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03년도의 여름은 우리에게 있어 도져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거대한 땅 “미주 동부로부터 서부까지의 횡단”...
내 평생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넌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뒤로한채 2003년 6월 30일, 우리 일행 23명은 일본행 비행기에 지나친 기대감과 함께 몸을 실었다.
우리는 일본의 수도 도쿄 나리타 공황을 경유(經由)하여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가 탔던 UA 884항공기안에서부터 작은 “cultural shock"에 부딪쳤으니..
그것은 느끼한 참치와 쇠고기를 시작으로 생각만해도
미간이 지푸려지는 미국의 달고 짠 음식문화와 비행기 안의 스튜아줌마(?)들이다.
젊지도, 이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스튜어디스 아줌마들이 피부의 색깔과 외모의 기준에 상관치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모습은 우리의 고정관점의 틀을 살짝 틀어 놓았다.
이것은 항상 외모의 기준과 나이라는 제한으로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우리의 관행(慣行)과는 달라 보였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시작된 미국을 향한 비행...
가도가도, 자도자도 도착하지 않는 땅!! 미국이 이렇게 먼 나라였던가?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미국은 정말 가까운 듯하면서 실제로는 너무나 먼 나라이다. 신세대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신앙인들에게 도전을 주는 나라.. 오랜 기간 한반도의 정치와 경제에 은근한 압력과 내정의 전반에 간섭을 가하는 나라.
한국에 있어 친미세력과 반미세력 양 극단의 세력을 동시에 가진 곳이며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명명되어진 곳, 그리고 한국과 애틋한(?) 관계이기에 미국대륙의 횡단은 그 여행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루를 벌어 다시 “6월 30일” 시차의 차이를 느끼며 뉴욕 존에프 케네디 공항의 도착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라는 말처럼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차종이 거리를 활보(闊步)하고 있었고,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건물들과 도심임에도 불구하고 푸른녹음과 화려하게 펼쳐진 잔디들은 우리가 미국에 온것을 실감나게 했다.
여행 초반에 우리 일행은 미국 동부의 명문 8대 학교로 알려진 Ivy League의 중심으로 여러 대학을 탐방(探訪)했다. 하버드, MIT, 보스톤 대학과 프린스턴은 특유의 고직스러움과 전통중심의 학풍으로 세계가 알아주는 지식의 터주대감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아이비리그라는 상징답게 넓게 드리운 당쟁이 넝쿨은 학교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이와 더불어 드류대학, 우리학교와 자매결연이 맺여진 센테너리 칼리지, 여자대학으로 유명한 스미스대학, 덴버 대학, 켄터키 대학 등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미국의 유명 대학들을 저마다의 학풍과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와 건물들로 저마다의 독특한 image를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듯, 또한 자유스러우며 세련된 듯한, 정적인 것 같으나 생동하는.... 각 학교들은 마치 저마다 다른 스타일의 옷을 걸친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문에 심취되어 탐구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학문적 지식을 기뻐 제공하는 교수들을 보며 한국과는 다른 대학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곳을 방문하여 우린 좀더 큰 비젼을 꿈 꿀 수 있었으며, 그 목표를 향해 좀더 실제적으로 계획하고 매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한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자유의 여신상과 Empire State Building을 가진 세계의 중심지 뉴욕... 뉴욕은 그 이름만큼이나 그 모든 거리들이 우릴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온 티를 안낼래야 안낼수 없게 자꾸만 여기저기로 바삐 돌아가는 눈동자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였다.
맨하튼 34번가에 위치한 Empire State Building은 102층을 가졌으며
1931년에 세워진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직도 건재(健在)한 건물이였다.
그곳에서 멋진 야경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한 폭의 벽화를 펼쳐놓은 듯한 뉴욕의 넘쳐나는 고층빌딩을 본 것에 만족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배를 타고 그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에 그쳤는데, 세계적인 명소에 왔다는 감흥을 빼고는 별다는 감격을 느낄 수 없었다. 연녹색을 띤 더러워 보이는 물과 살짝 살짝 움직이는 유람선은 마치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듯한 지루한 기분마져 들게 했다. 이런 느낌때문일까?? 뉴욕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분힌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세계의 명소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나친 기대때문이였으리라..
그에 반해 이름도 생소했던 리버싸이드 쳐치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존 록펠러라는 미국의 최대 갑부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교회는 대규모의 크기와 내부의 셈세한 조각까지 우리의 몸과 영혼이 쉴 만한 최고의 장소를 제공하는 듯 했다!!
각 층의 모든 벽화와 화려한 내부의 디자인 한마디로 감동이였다..
이것은 필경 인간의 지어낸 최고의 건축물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나게하는 곳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어머니의 말씀대로 주님의 종에 순종하고 매주 교회 앞자리의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지킨 것이 지금도 기억되는 록펠러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횡단은 뉴욕주의 뉴욕을 거쳐 Massachusetts의 보스톤의 아이비리그를 지나, 미국의 독립기념이날 인권을 상징하지만 한번 울리고 깨어진 자유의 종을 필라델피아를 지나갔다.
또 독립기념일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철통같은 수비덕에 감히 백악관을 멀찍이 서서 사진찍는 것에 만족하며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었다. 미국은 어디를 가나 유명하다 싶으면 가방을 벌리고 그 안에 무기나 폭탄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검사를 한다. 미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와 그 후에 벌여지 많은 검열은 그 만큼 세계에서 비중있는 나라이면서 많은 적은 둔 나라임을 말하는 것 같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기도 했다.
밖에 문화의 도시로 많은 박물관과 도서관을 가지고 풍부한 볼거리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던 덴버와 분수로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주웠던 적막하고 살기좋은 숨은 도시 켄자스 시티도 미국 여행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35도의 살인더위에도 세계의 도박꾼들이 모여드는 라스베가스...
이곳은 기억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도시다. 사막 한 가운데 라스베가스라는 계획도시를 세우고 거대한 자본이 오가게 한 “벅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계획가이자 비젼가이다.
미국은 이런 황당한 그러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의력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사람을 세우는” 나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갔던 도시 중, 우리의 기대를 져 버렸던 곳이 있었으니, 한인이 가장 많이 산다는 L.A이다.
차안에서 내리자 마자, 익숙한 한국인이 도쳐에 있어 반가움을 표현하기 전에 백인이 다른 인종들과 섞이기 싫어 내어 버린 도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흑인들, 황인들, 아랍인들, 멕시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어딜가나 낙서와 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껌은 그 도시의 우울함을 자아내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했다.
L.A를 지나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자이언 캐년과 깍아지는 듯한 절벽과 어두움과 함께 붉은 빛을 내는 바위들, 또 창조자 하나님의 손길이 그대로 보존된 요세미티 파크!!
하나님의 걸작품이라 표현하면 전달이 될까??
내가 보아온 세계의 어떤 인공적인 건물에 비할 수 없는 거대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평안과 형언할 수 없는 벅차오름과 힘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종지부를 찍었던 마지막 여행지...
시애틀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도시로 기억된다.
그것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노량진의 수산시장과 비슷한 어시장과 동대문을 연상케하는 쇼핑몰들..
그리고 어두워진 밤을 예쁜 불빛으로 수 놓아버린 도시의 앙증맞음.. 아름다운 야경으로 우리의 밤을 빼앗아 갔던 곳이다..
미국을 여행하며 놀란것은 세계의 선진국 답게 화장실의 청결상태와 많은 도시가 처음 온 방문객들을 위해 명소를 추천하고 도시 정보에 대해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Welcome center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는 나라이며 매너와 웃음을 지닌 여유가 넘치는 나라이다.
또한 막대한 잔디를 푸르게 유지할 수 있는 자본국임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미주 횡단은 그리 달콤한 것 만은 아니였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때로는 주먹밥, 때로는 컵라면과 과일로 한끼를 먹었으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밤새 달리는 차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먼거리의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시름시름 앓고, 멈추기까지 했던 차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모든 것이 기쁨이자, 감사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의 시간들이였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친히 미국의 곳곳에 귀한 인솔자를 예비해 주셔서 생각지도 못한 최고의 잠자리와 이루할 양식을 더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루의 일과를 예배와 찬양으로 시작하고 조용한 기도로
하루를 마쳤던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앗으리라...
아무런 조건 없이 그 분의 은혜아래 처음부터 마치는 날까지 동행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계셨기에 아리조나와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서 차가 멈춰선들 두려울 것 없는 우리였다. 미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거대한 땅 가나안에 정탐꾼으로 갔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땅은 자신의 밥이라고 고백했던 그 땅이 우리에게 있어 미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조국 내 민족을 사랑하기에 우리를 들어 한국을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이다..
우리 가운데 열정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씨앗으로 후에 일구게 될 많은 참 열매를 기대한다.
미국인의 60%이상이 태어나 자신의 주 밖을 여행한 적인 없다는 통계에 비춰볼때 우리가 누볐던 그 큰 땅은 우리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우리의 귀한 동역자 두 분의 선교사님과 끼니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우리를 감동시키셨던 김춘영 사모님..과 정미자 목사님
언제나 기도와 사랑으로 우릴 앞과 뒤에서 이끌어 주신 이종만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빼놓을 수 없는 23일간 함께 동고 동락한 23명의 횡단 일행에게도 사랑을 표하고 싶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선택권을 이양한 자를 위해 최고의 것을
예비하신다”는 내륙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의 말을 기억하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을 허물 수 있다는
고백으로 글을 마친다.
- 2003년 7월 26일 마지막 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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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열정으로 밟았던 미주대륙(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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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03년도의 여름은 우리에게 있어 도져히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거대한 땅 “미주 동부로부터 서부까지의 횡단”... 내 평생 처음으로 태평양을 건넌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뒤로한채 2003년 6월 30일, 우리 일행 23명은 일본행 비행기에 지나친 기대감과 함께 몸을 실었다. 우리는 일본의 수도 도쿄 나리타 공황을 경유(經由)하여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가 탔던 UA 884항공기안에서부터 작은 “cultural shock"에 부딪쳤으니.. 그것은 느끼한 참치와 쇠고기를 시작으로 생각만해도 미간이 지푸려지는 미국의 달고 짠 음식문화와 비행기 안의 스튜아줌마(?)들이다. 젊지도, 이쁘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스튜어디스 아줌마들이 피부의 색깔과 외모의 기준에 상관치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전문직에 종사하는 모습은 우리의 고정관점의 틀을 살짝 틀어 놓았다. 이것은 항상 외모의 기준과 나이라는 제한으로 능력 위주의 인사정책을 도입하지 않는 우리의 관행(慣行)과는 달라 보였기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시작된 미국을 향한 비행... 가도가도, 자도자도 도착하지 않는 땅!! 미국이 이렇게 먼 나라였던가?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미국은 정말 가까운 듯하면서 실제로는 너무나 먼 나라이다. 신세대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신앙인들에게 도전을 주는 나라.. 오랜 기간 한반도의 정치와 경제에 은근한 압력과 내정의 전반에 간섭을 가하는 나라. 한국에 있어 친미세력과 반미세력 양 극단의 세력을 동시에 가진 곳이며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명명되어진 곳, 그리고 한국과 애틋한(?) 관계이기에 미국대륙의 횡단은 그 여행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하루를 벌어 다시 “6월 30일” 시차의 차이를 느끼며 뉴욕 존에프 케네디 공항의 도착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다’라는 말처럼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차종이 거리를 활보(闊步)하고 있었고,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건물들과 도심임에도 불구하고 푸른녹음과 화려하게 펼쳐진 잔디들은 우리가 미국에 온것을 실감나게 했다. 여행 초반에 우리 일행은 미국 동부의 명문 8대 학교로 알려진 Ivy League의 중심으로 여러 대학을 탐방(探訪)했다. 하버드, MIT, 보스톤 대학과 프린스턴은 특유의 고직스러움과 전통중심의 학풍으로 세계가 알아주는 지식의 터주대감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또한 아이비리그라는 상징답게 넓게 드리운 당쟁이 넝쿨은 학교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이와 더불어 드류대학, 우리학교와 자매결연이 맺여진 센테너리 칼리지, 여자대학으로 유명한 스미스대학, 덴버 대학, 켄터키 대학 등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미국의 유명 대학들을 저마다의 학풍과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와 건물들로 저마다의 독특한 image를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듯, 또한 자유스러우며 세련된 듯한, 정적인 것 같으나 생동하는.... 각 학교들은 마치 저마다 다른 스타일의 옷을 걸친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학문에 심취되어 탐구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학문적 지식을 기뻐 제공하는 교수들을 보며 한국과는 다른 대학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곳을 방문하여 우린 좀더 큰 비젼을 꿈 꿀 수 있었으며, 그 목표를 향해 좀더 실제적으로 계획하고 매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생각한다.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자유의 여신상과 Empire State Building을 가진 세계의 중심지 뉴욕... 뉴욕은 그 이름만큼이나 그 모든 거리들이 우릴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온 티를 안낼래야 안낼수 없게 자꾸만 여기저기로 바삐 돌아가는 눈동자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였다. 맨하튼 34번가에 위치한 Empire State Building은 102층을 가졌으며 1931년에 세워진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직도 건재(健在)한 건물이였다. 그곳에서 멋진 야경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한 폭의 벽화를 펼쳐놓은 듯한 뉴욕의 넘쳐나는 고층빌딩을 본 것에 만족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배를 타고 그 주위를 한바퀴 도는 것에 그쳤는데, 세계적인 명소에 왔다는 감흥을 빼고는 별다는 감격을 느낄 수 없었다. 연녹색을 띤 더러워 보이는 물과 살짝 살짝 움직이는 유람선은 마치 한강에서 유람선을 타는 듯한 지루한 기분마져 들게 했다. 이런 느낌때문일까?? 뉴욕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분힌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세계의 명소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나친 기대때문이였으리라.. 그에 반해 이름도 생소했던 리버싸이드 쳐치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존 록펠러라는 미국의 최대 갑부가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는 이 교회는 대규모의 크기와 내부의 셈세한 조각까지 우리의 몸과 영혼이 쉴 만한 최고의 장소를 제공하는 듯 했다!! 각 층의 모든 벽화와 화려한 내부의 디자인 한마디로 감동이였다.. 이것은 필경 인간의 지어낸 최고의 건축물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져 나게하는 곳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어머니의 말씀대로 주님의 종에 순종하고 매주 교회 앞자리의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지킨 것이 지금도 기억되는 록펠러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횡단은 뉴욕주의 뉴욕을 거쳐 Massachusetts의 보스톤의 아이비리그를 지나, 미국의 독립기념이날 인권을 상징하지만 한번 울리고 깨어진 자유의 종을 필라델피아를 지나갔다. 또 독립기념일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철통같은 수비덕에 감히 백악관을 멀찍이 서서 사진찍는 것에 만족하며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 했었다. 미국은 어디를 가나 유명하다 싶으면 가방을 벌리고 그 안에 무기나 폭탄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검사를 한다. 미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와 그 후에 벌여지 많은 검열은 그 만큼 세계에서 비중있는 나라이면서 많은 적은 둔 나라임을 말하는 것 같아 우리를 씁쓸하게 하기도 했다. 밖에 문화의 도시로 많은 박물관과 도서관을 가지고 풍부한 볼거리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했던 덴버와 분수로 한여름의 무더위를 날려 주웠던 적막하고 살기좋은 숨은 도시 켄자스 시티도 미국 여행시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또 빼놓을 수 없는 35도의 살인더위에도 세계의 도박꾼들이 모여드는 라스베가스... 이곳은 기억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도시다. 사막 한 가운데 라스베가스라는 계획도시를 세우고 거대한 자본이 오가게 한 “벅스”라는 사람은 대단한 계획가이자 비젼가이다. 미국은 이런 황당한 그러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의력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사람을 세우는” 나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가 갔던 도시 중, 우리의 기대를 져 버렸던 곳이 있었으니, 한인이 가장 많이 산다는 L.A이다. 차안에서 내리자 마자, 익숙한 한국인이 도쳐에 있어 반가움을 표현하기 전에 백인이 다른 인종들과 섞이기 싫어 내어 버린 도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흑인들, 황인들, 아랍인들, 멕시칸들의 주요 활동 무대였다. 어딜가나 낙서와 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껌은 그 도시의 우울함을 자아내어 우리를 더 우울하게 했다. L.A를 지나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자이언 캐년과 깍아지는 듯한 절벽과 어두움과 함께 붉은 빛을 내는 바위들, 또 창조자 하나님의 손길이 그대로 보존된 요세미티 파크!! 하나님의 걸작품이라 표현하면 전달이 될까?? 내가 보아온 세계의 어떤 인공적인 건물에 비할 수 없는 거대한 광경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이 주는 평안과 형언할 수 없는 벅차오름과 힘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가 종지부를 찍었던 마지막 여행지... 시애틀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도시로 기억된다. 그것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졌기 때문이리라.. 노량진의 수산시장과 비슷한 어시장과 동대문을 연상케하는 쇼핑몰들.. 그리고 어두워진 밤을 예쁜 불빛으로 수 놓아버린 도시의 앙증맞음.. 아름다운 야경으로 우리의 밤을 빼앗아 갔던 곳이다.. 미국을 여행하며 놀란것은 세계의 선진국 답게 화장실의 청결상태와 많은 도시가 처음 온 방문객들을 위해 명소를 추천하고 도시 정보에 대해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Welcome center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는 나라이며 매너와 웃음을 지닌 여유가 넘치는 나라이다. 또한 막대한 잔디를 푸르게 유지할 수 있는 자본국임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미주 횡단은 그리 달콤한 것 만은 아니였다. 낯설고 물설은 땅에서 때로는 주먹밥, 때로는 컵라면과 과일로 한끼를 먹었으며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밤새 달리는 차안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먼거리의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시름시름 앓고, 멈추기까지 했던 차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모든 것이 기쁨이자, 감사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의 시간들이였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친히 미국의 곳곳에 귀한 인솔자를 예비해 주셔서 생각지도 못한 최고의 잠자리와 이루할 양식을 더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루의 일과를 예배와 찬양으로 시작하고 조용한 기도로 하루를 마쳤던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앗으리라... 아무런 조건 없이 그 분의 은혜아래 처음부터 마치는 날까지 동행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계셨기에 아리조나와 네바다 사막 한 가운데서 차가 멈춰선들 두려울 것 없는 우리였다. 미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 거대한 땅 가나안에 정탐꾼으로 갔던 갈렙과 여호수아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땅은 자신의 밥이라고 고백했던 그 땅이 우리에게 있어 미국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의 조국 내 민족을 사랑하기에 우리를 들어 한국을 변화시키기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이다.. 우리 가운데 열정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씨앗으로 후에 일구게 될 많은 참 열매를 기대한다. 미국인의 60%이상이 태어나 자신의 주 밖을 여행한 적인 없다는 통계에 비춰볼때 우리가 누볐던 그 큰 땅은 우리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우리의 귀한 동역자 두 분의 선교사님과 끼니마다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우리를 감동시키셨던 김춘영 사모님..과 정미자 목사님 언제나 기도와 사랑으로 우릴 앞과 뒤에서 이끌어 주신 이종만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 빼놓을 수 없는 23일간 함께 동고 동락한 23명의 횡단 일행에게도 사랑을 표하고 싶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선택권을 이양한 자를 위해 최고의 것을 예비하신다”는 내륙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의 말을 기억하며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을 허물 수 있다는 고백으로 글을 마친다. - 2003년 7월 26일 마지막 밤 시애틀에서- <embed src="http://www.fgtv.org/ccm/2cjiyoung-2au.asx" loo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