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난 그때를 아직 기억한다 - 세번째

곽호연200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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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난 그때를 아직 기억한다 - 세번째

“17년 전 일이 떠올라 가슴이 멎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낍니다”

영화 ‘홀리데이’를 계기로, 17년 전 ‘지강헌 사건’이 대중의 뇌리에서 재생되고 있다. 지난 1월 19일 개봉한 ‘홀리데이’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여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단 대중의 호기심을 끌었다. 아울러 당시 사건에서 인질극 끝에 유일하게 생포된 탈주범 강영일에게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18년째 복역중인 그를 지난 1월 17일 레이디경향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인질극 벌였던 네 명의 탈주범중 유일한 생존자

이제는 전쟁도 생중계 되는 시대라지만 88년 당시, 탈주범들의 인질극이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중계되다시피 했던 일은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른바 탈주범 지강헌 일당의 인질극 사건이다. TV 화면을 통해 시각적으로 각인된 영향도 있지만, 그 사건이 80년대를 규정하는 하나의 표징이 된 것은 그들의 입에서 절규하듯 터져 나왔던 외침 때문이었다. 흉악하게만 비쳐지던 탈주범의 말이었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당시 일대 유행어가 됐고, 그들의 외침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국민들은 씁쓸한 뒷맛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당시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홀리데이’가 개봉하면서 소위 지강헌 사건이 다시 한번 회자되고 있다.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 중이던 죄수들 가운데 12명이 호송차를 탈취, 도주했다. 8박9일 동안 잡히지 않았던 네 명의 탈주범들은 서울 시내 가정집을 돌며 은신하다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 끝에 도주행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지강헌을 비롯한 세 명의 탈주범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나머지 한 명의 죄수 강영일은 현장에서 생포됐다. 영화 속에서 최민석(여현수 분)은 강영일을 모델로 한 캐릭터이고, 사람들은 사건 당시 탈주범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올해 마흔이 된 강영일씨는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18년째 복역중이다. 1급 모범수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영화가 만들어져 개봉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진실이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 그는 알고 싶어했고, 영화사측에 편지를 보내 그런 그의 심정을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영화를 직접 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영화사측이 적극 나섰지만 그가 제안했던 교도소내 시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화와 관련해 그의 존재가 언론에 오르내리자 오히려 그는 교도소내에서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교도소측에서 재소자 관리 측면에서 그의 행동에 통제를 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급 모범수의 경우 통상적으로 교도관의 입회 없이 지인들의 면회가 가능하지만 현재 그는 가족을 제외하고는 지인들의 면회가 거의 전면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상태다. 영화사 관계자들을 비롯해서 그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면회가 불허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렵게 강영일씨의 남동생과 연락이 닿은 기자는 대구교도소까지 그와 동행하여 강영일씨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1급 모범수로 18년째 복역중

접견을 신청하고 약 30분쯤 지나자 면회를 허락하는 방송이 울렸다. 안내된 접견실에 들어서자 투명한 벽 너머로 강영일씨가 걸어 나왔다. 나이보다 너댓살 쯤 어려 보이는 그는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곱상한 모습이었다. 순간 지강헌 등과 도피 생활을 할 때 그가 주로 여장을 했었다는 당시 기사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교도관 때문이었다. 보통 강영일씨와 같은 일급수의 경우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 접견시에도 입회자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하물며 가족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는 것. 그러나 이날의 면회는 남동생을 동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도관이 입회해 있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이렇게 입회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전날 어머니가 면회를 오셨을 때도 입회자가 들어왔다, 일급수인 나에게 이런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또 “영화사 대표가 면회 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는데, 교도소 측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뭐가 사실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영화사 대표가 면회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사실이 맞다고 확인해 주자 그는 교도소측에서 자신에게 또 거짓말을 했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입회자가 있는 상황에서라도 말하자면 말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또 안에서 내 생활이 불편해지고 불이익을 당하게 될텐데 어떻게 편하게 말할 수 있겠어요. 아무 말도 하지 말란 소리잖아요. 출소까지 이제 1년 반 남았는데 그동안 잘 견디고 모범적으로 생활해온 저에게 이제와서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해도 됩니까. 가족이 면회를 왔는데도 입회자가 나선다면 제 기본적인 인권은 아무 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잠시 후 그는 감정을 가라앉힌 뒤 영화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 영화사에서 보내준 시나리오를 읽어봤다는 그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좋게 그려졌다는 점에는 일단 안심하는 듯 했다. 난생 처음 읽어보는 시나리오라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17년 전의 일이 시나리오와 오버랩되며 가슴이 아파왔다는 것. 시나리오 상에서 당시 정황과 부분 부분 다른 점도 발견했지만 정확한 사실 묘사를 요구한다면 그건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아니겠냐고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내년 6월 출소하면 누이와 식당하는 것이 꿈

그는 그동안 탈주범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남들보다 더 모범적으로 수형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옥중에서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쳤고 대전시인협회에서 시상하는 창작시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일급 모범수가 되어도 그는 가석방 대상에 오를 수는 없었다. 탈주범 전력 때문이다.

88년 사건 당시 절도 및 특수 강도죄로 1심에서 보호감호를 포함 15년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지은 죄에 비해 형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에 탈주를 결심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거액을 착복하고도 낮은 형량을 받는 것을 보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절감했다는 것 역시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은 죄를 속죄하기보다는 억울하게만 생각했던 당시의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그는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그를 모델로 한 최민석은 동생과 함께 미용실을 차리는 것이 꿈인 청년으로 그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여동생의 미용 학원비를 대기 위해 우발적으로 30만원을 훔친 뒤 십 년이 넘는 형을 구형 받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영화가 실제 강영일씨의 얘기는 아니지만 이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다. 사회에 있을 때 그는 이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이발 기술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주말마다 동료 재소자들의 머리를 이발해준다. 출소하고 난 뒤 이발 기술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단다.

그에게 꿈이 있다면 요리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최근 그는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영등포교도소 식품조리훈련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요리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교육과정은 전국 교도소 중 영등포교도소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이감을 신청했던 것. 출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일급 모범수의 경우 사회 적응 차원에서 신청이 대부분 받아들여지는데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 12월말 그 결정이 돌연 취소됐다. 위에서 취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모두 영화 개봉 즈음 일어난 일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면회마저 제한되고 있어 그는 심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편, 영화 ‘홀리데이’의 제작사인 현진영화사에서는 그의 수기를 책으로 낼 예정이다. 강영일씨가 옥중에서 쓴 노트 3권 분량의 수기를 입수해 교정작업도 마친 상태다. 그러나 재소자의 수기 출간과 관련해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조율 중에 있다고 한다. 더구나 저작자인 강영일씨와 면회가 안되고 있어 저작권과 관련한 문제는 가족과 상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수기에서 그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한 사람이 지강헌이 아닌 자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 당시 체포되어 가면서 자신이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 발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형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지강헌의 발언으로 알려진 채 두었다는 것. 이밖에도 20년 가까이 감옥에서 생활하며 겪었던 일들과 소회 등이 수기에 담겨 있다고 한다. 책의 제목은 ‘청춘 없는 밤, 잃어버린 18년’이다.

그는 내년 6월,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예정이다. 17년 전 자신을 위해 인질 중 한 사람이 써준 탄원서를 그는 아직도 소중히 품고 있다. 옥중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 그는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누이와 함께 식당을 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아쉬움만큼 다가올 앞날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다. 사회는 이제 그런 기대와 희망에 낙인이나 냉대 대신 포용으로 감싸줄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다.

 

‘홀리데이’는 비지스인가, 스콜피언스인가

지강헌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가 가장 엇갈리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영화의 제목이 되기도 한 팝송 ‘홀리데이’에 관한 것이다. 당시 지강헌은 경찰에게 팝송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고 요청했고 그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숨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강헌이 요청한 곡은 비지스의 홀리데이였고 경찰이 건네준 테잎은 스콜피언스의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 당시 현장 기자로 취재를 나가 있던 모 일간지 기자의 증언이 있다. 그 기자는 또한 지강헌이 죽기 직전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인질극이 벌어졌던 옆집에 들어가 이웃해 있던 문제의 집에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지강헌과 통화를 하게 됐다는 것. 당시 수많은 경찰과 구경꾼들로 집밖은 소란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이와는 반대로 지강헌이 머물고 있던 전화선 너머의 공간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해 매우 대조적인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당시 그는 지강헌과 한 시간에 걸쳐 인간적인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에서 사회적 약자, 없는 자의 비애를 절감하고 비감에 젖었다고 한다.

상황이 종료되고 현장에 경찰이 진입했을 때 그는 현장에 들어가 가장 먼저 녹음기에 걸려 있던 스콜피언스의 테잎을 꺼냈다고 한다. 사건 이후 그는 기자를 그만 두고 유학을 떠나 15년 만에 귀국했고 현재는 모 대학의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다. 실제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지강헌이 죽음을 맞는 순간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흐른다. 영화에서나마 망자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던 걸까.

 

보호감호제는 무엇?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상습범은 바로 사회에 복귀하면 안 된다”며 사회보호법이 제정됐다. 당시 춘천교도소에 보호감호소를 설치한 뒤 1983년 2월 지금의 청송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동안 삼청교육대 피해자를 비롯해, 이곳을 거쳐간 사람은 모두 1만3413명에 이른다. 같은 죄로 2번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합계 3년 이상의 형기를 받은 사람이 다시 비슷한 죄를 저지르면, 징역형을 마치고 나서 또 보호감호처분을 받아야 하는 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내리는 논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중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아왔다.

지강헌은 사건 당시 인질들에게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을 보태 17년을 썩을 것을 생각하니 아득해서 탈주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호감호제도를 담고 있는 사회보호법이 지난해 8월 4일 폐지됨에 따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청송보호감호소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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