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목욕 문화.

홍주희200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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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씻는 나라-일본

 

- 온천의 나라답게 매일밤 뜨거운 물에 풍덩~

 

일본 영화나 소설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 있다.

매일 밤 뜨거운 물을 받아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한손에는

차가운 맥주잔을, 다른 한 손엔 책을 든 모습이다.

목욕은 일본 사람들에게 청결이나 단순한 씻기 그 이상의 의미

를 가지고있다. 예로부터 일본 사람들의 집엔 아무리 가난해도 '고엔몬부로'라는 깊은 목욕통 하나씩은 있었다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 저녁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게 대부분 사람들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

 

일본사람들이 이토록 목욕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온난 다습한 기후의 영향이 크다. 일본은 화산대에 속한 열도다.

2천 이백여 개의 온천이 있으니, 예전엔 지천엔 지천에 깔린 게 뜨거운 물이었던 셈이다. 온천에 치료 효과가 있다보니, 저절로 목욕을 하면서도 정신적 효능을 중시하게 됐고, 차츰 욕실 벽면에 후지산이나 소나무 숲, 바닷가 등을 그려 넣게 된다.

뜨거운 목욕을 좋아하는 반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엔 얼음 목욕 성인식이라는 전통이 있다. 여러모로 일본 사람들은 물을 좋아한다.

 

*안 씻는 나라-중국

 

- 부족한물, 아끼고 또 아끼는 중국 사람들

 

'중국인이 씻기 시작하면 환경문제가 대두된다'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물 부족 국가인 중국은 그만큼 물을 아껴쓰기로 유명하다. 물도 귀하지만 황사와 산림부족으로 수질도 그리 좋지 않은 상황. 중국의 물 값이 맥주 값보다 비싸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얘기다. 여러모로 목욕 문화가 발달하기 어려우니 물속에서 때를 불려 물속에서 때를 민다는 '포우조우'(물에 불린다는 의미)라는 중국식 목욕이 생겨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입는 것과 잠자는 것보다는 먹는 것에 가치를 두는 중국인의 의식도 목욕과 멀어진 이유중 하나다.

 

몸의 노폐물을 자주 씻어내게 되면 신체의 균형이 파괴될 수 있다는 중의학적 접근도 한몫을 했다. 반면 중국서는 다양한 마사지들이 개발되었다. 뭉툭한 사기 스푼으로 척추를 눌러 몸의 긴장과 노폐물을 제거한다는 스푼 마사지를 비롯해 잔털을 제거하는 실미안술 등이 대표적인 중국 여인들의 몸 관리법이다.

 

* 잘 씻는 나라-미국

 

새터데이 바스에서 에브리데이 바스로!

 

할리우드 영화 탓이겠지만, 미국 하면 떠오르를 것중 하나가 바로 거품목욕이다. 허나 실제 미국인들은 '목욕'이 아닌 '샤워'를 즐긴다. 최근 미국인 절반 이상이 욕실서 인터넷을 즐긴다는 한 대학교수의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 미국인들에게 씻는 문화는 실용 그 자체다. 지난해 발표된 미국인들의 주택구매 선호도에서도 '욕조'보다는 '중대형 샤워 부스'를 욕실에 놓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니, 이쯤 되면 미국인들은 '샤워 마니아'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애초부터 미국인들이 샤워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애초 미국은 금욕주의 종교열풍으로 목욕을 기피했던 나라다.심지어 '새터데이 바스'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1주일에 한번 정도 목욕을 했단다. 그러던 미국에 샤워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1919년 수도와 비누회사에서 시작된 '에브리데이 바스' 운동 이후부터. 그뒤 1920년부터는 수도꼭지가 달린 욕조가 대량생한되기 시작했다. 집에선 샤워를 즐기지만 주말이면 스파 여행을 떠나는 것도 최근의 트랜드.

1990년 초 피부 탄력 저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스파는 최근엔 남성전용 스파, 어린이 및 10대 전용 스파, 패밀리 스파 등 종류도 천차만별로 늘어났다.

 

* 안 씻는 나라-프랑스

 

- 금욕에 대한 종교적 신념으로 목욕을 기피.

 

아니 그 멋스러운 파리지엔들이 잘 안 씻는다고?

황당한 얘기 같겠지만 프랑스의 역사를 살펴보면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목욕의 유희를 만끽했던 로마 평정시대가 끝난 뒤, 유럽엔 금욕주의 종교 열풍이 사회제도화 되면서 목욕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한달에 한번, 일년에 한번 목욕하는 것도 몸에 나쁘다고 여겼을 정도. 심지어 17~18세기엔 왕과 귀족들조차 일년에 한두번씩만 목욕을 해야 했고, 루이 14세는 64세 평생동안 단 한번 목욕을 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다.

 

이러하니, 그 당시 프랑스 사람들에게 목욕보다 중요한 건 몸에서 나는 악취를 제거하는 일! 프랑스는 이를 바탕으로 오히려 향수 대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향수는 프랑스인이 선택한 목욕 대체법. 17세기에는 강한 향을 내는 짙은 화장술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루이 15세 때는 왕궁이 '향수의 왕궁' 이라 불릴 만큼 온갖 향으로 넘쳐났단다.

16세기에는 한벌 더 나아가 제모기술까지 생겨났는데, 아몬드와 비둘기, 벌꿀, 달걀노른자 등이 그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 잘 씻는 나라-호주

 

- 물이 부족해서 샤워시간도 딱 10분

 

세계에서 가장 비가 적게 오는 나라 중 하나인 호주는 유명한 물 부족국가다. 집을 지을때에는 빗물을 받아쓸 수 있는 저수탱크 설치가 의무화될 만큼 물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물 값이 비싼 땅에서 사는 호주 사람들이 '목욕'이 아닌 '샤워'를 선택한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호주의 샤워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시간이 무척 짧다.

매일 한 번씩은 꼭 샤워를 하지만 10분을 넘기는 법이 없다.

 

아까운 물이 여기저기 튀지 않도록 '샤워 커튼'도 집집마다 꼭 하나씩 있는 풍경. 더불어 호주의 '샤워커튼'에는 또다른 의미가 담겨있다. 호주 사람들은 갓난아기일 때를 제외하곤 누구와 함께 샤워를 하지 않는다. 동성의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 이렇듯 호주 사람들에게 몸을 씻는다는 개념은 극도의 프라이버시가 요구되는 일이다.

호주에 동성애자가 많은 것도 그런 샤워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주장도 있다.

 

* 안 씻는 나라-몽고

 

- 물은 나의 어머니...목욕 대신 풍욕, 사욕, 약욕

 

몽골인은 태어날 때와 결혼할 때, 죽을 때, 평생 세 번 목욕(티벳인은 태어날 때, 결혼할 때 두 번)한다. 오래 전부터 유목생활을 해왔던 몽골 사람들 사이에 욕조나 수도가 필요한 '목욕'이 익숙치 않은 건 당연한 일. 그러나 평생 세 번은 좀 심했다. 여기엔 전통적인 몽골의 종교적 신념이 숨어 있다.

 

몽골인에게 물은 만물을 생성하고 지탱해주는 원천. 예로부터 몽골인은 물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물의 신 로스가 재앙을 내린다고 믿었다. 그 전통은 20세기 초까지 내려와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는 몽골인은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군복무를 면제 받았다고. 하지만  몽골인에게는 나름대로의 목욕법이 있다. 바람을 쐬는 풍욕. 모래에 찜질하는 사욕, 전통 식물을 우려낸 물에 들어가는 약욕 등이 그것. 실제 몽골엔 곳곳에 온천이 있다는데, 사람들을 아플때만 그곳을 찾았다 한다.

 

[우리나라의 목욕 역사]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고대부터 대중목욕탕이 있었다. 대체로 동양에서는 불교가 전래되면서 목욕이 종교의식으로 승화되어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서양과는 다르게 제의를 위한 자기 정화의전신적 성격을 더 많이 지녔던 것.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 목욕제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목욕이 습관화되었으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다. 조선시대 때 특히 혼례를 앞둔 규수는 살갗을 희게 하기 위해 인삼탕, 창포탕, 복숭아잎탕, 쌀겨와 쌀뜨물, 밀가루 등을 세정제로 썼다. 이처럼 시대와 종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한 우리의 목욕 문화는 단순히 몸을 청결히 하는 것 이상의 의미(의식과 청결)를 가지고 있다.

> 고조선
우리나라 민족의 청결사상과 흰 피부에 대한 숭상은 다른 민족에 비해 유난히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를 보면 우리나라 한민족의 첫 주거지가 향나무의 일종인 박달나무 근처라고 전해지며, 이것은 고조선 사회의 한국인들이 향유, 향료를 애용하여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숭배한 사상을 뜻한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목욕에 관한 역사는 지금 전해지지 않아 추측할 뿐이다.

> 삼국시대 (신라)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동천(東泉)에서 그의 왕비 알영이 북천(北泉)에서 목욕했다는 것이 우리나라 목욕 역사에 있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삼국 중 신라가 목욕 문화가 가장 발달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불교의 전래로 향 문화가 발달했고 목욕재계를 중시하여 목욕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절에는 대형 공중 욕조 시설이 생겨났고, 가정에도 목욕시설이 구비되었다. 목욕이 신체를 깨끗이 하는 단순 청결 개념에서 마음의 죄를 씻어내는 신성한 의식 수단으로 이용되어 사찰행사 뿐 아니라 엄숙한 행사 등에는 반드시 목욕을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 고려시대
고려인들은 하루에도 서너 차례 이상 목욕을 즐겼으며 남녀의 혼욕과 향 목욕이 발달하였다.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던 고려 시대에는 여자와 남자가 난초탕, 또는 복숭아 꽃물 등의 목욕을 같이 즐겼으며 온천요법도 즐겼다고 전해진다. 난초를 삶은 물이나 복숭아꽃물은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 난(蘭) 목욕
지나치게 뜨거운 물은 난이 갖고 있는 향을 없애버리므로 따듯한 물에서 한 번 우려낸 후 20분 이상 입욕을 한다. 이 때 얼굴과 머리에도 같이 사용해주면 난의 은은한 향취가 배어 향기로워진다. 은은하고 품위있는 향을 느낄 수 있다.

> 조선시대
고려의 성문화를 퇴폐시하는 시대로 유교사상이 중시되었던 조선시대에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동일시하는 이념으로 청결을 중시하였으므로 목욕 문화가 발달한 시대다. 특히 세수를 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것을 가장 수치로 여겨 신분에 관계없이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행위가 세수였고, 치료 목적인 온천욕과 한증욕도 많이 즐겼다. 그리고 제례 전에는 반드시 목욕을 해서 몸을 깨끗이 했다. 목욕을 하더라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하였으며, 서민들은 냇가 등의 장소에서 목욕을 하였으나 양반들은 목욕통을 준비하여 헛간 또는 부엌에서 하거나 '정방'이라는 목욕소를 실내에 설치하였다.

> 개항 이후
근대적 개항 이후에는 목욕의 문화 차이로 불편을 느끼는 서양인을 위하여 서양식 호텔과 여관이 생겼으며 모든 숙박업소에서는 목욕탕을 구비하였다. 또한 1900년 부산에서 온천을 개발하면서 공중 목욕시설이 생겨 오늘날 대중 목욕탕의 시초가 되었다.

> 현대
일제시대 일본인의 추진으로 1924년 평양에서 최초의 목욕탕이 생겼으며, 서울에 공중 목욕탕이 생긴 것은 1925년이다. 오늘날 같이 집안에 목욕탕이 생겨난 것은 1970년대 아파트가 대량으로 건설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독특한 때밀이 목욕문화는 1988년 올림픽 이후 외국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관광 상품화되었다. 때를 밀 때 쓰이는 '이태리 타월'은 1964년 일본 관광객이 부산 온천장에 버린 꺼칠꺼칠한 수건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는데, 이 원단을 만드는 '이태리식 연사기'란 기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조선시대 왕과 중전은 목욕과 생리를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왕과 왕비는 일반적으로 궁내의 일정한 (비밀스런)장소에서
시녀나 나인들에 의해 벌거벗지 않고 목욕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다만 특별한 의식이 있거나 건강이 안좋을 경우
특별히 왕은 '온양행궁'이라는 목욕궁으로 행차하여
목욕을 했던것으로 알려집니다.
'온양행궁'이란 왕의 전용 목욕궁으로
유일하게 '온궁사실'이란 역사책에 전해내려오고 있는데요.
왕은 목욕을 하기 위해 별궁으로 온양행궁을 만들고
행궁내에서 온천욕을 즐겼다고 합니다.
또한 세종, 세조, 현종, 숙종, 영조 등 5명의 왕과
사도세지가가 이 온양행궁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이 온양행궁은 전체 면적이 6000여평으로 일반 궁궐의
20~30분의 1정도에 불과했고, 별궁임에도 불구하고
홍문관과 사간원등을 갖추고 침실과 집무실까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왕과 왕비들은 이 온양행궁의로의 행차가 잦았고
실제로 나이가 많고 심약했던 왕과 왕비들은
거의 온양행궁에서 살다시피 하며 온천욕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온양행궁에서 승하한 왕과 왕비가 꽤 많더군요.

또한 양반들은 '정방'이라는 공간을 따로 두어
나무로 만든 큰 통(함지박)에 들어가 씻었다기 보다는
통 근처에서 물을 이용해 닦아내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즉 통에 들어가 씻은 것이 아니라 통 밖에서 씻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조선시대엔 유교가 강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의관을 정제하여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여
왕과 높은 양반들은 목욕시에도 벌거벗기를 꺼려했다는 군요.

또한 궁녀나 나인들은 따로 목욕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부엌과 창고같은 곳에서 문을 닫고
물을 끼얹거나 젖은 수건으로 닦는 방식으로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현재 창덕궁 연경당 별채에 '북수간' 또는 '목간통'이라고 하는 이름의
목욕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답니다.
이는 궁궐내 사람들의 뒷물 및 목욕을 위한 방을 따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증거이죠.


※  조선시대의 생리대는?

 

조선시대는 '개짐'이라고 칭했습니다.
다른 말로는 월경포, 월경대 또는 달거리포, 가지미, 개지미, 서답이라고도 불려졌다고 하는군요.
개짐의 재료는 질 좋은 광목천이였는데 그당시에는 생리를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 딸이 생리를 시작하면 어머니가 딸에게 몰래 하얀 광목천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번 받은 광목천은 사용 후 계속 해서 몰래 빨아 썼다고 합니다.
이는 조선후기를 비롯해 근대초에까지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또한 이 개짐은 끈으로 묶어놓아도 흘러내리기가 좋고
밖으로 번져나올 수가 있어 개짐 밖으로 또는 개짐의 대용으로 '다리속곳'이라는 속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속곳은 매우 불편한 옷이지만 현대의 '거들'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매우 불편하여 생리때 이외에는 거의 입지를 않았다고 하더군요.
다리속곳은 긴 감을 허리띠에 달아 바싹 붙여 입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짐'은 오래사용하면 오래사용한 것일 수록 조선시대에 가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도는 위급한 상황에서 부적처럼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 최초의 현대식 생리대

 

매달 여자들에게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웬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을 빼놓고는 남녀구분의 표시인 '생리' 를 금방 떠올리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은 남자 아이들도 꽤 이른 나이에 이 사실을 안다고 하는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것들이 나쁠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자신의 어머님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줄 알게 될테니까요. 여하튼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이 손님을 '기저귀'라는 원시적인 수단으로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귀찮고 짜증나는 건 둘째 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겠지요.

아무리 단단히 동여매도 흘러나오는 것은 예사였고, 동여맨 자국마저 옷 위로 표시가 나 마치 광고(?)라도 하는 것 같아 외출조차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같은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여 지구촌 여성들을 '생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사람은 일본의 '사카이 다카코 여사'입니다. 회사원이었던 사카이여사도 생리 때문에 심할 때는 출근조차 할 수 없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하는군요.

'생리를 감쪽같이 치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사카이 여사는 몇 년을 끙끙 앓으며 자나깨나 이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문을 들은 후배 하나가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귀띔해 주었다고 합니다.

"흡수성이 강한 종이(화장지)로 만들면 흘러나올 염려도 없고 화장실에서 감쪽같이 갈아 끼울 수도 있지 않겠어요?"

사카이 여사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녀는 즉석에서 20만엔을 주고 이 아이디어를 사들였습니다. 우선 모든 종이를 모아 그 중 흡수성이 가장 강한 것을 찾아내 알맞은 크기로 접었습니다. 다음은 흘러나옴을 방지하기 위해 겉 부분에 엷은 방수막을 처리하고, 착용이 편리하도록 부위에 따라 두께와 크기를 조절했습니다.

물론, 약품을 이용한 위생처리도 잊지 않았지요. 연구는 여기에서 우선 일단락 되었습니다. 사카이 여사는 때마침 찾아온 생리를 자신의 발명품을 이용해 맞이했습니다. 사용 결과 흘러나오지 않고 표시가 나지 않는데다 날아갈듯이 편리했던 것입니다.

'이 편리함을 모든 여자들에게 나눠주자.'

그녀는 특허등록을 마친 후 서둘러 회사를 설립하고. '안네'라는 상표로 생산을 개시했습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번져나갔고 상표명 또한 귀염성이 있고 애교가 있는 탓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중생까지도 스스럼없이 그녀의 발명품을 찾았습니다. 어느 약국에서든 '안네'하고 속삭이기만해도 모두들 금방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매월 어김없이 5천만개 이상이 팔려 나갔고, 수출요청이 쇄도했으나 국내시장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발명품인 생리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3년이 채 안돼 세계 여성들을 생리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안네'회사는 이 발명 하나로 거뜬히 중견기업의 대열에 올라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던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