긴거라고 말하며 늘 내신앙을 비웃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이 작고 조잡한 모형 하나가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그렇게 화를 내며 믿지 않는게 자네 스스로도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 거기서 무신론자였던 뉴턴의 친구는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생각을 뉘우쳤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한체 이 세상에 가득한
고통을 헤아리는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존재를 부
정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한평생 작고 연약한 늙은
몸을 가지고 가난한자와 장애인 그리고 집에서 버
려진 한센병(나병),백혈병걸린 어린아이들에게까
지 따뜻한 눈과 손과 가슴을 가지고 자신이 베풀수
있는 모든 사랑을 베풀다가 죽은 마더테레사의 삶
을 한번만 볼수있다면 그 누구라도 침묵속에서 하
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것이다.
5.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1225~ 1274 카톨릭 신학자 - 신학대전의 저자)
우리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철학적으로 표현하건대 필연적으로 반드시 존재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 안할 수도 있는 가능적이고 우연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주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시간의 처음부터 반드시 있어야 했던 필연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는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 중에서 필연적인 존재가 없었다고 그 어디에도 필연적인 존재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존재가 없이는 지금의 다종다양한 우연적인 사물들은 결코 존재의 시작을 갖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적 존재가 최초 우연적 존재의 시작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리석음을 넘어 지적인 자살입니다. 따라서 모든 가능적 존재가 있기 전에 필연적인 존재가 있었으며 그 존재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믿고 있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 3번
필연적 존재: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 ,반드시 있어야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즉 하나님과 같은 존재
우연적 존재: 반드시 있어야 했다 라고 말할수 없는 존재 즉, 우주안에 있는 모든 존재가 다 우연적 존재이다. 다만 우주안에 있는 것들이 상호연관되어 작용하고 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떤 것을 필연적인 존재라고 느낄 뿐인것이다.
6. 서울대 철학개론에서 언급한 내용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를 증명하거나 직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 또는 절대자의 비실재를 단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 그칠 뿐이요 그 비실재를 적극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불가지론은 영원한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 견해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결론에로 이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적 혼미 속에서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지극히 겸허하고 또 긍정적인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 또는 영원한 가치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오만한 태도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영원한 가치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동안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신 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 속에 영원한 가치의 근거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대 철학개론 교과서(97년판) 96 page 중에서
실재: 철학에서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을 가르킴
영원한 가치 : 사랑 ,보편적 정의 ,인과법칙 같은 것을 가르킴
" 눈이 태양과 같은 것이 아니였다면
우리가 태양을 보는 것은 아마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신 자신의 힘이 존재하여 작용하지 않았다면 신적인 것이 우리를 매료시킬수 없었을 것입니다" - 괴테
하나님은 우리가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것들과
우리가 절대적으로 흠숭하고픈 유혹을 받는 것들
의 끝에서 우리를 강한 매력과 함께 잡아당기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삼으려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신의 속성들인 것입니다.신의 속성들이 우리를 매
료시키고 있다는 그 사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매료시킬 수는 없으므로...
7. 칸트의 철학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존재
만일 어떤 비범한 사람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후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뚜렷하게 논증했다는 말을 내가 듣는다면 나는 그의 쓴 책을 읽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이 나의 식견을 진보 시킬 것을 나는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전에 이미 그가 자신의 책을 통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의 중요주장들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증명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순수이성의 전 저장품을 밝혀준 선험적 비판철학이 다음에 것을 나에게 확신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 순수이성은 이 분야에 있어서 긍정적인 주장을 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기에는 한층 더 힘이 부족하다 -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그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입니까? 일상적인 경험세계 안에서입니까? 하나님은 일상적인 경험세계 밖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내면적 통찰에 의해서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적 통찰의 범위 바깥에 있지 않습니까?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중에서-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더라도 밤하늘의 별은 이미 아름답게 총총합니다. ...” - 칸트
선험적 비판철학: 선행하는 어떤 경험들을 근거로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천적인 주관적 인식과 직관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칸트의 철학적 방법
순수이성: 칸트철학에서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사물을 선천적인 방법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르킴
8. 칸트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궁극적인 행복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의무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롭게 행한 만큼 자기가 행한 정의만큼의 행복한 삶을 누리는게 최고선의 상태이며 실천이성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의롭게 행한 사람이 선했던 만큼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니며 부정의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그의 상응하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정의로움의 정도와 행복함의 정도가 일치되도록 이 세상이 이끌어져 가는 것은 현세에서 유한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할까요? 정의로운 만큼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지 않으니 최대한 자신만을 위해서 살며 경찰에 잡혀가지 않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쾌락을 충족시키며 살아가야 할까요?
이 상황에서 나의 실천 이성의 체계는 포기되어야 할까요? 우리내면에 존재하는 양심의 목소리는 헛 것 일까요? 정언명령이나 보편적 정의, 절대적 가치, 보편적인 의무, 윤리적 인과필연법칙 등은 모두 악한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능력이 없는 윤리학자들이 그들의 행복(?)을 보고 배가 아파서 심통을 부려 만들어 낸 말들일까요?
그러나 나의 실천이성은 악한 사람들이 모순적인 삶(남에게는 하기 좋아 하지만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는 이루어 지지 않기 바라며 행하는 삶의 모습)에 의해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도덕적 필연성은 이미 그것의 가능성(정의와 행복의 일치)을 내포하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나에게 언젠가 사후에라도 선악의 정도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일치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란 것을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인간의 사후에 정의로운 정도와 행복함의 정도를 완전하게 일치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이성은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세상을 초월한 시간과 조우하게 될 때인 내세에서 반드시 정의로움과 행복함의 정도를 일치시켜줄 기회가 존재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이성은 하나님과 영혼과 내세라는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존재들을 통해 영원한 가치로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게 세워져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영혼과 내세라는 시간은 우리의 실천이성의 체계 확립을 위해서도 필연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요청되고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이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글-
정언명령: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명령 실천이성: 칸트철학에서 어떻게 사는게 옳은가를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능력
9. 라이프니츠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1646~1716 수학자,철학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충족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의 충족률을 우리 자신 안에 갖든지 우리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적인 그리고 가능적인 존재이므로 존재의 충족률을 우리 자신 속에서 갖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존재에 대한 증명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
이글을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과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형제자매들께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신앙으로 믿고 있는 분의 존재를 이성적으로도 알게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을 빌려서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을 향해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분들께 영적인 유익이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적으로 철학적으로 증명하는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려면 이 논리들도 부정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택하시든 이 글들을 읽고 택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읽으시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아시고 느끼게 되신 분은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구원과 멸망 그리고 천국과 지옥 그리고 가
치있는 삶과 의미 없는 삶이 걸려있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들은 이글을 읽으시고 잘 기억하셨다가 유익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1. 집과 목수의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지상에 있는 모든 집에는 그 집이 아무리 작은 집일지라도 그 집을 지은 목수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모든 집을 지은 목수의 모습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지라도 누군가 그 집들을 지은 이가 있었다는 사실 만큼은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삼라만상이 모여 사는 이 세상도 유심히 보면 땅의 터 위에 하늘의 지붕 아래 산천초목의 기둥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천지 같은 큰 집이 어찌 저절로 생겼겠습니까?
이 놀라운 천지 만물에도 지은 목수가 있음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 목수를 본 적은 없지만 이 모든 세계를 지으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3장 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2. 시계와 시계공의 비유를 통한 하나님의 존재증명
만약 우리가 사막에서 길을 걷던 중에 다른 사람이 흘리고 간 시계를 우연히 발견 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상황에서 그 시계에 대해 우연히 발생하게 된 것이라거나 진화에 의해 생겼다거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발생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 눈을 돌려 우리의 몸과 우주의 삼라만상이 어떠한 질서와 조화와 작용 속에서 유지되고 있고 운행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몸 중에서 눈 하나만 보더라도, 이 세상에서 각양각색의 식물과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우주공간에서 지구주변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만 보더라도 이 세상의 질서와 조화와 작용이 사막에서 발견한 시계보다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막에서 발견한 시계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도 당연히 설계자와 제조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믿고 있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페일리 신부의 신존재 증명
3. 무신론자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대화
무신론자: 신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제게 증명해 보시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영혼과 정신을 보지 않고도 볼 수 없어도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어찌 알며 어떻게 나에게 그 사실을 증명하실 수 있겠습니까?
무신론자: 증명이 필요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영혼과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왜 지금 저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은 당신의 신체의 작용 몇 가지만 보고도 당신의 영혼과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명하게 깨닫고 있으면서 왜 이 세상속의 천지만물이 질서와 조화 속에서 창조되고 있고 유지되고 있고 작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십니까?
무신론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에대한 추언:
A.D354~430년에 활동한 교부 신학자,
참회록.은혜론.삼위일체론.신국론.기독교 교육론을 저술함 ,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와 개신교 각교파와 이단들과 이교 사상
가와 철학자와 법학자들까지도 존경을 하고 있는 성자,
" 하나님 제 영혼이 당신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기까지 제 영혼은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 부터도 결코 쉼을 얻지못하였나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고대교회의 대표 신학자.
4. 뉴턴의 일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이지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란 과학자는 기독교인 이였습니다. 그러한 뉴턴에게도 무신론자인 친구가 있었답니다. 그의 무신론자인 친구는 뉴턴처럼 인간과 지구와 우주에 창조자가 있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뉴턴은 태양계모형을 만들고 행성들이 태양계 주변을 회전하는 그 당시로서는 신기하게 보일 수 도 있는 장치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무신론자인 그의 친구도 뉴턴의 집을 방문하여 그 모형장치를 작동해본 후 신기해하며 뉴턴에게 본인이 직접 만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뉴턴은 처음에 모른다고 답했습니다. 그의 무신론자인 친구는 진지하게 다시 뉴턴에게 누가 만든 것인지 물었습니다. 뉴턴은 이번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 이게 여기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뉴톤의 친구는 화를 내며 어떻게 이런게 아무도 만들지 않고 그냥 갑자기 생길 수 있냐고 뉴턴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 뉴턴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이 우주와 지구 그리고 인간까지도 그냥 우연히 생긴거라고 말하며 늘 내신앙을 비웃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이 작고 조잡한 모형 하나가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그렇게 화를 내며 믿지 않는게 자네 스스로도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나? 거기서 무신론자였던 뉴턴의 친구는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생각을 뉘우쳤다고 합니다.
"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한체 이 세상에 가득한
고통을 헤아리는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존재를 부
정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한평생 작고 연약한 늙은
몸을 가지고 가난한자와 장애인 그리고 집에서 버
려진 한센병(나병),백혈병걸린 어린아이들에게까
지 따뜻한 눈과 손과 가슴을 가지고 자신이 베풀수
있는 모든 사랑을 베풀다가 죽은 마더테레사의 삶
을 한번만 볼수있다면 그 누구라도 침묵속에서 하
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될것이다.
5. 토마스 아퀴나스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1225~ 1274 카톨릭 신학자 - 신학대전의 저자)
우리를 포함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철학적으로 표현하건대 필연적으로 반드시 존재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 안할 수도 있는 가능적이고 우연적인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주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시간의 처음부터 반드시 있어야 했던 필연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는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존재 중에서 필연적인 존재가 없었다고 그 어디에도 필연적인 존재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필연적인 존재가 없이는 지금의 다종다양한 우연적인 사물들은 결코 존재의 시작을 갖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적 존재가 최초 우연적 존재의 시작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리석음을 넘어 지적인 자살입니다. 따라서 모든 가능적 존재가 있기 전에 필연적인 존재가 있었으며 그 존재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교인이 믿고 있는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입니다.
-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 3번
필연적 존재: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 ,반드시 있어야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 즉 하나님과 같은 존재
우연적 존재: 반드시 있어야 했다 라고 말할수 없는 존재 즉, 우주안에 있는 모든 존재가 다 우연적 존재이다. 다만 우주안에 있는 것들이 상호연관되어 작용하고 있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떤 것을 필연적인 존재라고 느낄 뿐인것이다.
6. 서울대 철학개론에서 언급한 내용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를 증명하거나 직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신 또는 절대자의 비실재를 단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한계는 신 또는 절대자의 실재여부를 알 수 없다는데 그칠 뿐이요 그 비실재를 적극적으로 단정할 수 있는데 까지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절대자에 대한 불가지론은 영원한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불가지론적 견해로 우리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결론에로 이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적 혼미 속에서 우리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지극히 겸허하고 또 긍정적인 그것이라고 믿습니다. 다시 말해서, 절대자 또는 영원한 가치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오만한 태도를 취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영원한 가치의 가능성이 남아있는 동안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 취해야 할 마땅한 태도라고 믿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가 인간 밖에 존재하는 신 또는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끝내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우리 자신 속에 영원한 가치의 근거를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 서울대 철학개론 교과서(97년판) 96 page 중에서
실재: 철학에서 우리의 인식이나 경험과는 상관없이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을 가르킴
영원한 가치 : 사랑 ,보편적 정의 ,인과법칙 같은 것을 가르킴
" 눈이 태양과 같은 것이 아니였다면
우리가 태양을 보는 것은 아마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신 자신의 힘이 존재하여 작용하지 않았다면 신적인 것이 우리를 매료시킬수 없었을 것입니다" - 괴테
하나님은 우리가 궁극적인 가치를 부여하는것들과
우리가 절대적으로 흠숭하고픈 유혹을 받는 것들
의 끝에서 우리를 강한 매력과 함께 잡아당기심으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삼으려는 모든 것들은 결국
신의 속성들인 것입니다.신의 속성들이 우리를 매
료시키고 있다는 그 사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매료시킬 수는 없으므로...
7. 칸트의 철학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존재
만일 어떤 비범한 사람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후세계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뚜렷하게 논증했다는 말을 내가 듣는다면 나는 그의 쓴 책을 읽기를 갈망할 것입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이 나의 식견을 진보 시킬 것을 나는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책을 읽기 전에 이미 그가 자신의 책을 통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그의 중요주장들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증명을 이미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순수이성의 전 저장품을 밝혀준 선험적 비판철학이 다음에 것을 나에게 확신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 순수이성은 이 분야에 있어서 긍정적인 주장을 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하기에는 한층 더 힘이 부족하다 -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그 근거를 어디서 찾을 것입니까? 일상적인 경험세계 안에서입니까? 하나님은 일상적인 경험세계 밖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내면적 통찰에 의해서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적 통찰의 범위 바깥에 있지 않습니까?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중에서-
“당신이 하나님이 없다고 하더라도 밤하늘의 별은 이미 아름답게 총총합니다. ...” - 칸트
선험적 비판철학: 선행하는 어떤 경험들을 근거로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닌 선천적인 주관적 인식과 직관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칸트의 철학적 방법
순수이성: 칸트철학에서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사물을 선천적인 방법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르킴
8. 칸트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궁극적인 행복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의무입니다. 모든 사람이 정의롭게 행한 만큼 자기가 행한 정의만큼의 행복한 삶을 누리는게 최고선의 상태이며 실천이성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의롭게 행한 사람이 선했던 만큼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은 아니며 부정의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그의 상응하는 불행한 삶을 살다 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정의로움의 정도와 행복함의 정도가 일치되도록 이 세상이 이끌어져 가는 것은 현세에서 유한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할까요? 정의로운 만큼 현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지 않으니 최대한 자신만을 위해서 살며 경찰에 잡혀가지 않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의 쾌락을 충족시키며 살아가야 할까요?
이 상황에서 나의 실천 이성의 체계는 포기되어야 할까요? 우리내면에 존재하는 양심의 목소리는 헛 것 일까요? 정언명령이나 보편적 정의, 절대적 가치, 보편적인 의무, 윤리적 인과필연법칙 등은 모두 악한 사람들처럼 행복하게 살아갈 능력이 없는 윤리학자들이 그들의 행복(?)을 보고 배가 아파서 심통을 부려 만들어 낸 말들일까요?
그러나 나의 실천이성은 악한 사람들이 모순적인 삶(남에게는 하기 좋아 하지만 자신과 자기 가족에게는 이루어 지지 않기 바라며 행하는 삶의 모습)에 의해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어떤 것을 해야 한다는 도덕적 필연성은 이미 그것의 가능성(정의와 행복의 일치)을 내포하고 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나에게 언젠가 사후에라도 선악의 정도에 따라 행복의 정도가 일치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란 것을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 이성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인간의 사후에 정의로운 정도와 행복함의 정도를 완전하게 일치시켜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이성은 우리가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세상을 초월한 시간과 조우하게 될 때인 내세에서 반드시 정의로움과 행복함의 정도를 일치시켜줄 기회가 존재 한다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실천이성은 하나님과 영혼과 내세라는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존재들을 통해 영원한 가치로서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게 세워져있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영혼과 내세라는 시간은 우리의 실천이성의 체계 확립을 위해서도 필연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요청되고 있는 진리인 것입니다.
-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이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글-
정언명령: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명령
실천이성: 칸트철학에서 어떻게 사는게 옳은가를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능력
9. 라이프니츠의 하나님의 존재증명
(1646~1716 수학자,철학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의 충족률 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존재의 충족률을 우리 자신 안에 갖든지 우리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적인 그리고 가능적인 존재이므로 존재의 충족률을 우리 자신 속에서 갖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