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호사 선배님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였다. 점심으로 생태찌게를 내가 샀으므로 저작권을 양도받았다(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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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에 정말로 대단한 부자가 상당히 있다.
그들은 강남 어디의 무슨 아파트가 아니라 강북에 있는 명산 아래 높고 두터운 담벽이 둘러쳐있고, CCTV가 주변을 감시하는 엄청나게 큰 단독주택에 산다.
차고에는 사장님이 타시는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 류의 커다란 차와 아들이나 딸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페라리나 람보기니가 있고, 입구에 들어서면 기사와 관리인, 가정부가 사는 별채, 그리고 빤지르한 털을 가진 좋은 개가 사는 개집과 넓은 수영장, 골프퍼팅장이 있다.
그들은 LA와 뉴욕, 밴쿠버에 또다른 좋은 집이 있고, 일년에도 여러 번씩 미국으로 유럽으로 일등석을 타고 다니며, 자녀들은 모두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그들은 거기서 자식을 낳아 “세계인”을 지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여 그러한 부를 누리는지는 상세히 밝힐 필요가 없지만, 많이 벌고 많이 쓰기 때문에 왕성한 경제활동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비하여 개인전담 변호사와 회계사, 의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절대로 위법한 행위나 탈세를 하지 않고, 이웃들과도 별다른 접촉이 없으며,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려서 여러 고급스런 운동을 하여 건강과 체력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아파트나 땅을 투기하거나 없는 사람을 등쳐서 돈을 긁어모으거나 치사한 짓을 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TV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소위 말썽이 날만한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부자도 아니면서 무슨 사업을 하여 조금 벌었다고, 무슨 벤처를 하여 주식을 팔아넘겨 한탕 하였다고 “없는 분”들 깔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무능의 소치로 단정하면서 나이많은 부하직원 인격을 무시하고, 재벌회장님 보다 더 회장님 노릇을 하려 하는 등 진짜 “있는 분” 행세를 하려다 “없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를 망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있는 놈”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는 재벌이나 유명연예인 등의 사생활까지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소위 파파라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취재(?)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프라이버시와 초상권을 침해당하여도 그렇게 심하게 반발하지 않고, 다른 시민들도 의례 그 사람들은 유명인사니 그럴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앞서 말한 “있는 분”이 언론에 한 번 찍히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뭇사람들의 입에서 씹히고 씹혀서 그 사람은 완전히 폐인(?)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사람들이 부자들에 대하여 적개심을 크게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중견변호사로서 이 나라에서는 그래도 상당히 잘사는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길거리에서 새파란 놈이 벤츠나 BMW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저 자식은 뭐해서 먹고사는 놈인가 한번 훑어보고, 여자가 시뻘건 루즈 칠하고 골프장에서 폼을 잡고 휴대폰으로 전화질하는 것을 보면 저것은 어느 술집 마담인가라고 한심한 생각을 해본다.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덜 노력하고, 쉽게 재산과 지위를 얻어서 부당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하여 나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에 빠져있고, 적개심에 불타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나는 어렵게 공부하여 간신히 대학 나오고, 졸병으로 군대갔다 왔으며, 취직하여 열심히 벌어서 목숨을 걸고 차지한 여자와 결혼하여 겨우 차 한 대 사고, 조그만 아파트 하나 마련하여 갑근세로 뜯기고 난 쥐꼬리만한 월급도 새끼들한테 교육비네, 과외비네, 용돈이네 이리저리 뜯기고 열받아 포장마차에서 소주로 아픈 마음 달래는데 어떤 놈들은 대치동의 아파트를 전매하여 수억을 벌고, 행정신도시 옆에 산을 사서 수억을 벌고, 펀드에 투자해서 작년 1년 동안에 65%의 수익을 얻었다고 하니 열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럴만도 하다.
권력있는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갖은 부정을 행하고, 있는 놈들은 어떤 것을 사고 어떤 것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사는데 기르는 개에게 하루 얼마치의 고기를 먹인다느니 개목걸이가 얼마니 하는 언론보도에 얼마나 열을 받겠나? 그럴만도 하다.
부동산투기단속이나 세무조사를 하였는데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고급공무원 놈들이 있었다느니 음주, 난폭운전하는 아이들 잡아들여 보니 지 아버지가 어떤 부자이고, 어느 의사고 변호사라느니 하는 보도가 자꾸 나오니 “있는 놈”들은 “벼락맞을 새끼들”이라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사회정의가 어떻고, 만인의 평등이 어떻고 하면서 “있는 놈”들 욕설하고, 열받는 사람들 잘 살펴보면, 참 이상한 일도 있다.
어떤 분은 트럭을 몰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차의 창문을 열고 밖에다 가래침을 탁 뱉는다. 끄지도 않은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탁 퉁겨서 버린다.
식당인지 어딘 지 모르지만, 배달나온 사람이 보는 사람 없다고 아파트 뒤쪽 담벼락에 바지자크를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용무를 본다.
어떤 분은 오토바이로 열심히 살아가는 택배사 직원으로 정말 바쁘고 힘들게 다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건물에 들어와 금연구역이라고 분명히 써있는데도 온 화장실에 불난 것처럼 담배를 피워댄다.
어떤 연세 지긋한 분은 주차장에서 시간당 보수를 받아 생활비로 한다니 얼마나 어렵게 사실까 마는 자신이 대라는 장소에 차를 대지 않는다고 욕설을 하고 빈정대다가 차 주인이 차를 대고 볼일을 보러 가면 발로 남의 차를 차버린다.
소위 “있는 놈”들의 부정이나 부도덕한 일도 많지만, 그에 반발하는 “없는 분”들의 불법행위나 몰염치도 만만치 않다.
우리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자기 나름대로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면서 자신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누구든지 우리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불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비록 식물인간, 노숙자, 장애자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기여는 할 수 없더라도 잠재적으로 국가발전의 기초가 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는 이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행복은 모두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어려운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그들의 노력을 착취하거나 그들의 부와 행복을 빼앗아 가서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회풍조다.
헌법의 규정과 같이 우리 국민은 모두 법 앞에 평등하지만, 그것은 모든 국민이 전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모든 사람은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인간이고 한 가족의 구성원이며, 자신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에 대하여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권리가 있고, 그러한 욕구의 충족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접촉하여 그 권리의 보장을 위한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 바로 사회생활이다.
그러한 개인들의 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간의 이익 충돌을 적게 하기 위한 것이 도덕과 윤리이고, 그러한 충돌이 개인들의 타협과 양보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을 때 국가와 사회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 바로 법이며, 그러한 법의 내용을 실현하고, 국가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정한 것이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에 대한 의무임은 자명하다.
쉽게 말하면 내가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고, 내가 번 만큼에 대하여 법에 정해진대로 세금을 내었으면 나는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는대로 받는다”는 사람사는 사회의 기본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집안에서도 자녀 모두가 소중하지만,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성실하게 생활하는 자녀와 공부하지 않고 연애질 만하여 속을 뒤집어놓는 자녀와는 부모가 대하는 사랑의 정도가 다르다.
또, 장사를 하더라도 나를 인정하여 아니면 나의 물건이 우수함을 인정하고, 나의 실력을 인정하여 자주 찾아주는 단골손님이나 거래를 많이 하여주는 사람에게는 물건값을 깎아주거나 덤을 주거나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물건을 주는 것이 상거래상 기본원칙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고, 자신이 속하는 집단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사람과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 해악을 기치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할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국민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되 권리는 의무와 상응되는 것이어야 하고, 어떤 사람에게 권리는 많이 주면서 의무는 적게 부여한다든지, 권리는 똑같이 부여하면서 의무는 많거나 적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며, 의무를 많이 이행한 사람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인정하여야 하고,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적게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돌아가는 권리가 작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세상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인들에게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없고, 동시에 우리가 염원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귀족국가사회 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다만, 개인의 능력과 소질은 천차만별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지게 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종국적으로 빈자와 부자, 사용자와 피용자, 자본가와 노동자로서 지위전환의 가능성을 얻을 수 없으므로 사회적 지위의 영구화 내지 고착화를 막기 위하여 국가의 개입과 사회의 간섭이 어느 정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은 소득세도 내지 않거나 낮은 비율로, 많이 버는 사람은 소득세율을 높게 하고, 좋은 아파트 가진 사람은 팔아서 차액을 많이 남기면 세금을 많이.....
소년가장이나 독거노인에게는 위와 같이 거둔 세금으로 생활비도 주고, 여러 가지 지원도 하여주고..
그러한 사회와 국가의 활동은 결국 위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의 재산에서 거두어진 세금의 집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많은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있는 놈”으로 취급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없는 분”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보는 것은 과장된 평가일까?
자본주의의 폐단이 점점 커가면서 어느 나라에서든지 약은 정치인들은 언제나 “없는 분”들과 되게 친한 것처럼 노동자의 자식이 되고, 선거 때가 가까우면 어김없이 “있는 놈”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높여 자신이 “없는 분”들의 대변인인 양 행세한다.
상대적 빈곤감에 치를 떨고 있는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나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회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 또는 기성세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취업하기 어려운 재벌기업에 대한 반발감에 앞서서 아직 세상모르는 새로운 젊은 선거권자들을 이용하여 집권을 기도한다.
그들은 모든 국민의 선거권이 한 표씩 동일하다는 재빠른 계산아래 그들의 득표로 정권을 창출한 뒤 그들에 대한 보답을 위하여 “없는 분”들에 대한 시혜와 배려를 하여 주면서 그들의 표심을 얻는데 주력하여 왔었다.
쉽게 말하자면, 표수가 많은 “없는 분”들의 표를 얻기 위하여 “있는 놈”들은 표수가 많지 않으니 집권을 위해서라면 표수가 적은 사람들은 “적군”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 그들의 선거 전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이므로 아니 “있는 놈”들이 너무 잘 살고 있으니 소수인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숫자적으로 다수인 “없는 분”들에게 듣기 좋은 이름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하여 “있는 놈”들로부터 세금을 무지 걷어 이를 “없는 분”들에게 베풀면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이고, 뒤에 정권을 잃더라도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될 수 있다는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있는 놈”들은 어차피 통째로 재산을 빼앗을 수 없으니 세율을 높여 많은 세금을 걷어 들일 수밖에 없지만, “있는 놈”들의 자식들은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엄청난 재산을 그냥 물려받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상속제도도 없애서 “있는 놈”들의 재산은 사후에는 모두 국가가 차지하여 “없는 분”들을 위하여 쓰면 얼마나 좋겠나?
얼마 되지 않는 요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땅을 가진 놈은 거저 부자가 되고 땅없는 사람은 평생을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으니 토지는 모두 국유화하여 국가가 멋지게 관리하고, “없는 분”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하면 정말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가들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모든 국민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떠나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발전의 원동력은 “없는 분”들만이 아니라 “있는 놈”들의 힘도 아주 소중하고, 그 사람들이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하여 머리좋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생활터전을 제공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없는 분”들을 다시 더 많이 고용하고, 많은 세금은 물론, 세금 이외에도 “없는 분”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아닐까?
경제학을 공부한지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투자효과가 큰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여 거기에서 창출되는 재화를 다른 산업에 투자하여 모든 산업에 지속적인 경제적 효과를 도모한다는 이론을 “전방효과”라고 하는데 우리사회에서도 무슨 평준화와 획일화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부가가치의 창출률이 높은 사람은 더욱 키워주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어 그 사람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없는 분”들이나 선천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지 않을까?
법철학도 배운지 오래되어 다 까먹었지만, 법철학자 라드브루흐가 “법철학원론”이라는 명저를 저작하면서 다른 부분을 다 완성하고도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라는 상속제도에 대하여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여 몇 년간 고민하다가 결국 인정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들, 너무도 많은 제약 때문에 도저히 어려운 삶을 헤쳐갈 수 없는 어려운 분들, 가족이나 배우자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홀로 여생을 쓸쓸히 보내는 노인들, 이러한 분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따듯한 보살핌도 중요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중산층, 박봉에 시달리면서 성실히 갑종근로소득세 뜯기는 월급쟁이, 세무조사에 좇기면서 열심히 서비스를 하는 개인사업자도 모두 존경받아야 하지만, 재벌, 돈많은 사람, 사회적 성공한 사람도 무조건 배척받고 “있는 놈”으로 매도당하여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 재산과 명예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하였고, 지금의 재산과 명예를 지키면서 또다른 부가가치를 창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열을 쏟고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조금만 생각하면 곧 알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스스로 나는 중산층이 못되고 하류층이라고 자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있는 놈”들에 대한 적개심이 자꾸 커지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걱정거리다.
그들의 눈에는 변호사도 “있는 놈”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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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님의 걱정은 너무 앞서 있는 것 아닌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06. 1. 10. 최영호변호사).
"있는 놈들"과 "없는 분들"
어떤 변호사 선배님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였다. 점심으로 생태찌게를 내가 샀으므로 저작권을 양도받았다(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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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도 우리나라에 정말로 대단한 부자가 상당히 있다.
그들은 강남 어디의 무슨 아파트가 아니라 강북에 있는 명산 아래 높고 두터운 담벽이 둘러쳐있고, CCTV가 주변을 감시하는 엄청나게 큰 단독주택에 산다.
차고에는 사장님이 타시는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 류의 커다란 차와 아들이나 딸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페라리나 람보기니가 있고, 입구에 들어서면 기사와 관리인, 가정부가 사는 별채, 그리고 빤지르한 털을 가진 좋은 개가 사는 개집과 넓은 수영장, 골프퍼팅장이 있다.
그들은 LA와 뉴욕, 밴쿠버에 또다른 좋은 집이 있고, 일년에도 여러 번씩 미국으로 유럽으로 일등석을 타고 다니며, 자녀들은 모두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나오고, 그들은 거기서 자식을 낳아 “세계인”을 지향하고 있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여 그러한 부를 누리는지는 상세히 밝힐 필요가 없지만, 많이 벌고 많이 쓰기 때문에 왕성한 경제활동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비하여 개인전담 변호사와 회계사, 의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절대로 위법한 행위나 탈세를 하지 않고, 이웃들과도 별다른 접촉이 없으며,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려서 여러 고급스런 운동을 하여 건강과 체력을 항상 유지하고 있다.
아파트나 땅을 투기하거나 없는 사람을 등쳐서 돈을 긁어모으거나 치사한 짓을 하지 않는다.
신문이나 TV에도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소위 말썽이 날만한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있는 분”들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부자도 아니면서 무슨 사업을 하여 조금 벌었다고, 무슨 벤처를 하여 주식을 팔아넘겨 한탕 하였다고 “없는 분”들 깔보고, 그들의 어려움을 무능의 소치로 단정하면서 나이많은 부하직원 인격을 무시하고, 재벌회장님 보다 더 회장님 노릇을 하려 하는 등 진짜 “있는 분” 행세를 하려다 “없는 분”들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를 망치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 사람들은 “있는 놈”들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서는 재벌이나 유명연예인 등의 사생활까지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소위 파파라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취재(?)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프라이버시와 초상권을 침해당하여도 그렇게 심하게 반발하지 않고, 다른 시민들도 의례 그 사람들은 유명인사니 그럴 수도 있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앞서 말한 “있는 분”이 언론에 한 번 찍히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뭇사람들의 입에서 씹히고 씹혀서 그 사람은 완전히 폐인(?)이 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사람들이 부자들에 대하여 적개심을 크게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중견변호사로서 이 나라에서는 그래도 상당히 잘사는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길거리에서 새파란 놈이 벤츠나 BMW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저 자식은 뭐해서 먹고사는 놈인가 한번 훑어보고, 여자가 시뻘건 루즈 칠하고 골프장에서 폼을 잡고 휴대폰으로 전화질하는 것을 보면 저것은 어느 술집 마담인가라고 한심한 생각을 해본다.
다른 사람은 나보다 덜 노력하고, 쉽게 재산과 지위를 얻어서 부당하게 잘 살고 있다는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하여 나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좌절감에 빠져있고, 적개심에 불타고 있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나는 어렵게 공부하여 간신히 대학 나오고, 졸병으로 군대갔다 왔으며, 취직하여 열심히 벌어서 목숨을 걸고 차지한 여자와 결혼하여 겨우 차 한 대 사고, 조그만 아파트 하나 마련하여 갑근세로 뜯기고 난 쥐꼬리만한 월급도 새끼들한테 교육비네, 과외비네, 용돈이네 이리저리 뜯기고 열받아 포장마차에서 소주로 아픈 마음 달래는데 어떤 놈들은 대치동의 아파트를 전매하여 수억을 벌고, 행정신도시 옆에 산을 사서 수억을 벌고, 펀드에 투자해서 작년 1년 동안에 65%의 수익을 얻었다고 하니 열받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럴만도 하다.
권력있는 사람들은 돈있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갖은 부정을 행하고, 있는 놈들은 어떤 것을 사고 어떤 것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사는데 기르는 개에게 하루 얼마치의 고기를 먹인다느니 개목걸이가 얼마니 하는 언론보도에 얼마나 열을 받겠나? 그럴만도 하다.
부동산투기단속이나 세무조사를 하였는데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고급공무원 놈들이 있었다느니 음주, 난폭운전하는 아이들 잡아들여 보니 지 아버지가 어떤 부자이고, 어느 의사고 변호사라느니 하는 보도가 자꾸 나오니 “있는 놈”들은 “벼락맞을 새끼들”이라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사회정의가 어떻고, 만인의 평등이 어떻고 하면서 “있는 놈”들 욕설하고, 열받는 사람들 잘 살펴보면, 참 이상한 일도 있다.
어떤 분은 트럭을 몰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차의 창문을 열고 밖에다 가래침을 탁 뱉는다. 끄지도 않은 담배꽁초를 손가락으로 탁 퉁겨서 버린다.
식당인지 어딘 지 모르지만, 배달나온 사람이 보는 사람 없다고 아파트 뒤쪽 담벼락에 바지자크를 내리고 수도꼭지를 틀어 용무를 본다.
어떤 분은 오토바이로 열심히 살아가는 택배사 직원으로 정말 바쁘고 힘들게 다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건물에 들어와 금연구역이라고 분명히 써있는데도 온 화장실에 불난 것처럼 담배를 피워댄다.
어떤 연세 지긋한 분은 주차장에서 시간당 보수를 받아 생활비로 한다니 얼마나 어렵게 사실까 마는 자신이 대라는 장소에 차를 대지 않는다고 욕설을 하고 빈정대다가 차 주인이 차를 대고 볼일을 보러 가면 발로 남의 차를 차버린다.
소위 “있는 놈”들의 부정이나 부도덕한 일도 많지만, 그에 반발하는 “없는 분”들의 불법행위나 몰염치도 만만치 않다.
우리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인생관, 세계관을 가지고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모두 자기 나름대로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면서 자신과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누구든지 우리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불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비록 식물인간, 노숙자, 장애자라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기여는 할 수 없더라도 잠재적으로 국가발전의 기초가 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는 이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의 행복은 모두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어려운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그들의 노력을 착취하거나 그들의 부와 행복을 빼앗아 가서 그들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회풍조다.
헌법의 규정과 같이 우리 국민은 모두 법 앞에 평등하지만, 그것은 모든 국민이 전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동일한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모든 사람은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인간이고 한 가족의 구성원이며, 자신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에 대하여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권리가 있고, 그러한 욕구의 충족을 위하여 다른 사람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접촉하여 그 권리의 보장을 위한 수단을 획득하는 것이 바로 사회생활이다.
그러한 개인들의 욕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간의 이익 충돌을 적게 하기 위한 것이 도덕과 윤리이고, 그러한 충돌이 개인들의 타협과 양보에 의하여 해결되지 않을 때 국가와 사회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강제로 조정하는 것이 바로 법이며, 그러한 법의 내용을 실현하고, 국가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정한 것이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에 대한 의무임은 자명하다.
쉽게 말하면 내가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고, 내가 번 만큼에 대하여 법에 정해진대로 세금을 내었으면 나는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는대로 받는다”는 사람사는 사회의 기본원칙이다.
다시 말하면, 집안에서도 자녀 모두가 소중하지만, 입시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성실하게 생활하는 자녀와 공부하지 않고 연애질 만하여 속을 뒤집어놓는 자녀와는 부모가 대하는 사랑의 정도가 다르다.
또, 장사를 하더라도 나를 인정하여 아니면 나의 물건이 우수함을 인정하고, 나의 실력을 인정하여 자주 찾아주는 단골손님이나 거래를 많이 하여주는 사람에게는 물건값을 깎아주거나 덤을 주거나 같은 값이라면 더 좋은 물건을 주는 것이 상거래상 기본원칙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도 의무와 책임을 완수하고, 자신이 속하는 집단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사람과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 해악을 기치는 사람을 동일하게 대우할 수는 더욱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국민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되 권리는 의무와 상응되는 것이어야 하고, 어떤 사람에게 권리는 많이 주면서 의무는 적게 부여한다든지, 권리는 똑같이 부여하면서 의무는 많거나 적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며, 의무를 많이 이행한 사람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권리를 인정하여야 하고,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적게 이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돌아가는 권리가 작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세상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인들에게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없고, 동시에 우리가 염원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귀족국가사회 또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다만, 개인의 능력과 소질은 천차만별이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지게 될 경우 많은 사람들이 종국적으로 빈자와 부자, 사용자와 피용자, 자본가와 노동자로서 지위전환의 가능성을 얻을 수 없으므로 사회적 지위의 영구화 내지 고착화를 막기 위하여 국가의 개입과 사회의 간섭이 어느 정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은 소득세도 내지 않거나 낮은 비율로, 많이 버는 사람은 소득세율을 높게 하고, 좋은 아파트 가진 사람은 팔아서 차액을 많이 남기면 세금을 많이.....
소년가장이나 독거노인에게는 위와 같이 거둔 세금으로 생활비도 주고, 여러 가지 지원도 하여주고..
그러한 사회와 국가의 활동은 결국 위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의 재산에서 거두어진 세금의 집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고, 많은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있는 놈”으로 취급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없는 분”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보는 것은 과장된 평가일까?
자본주의의 폐단이 점점 커가면서 어느 나라에서든지 약은 정치인들은 언제나 “없는 분”들과 되게 친한 것처럼 노동자의 자식이 되고, 선거 때가 가까우면 어김없이 “있는 놈”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높여 자신이 “없는 분”들의 대변인인 양 행세한다.
상대적 빈곤감에 치를 떨고 있는 중산층 이하 사람들이나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 전반에 대한 불만이 많은 사회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들 또는 기성세대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취업하기 어려운 재벌기업에 대한 반발감에 앞서서 아직 세상모르는 새로운 젊은 선거권자들을 이용하여 집권을 기도한다.
그들은 모든 국민의 선거권이 한 표씩 동일하다는 재빠른 계산아래 그들의 득표로 정권을 창출한 뒤 그들에 대한 보답을 위하여 “없는 분”들에 대한 시혜와 배려를 하여 주면서 그들의 표심을 얻는데 주력하여 왔었다.
쉽게 말하자면, 표수가 많은 “없는 분”들의 표를 얻기 위하여 “있는 놈”들은 표수가 많지 않으니 집권을 위해서라면 표수가 적은 사람들은 “적군”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 그들의 선거 전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이미 선진국이므로 아니 “있는 놈”들이 너무 잘 살고 있으니 소수인 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숫자적으로 다수인 “없는 분”들에게 듣기 좋은 이름의 복지를 제공하기 위하여 “있는 놈”들로부터 세금을 무지 걷어 이를 “없는 분”들에게 베풀면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이고, 뒤에 정권을 잃더라도 위대한 정치가로 평가될 수 있다는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있는 놈”들은 어차피 통째로 재산을 빼앗을 수 없으니 세율을 높여 많은 세금을 걷어 들일 수밖에 없지만, “있는 놈”들의 자식들은 아무 것도 하는 것 없이 엄청난 재산을 그냥 물려받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니 상속제도도 없애서 “있는 놈”들의 재산은 사후에는 모두 국가가 차지하여 “없는 분”들을 위하여 쓰면 얼마나 좋겠나?
얼마 되지 않는 요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땅을 가진 놈은 거저 부자가 되고 땅없는 사람은 평생을 힘들게 살 수 밖에 없으니 토지는 모두 국유화하여 국가가 멋지게 관리하고, “없는 분”들을 위하여 유익하게 사용하면 정말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정치가들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모든 국민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떠나 모두 소중하다.
그러나,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발전의 원동력은 “없는 분”들만이 아니라 “있는 놈”들의 힘도 아주 소중하고, 그 사람들이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하여 머리좋은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생활터전을 제공하며, 좋은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없는 분”들을 다시 더 많이 고용하고, 많은 세금은 물론, 세금 이외에도 “없는 분”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아닐까?
경제학을 공부한지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투자효과가 큰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하여 거기에서 창출되는 재화를 다른 산업에 투자하여 모든 산업에 지속적인 경제적 효과를 도모한다는 이론을 “전방효과”라고 하는데 우리사회에서도 무슨 평준화와 획일화를 지향할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람, 돈 잘 버는 사람, 부가가치의 창출률이 높은 사람은 더욱 키워주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어 그 사람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없는 분”들이나 선천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하지 않을까?
법철학도 배운지 오래되어 다 까먹었지만, 법철학자 라드브루흐가 “법철학원론”이라는 명저를 저작하면서 다른 부분을 다 완성하고도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라는 상속제도에 대하여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여 몇 년간 고민하다가 결국 인정하여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들, 너무도 많은 제약 때문에 도저히 어려운 삶을 헤쳐갈 수 없는 어려운 분들, 가족이나 배우자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 홀로 여생을 쓸쓸히 보내는 노인들, 이러한 분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따듯한 보살핌도 중요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중산층, 박봉에 시달리면서 성실히 갑종근로소득세 뜯기는 월급쟁이, 세무조사에 좇기면서 열심히 서비스를 하는 개인사업자도 모두 존경받아야 하지만, 재벌, 돈많은 사람, 사회적 성공한 사람도 무조건 배척받고 “있는 놈”으로 매도당하여서는 안된다.
그들이 그 재산과 명예를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필요하였고, 지금의 재산과 명예를 지키면서 또다른 부가가치를 창조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열을 쏟고 있는지 또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지 우리는 조금만 생각하면 곧 알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스스로 나는 중산층이 못되고 하류층이라고 자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있는 놈”들에 대한 적개심이 자꾸 커지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걱정거리다.
그들의 눈에는 변호사도 “있는 놈”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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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배님의 걱정은 너무 앞서 있는 것 아닌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06. 1. 10. 최영호변호사).