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 하얼빈 역 구내에서 이토를 저격, 살해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안중근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채 재판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안지 이미 오래다. 내 구차스럽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니 상고를 포기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 안중근은 재판장의 만행을 비웃으며 상고를 포기했다. 그러나 안중근이 상고를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 조마리아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다. [ 응칠아!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만방에 보여 준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할 줄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리가 있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 ] 이글을 본 일본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놀랐으면 '시모지사(是母之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라고 하여 자기네 신문에 대서특필하였겠는가? 이렇듯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는 분명히 대의명분이 뚜렷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염려한 것은 일본 정부의 끈질긴 회유에 안중근이 큰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혈육의 정을 뛰어넘는 애국충정의 발로였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여순 감옥의 간수헌병이었던 지바 도시치가 편지내용에 감동되어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던 것이 후일 확인되어 항일투쟁사의 소중하고 값진 기록이 되었다.
안중근의사와 그 어머니
1909년 10월 26일 , 하얼빈 역 구내에서 이토를 저격, 살해하고 사형언도를 받은 안중근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채 재판장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안지 이미 오래다. 내 구차스럽게 살기를 원하지 않으니 상고를 포기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
안중근은 재판장의 만행을 비웃으며 상고를 포기했다. 그러나 안중근이 상고를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 조마리아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다.
[ 응칠아!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만방에 보여 준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할 줄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리가 있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 ]
이글을 본 일본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놀랐으면 '시모지사(是母之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라고 하여 자기네 신문에 대서특필하였겠는가?
이렇듯 조마리아가 아들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는 분명히 대의명분이 뚜렷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염려한 것은 일본 정부의 끈질긴 회유에 안중근이 큰일을 그르치지 않을까 하는, 혈육의 정을 뛰어넘는 애국충정의 발로였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여순 감옥의 간수헌병이었던 지바 도시치가 편지내용에 감동되어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던 것이 후일 확인되어 항일투쟁사의 소중하고 값진 기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