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득점 기계가 아니라 '인간' 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스타 플레이어다. 처음에 그리 주목 받지 못했던 금발의 청년 바티스투타는 이탈리아로 건너가면서 부터 '신'이 된다.
세리아 Big 7으로 군림했던 피오렌티나에 입성한 바티는 천부적 골감각을 서서히 펼치기 시작한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불가능한 위치에서 모든 자세로 골이가능 하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2002년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에 넣은 '믿을수 없는 헤딩골'이 그것이다.
이런 사각에서 골이 들어 갈줄은 아무도 예측할수 없었다.
또한 무엇보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강력한 킥력. 그의 만화에나 나올법한 강력한 킥은 세리아 수비수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하일로비치의 프리킥이 신기에 가까운 커브가 일품이라면 바티스투타의 그것은 '미사일' 이었다.
'피렌체의 수호신'
무엇보다 바티스투타 하면 부각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다.
예수님을 너무나도 닮은 그의 얼굴만큼이나 그는 깨끗하고 인간적인인물이었다.
그라운드의 '예수' 바티스투타
바티스투타의 소속팀 피오렌티나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꿈에 그리던 스쿠데토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피렌체를 떠난후에도 피렌체의 영웅이자 신이었다.
무명의 바티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피오렌티나를 위해서 바티는 269경기를 뛰며168골을 선물 하였다.
바티의 팀에 대한 애정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해는 93~94 시즌 팀이 세리아 B 즉 2부리그로 강등 되었을대이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이던 바티를 잡기위해 여러 명문구단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바티는 이를 모두 떨처내고 당당히 피오렌티나와 함게 세리아 A 로돌아온다.
피렌체엔 내가 있다!
이즈음 해서 바티스투타에게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바티 골'이다. 단지 골을 많이 넣는다해서 바티골이 아니라 조금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티스투타가 공을 잡고서 득점을 하기까지가 너무 빨라서 해설자가 미처 그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골'을 외쳐야 했기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바티스투타 슛! 골~' 이라는 말이체 나오기도 전에 골이난다는 뜻이다. '바티~골!' 이렇게 붙은 그의 별명처럼 그는 피오렌티나와 함께 비상을 시작했다.
별명과 함께 바티가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은 자신을 본딴 동상이었다. 이는 열광적인 피오렌티나의 서포터들이 마련해 준것으로 바티스투타를 그들의 영원한 수호신으로 인정한것이다.
피렌체에 아직도 있는 바티골의 동상
선수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받을수 있는 애정을 모두 받은 그의 피오렌티나에 대한 애정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세리아는 라치오,밀란, 인테르,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파르마, 로마가 소위 빅 7이라 불리우며 스쿠뎃토를 노렸지만 당시 라치오나 로마, 유벤투스에 비해 나머지 클럽들은 그리 강팀이라 볼수 없었다.
물론 전성기 피오렌티나에는 톨도, 다리비오, 레프카, 루이코스타, 엔리코 키에사, 미야토비치 등이 포진해 있었지만 아무래도 리그 우승은 무리였고 나이가 30줄이 다되도록 피오렌티나에서 스쿠데토를 쥐고 싶은 바티는 수많은 러브 콜에도 꾿꾿히 피오렌티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2000년. 드디어 바티가 이적을 했다. 상대는 AS Roma 당시 피렌체는 패닉 상태였지만 31살이된 바티의 마지막 꿈인 '스쿠데토'를 위해서 그들은 그들의 수호신을 그렇게 가슴에 묻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ㅠ_ㅠ 붉은 바티라니
그리고 바티는 토티와 함께 꿈을 이루었다. 31살의 나이로 스쿠데토를 움켜준 바티. 그리고 피오렌티나의 서포터들은 아직도 그를 응원한다. 피렌체에 위치한 피오렌티나의 공식 서포터샵에는 아직도 바티의 사인이 들어간 사진이 가장 크게 걸려 있다.
루이코스타, 톨도와 함께 가운데 걸린 그는 아직도 피렌체의 영웅이고 수호신이다.
'아르헨티나의 영웅'
영웅의 첫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약관의 나이로 첫 출전한 바티는 이 대회에서 총 5골과 헤트트릭을 기록한다.
그 이듬해 출전한 1998 월드컵에도 역시 헤드트릭과 함께 5골을 기록한다. 당시 득점왕은 돌풍의 주인공 크로아티아의 수케르에게 돌아갔지만 득점킹으로서의 바티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바티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찾아왔다. 이 월드컵은 비단 우리에게만 특별한 것이아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선언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난 상태로 국민들은 깊은 시름과 절망에 빠져 있었으며 희망도 잃은체 그렇게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국가 부채로 인하여 국가 부도를 선포한 마당에 월드컵 참가비가 나올리 만무 했다.
결국 바티와 그의 동료들은 시름과 비탄에 빠진 조국의 동포들을 위해 자비로 선수단을 구성. 원정길에 올랐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그들이 할수 있는 최고의 애국심의 발로 였다.
잉글렌드 대표팀이 초호화 호텔에 묵을때도 그들은 2류 호텔에 묵으면서도 불평하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월드컵이 시작되었고, 하늘은 그들을 외면했다.
울고 있는 바티
마지막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했던 그들. 바티스투타는 나이지리아와의 32강에서 신기에 가까운 골을 성공시키며 희망을 이어갔지만 스웨덴과의 1-1경기는 아르헨티나에게 32강 탈락이라는 아픔만 남겨 주었고 주장인 바티스투타와 모든 선수들은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 카타르 그리고 은퇴.
월드컵이후. 그리고 00~01의 스쿠데토 이후 바티골은 거짓말처럼 슬럼프에 허덕인다. 기량의 급하락과 함께 바티골은 둥지를 카타르 리그로 옮기고 에펜베르그와 함께 팀의 우승과 함께 18경기 25골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기고 은퇴를 한다.
수많은 귀화제의와 수많은 빅클럽의 이적제의에도 눈하나 꿈쩍않고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클럽에 모든것을 바친 사나이.
90년대가 낳은 최고의 '축구선수' 바티스투타.
많은 이들은 그가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스물이 체 안된 나이에 돈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드는 '천재'축구 선수들이 판을 치는 요즘에, 언제 다시 이런 선수를 볼런지 알수 없다.
나의 영원한 영웅
피렌체의 영원한 수호신
바티스투타.
그를 이 시대 마지막 로멘티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으리.
!.정확한 자료를 위하여 선수의 모든 기록은 http://en.wikipedia.org의 공식 기록과 FIFA 공식사이트, 그리고 AS Roma, AFC Fiorntina 홈페이지를 참조 했습니다.
가브리엘 오마르 바티스투타
'Gabriel Omar Batistuta'
Birth : 1969년 2월 1일 Santafe in argentina
Physical : Height 1.85 m, weight 73 kg
- Newell's Old Boys
88~89 시즌 24경기 7골
- River Plate
89~90 시즌 21경기 4골
- boca juniors
90~91시즌 34경기 13골
- Fiorentina
91~92시즌 13골
92~93시즌 16골
93~94시즌 16골
94~95시즌 26골 세리아 A MVP, 베스트 11, 득점왕
95~96시즌 31경기17골 득점 4위 세리아A 베스트11
96~97시즌 33경기 24골 득점왕 세리에A 베스트 11,MVP
유럽최우수 선수
97~98시즌 30경기 21골 득점 2위 세리에A MVP
98~99시즌 29경기 21골 공동 득점왕 세리에A 베스트11
99~00시즌 34경기 21골 세리에 A 베스트11,MVP
- AS Roma
00~01시즌 21경기 20골 득점 4위 스쿠데토 차지(우승)
: 이 시즌중 10경기를 무릎부상으로 뛰지 못했음
01~02시즌 30경기 6골 득점, 시즌중반 인테르로 이적
- Internazionale
01~02 12경기 2골
- AS Roma
02~03 12경기 4골
- Al Arabi
03~04시즌 18경기 25골 득점 1위, 카타르리그 득점 신기록.
2004년 10월 은퇴선언
- 리그 기록
세리아 318 경기 출전 184골 기록
세리아 A 우승 00~01 AS Roma
이탈리안 슈퍼컵 우승 2001
이탈리안 리그컵 우승 95~96 AFC Fiorentina
세리아 B 우승 93~94 AFC Fiorentina
- 국가대표기록
첫 국가대표 출전 March 27, 1991. Brazil 0 - 1 Argentina
마지막 국가대표 출전 June 12, 2002. Argentina 1 - 1 Sweden
국가대표 총 골수 78경기 56골
1991, 1993 코파 아메리카 우승.
1991 코파 아메리카 득점왕
2004년 피파 100주년 기념 125인의 위대한 축구선수에 뽑힘
1994, 1998, 2002 월드컵 출전
1994, 1998 월드컵 연속 해드트릭
'그 같은 스트라이커는 세상에 오직 그 뿐이다.'
그는 득점 기계가 아니라 '인간' 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스타 플레이어다. 처음에 그리 주목 받지 못했던 금발의 청년 바티스투타는 이탈리아로 건너가면서 부터 '신'이 된다.
세리아 Big 7으로 군림했던 피오렌티나에 입성한 바티는 천부적 골감각을 서서히 펼치기 시작한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불가능한 위치에서 모든 자세로 골이가능 하다'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예로 2002년 월드컵 나이지리아 전에 넣은 '믿을수 없는 헤딩골'이 그것이다.
이런 사각에서 골이 들어 갈줄은 아무도 예측할수 없었다.
또한 무엇보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그의 강력한 킥력. 그의 만화에나 나올법한 강력한 킥은 세리아 수비수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하일로비치의 프리킥이 신기에 가까운 커브가 일품이라면 바티스투타의 그것은 '미사일' 이었다.
'피렌체의 수호신'
무엇보다 바티스투타 하면 부각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다.
예수님을 너무나도 닮은 그의 얼굴만큼이나 그는 깨끗하고 인간적인인물이었다.
그라운드의 '예수' 바티스투타
바티스투타의 소속팀 피오렌티나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그는 꿈에 그리던 스쿠데토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피렌체를 떠난후에도 피렌체의 영웅이자 신이었다.
무명의 바티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피오렌티나를 위해서 바티는 269경기를 뛰며168골을 선물 하였다.
바티의 팀에 대한 애정이 가장 여실히 드러나는 해는 93~94 시즌 팀이 세리아 B 즉 2부리그로 강등 되었을대이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이던 바티를 잡기위해 여러 명문구단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바티는 이를 모두 떨처내고 당당히 피오렌티나와 함게 세리아 A 로돌아온다.
피렌체엔 내가 있다!
이즈음 해서 바티스투타에게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바티 골'이다. 단지 골을 많이 넣는다해서 바티골이 아니라 조금더 특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티스투타가 공을 잡고서 득점을 하기까지가 너무 빨라서 해설자가 미처 그의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골'을 외쳐야 했기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바티스투타 슛! 골~' 이라는 말이체 나오기도 전에 골이난다는 뜻이다. '바티~골!' 이렇게 붙은 그의 별명처럼 그는 피오렌티나와 함께 비상을 시작했다.
별명과 함께 바티가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은 자신을 본딴 동상이었다. 이는 열광적인 피오렌티나의 서포터들이 마련해 준것으로 바티스투타를 그들의 영원한 수호신으로 인정한것이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ㅠ_ㅠ 붉은 바티라니 그리고 바티는 토티와 함께 꿈을 이루었다. 31살의 나이로 스쿠데토를 움켜준 바티. 그리고 피오렌티나의 서포터들은 아직도 그를 응원한다. 피렌체에 위치한 피오렌티나의 공식 서포터샵에는 아직도 바티의 사인이 들어간 사진이 가장 크게 걸려 있다. 루이코스타, 톨도와 함께 가운데 걸린 그는 아직도 피렌체의 영웅이고 수호신이다. '아르헨티나의 영웅' 영웅의 첫 월드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약관의 나이로 첫 출전한 바티는 이 대회에서 총 5골과 헤트트릭을 기록한다.
그 이듬해 출전한 1998 월드컵에도 역시 헤드트릭과 함께 5골을 기록한다. 당시 득점왕은 돌풍의 주인공 크로아티아의 수케르에게 돌아갔지만 득점킹으로서의 바티의 활약은 정말 눈부신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바티에게는 마지막 월드컵이 찾아왔다. 이 월드컵은 비단 우리에게만 특별한 것이아니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선언으로 국가 경제가 파탄난 상태로 국민들은 깊은 시름과 절망에 빠져 있었으며 희망도 잃은체 그렇게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국가 부채로 인하여 국가 부도를 선포한 마당에 월드컵 참가비가 나올리 만무 했다. 결국 바티와 그의 동료들은 시름과 비탄에 빠진 조국의 동포들을 위해 자비로 선수단을 구성. 원정길에 올랐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그들이 할수 있는 최고의 애국심의 발로 였다. 잉글렌드 대표팀이 초호화 호텔에 묵을때도 그들은 2류 호텔에 묵으면서도 불평하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월드컵이 시작되었고, 하늘은 그들을 외면했다.
수많은 귀화제의와 수많은 빅클럽의 이적제의에도 눈하나 꿈쩍않고 자신의 조국과, 자신의 클럽에 모든것을 바친 사나이. 90년대가 낳은 최고의 '축구선수' 바티스투타. 많은 이들은 그가 바보 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스물이 체 안된 나이에 돈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드는 '천재'축구 선수들이 판을 치는 요즘에, 언제 다시 이런 선수를 볼런지 알수 없다. 나의 영원한 영웅 피렌체의 영원한 수호신 바티스투타. 그를 이 시대 마지막 로멘티스트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으리.
!.정확한 자료를 위하여 선수의 모든 기록은 http://en.wikipedia.org의 공식 기록과 FIFA 공식사이트, 그리고 AS Roma, AFC Fiorntina 홈페이지를 참조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