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를 그리며(필독)

심천섭200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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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나고 싶던 베트남을 떠난 지 어느덧 만 5년이

되어간다. 내 베트남 시절들이 사그라져 갈 무렵 후임

한 명이 소포를 들고 오더니 "심천섭 병장님 소포 왔습니다."

라며 살색 봉투 하나를 건네 줬다. 설레는 맘으로 뜯어보니

[하노이 한인 소식] 지였다. 아버지 편지와 함께 이역만리를

건너온 하노이 한인 소식지, 순간 하노이의 시절들이 빛바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처럼 나의 추억의 샘을 자극했다.

육군 수기사 맹호부대 전역 5개월 남긴 병장 심천섭이다.

지금 내무실에 한국 말레시아전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인 마무리가 안 될 때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튀어나온다. 맹호부대라... 최초 파병부대, 월남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부대다. 나의 베트남 친구들 부모들과

싸운 맹호 부대 선배들, 군가 또한 월남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한두 번 들어 봤을 게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 가시는 곳 월남 땅 하늘은 멀더라도...." 매일 아침

구보 때 이 지긋지긋한 군가를 숨이 가프도록 부른다.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 하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을 때 자대배치 표에 수기사라고

적혀 있었다. '수기사' 라는 말을 들으니 순간 내가 아는

단어들을 끌어 모아 요리조리 예측해 보았다. 수도 기밀

사령부인가? 혹 내가 영어도 잘하고 학벌도 괜찮으니까

뽑힌 건가? 그런데 옆에 이발사 하다 온 녀석도 수기사로

적혀 있었다. 아무튼 난 수도라는 말만 믿고 서울에서

군복무를 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매연이 산만히 스며드는

육공(육군트럭)이 나를 실어 간 곳은 경기도 가평 맹호부대

신병 교육대였다. 위병소 입구에 큰 간판이 걸려있었다.

'수도 기계화 보병 사단' 그 아래는 '한번 맹호는 영원한 맹호'

문득 나의 뇌리에 한 단어가 스쳤다. '꼬였다' 해병대

다음으로 훈련이 많은 맹호 부대는 연간 크고 작은 훈련이

30개나 된다. 준비태세, 매복 국지도발에서 소대 중대

대대 ATT, 진지, 유격, 혹한기, FTX등 무수히 많은 훈련으로

2년2개월 동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전입 와 외국 그것도 월남에서 왔다는 이유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나, 하지만 그 관심은 곧 갈굼으로 이어졌다.

상병 꺽일 때까지 1년 반 내내 갈굼을 당하다 비로소 아버지

세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내 또래들이 부모님과

세대 차이를 느끼는 것처럼 군에서도 고참들과의 위계질서

속에서 오는 갈등이 수없이 많다. "병장님, 제 입장도 생각해

주십시오." 흔히 우리가 부모님께 드리는 말이 아닌던가?

나중에 짬밥 (군대밥)먹고 나서 후임 병들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민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한다고

우리의 부모들 역시 그러하다. 여기는 요즘 신병들, 요즘

이등병들이라는 말이 난무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나

또한 짬 없을 때 들었고, 짬 먹고 하는 소리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일게다.

그러나 수천년 전 수메르 쐐기문자에 '요즘 애들은 되바라졌다'

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요즘이란 단어는 우리의 기억이

상실되어 쓰이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군에서 권위에

대한 순종심을 배워 다행이다. 훗날 사회생활 할 때 큰 도움이

될 게다. 예전에 주말 한인 학교 공부 시간에 선생님께

되바라지게 행동한 적이 기억도 나고 지금은 한인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내가 다닐 적인 반 푹 유니스

유치원 건물을 임대해 사용했는데 말이다. 그때는 초 중 고

건물이 암스테르담 학교에 있었을 때다.



한인학교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10학년 때다. 오전에 수학시간이 끝나고 건우, 우진,

한국에서 갓 온 요섭이와 함께 한인 학교 건물 맞은편 길 건너

있는 포호화를 갔다. 항상 쉬는 시간에 가면 구수한 쌀

국수를 먹는데 그 날 색다른 것이 당겼다. 칼칼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씩 했다. 맛은 몰랐지만 어린 나이에 금기시 되는

것을 했다는 사실에 넷은 쾌감을 느끼며 그 분위기를 즐겼다.

허나, 우진이의 얼굴이 너무 붉어져 수업이 시작 할 때 즈음

내가 그를 불러 집으로 가라 했다. 나머지 셋은 껌을 씹으며

고개를 숙여 열심히 공부하기 연극을 했다. 내가 조용하니

수업이 오랜만에 활기를 띄었다. 지금 학생들은 열심히

하리라 믿는다.



휴가 나오면 종종 하노이 후배들을 만난다. 곧 군대 갈

녀석들 나에게 군대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그리고 심란해

한다. 그렇다. TCK로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도전 군대에

갈 후배들을 생각하면 측은해진다. TCK란 Third Culture Kid의

약자로 해석하자면 제 3문화권 아이들이라는 뜻이다.

베트남이 제 3문화권이라는 뜻이 아니라 제 1문화권인

모국 문화와 제 2문화권이 타국 문화가 섞여 자기만의

제 3문화의 가치관이 자리 잡은 소년기에서 청소년기

아이들을 말한다. 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A집합 (한국문화)

B집합(타문화)의 교집합을 말한다. 특징은 대체로 어느

나라든 한 문화권에서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하며 같은

TCK들끼리 모였을 때 동질감과 유대감이 다른 단체나

모임보다 극대화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의 외고나

대학에서 특례 아이들끼리 뭉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개념이 적은 아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군대에 들어가 적응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위계질서, 선후배 관계 등 그런 개념들이 자리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군대를 간 난 개념 없다는 소리를 귀에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후배들에게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직접 피부로 체험치 않으면 이해를 못한다.


이제 전역을 하면 하노이에 한 번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주 가던 Vertex, Apocalypse, Magic 은 그대로 일까?

친구들이 다 떠난 빈 도시를 거닐면 낙엽조차 사라진 가로수

길을 홀로 배회하는 것처럼 쓸쓸할 것 같다. TCK들의 비애는

고향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워 다시 찾아가면 반겨줄 친구들 없다는 사실.... 한 번

두 번 만나 여러 해 동안 그리워하고 일생을 보고 싶어 회상하니

결국엔 빛바랜 사진첩으로 변해버리는 TCK들의 삶, 여전히

서글퍼진다. 그래서 여태껏 베트남이 그립지 않았나 보다.

오늘도 유난히 하노이 밤거리를 달리고 싶다.

by 심천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