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역 한켠에 노숙자가 자고있다
아무 연고도 없고 미래도 없고 희망도없는
하루하루 근근히 연명하는게 전부인 무미건조하다못해
땟국물과 땀으로인해 찝지름한 인생을 사는 노숙자가있다
구걸을 해서 먹고살지만
가끔 돈이 너무 부족할때면 아침에 인력소를 찾아가본다
일이 없어서 그냥 돌아오는 일이 허다하지만
일이 있으면 받은 돈으로 며칠을 연명한다
약5만원을 받으면 만원은 식비 만원은 담배값
나머지 삼만원은 소주값으로 날린다
하루가 지나가는 걸 느낄 여력조차 없다
눈에 촛점이 사라진건 옛날이다
자신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던가 하는건
이젠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날씨가 더워도 추워도 언제나 긴팔에 자켓을 입는다
겨울이 되서 살이 에일듯한 추위가 찾아오면
그때서야 주섬주섬 두툼한옷을 줏어다 입는다
박스도 찾아보고 신문지도 찾아본다
그리고 날이 풀리면 다시 아무데나 갖다버린다
주위에 있는건 다 자신의 것 다 남의 것
주인없는것 있는것
자신의 주인이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는 말따위는
그에겐 배부른 헛소리다
그는 그런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에
죽으려는 생각조차 안해봤다
아무런 희망과 생각이 없어서
그는 그냥
본능적으로 먹고 자고 버틴다
그는
자신을 인간이라 칭하지 않는다
아예 자신을 지칭하는 말따위는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다
오늘도 잠실역 한켠에 자리를 잡는다
박스를 깔고 신문을 접어본다
저쪽에서 그래도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지성이 남아있는 노숙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신문도 보고 책도 읽고
그들은 가끔 목욕이란 것도 한다
아직 이 세계에 들어온지 얼마 안된게 분명하다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챙긴다
그의 삶에 웃음도 사라진지 한참이다
"아저씨 여기서 자요?"
그는 작고 맹랑한 목소리를 들었다
누가 자신에게 말을 걸겠어 라며 자중하고
잠자리만 주섬주섬 챙긴다
"여기 안추워요?"
그는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작은 어린아이다
아마도 남자아이처럼 보이는 그 아이는 정말 작다
가까이 있지만 한눈에 쏙들어오는 몸집에
깔끔하게 옷을 입고 까만머리카락에
동그랗고 까만 눈이 이쁜 아이
똘망똘망 아무 표정도 없는얼굴로 그를 바라보고있다
"여기서 자냐구요"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을 한다
건방진 아이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린아이와 얘기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이나질않는다
그는 지저분한 얼굴로 그 아이를 들여다본다
"그래"
거칠은 입술을 겨우 떼어서 대답을 한다
가족이 있는 아이들에게 말을걸면
아이의 어머니들은 소리지르면서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저런 사람과 이야기 하지말라고 혼을 낸다
어떤 아버지들은 그에게 해꼬지를 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왠만하면 아이들은 피하려고한다
그 아이들의 삶에 자신같은 존재는
도저히 득이 될래야 될수가 없으니까
"우와~그럼 여기가 아저씨 집이에요?"
그 아이는 신기하다는 듯이
그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그에게 계속 질문한다
"저리가 임마"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가 말한다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이런 귀찮은 꼬맹이는 저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괴롭히는 건 정말 짜증을 유발한다
"아저씨 인생이란게 뭔지 알아요?"
그는 다시 한번 그 아이를 쳐다본다
역시나 작은 아이
한 세살쯤이나 되었을까
생각에 겨우 한글이나 띄었을 나이인데
조숙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역시나 건방진 아이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인생이란 말이죠
하얀 도화지위에 그림을 그리는것과 같아요
차근차근 밑그림부터 그려나가는게
그림을 잘 그리는 방법이에요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잘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완벽하게 멋지고 깔끔한 그림을 그리려면
역시 밑그림이 중요하죠
그렇다고 밑그림만 중요한게 아니에요
색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걸 꼼꼼하게 잘 칠하고 구도도 맞추고
아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자신의 의지에 맞춰서
남의껄 베끼지 않고 자신에 감정에 충실해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거죠"
"어....."
그는 놀라서 동그래진 눈으로 그아이를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 그 아이는
밝게 씨익 웃더니
그의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이 아이
이상하다
"너 누구니?"
아직은 남아있는 작은 인정으로
그는 자신의딴엔 정말 따뜻한 목소리로-남이 듣기엔 거칠지만-
그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아이인지
아저씨는 아무 상관없잖아요?
제가 아저씨의 그림을 대신그려줄리 없으니까
하지만 혹시 제가
아저씨의 그림을 그리는데
색을 바꿀지도 몰라요
구도를 바꿀지도 모르고
뭔가 배경에 하나 더 넣을 수도 있죠
전 그냥 지나가는 아이에요
말많은 아이"
그는 잠자리를 대충 챙겨놓고
그 아이 옆에 주저앉는다
그 아이는 그의 옆에 앉아서 앞만보고있다
무표정한 표정
분명히 작고 어린 아이지만
뭔가 다르다
분명히 건방지고 조숙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깊숙한 내면에 향기가 풍겨왔다
"옆집에 사는 여자애가요
제가 좋데요
근데 전 걔가 싫어요
그렇지만 전 싫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걔가 아플꺼같았거든요
배려란건 중요해요
사람들이 섞여사는 사회에서
서로 아프지 않게 사는건 중요한거 아니겠어요?"
"그렇지"
"죽음이란거
쉽게 생각하면 안되는거잖아요
근데 요즘 사람들은 죽는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해서 싫어요
티비를 틀어도 죽는 얘기 투성이에요
죽는다는거 정말 거지같은데
어떻게 죽는다는 생각을 할까요
죽는게 그렇게 쉬운것도 아닌데
그치만 어려운것도 아니지만
어떻게 그래요?
이해가 안가요 정말
멍청이들"
"그렇지"
그는 그 아이를 쳐다보며 대답만 해주고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앞을 보며
이야기만 하고있다
간간히 사람들이 지나가는 야밤에 잠실역
"초록색하고 빨간색은요
보색관계래요
아세요? 보색?"
"글쎄"
"보색이란건 상반되는 색이라는 거에요
초록색이라기보단 청록색하고 보색이라던데
어쨌든 초록색이라고 치면요
초록색하고 빨강
왠지 비슷한 색은 아니죠?
전혀 상반되는 색이래요
그래도 초록색하고 빨간색이 섞인 옷같은게 꽤 있죠?
많이들 입기도 하고
서로 반대되지만
같이 있을때 잘 어울리기도 한단 소리에요
아무리 달라도
조화로울 수 있다는거에요
재즈에서 중요한건
불협화음이래요
보통 클래식이나 음악에선
전혀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음들이 만나서 화음을 만들고
그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요
듣기도 편하고 변화롭지 않은 부드러운 음악을말이에요
그런데 재즈에선
서로 맞지 않는 음들을 한꺼번에 연주해서
불협화음을 넣어요
그렇다고 재즈가 듣기싫은 소리를 내는건 아니에요
서로 상반되고 안맞는다고
어울리지 않는건 아니란 소리에요
맞추기 힘들긴 하겠지만"
"그렇구나"
도저히 아이로선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
그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만 늘어놓는 작은 아이를
그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 삶에 이런적이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그는 문득 놀란다
내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게 얼마만인가
하면서
"잠은요
꼭 푹 자야해요
조금자던 늦게자던
푹자세요
추울땐 감기 조심하시구요
밥은 꼭 챙겨먹구요
사람은 사람이 챙겨야하지 않겠어요?
사람걱정은 사람이 하는거에요
사람을 사랑하는것도 사람이고
서로 도우면서 함께사는것도 사람이구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벌떡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 후다닥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는 멍하니 그아이가 가버린곳을 주시하고있다
정신이 돌아온 느낌
작은 불빛이 머릿속을 비춰진느낌이다
나도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분명히 미소를 짓는것은 분명한데
숨이 막히도록 울음이 터져나왔다
울어본게 얼마만인가
웃음보다도 더 먼 옛날의 일인것만 같다
그는 놀랐다
자신의 모습에 그 자신이 놀라고야 말았다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졌다
온몸이 불타는 듯이 뜨거워지고
숨이 넘어갈듯하게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조금있다 안정을 되찾았다
숨을 고르고 손으로 눈언저리를 문질러 눈물을닦았다
얼굴은 땟국물이 번져서 얼룩이 졌다
주섬주섬 잠자리를 펼친다
내일부터는 매일매일 인력소를 찾아가봐야겠다
돈을 아껴쓰고
소주사는데 쓰는 돈을 특히 아껴야겠다
그리고 생각을 많이해야겠다
말도 하고
목욕도 하고
책도 읽어봐야겠다
돈모아서 고시원이라도 들어가야겠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정말 오랜만에
웃으면서 잠에 든다
어느 노숙자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